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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 율 Aug 06. 2021

보홀의 개

밥 굶는  아이들

운동하는 후배 놈이 전화를 했다.

"형님, 더우신데 삼계탕이나 한 그릇 하시죠?"

마침, 점심으로 뭘  먹을까? 머릿속에서 색깔별로 메뉴를 고민 중이었다.

허나, 삼계탕은 땡기지 않는다.

복더위에 잘한다 싶은 집은 사람도 많고 복작거리는 걸 싫어하는 성격이라 나는 재빨리 콩국수를 제안한다.

후배 놈은 벌써 그릇에 엎어져 있는 뽀얀  닭살 바를 생각을 하고 있을 텐데...

하지만, 내가 형이니까.

"석아! 콩국수 맛집 찾아놨다. 파김치랑 겉절이가 예술이다."

탐탁지 않은 후배 놈의 짧은 한숨..

"왓?"  

이제 마무리 펀치를 날린다.

"줄 서는 집이니까 언능와라!"

끝.

후배 놈은 오늘 괜히 전화했다는 아쉬움이 섞인 한숨을  짧게 뱉은 후에 전화를 끊었다.


내가 언제부터 콩국수를 좋아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서른 즈음에 사귀었던 여자 친구의 영향이라 유추해본다.

그녀는 큰 얼음이 두 조각 정도 오이채가 열 나무 개쯤 데코레이션 된 콩국수를 너무도 맛있게 먹었었다.

그 당시 난 이 밍밍하고 싱거운 국수를 왜 먹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세월이 흐른 지금도 보는 순간  땀이 날 것 같은 시뻘건 짬뽕이  좋지

콩국수는 자극적이지 않다.

하지만, 오늘은 너무 덥다. 그래서 콩국수 줄을 서러 간다.


예전에 그녀와 콩국수 말고 뭘 먹었었는지 기억해  보니 음식은 기억 안 나고 술안주만 몇 개 떠오른다.

낙지볶음, 닭꼬치. 달걀찜, 그리고 두부김치.

소주를 좋아했던 그 애는 잘 살고 있을 것이다.

별 탈 없이 헤어졌으니...

무더운 여름이면 콩국수가 자연스럽다.


후배놈는 좋은 일이 있는지 금세 표정이 밝다.

다행히 기다리지 않고 콩국수를 먹었다.

후배는 맛있다고 연신 엄지를 흔들었다.

"다음 주엔 말복이니 닭 먹으러 가자!"

후배는 국수를 흡입하며 다시 한번 엄지를 들었다.

싫은 감정도 잘 조절하는 성숙해 가는 후배다.

고개 숙인 정수리가 많이 훵하다.


8시가 넘어 집에 들어갔다.

며칠 전부터  저녁 짓는 냄새가 없다.

예전에는 엘리베이터부터 치킨이며 피자며 각종 음식 냄새가 우리 집 현관 앞에서 맴돌았는데...

없다. 냄새가.

큰애가 다이어트에 효과가 있자.

중학생 둘째  머슴아도 대놓고 저녁을 안 먹는다.

누나가 예뻐진 걸 아는 걸까?

애들이 굶고 있다.


와이프가 냉장고에서 뭘 꺼낸다.

페트병이다.

하얗다.

콩물이다.

국수는 소면 삶으면 된다고  한다.


난, 생각이 없다고 말할 뭔가를 재빨리 캐치했다.

"애들도 안 먹는데... 속이 좀 안 좋네"

창밖으로 붉은 노을이 진다.


 언제부터인가

애들이 배부르게 굶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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