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초아 Oct 01. 2024

야근수당은 주시는 거죠?

나에게는 다섯 살, 천진난만하고 씩씩하며 단어 하나하나 힘을 주며 말하는, 자신이 정말 공주라고 생각하는 아들 같은 딸이 있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공주를 보며 깨달은 건 배려심도 타고남이고 상대의 기분을 생각하며 말하는 것도 생물학적 요인이 크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일단 떼부터 쓰고 보는  같은 아들은 부탁을 들어주고 싶다가도 그런 마음을 순식간에 사라지게 만드는 능력이 있다. 

엄마의 약점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데 그중 내가 쉽게 마음이 약해진다는 것을 자주 이용한다. 내 안의 모성애를 자극한달까.

하지만 늘 얄짤없는 아빠에게 혼나고 나서야 상황이 종료된다.

“엄마, 유튜브 보고 싶어.”

“안 돼.”

“아, 딱 허팝만 볼게. 다른 건 하나도 안 볼게.”

이 말에 열 번도 더 넘게 속았다가 호되게 당했다. 

유튜브 속에는 유익한 영상도 있겠지만, 거칠고 폭력적인 영상 또한 많은데 그걸 아직 스스로 가리기는 어렵기도 할뿐더러, 약속 시간도, 규칙도 지키지 않고 유튜브를 끌 때마다 실랑이를 벌여 결국 지금은 금지 상태다.

“아, 진짜 좀 제발~~ 그러면 유튜브 안 보는 대신에 오늘 저녁에 치킨 시켜 줘.”

“아들아, 유튜브는 네가 규칙을 잘 지키지 않아서 그런 거고 치킨이랑은 상관없는 일이지.”

“아! 나 저녁 안 먹어!!”  


반면 둘째는 이야기가 다르다.

“우리 책 읽을까?”

“응, 엄마~”

“우리 한글 공부 할까?”

“응, 엄마. 내가 이거까지만 놀고 할게. 기다려 줘.”

그렇지만 이렇게 순응적인 아이라도 서운한 게 있으면 가끔 터질 때가 있다.  


아홉 시가 훌쩍 넘은 시간. 이제는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며 방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갔다.

“엄마, 더 놀고 싶어.”

웬일인지 둘째가 조르기 시작한다. 이제는 너무 늦었다며 내일 주말이니 자고 일어나서 많이 놀자고 아이를 달랜다.

피곤한 첫째는 먼저 잠이 들고, 둘째와 함께 침대에 누워 아이의 어깨를 토닥인다. 그렇지만 시간이 흘러도 둘째의 눈은 여전히 말똥말똥하다.

“엄마, 잠이 잘 안 와... 아니, 엄마. 왜 오늘 나랑 인형 놀이 안 했어? 내가 아까 계속 기다렸는데 엄마는 오빠랑만 놀고. 엄마, 우리 인형 놀이 못했어... 힝...”

맞다. 첫째가 많이 보채는 탓에 둘째는 자연스레 혼자 노는 시간이 많은 건 사실이다.

시무룩한 표정에 마음이 흔들린다.

못 놀아 서운하다면 보통 화를 내는 첫째에게 익숙해진 나는 속상함을 내비치는 아이를 보며 두 번의 망설임 끝에 결국 백기를 들고 말았다.


아이의 손을 잡고 다시 거실로 나왔다.

그럼 우리 딱 삼십 분만 놀고 자자.”

“아니야. 계~~~~ 속 놀 거야. 헤헤.”

그렇게 나는 야근을 하게 되었다.

꿈만 같은 혼자만의 시간은 오늘도 꿈인 채로 남겨졌다. 


흘러 흘러, 시계는 11시 34분을 가리키는데, 아직 업무는 끝나지 않았다.

부장님은 퇴근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어쩌자고 내가 또 마음이 약해져서 알겠다고 했을까. MZ세대처럼 당당하게 나의 권리인 정시 퇴근을 요구했어야 했다.

먼저 꿈나라로 퇴근한 남편 사원이 코를 곤다. 거대한 소리가 나의 심기를 굉장히 건드린다. 휴지로 콧구멍 두 개를 다 막을까 하다 꾹 참는다.

'돈이라도 많이 벌어야 억울함도 덜 하지.'라는 생각에 감히 부장님께 말도 안 되는 질문을 했다.

“공주, 엄마한테 야근 수당 줄 거야?”

“응, 엄마. 나중에 커서 돈 벌어가지고 꺼~피~ 사줄게!”

그 커피 지금 사줄 순 없겠니. 하하...

그렇게 혼자만의 시간을 꿈꿨던 나의 불금은 끝나지 않는 야근으로 인해 다음 주를 기약하게 되었다.


그리고... 하츄핑은 언제까지 재워주어야 하는 거니~~

얘는 불면증이라니? 이제 같이 좀 자자~~


눈 감거라, 하츄핑!
이전 02화 너는 성인군자의 길을 걷는 거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