긴 연휴가 끝나는 주말입니다. 다들 잘 지내셨나요? 저는 혼자 사는 사람이라 명절 연휴만 되면 마음이 싱숭생숭해지는 건 어쩔 수 없나 봅니다. 독하게 마음먹고 이번 연휴엔 그동안 읽지 못한 문예지랑 책이랑 읽어야지 했지만, 사람 마음이 또 그런가요? 게다가 저는 글을 쓰는 사람이잖아요. 그러니 얼마나 많은 잡생각이 들겠어요. ㅎ
한창 직장 생활에 매진하던 사십 대였습니다. 지금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명절쯤에 회사에서 직원들에게 선물 상자를 나눠줬습니다. 그걸 들고 텅 빈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니 왜 그렇게 마음이 휑하던지, 그래서 나는 필요 없다며 늘 직장 동료에게 줬던 기억이 납니다.
글 한번 써보겠다고 여수로 와서 4년, 순천으로 옮겨와서 4년째니까… 어쨌든 8년째 글로만 생활하고 있으니 뽀대나지 않아도 저는 전업 작가인 셈입니다. 지금도 가끔 여수로 내려온 첫날이 생각나는데 그때가 2017년 12월 14일이었거든요. 그날따라 천둥번개가 어찌나 우르릉 꽝꽝거리던지. 서울에서도 원룸에서 지냈던 터라 세간살이라고 할 만한 것도 없는 집에서 라꾸라꾸 하나 펴놓고 벽을 보며 자려는데… 문득 앞날이 어찌 될지 덜컥 겁이 나더군요.
2018년에 도서관만 오가며 글만 읽었고, 그해 총수입이 경북일보문학대전에서 동상으로 받은 50만 원이 전부였네요. 애초에 글로 입에 풀칠만 하면 된다는 각오를 했지만, 막상 현실로 닥치니 현타가 좀 오긴 하더라고요. 월급날만 되면, 지금으로서는 거금이라고 생각될만한 금액이 통장에 팍팍 꽂히던 게 한동안 어른거렸으니까요.
시간이 참 빠릅니다. 이젠 어디 가서 내 나이가 몇이라고 말하기가 두려움을 넘어 부끄러울 지경입니다. 왠지는 모르겠네요. 아마도 혼자 살아서 더 그런 기분이 드는 걸지도요. 누구나 세월 가면 나이를 먹는 거니 당연한 건데도 그렇습니다. 젊을 때 몸을 잘 돌보지 않아선지 요즘은 여기저기 아프기도 합니다. 더 서러운 건 아프다고 말할 사람조차 없다는 게 현실이고요. 아마도 저처럼 혼자 사시는 분이라면 조금은 공감하지 않을까 싶네요.
늘 글만 생각하면서 사는 사람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또 문득문득 글이 뭐라고… 이런 생각이 들 때면 잠이 안 옵니다. 대략 70세까지 열심히 쓴다고 해도 자는 시간이랑 이것저것 빼고 나면 쓸 시간도 별로 없지 싶습니다. 70세 이후에도 요즘은 한창이라지만, 건강관리 제대로 하지 못했고, 앞으로도 제대로 하지 못할 게 뻔한 저로서는 그즈음이 마지노선인 셈이죠. 그리고 그때까지 건강하더라도 이미 삶의 많은 부분을 내려놓고 살지 않을까 싶거든요.
사람은 행복한 기억과 추억으로 산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뭐든 행복하다고 해서 그게 추억이 되진 않을 것도 같아요. 그 추억 때문에 현실이 더 참담하고 고통스러울 수도 있으니까요. 이런 공간에 이런 글을 쓰긴 뭣하지만, 저는 혼자니까 70이 넘으면 치매에 걸리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내 정신의 상당 부분이 어떤 기억들에서 비롯될 것이기에 그러면 고민할 것도 없이 마음만은 편할 것 같거든요.
하루 종일 혼자서 책상에서 읽고, 쓰고, 밥 먹고, 왔다 갔다 할 때 그 무거운 걸음을 온몸으로 느낍니다. 마흔 중반에 조계사 출가 나이가 당시 45세까지라는 말을 듣고 절을 찾았던 기억이 납니다. 어머니께 힘들게 허락받았죠. 정말이지 살아갈 세상이 참 막막하더군요. 경제적 이유에서가 아니라, 당시는 꿈을 잃어버린 삶이어서 더 그랬을 겁니다. 퇴근하면서 아이들 좋아할 모습 상상하면서 치킨이나 피자 사 들고 가는 삶, 와이프와 휴일에 함께 산책하면서 장난도 치고, 돌아오면서 근처 찻집이나 술집에 들러 가볍게 한잔하는 일상, 아이들과 좋은 곳이라면 어떻게든 다 가보겠다는 철없는 아버지, 제가 중학교 1학년 때 한 명씩 앞으로 나가 장래 희망을 말할 때 했던 말입니다.
저는 장난치는 걸 무척 좋아하는 성격이죠. 아마 모르긴 해도 제가 가정을 꾸렸다면 제 아이들도 나를 닮아 개구쟁이였을 게 분명합니다. 그러면서도 성정은 또 남달라서(?) 혼자만의 시간을 좋아했을 테고요. 나는 그런 아이들과, 아내와(아내라고 적으니 순간 심쿵하네요) 지지고 볶으면서도 재미나게 늙어갔을 겁니다. 사랑하는 아내가 흰머리 가득한 할머니가 되어가는 과정을 고스란히 지켜본다는 거, 생각만 해도 못 견디게 사랑스러울 것 같거든요.
제가 이렇게 말하면 혹자는 그럴지도 모릅니다. 결혼을 안 해봐서 환상을 가진 거라고. 결혼은 현실이라고. 뭐, 그렇게 말하면 할 말 없지만, 저는 저라는 사람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환상이 아니라고 자부해요. 결혼의 현실은 대개가 경제적 문제로 일어나는데, 제가 살면서 제일 잘 하는 게 성실하게 돈 버는 겁니다. 일단 낭비를 안 하는 게 어릴 때부터 몸에 뱄습니다. 그렇다고 짠돌이라는 게 아니라, 저 자신에게 그렇다는 겁니다.
기본적으로 가족을 위해서라면 똥지게를 질 수도 있고, 막판에 몰릴 여지를 주지도 않겠지만, 설령 그리된다면 원양어선이라도 탈 수 있으니까요. 나로 인해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행복하다는 거, 그동안 글을 읽으면서, 글을 쓰면서 더 많이 깨달은 것들입니다. 그래선지 글은 쓰면 쓸수록 더 외로워지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드네요.
오늘 쉬어가는 글이 지지리 궁상이죠? 제가 좀 그래요.ㅎ 그래서 제가 좋아하는 글은 대개 지지리 궁상인 글이 많습니다. 제가 지난날 발표작 작품도 가만히 들여다보면 지지리 궁상인데 그게 다 그래섭니다. 솔직히 작품성으로 따지자면 올여름부터 쓴 작품들이 훨씬 좋은데 당시는 막 등단 후라서 그런지 그냥 그렇게 쓰고 싶었습니다. 다음부터는 청탁이 들어오면 작품성으로 쓸 테니 혹시라도 관계자가 이 글을 보신다면 청탁주세요. 퀄리티로 승부하겠습니다.ㅎ
청춘은 이제 갔습니다. 언제 내가 청춘인 적이 있었나 싶을 만큼, 돌아보면 직사리 고생만 한 것 같은데 다들 그때가 청춘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혼자 살 줄 모르고, 그렇게 열심히(?) 살았다니… 좀 억울하기도 하네요. 나이 들어 혼자면 가장 억울한 게 있어요. 사람과의 관계입니다. 친구든, 지인이든 돈독한 관계인 것 같아도 하루아침에 끝장날 때가 있습니다. 제가 글 쓰는 사람이니 문인을 예로 들자면 사소한 오해나 다툼으로도 관계가 쉽게 깨집니다. 글 쓰는 사람이 대개 자기주장이 세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요.
하긴, 뭐 문인들과의 관계만 그럴까요. 나이 들어 혼자면 뭐든 이래저래 외로움을 당하게 돼 있는 것 같아요. 이때 가장 서글픈 게 나는 내 편이 없다는 거죠. 혼자가 아닌 사람은 가족이 있어 그냥저냥 지내겠지만, 혼자인 저 같은 사람은 비로소 알게 되는 겁니다. 원래부터 나는 그런 관계에 낄 수 없는 사람이었구나 싶어 극도로 쓸쓸해지는 거죠. 관계의 깊이를, 부고장을 전할 수 있는지로 보자면 그 역시도 좀 그렇습니다. 제가 직장인이라면 당연히 알리겠지만, 문인들은 친함이 있어도 그 깊이가 애매한 경우가 많아서 부고장을 보내는 것도 뭐랄까요, 좀 어중간하달까요. 눈치가 보이기도 하고요.
홍콩 배우 주성치의 대표작인 <서유기>에 보면 이런 명대사가 있습니다.
“진정한 사랑을 두고 소중히 여기지 않았다.
잃고 나서야 비로소 후회했고
이보다 세상에서 더 괴로운 일은 없을 것이다.”
사랑 역시 수많은 관계 중의 하나일 터이니 맞는 말 같습니다. 이런 문장을 보고 가슴이 설레기보다 여수에서의 첫날처럼 겁이 덜컥 나는 걸 보면, 나는 이미 늙었기 때문이고, 오늘 밤 죽어도 아무도 모르는 혼자기 때문일 겁니다. 길고도 길어서 더 끔찍했던 가을날의 연휴가 끝나갑니다. 이제 곧 거리마다 노란 은행잎이 지천일 테고, 제가 베란다에서 바라보는 울창한 은행나무도 눈물 나게 아름다울 텐데요. 앞으로도 어쨌거나 전업 작가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저는 여전히 무거운 걸음을 홀로 들어야 할 겁니다.
쉬어가기를 빌미로 유치하지만, 쓰고 싶은 글을 써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