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로 이별 통보를 하는 여자

#1 별 수 없는 이별

by 별거의 모순
넌 다를 거라고 했지만
거봐. 내 말이 맞지?
너도 별 거 없어.




'밥은 먹었어?'

한참을 말 없이 앉아 있던 그가 꺼낸 첫마디였다. 고르고 고른 말이 겨우 밥이라니..참 그 다웠다.

하루 전 그에게 이별통보 비슷한 걸 했다.

감정이 식었다는 말을 애둘러 포장하려는 그가 미웠다. 그의 마음을 예전 상태로 되돌릴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예상대로 그의 반응은 '네가 하고 싶은대로 하라'는 식이었고 애매모호하게 전화를 끊어버렸다.


'이대로 끝낼 순 없다'

모든 게 끝이라고 생각하니 그제야 신경 세포들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그가 선물한 인형, 그의 칫솔, 렌즈통, 세척액, 면도기, 하루종일 골라서 샀던 커플잠옷, 주차 등록 때문에 가져왔던 자동차 계약서까지.....

멋진 싱글라이프를 꿈꾸던 10평 남짓한 집에 온전히 '내 것'은 없었다.


'다시 되돌릴 수 없어?'

확인하고 싶었다. 진짜 헤어지는 건지. 어떻게 그렇게 침착할 수 있는지.

혹시나 지금쯤 후회하고 있는 건 아닌지. 우리 관계의 시작이 그랬듯 주저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온 대답은 역시 '아니'

사실 그 문장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단호하고 고집스러운 성격이 베어있는.. 담백한 거절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날은 한 달 전 원주에 있는 안도 타다오의 뮤지엄에 갔다가 서로에게 부쳤던 엽서가 온 날이었다.

평생 함께하자는 마지막 문장을 보니 관계라는 것이 참.. 별 게 아니라는 생각이 스쳤다.

애석하게도 그 역시 몇 통의 문자만으로 충분히 끝맺을 수 있는 관계였다.


돌이켜보면 항상 이런 식이었다.

단한 번도 이별을 할 때 대면을 해 본 적이 없다. 요즘 애들은 문자로 사귀고 이별하더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 요즘 애가 나였다. 감정 표현에 서툴고 진심을 나누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리는 요즘 애..



그렇다면 나는 사랑을 해본적 없을지도 모른다.(가족, 반려견은 제외다)

늘 관계를 맺을 때마다 사랑을 찾아보려 했지만 그저그런 남녀관계에 지나지 않았다. 딱 한 번, 첫사랑을 제외하면. 그렇다면 29년 평생에 '사랑이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경험은 한 번뿐인 것이다.

많지는 않지만 숱한 만남의 기억들이 별 게 아닌 것으로 정의내려지니 그 첫사랑만이 별 것이 되었다.


photo-1528323171441-74624897e640.jpeg @unsplash


그리고 지금...

나는 남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일까봐 두렵다.

아니 서글프다가 맞는 표현일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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