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건 결국 지금이다

불안할수록 지금을 살아야 한다

by Dean

그러니까 어떤 날은

미래가 너무 가까이 와서 현재를 밀어낸다.


아직 오지도 않은 일들,

아직 결정되지 않은 결과들.


그런 생각들이 먼저 도착해서

지금 내 앞에 있는 하루를 가려버린다.


‘지금’에 있는데도

‘지금’이 아닌 곳에 있는 기분이 든다.




기시미 이치로의 『미움받을 용기』를 읽으며

내가 가장 오래 붙잡고 있던 문장을 다시 보게 됐다.


이 책의 기반이라고 생각되는 아들러 심리학은

사람을 과거로 설명하기보다

“지금 무엇을 위해 그렇게 행동하는가”를 묻는다.


우리가 불안한 이유도

어쩌면 과거의 상처 때문만이 아니라,

현재의 내가 어떤 결말을 피하고 싶어서

불안을 붙잡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불안은 늘 그럴듯한 이유를 달고 오지만,

결국 지금 해야 할 일을

미루기 위한 핑계를 만들어 내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걸 알고 나니 질문이 바뀌었다.


“왜 나는 불안한가?”가 아니라

“그래서 나는 지금 무엇을 할 건가?”


아들러 심리학이 흥미로운 건

사람을 ‘과거의 결과’로만 보지 않는다는 점이다.


나는 어떤 상처가 있어서 이렇게 되었고,

나는 어떤 환경에서 자라서 어쩔 수 없고…


물론 그런 이야기들이 위로가 될 때도 있다.


하지만 그 설명이 길어질수록

지금 내 손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점점 멀어진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내가 실제로 만질 수 있는 건 오직 ‘지금’뿐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지금을 버티기 힘들면

미래로 도망가거나 과거로 숨어버린다.




불안이 밀려올 때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두 가지뿐이다.

1. 숨을 천천히 들이마시고, 천천히 내쉰다.

2.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행동을 한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책상 위에 쌓인 종이를 “정리해야지”가 아니라, 한 장만 치우기.

운동을 “해야지”가 아니라, 운동복만 꺼내기.


이렇게 작게 쪼개면 ‘현재’는 무섭지 않다.

현재는 결심이 아니라 손이 닿는 크기가 된다.




‘미움받을 용기’라는 말도

결국 지금을 사는 용기와 닮아 있다.


모두에게 이해받고,

모두에게 좋은 사람으로 남으려는 마음은

현재의 나를 구속한다.


“미움받아도 괜찮아”로 나를 위로하기보다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을 먼저 하자.” 로 나아가자.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로

내 하루를 밀어내지 않기.


지금 내 앞의 하루를

내 손으로 다시 꺼내오기.




사는 건 결국 지금이다.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오늘 내 손이 닿는 만큼만.


그렇게 하루를 ‘지금’으로 채우다 보면

어느 날 불안은 여전히 오더라도

내가 흔들리는 시간은 훨씬 짧아진다.


지금 여기로 돌아오는 힘.


그게 내가 요즘 배우는

가장 현실적인 용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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