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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은 Mar 11. 2021

제가 못생긴 여자여도 사랑해줄 건가요?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그래도 절 사랑해줄 건가요...?

제가 아주 못생긴 여자라도 말이죠....


소설가 박민규는 과거 아내가 자신에게 한 질문을 화두로 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책 표지에 삽입된 그림을 통해 주인공을 대략적으로 유추할 수 있는데, 그림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에서 작곡가 <모리스 라벨>은 공주에 영감을 받아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작곡한 것에 반해 저자는 그 옆에 난쟁이에 주목했다.


책 표지에서 다소 박색한 난쟁이를 강조한 것을 통해 이 소설이 못생긴 여자를 주인공으로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소설 속 주인공 '나'는 자신의 어머니를 연상케 하는 박색한 '그녀'를 사랑하게 되고 그녀는 차별 받던 어두웠던 삶에서 작은 용기를 가지게 된다.


이 소설은 자칫 사회에서 못 생겼다는 이유로 차별 받던 여자가 남자의 사랑을 통해 자존감을 찾아가는 상투적인 로맨스로 비춰질 수 있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주목해야할 점은 날카로운 작가의 시선이다. 본질적으로 작가는 잔인한 사회구조를 움직이고 있는 보편적인 "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즉, 소수의 사람들이 권력을 유지하는 사회구조와 그 구조를 유지하는 “힘" 말이다.


민주주의니 다수결이니 하면서도 왜 99%의 인간들이 1%의 인간들에게 꼼짝 못하고 살아가는지. 왜 다수가 소수를 위해 살아가고 있는지 말이야. 그건 끝없이 부끄러워하고 부러워하기 때문이야. (42 page)

내가 볼 땐 그래. 진짜 미녀라고 할 만한 여자도, 진짜 추녀라 불릴 만한 여자도 실은 1%야. 나머진 모두 평범한 여자들이지. … 나 살만 좀 빼면 괜찮은 얼굴이라 생각해, 키는 구두로 어떻게든 되는 거잖아. 부끄러워하고 부러워하고 부끄러워하고 부러워하고... 결국 그게 평범한 여자들의 삶 인 거야. 남자도 마찬가지야. (42 page)


저자가 말하는 평범한 여자의 삶이 그렇듯 어릴 적부터 나는 스스로를 부끄러워하고 타인을 부러워했다. 유독 외모에 대한 컴플랙스가 많았는데 외모에 집착하는 친가 쪽 친척들 때문이었다. 소설 속 주인공 ‘나’의 아버지처럼 우리 할아버지는 선이 뚜렷한 전형적인 미남이셨고 이에 피를 물려받은 친척들은 대부분 얼굴이 작고 코가 오똑한 미남 미녀였다. 그에 반해 나는 평범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누가 봐도 평범한 외모를 가진 나는 친척들 사이에서 외면의 혹은 공격의 대상이 되곤 했다. 특히나 동갑 이였던 친척 언니에게 보이는 따뜻한 시선과 대조적으로 차갑게 나를 바라보는 시선에 늘 움츠려 있었다.



[드라마 여신강림 - 친척들에게 외모 지적을 받고 있는 주인공 짤]


그런 내가 외모 집착으로 부터 잠시나마 벗어났던 순간이 있었다. 대학시절 휴학하고 떠난 약 1년간의 캐나다에서의 생활에서였다. 그 1년 동안 잠깐이지만 외모에 대한 집착을 내려 놓을 수 있었다. 이민국가인 캐나다에서 다양한 인종을 만나며 내 체형, 내 외모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아무도 내게 외모 지적을 하지 않았다. 그저 온전히 “여자”로서 받아들여 질 수 있었다. 소설 속 "그녀"도 독일에 가서야 평범한 "여자"의 삶을 누릴 수 있게 된다.


돌이켜보면 그런 생각이 들어요. 저는 그곳에서 여자가 아닌 다른 그 <무엇>으로 살아야 했던 게 아닌가.. 남성과 여성의 구분이 아닌 매우 이상한 그 어떤 것.. 상처받고 일그러질 수밖에 없는 그 무엇이 아니었을까 ... ... 어쨋거나 이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선 그냥<여자>로 살아갈 수 있다는 점일 거에요. 그냥 여자.. 성형을 받거나 굳이 예뻐야 하거나 하이힐을 신지 않아도 되는 말 그대로 그냥 여자 말이에요. 굳이 분류를 당한다 해도 저는 이제 못생긴 여자가 아니라 독신의 동양인 여자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거에요.... (380 page)


하지만 자유를 느낀 것도 잠시, 한국으로 돌아오면서 다시 외모에 신경 쓰기 시작했다. 우리 집안 안에서만 가진 엄격한 잣대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텔레비전을 켜도, 버스정류장에 있는 지면광고를 봐도, 친구들의 대화속에서 혹은 사람들의 시선속에서 끊임없이 아름다운 여성을 칭찬하고 전시했다.


특히 직장을 들어가서 느낀 건 직장상사 혹은 동료들이 유독 여성의 외모에 관심이 많다는 것이었다. 회식을 하면 매번 보이지 않는 외모에 대한 무언의 압박이 있었다. 조금만 화장이 뜨거나 지워지면 수척해 보인다, 화장을 안 했냐는 기타 등등의 말들을 서슴없이 들었다. 반대로 화장이 잘 됐을 때 혹은 스타일이 좋은 옷을 입고 갔을 때는 칭찬을 받거나 과한 주목을 받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 외모를 필요 이상으로 의식하게 됐고 그런 의식들이 점점 나를 덮쳐왔다.


제가 한국에서 겪은 일들은 매우 야만적인 것이었어요. 야만이죠. 아름답지 않으면 .. 화장을 하지 않고 서는 외출하기가 두려운 사회라는 건요.. 총기를 소지하지 않으면 집 밖을 나설 수 없는 사회라는 거예요. 적어도 여자에겐 그래요, 지극히 야만적인 사회였어요.(381 page)


과한 자의식으로 숨이 막힌다는 느낌이 들 때면 캐나다의 생활을 떠올렸다. 그때 느꼈던 시선으로부터의 자유를 떠올리며 조여오는 마음을 안정시킬 수 있었다. 캐나다를 가기전에는 이런 사회구조를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다른 세상도 있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이런 사회구조가 잘 못 됐다는 것을 명확하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부와 아름다움에 강력한 힘을 부여해준 것은 바로 그렇지 못한 절대다수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는 끝없이 욕망하고 부러워했습니다. 이유는 그것이 <좋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누가 뭐래도 그것은 좋은 것입니다. 누가 뭐래도 우리는 그런 세상에 살고 있으며, 누가 뭐래도 그것은 불변의 진리입니다. 불변의 진리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그것을 <시시하게>만드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420 page)


저자는 이런 견고한 사회구조를 깨트리는 방법으로 시시하게 만들라고 한다. 1%의 사람들을 봐도 '와와' 하지 말고 '예예' 하지 말라고. 그들만 쳐다보고 부러워할 게 아니라 서로의 빛을, 서로를 위해 신경 쓰라고 말한다.

그래서 나는 이제 “와와”가 아닌 그들을 보면 "오~"한다. 여전히 그들을 보면 압도되긴 하지만 내 자신을 완전히 잃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누군가에게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랑을 받아보고 외모가 아닌 다른 것으로 인정을 받은 경험이 쌓이면서 내려놓을 수 있게 됐다. 그렇다고 한국에 사는 한 그들을 보며 압도되는 것은 어쩔 수 없을 것 같다. 그렇게 끊임없이 사회 구조속에서 주입하고 있기 때문에. 하지만 이런 소설들을 읽으면서 “와와”에서 “오~”로 바꿀 수 있는 힘은 조금씩 기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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