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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 율 Nov 22. 2021

돼지를 잡아라!

비상

뉴스에 멧돼지가 민가에 출몰했다고 나온다.

돼지. 위험한 동물이다.

산에 사는 야생 멧돼지는  더욱 그렇다.

좀처럼 산 밑으로 내려오지 않는 멧돼지가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도심 한복판에도  나타나 식당이든 가정집이든 닥치고 헤집고 다닐까.

살기 위해서이다.

산에는 더 이상 먹을 것이 없는 것이다.

굶어 죽느니 죽을 때 죽더라도  위험한 시도를 하는 것이다.

그들도 살 권리가  있다.

본능이다.


식용돼지는 인간에게 일용할 양식이다.

사육된다. 철저히...

사람은 잡식성이고 요즘처럼 먹을 것이 넘쳐나는 세상에 돼지고기는 선택메뉴 중  한 가지일 뿐이다.

돼지를 무서워하며 돼지를 먹는다.



30여 년 전 군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날은 사단 창설기념일 전날이었다.

내가 근무했던 부대는 경기도 모 부대 사단 사령부

내 보직은 정훈병과.

지금은 모르겠지만 사단 사령부 기념식  최고의 음식은 통돼지 바비큐였다.

이른바 부대 전통.

지금 말로 '겉바속촉'의 전형!


내 임무는 부대 근처  돼지 축사에서 돼지가 부대로 들어오면 안전하게 식당으로 안내하여

 조리병이 돼지를 확인하고 인수증에 도장을 받고 정훈장교에게 보고하면 끝.

그날도 순조롭게 진행됐다.


문제는...

'돼지 바비큐'는 도축된 돼지가 고기 상태로

오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돼지가

군 트럭에 실려오면

도축하는 분이  부대로 들어와서 돼지를

잡아 신선한 상태에서 바비큐 요리를 준비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날따라  도축사분이 오지를 않는다.

행사에 빠져서는 안 되는 바비큐 돼지는 트럭 안에 갇혀있고

 시간은 흐르고...


아뿔싸.

도축사분이 개인 사정으로 못 오신다는

연락이 왔다.

작전장교가 급하게 식당으로 내려왔다.

조리병이 경례를 한다.

'단결'

'됐고.. 돼지는?'작전장교는 급하게 돼지부터 찾았다.

'네 트럭 안에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작전장교는 운전병에게  트럭 문을 열라고 했고

트럭 안에는 250kg쯤 되어 보이는 분홍색

백 퇘지 한 마리가 얌전히 서있었다.

그 순간 나는 뒤돌아 서있던 돼지의  눈과 아이컨텍을 하게 된다.

세상에 그렇게 무서운 돼지의 눈빛을 본 적이 없다.

마치 혹성탈출의 리더 '시저'의 눈빛과 흡사했다.

겁이 났다.

돼지는 뭔가를 계획하고 있는 듯 보였다.

작전장교는 운전병에게 농장에 가서 돼지를 잡아오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도축하는 분이 부재중이다.

라고 했더니 장교는 이내 잠시 고민에

빠지더니 작전 장교답게

결의에 찬 어조로 말한다.

'우리가 잡는다!'


군대는 까라면 까야한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무슨 무장공비 잡는 것도 아니고 돼지를  어떻게 잡냐고...

살아있는 핑크빛 돼지를...

장교는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

'잡으라면 잡아~!'


잠시 후 조리병 7명과 작전처 10명

군수처 5명 그리고 헌병까지...

헌병은 그때 왜 왔는지 지금 생각해도 모르겠다.

아무튼 모두 트럭 앞에 모였다.

장교는 작전명을 말한다.

'고통 없이 신속하게..'

지금부터 작전을 하달한다.

체포조가 트럭 위에서 돼지를 내리면

포박 조는 사지를 결박한다.

돼지가  쓰러지면 그때 구타 조가

돼지를 잡는다.

'알았나!'

장병들은 군인이다.

군인은 전쟁에 나가 목숨 걸고  적과 싸워야 한다.

그것이 군인이고 군대다.

하지만 지금 우리 눈앞엔  실탄을 쏘아대는 적이 아닌 그저 벌거벗은 핑크돼지 한 마리가 수줍게 서 있지 않는가...


시간이 없다.

장교는 지금 똥줄이 탄다.


작전 개시

지는  체포조가 올라가자마자 본능적으로

굉음을 내며  울기 시작한다.

그렇게 큰 돼지 울음소리는 첨 들었다.

필사적으로 발길질을 하며 장병들을 위협한다.

지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돼지가 아니었다.

돼지가 몸을 틀어  장병들을 들이받고

 트럭 밖으로 탈출한 건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포박 조는 돼지를 피해 일제히 엎드렸다. 마치 수류탄이 라도 터진 듯..

돼지는 필사적으로 장병들 사이를  헤집고는

달리기 시작했다.

헌병은 달아나는 돼지에게 본능적으로 거총을 한다.

장교는 사령부 연병장 쪽으로 달아나는  돼지를 보며 세상 잃은 표정을 짓는다.

돼지가  그렇게  빠른 줄 그때 첨 알았다.

돼지는 점점 작아진다.


잠시 후  부대 내에 사이렌이 울렸다.

전부대원의 비상이다.

30분 동안 부대 내를 휩쓸고  다닌

돼지는 공병대의 그물에  잡혔고

농가에 인계됐다.


다음날  행사음식은 바비큐 대신 수육으로

체됐다.

그 고기가 달아난 그 돼지인지는 지금도 모른다


초대받은 인접부대 장교와 민간인. 주변 상인,  동네 어르신까지 모두가 맛있다고 칭찬을 했다.


작전장교는 그날 이후 얼굴을 못 봤다.

다른 부대로 전출 갔다는 얘기만 들었다.


행사는 그렇게  끝이 나고 난

6개월 후에 전역했다.


오늘 뉴스에 나온 멧돼지들도 그날의 핑크돼지와

같지 않을까?

살려는 본능!

즉 달아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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