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면 익어가고 있습니까
우리는 시간을 흔히 ‘소비’한다고 말합니다.
대한민국의 회사라는 견고한 시스템 안에서
우리의 시간은 분 단위로 쪼개지고,
효율과 성과라는 이름 아래 남김없이 태워집니다.
퇴근길 지하철에서 마주하는 수많은 얼굴 위에는
하루의 노동이 남긴 피로와 함께,
‘시간에 쫓기는 자’ 특유의 조급함이 묻어 있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더 빨리, 더 정확하게 움직여야 한다는 강박은
삶을 풍요롭게 하기보다 오히려 내면의 수분을 바싹 말려버리곤 했죠.
이런 갈증 끝에 만난 주은재 작가의 <시간을 마시는 보이차>는 저에게 시간의 정의를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저자는 책에서 보이차를 마시는 행위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차를 마시는 것은 물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그 차가 머금고 있는 시간을 마시는 것이다.”
수십 년의 세월 동안 어둠 속에서 발효되며
비로소 깊은 향을 완성하는 보이차처럼,
우리 인간의 삶 역시 단순히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통찰이었습니다.
직장인으로서 우리의 시간은 늘 타인에 의해 결정됩니다.
회의 시간, 보고 기한, 협력사와의 약속.
주도권을 뺏긴 시간은 그저 소모될 뿐입니다.
하지만 퇴근 후 집에 돌아와 찻물을 올리는 그 순간부터
시간의 주인은 비로소 ‘나’로 바뀝니다.
주은재 작가는 차를 우리는 과정을 ‘기다림의 미학’이라 말합니다.
찻물이 끓기를 기다리고, 찻잎이 뜨거운 물속에서 몸을 펴기를 기다리며,
그 향이 잔 안에 가득 고이기를 기다리는 시간.
이 기다림은 지루한 지체(Delay)가 아니라,
오롯이 나 자신에게 집중하기 위한 정교한 ‘전환’의 과정입니다.
최근 제가 정성껏 ‘개호’를 마친 자사호에 보이차를 넣고 우려낼 때,
저는 이 책의 한 구절을 떠올립니다.
“차는 사람을 속이지 않는다. 뜨거운 물을 만나 제 몸을 다 내어주는 찻잎처럼,
우리도 삶의 뜨거운 순간 앞에 정직하게 자신을 내보여야 한다.“
낮 동안 직장인의 페르소나를 쓰고 나를 숨겨왔던 시간들이
찻잔의 온기 속에서 천천히 녹아내립니다.
보이차의 수색이 점점 짙어지듯, 억지로 꾸며내지 않은
나의 본질이 수면 위로 떠오릅니다.
보이차는 시간이 흐를수록 가치가 높아지는 독특한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10년 된 차보다 30년 된 차가 더 깊은 맛을 내는 이유는
그만큼 많은 ‘침묵’과 ‘인내’의 시간을 견뎌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도 이와 닮아 있지 않을까요?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직장 생활의 고충, 인간관계의 갈등,
그리고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까지도
실은 우리를 더 깊은 맛을 내는 인간으로 발효시키는 필수적인 과정일지도 모릅니다.
당신의 시간은 지금 어떻게 흐르고 있나요?
그저 소모되고 있나요, 아니면 보이차처럼 근사하게 익어가고 있나요?
작가는 “차 한 잔을 마시는 10분의 시간이 하루 24시간을 견디게 하는 뿌리가 된다”라고 합니다.
저 또한, 단순히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차를 마시지 않습니다.
저는 제 삶에 허용된 고요한 시간을 마십니다.
복잡한 알고리즘과 타인의 시선에서 완전히 단절된 채,
오직 찻잔에서 올라오는 수증기의 움직임에만 시선을 둡니다.
이것이 제가 제안하는 ‘오늘을 잠시 천천히’ 살아가는 법입니다.
작가의 말처럼, 우리가 마시는 차 한 잔에는 우주가 담겨 있고,
그 우주를 마시는 동안 우리는 비로소 ‘살아있음’을 느낍니다.
당신의 밤이 보이차처럼 깊고 그윽하게 익어가길 바랍니다.
내일 다시 세상의 소음 속으로 뛰어들어야 할지라도,
오늘 마신 이 ‘시간’의 힘이 당신을 결코 꺾이지 않게 지탱해 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