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시낭송협회 경남지회 30주년 정기 공연 리뷰 : 『말뚝이 가라사대』
1월 28일 어제 경남 창원시 3⦁15아트센터 소극장엘 다녀왔습니다. 고교 선배님이기도 한 이달균 시인의 초청으로 가게 됐는데요. 팸플릿을 보니 1부는 ‘우리 지역 시인의 명시를 찾아서’였고, 2부는 시극 ‘말뚝이 가라사대’더군요. 시 낭송이야 저도 다른 지역에서 몇 번 본 기억이 있지만, 2부는 생소했습니다. ‘시극’이 뭘까 싶었죠. 물론 대충은 알지만, 한 번도 사전에서 그 뜻을 찾아본 적은 없는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찾아보니 ‘시와 같은 운문으로 꾸민 연극’이라고 적혔더군요. 제 짐작대로긴 했지만, 솔직히 저는 ‘시극’이라는 단어가 있는 줄도 몰랐던 겁니다. 시로 꾸민 거니까 창조적으로 그렇게 부르는가 보다 그쯤으로 여겼으니까요.
3⦁15아트센터 소극장은 이게 정말 소극장인지 의문이 들 정도로 규모 면에서도 압도적이더군요. 마치 CGV 극장을 방불케 하는 무대와 조명 장치, 객석의 안락함이 공연을 더욱 기대하게 했습니다. 1부에서 정이향, 김수열, 이정선, 지미자, 백순금, 김나연, 강정화, 민영목, 노연숙 낭송가분들이 차례로 무대에 등장해 시를 낭송하는데, 뒤쪽으로 띄워진 거대 영상의 효과로 더 감동적이었습니다. 시를 쓰는 제가 봐도 이건 그냥 낭송이 아니라, 시를 온전히 마음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솔직히 시극에만 초점을 맞췄는데 낭송가분들이 혼신을 다하는 모습을 보니 우리말이 이렇게 아름다운 거구나, 새삼 느꼈습니다.
낭송 도중에 김소연 연주자가 색소폰 공연을 했는데 그쯤에 이르자 관객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습니다. 초보자는 아무리 불어도 소리가 나지 않고, 어느 정도의 연주 경험이 없으면 색소폰 연주는 쉽지 않다는 걸 알기에 저는 색소폰 선율에 완전히 빠져들었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조영남의 ‘모란 동백’과 김연숙의 ‘초연’을 적당한 율동과 함께 연주했는데, 관객분들도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 예술이 왜 중요한지 체감하지 않았을까 싶더군요.
그렇게 1부 공연이 끝나고 제가 기다리던 시극 공연의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시극 ‘말뚝이 가라사대’는 2009년에 초판본이 나온 이후로 인쇄를 거듭하고 있는 이달균 시인의 ‘고성 오광대 놀이’를 주제로 한 사설시조집 『말뚝이 가라사대』를 각색한 극입니다. 시인 본인이 직접 쓴 대본을 노연숙씨가 연출을 했더군요. 저 역시 읽어본 터라, 그 많은 내용을 배우들이 어떻게 소화할까 기대되더군요. 더구나 전문 배우가 아니라 앞서 1부에서 등장했던 낭송가분들의 공연이기에 자못 흥미로웠습니다.
등장인물 : 김민지, 정이향, 지미자, 성민서, 주희연, 김소연, 이정선, 백순금, 정병생, 신명균
말뚝이는 우리나라 전통 산대놀이나 마당극(가면극 포함)에 등장하는 전문 캐릭터로서 권세를 부리는 양반의 횡포를 풍자와 해학으로 풀어내는 극임을 다들 아실 겁니다. 그러다 보니 배우로 분한 낭송가들이 어떻게 연기할지, 연기에 더 집중하게 되더군요. 극을 시작하기 앞서 이달균 시인이 무대에 올라 낭송가들의 연기가 부족하더라도 힘찬 응원을 부탁한다고 말씀하셨는데, 그건 정말 기우였습니다. 판소리 창법을 가미한 마당극은 처음부터 끝까지 흥미진진했거든요. 저를 포함해 많은 관객분들이 쉬지 않고 박수갈채를 쏟아냈습니다.
공연이 끝날 무렵엔 문득 이런 생각까지 들더군요. 나도 이런 공연을 함께 볼 아내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그 정도로 공연장의 분위기와 열기가 따뜻하면서도 좋았습니다. 공연을 보고 카페로 가서 차 한 잔을 나누며 이날의 시 낭송과 문학에 대해 논할 수 있는 상대라면 금상첨화겠고요. 아닌 게 아니라 부부나 연인으로 보이는 관객도 엄청 많았거든요. 출연 배우들과 기념사진이라도 찍고 싶었는데 축하객들이 너무 많아서 요청하지 못한 게 아쉬울 정도였네요. ‘시는 시인이 쓰지만, 시에 숨을 불어넣어 마음을 울리는 건 낭송가다.’라는 생각과 한 편의 시집이 한 편의 연극과 같을 수 있음을 온전히 깨달은 하루였습니다.
여러분도 기회가 되면 공연장엘 많이 가보시길요.
그러다 보면 어느새 그 감동이 여러분의 손끝으로 번져 새로운 문장으로 다시 써질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