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민주주의니 다수결이니 하면서도 왜 99%의 인간들이 1%의 인간들에게 꼼짝 못하고 살아가는지. 왜 다수가 소수를 위해 살아가고 있는지 말이야. 그건 끝없이 부끄러워하고 부러워하기 때문이야. (42 page)
내가 볼 땐 그래. 진짜 미녀라고 할 만한 여자도, 진짜 추녀라 불릴 만한 여자도 실은 1%야. 나머진 모두 평범한 여자들이지. … 나 살만 좀 빼면 괜찮은 얼굴이라 생각해, 키는 구두로 어떻게든 되는 거잖아. 부끄러워하고 부러워하고 부끄러워하고 부러워하고... 결국 그게 평범한 여자들의 삶 인 거야. 남자도 마찬가지야. (42 page)
돌이켜보면 그런 생각이 들어요. 저는 그곳에서 여자가 아닌 다른 그 <무엇>으로 살아야 했던 게 아닌가.. 남성과 여성의 구분이 아닌 매우 이상한 그 어떤 것.. 상처받고 일그러질 수밖에 없는 그 무엇이 아니었을까 ... ... 어쨋거나 이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선 그냥<여자>로 살아갈 수 있다는 점일 거에요. 그냥 여자.. 성형을 받거나 굳이 예뻐야 하거나 하이힐을 신지 않아도 되는 말 그대로 그냥 여자 말이에요. 굳이 분류를 당한다 해도 저는 이제 못생긴 여자가 아니라 독신의 동양인 여자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거에요.... (380 page)
제가 한국에서 겪은 일들은 매우 야만적인 것이었어요. 야만이죠. 아름답지 않으면 .. 화장을 하지 않고 서는 외출하기가 두려운 사회라는 건요.. 총기를 소지하지 않으면 집 밖을 나설 수 없는 사회라는 거예요. 적어도 여자에겐 그래요, 지극히 야만적인 사회였어요.(381 page)
부와 아름다움에 강력한 힘을 부여해준 것은 바로 그렇지 못한 절대다수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는 끝없이 욕망하고 부러워했습니다. 이유는 그것이 <좋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누가 뭐래도 그것은 좋은 것입니다. 누가 뭐래도 우리는 그런 세상에 살고 있으며, 누가 뭐래도 그것은 불변의 진리입니다. 불변의 진리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그것을 <시시하게>만드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420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