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부터 블랙박스가 말썽이다.
장착한 지 꽤 시간이 지난 상태라 아슬아슬하다.
접촉사고라도 나면 낭패다.
아침에 큰아이 문제로 아내와 좀 다퉜다.
문제는 늘 그랬듯이 돈문제다.
아이는 학교 근처 오피스텔을 얻어 독립을 원한다.
아내도 그렇다.
나는 기숙사가 안전하다는 이유 한 가지 외엔 주장할 수 있는 다른 꺼리를 찾을 수 없었다.
능력 없는 아빠는 되고 싶지 않지만 낡은 블랙박스처럼 가장의 기능을 상실하고 있었다.
화질도.. 메모리도..
아내는 묵비권을 행사하며 서둘러 나서는 내 뒤통수에 얇지만 날카로운 비수를 던진다.
"대출이라도 알아봐!"
아... 결국, 무능한 아비가 되었구나!
출근하는 가장에게 돈 빌려오라는... 외침.
자식 놈은 인사도 안 한다.
아. 어쩌다 이렇게 초라한 모습이 되었나.
돈 없으면 죄인의 되는 거다.
도망가고 싶다.
다시 시작하고 싶다.
사랑스럽지만 괴물이 되어가는 마누라와
착했는데 이기적인 성인이 되어버린 딸자식.
돈 한 뭉텅이 던져주고 의기양양... 좋은 동네로 알아보라고 어깨에 힘주고 싶은데...
상상은 금방 끝난다.
휴대폰에 문자가 도착하는 시간이다.
정말 부지런한 대출 문자.
오늘은 지우지 않고 나눠본다.
삐걱대는 내 무릎 같은 오래된 자동차의 시동을 건다.
블랙박스가 또 젤 먼저 인사한다.
"시스템을 재시작 시작합니다!"
"블랙박스를 시작합니다!"
나도 다시 시작하고 싶다.
용량 많은 메모리로...
화질 좋은 블랙박스로...
모든 시스템을 재시작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