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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 율 Sep 24. 2021

시스템을 재시작합니다.

며칠 전부터 블랙박스가 말썽이다.

장착한 지 꽤 시간이 지난 상태라 아슬아슬하다.

접촉사고라도 나면 낭패다.


아침에 큰아이 문제로 아내와 좀 다퉜다.

문제는 늘 그랬듯이 돈문제다.

아이는 학교 근처 오피스텔을 얻어 독립을 원한다.

아내도 그렇다.

나는 기숙사가 안전하다는 이유 한 가지 외엔 주장할 수 있는  다른 꺼리를 찾을 수 없었다.

능력 없는 아빠는 되고 싶지 않지만 낡은 블랙박스처럼 가장의 기능을 상실하고 있었다.

화질도.. 메모리도..


아내는 묵비권을 행사하며 서둘러 나서는 내 뒤통수에 얇지만 날카로운 비수를 던진다.

"대출이라도 알아봐!"

아... 결국, 무능한 아비가 되었구나!

출근하는 가장에게 돈 빌려오라는... 외침.

자식 놈은 인사도 안 한다.

아. 어쩌다 이렇게 초라한 모습이 되었나.

돈 없으면 죄인의 되는 거다.

도망가고 싶다.

다시 시작하고 싶다.


사랑스럽지만 괴물이 되어가는 마누라와

착했는데 이기적인 성인이 되어버린 딸자식.

돈 한 뭉텅이 던져주고 의기양양... 좋은 동네로 알아보라고 어깨에 힘주고 싶은데...

상상은 금방 끝난다.

휴대폰에 문자가  도착하는 시간이다.

정말 부지런한 대출 문자.

오늘은 지우지 않고 나눠본다.


삐걱대는 내 무릎 같은 오래된 자동차의 시동을 건다.

블랙박스가 또 젤 먼저 인사한다.


"시스템을 재시작 시작합니다!"

"블랙박스를 시작합니다!"


나도 다시 시작하고 싶다.

용량 많은 메모리로...

화질 좋은 블랙박스로...

모든 시스템을 재시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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