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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은 Mar 25. 2021

과연 고통이 있어야 진정한 예술작품이 나오는 것일까?

제인 캠피온- 영화 [내책상 위의천사]

처음 영화 러닝타임이 158분이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 보기도 전에 살짝 축 처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 긴 시간 자체에 압도되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시간이 언제 흐른지도 모른 채 나는 결국 영화 마지막 장면까지 보고 말았다. 주인공 자넷이 자신의 트레일러에서 시를 지으며 끝나던 엔딩 장면은 아직도 머릿속에 생생하다.  



전나무와 바다가 이렇게 속삭인다 쉿. 쉿. 쉿
                                    


내 책상 위의 천사는 뉴질랜드 여류작가의 자서전을 바탕으로 그린 영화다. 어릴 적 뚱뚱하고 못생긴 주인공 자넷은 어느 날 시 쓰기 수업에서 자신의 재능을 발견한다. 이성에 관심이 많은 또래와는 달리 자넷은 혼자만의 공간에서 시를 쓰고 책을 읽는 것에 행복을 느낀다. 



하지만 그녀의 비범한 재능으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고난과 역경을 맞게 된다. 자넷의 리포트를 통해 글 실력이 범상치 않다는 것을 알게 된 대학교수는 자넷을 정신 병원에 보낸다. 반 고흐 베토벤 같은 천재 예술가들은 필히 정신분열증을 겪었다는 말과 함께. 그 후 8년이라는 시간 동안 자넷은 병원에 감 근 된 채 전기치료를 받는다. 전기치료를 받으며 겪는 고통을 글로 쓰기 시작한다. 



대학교수의 추천으로 자넷은 진정한 작가의 길을 걷게 된다. 이후 문학상을 받은 자넷은 해외에서 여행을 하던 도중 스페인에서 미국 시인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짧고 굵은 사랑이 남긴 것은 돌연한 이별과 유산이라는 상처였다. 게다가 자넷은 스페인 병원에서 그동안의 정신분열증은 오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충격에 빠지게 된다. 그때의 상처를 예술로 승화시켜 책으로 출판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글을 쓰며 예술가의 길을 걷게 된다. 




뉴질랜드의 풍경, 자넷의 실감 나는 연기력, 탄탄한 스토리, 수많은 요소들이 인상 깊었지만 그중 내게 화두를 던진 장면이 있다. 바로 그 문제의 대학교수였다. 그 대학교수의 잘못된 정보로 자넷은 정신분열증이라는 오진을 받고 8년 동안 고통스러운 삶을 보낸다. 특히 그녀가 뇌 절단 수술을 받을 것이라는 통보를 받고 불안과 초조에 떨며 벽에다가 시를 쓰던 장면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자넷은 끔찍한 정신병원이라는 공간에서 예술적으로 완성도 높은 시 한 편을 완성하여 문단에 데뷔할 수 있게 된다. 대학교수는 자넷에게 씻을 수 없는 삶의 고통을 안겨준 사람이면서 동시에 삶에서 가장 화려한 순간을 만들어준 사람인 것이다. 흔히들 예술가에게 있어 삶의 고통은 영감의 귀천이라고 한다. 하지만 과연 훌륭한 예술 작품을 위해 예술가의 고통은 당연시되어야 하는 것일까? 여전히 내게 풀리지 않은 숙제를 남겨준 영화 내 책상 위의 천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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