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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초아 Sep 24. 2024

너는 성인군자의 길을 걷는 거지.

사건은 꼭 꼬리에 꼬리를 물고 오기 마련이다. 좋지 않은 일은 늘 한꺼번에 몰려온다. 나의 삼십일 년 인생사가 그렇게 말해준다.

두 아이가 망아지처럼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이 시절을 난 후덥지근하고 건조한 태풍이 휘몰아치는 ‘봄날’이라 말하고 싶다. 그리고 태풍의 중심에는 소파에 물에 불린 미역처럼 착 달라붙어 팔짱을 끼고 휴대폰 게임 화면만을 응시한 채 편안하고 아늑한 미소를 짓고 있는 뒤통수를 날리고 싶은 남편이 있다. 분명 아름다운 봄인데, 태풍으로 인해 내 정신은 파사삭 부서져 버렸다.


그날의 아침은 평화로웠다. 다른 날과 특별히 다를 게 없었고 아이들은 늘 그렇듯 싸우고 놀고를 반복했다.

우리 집 거실에는 책상이 있다. 그것은 남편이 서재처럼 만들고 싶다며 산 것으로, 나무로 되어 고급져 보이지만 사실 엄청난 가격은 아닌 엔틱 비스무리한 책상이다. 실제로는 남편보다 아이들이 더 많이 앉아 책을 보고 공부를 하고 그림을 그리는 이 책상 위에 나는 무드등을 올려놨다.

남편의 생일 날, 친구에게 선물 받은 무드등 안에는 작은 전구가 촘촘히 달린 전선들이 얼기설기 엮여 있고 그것들은 투명한 유리볼 안에서 빛나고 있었다.

이것을 절대 책상 위에 두지 말았어야 했는데 모든 것은 내 불찰이요, 잘못이었다.     

둘째에게 늘 말했다. 책상 구석으로 들어가지 말라고. 네가 끼여 다칠 수도 있고 무드등을 떨어뜨려 깨지면 큰일이니 제발 다른 곳에서 놀라고.

하지만 이날은 내 예상이 정확히 들어맞은 날이었다.

마침 토요일이었고 난 무조건 로또를 샀어야 했는데 하필 모든 운을 아이가 무드등을 떨어뜨릴 것이라는 예상에 써버리고 말았다.


와장창!

정말 ‘와. 장. 창’이었다. 그냥 깨진 것이 아니고 박살이 나서 거실과 소파 밑까지 온 바닥에 유리 조각들이 흩뿌려졌다.

“이게 뭐야!!!!!!!!!!!!!!!!!!!!!!!!!!!!”

단전에서부터 끌어올린 고함이 본능적으로 나왔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오랜 주부의 경험으로 알고 있다. 재빠르게 사태를 파악하고 문제 해결에 나서려는 순간, 상황을 목격한 남편의 인상이 일그러지는 것을 보았다.

나는 그 표정이 무슨 뜻인지 안다. 질색팔색하는 그 표정.

인중이 길어지고 미간이 모아지고 아이들에게 무자비한 말을 할 것이라고 알리는 두 배로 커진 눈과 오리처럼 튀어 나온 입술을 난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나는 래퍼처럼 그 누구보다 빠르게 말했다. “내가 치울게. 모두 방으로 들어가 있어.”

“됐어, 내가 치울게.”

“아니야!!!! 나 괜찮아. 애만 안 다쳤으면 됐지. 금방 치울 테니까 얼른 방으로 들어가 있어.”

난 알고 있다. 남편은 유독 이런 상황에 취약하다는 것을. 물건이 망가지거나, 고장 났을때는 꼭 누가 그랬냐고 잘못을 따지며 본인의 의도와 다르게 아이들에게 해서는 안 될 말까지 하고 선을 넘는다는 것을. 그러니 몸이 힘들어도 내가 정리하는 것이 마음 편하다.


가족들을 모두 방으로 피신시키고 거실로 돌아와 보니 생각보다 사건 현장은 심하게 훼손되어 있었다. 하필 나무라 더 무거운 책상과 남편이 최고로 사랑하는 소파를 밀어내니 사방에 흩어진 유리 조각들이 자리했다. 하나하나 쓸어 담고, 또 닦고, 불안해 세 번을 닦고 다시 확인하니 땀은 뻘뻘 흐르고 머리가 핑 돌았다.

아이들은 아무 일이 없었던 듯 방에서 게임을 했고 상황의 진전이 궁금했던 남편은 슬금슬금 거실로 나왔다.

괜히 심기를 건드렸다간 그 화살이 아이들에게 몇 배로 돌아갈 것을 알기에 어금니를 꽉 물고 말했다.

“아휴, 꽤 오래 걸리겠어. 우리 시원한 커피 마실까?”

그 말에 남편은 아직 난장판인 거실을 보고 툭, 속마음을 내비쳤다.

“아, 머리 아파.” 그러고는 소파에 털썩.

이건 도저히 참을 수 없다. 정리는 나 혼자 다 하고 있는데 왜 본인이 머리가 아픈가.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해서도 안 되며 선을 넘는 이 언어폭력에 난 독립투사처럼 불타올랐다.

“당신이 왜 머리가 아파!!!!!!!!!!!!!!!!!!!!$%@&!”

그렇게 한 시간 가까이 걸레질을 한 나는 남편이 사 온 달콤한 커피를 마시며 숨을 돌릴 수 있었다.

커피 하나로 다시 기분이 좋아진 줏대 없는 나를 보며 남편은 이때다 싶어 나를 또 놀린다. 온통 헝클어진 머리의 내 모습을 보고 씩 웃으며 한다는 말이 “너는 성인군자의 길을 걷는 거지.” 란다.     


저기요, 잠깐만요. 제가 성인군자 되려고 결혼한 건 아니거든요? 혹시 환불 가능할까요? 연애할 땐 그렇게 자상하고 어른스럽게 행동하더니, 여기 연기의 신이 있었네요. 배우 하면 천만관객도 가능하겠어요. 감독님들, 혹시 제 글 보고 혼신의 메서드 연기를 할 배우가 필요하다면 꼭 연락 주세요.

그리고 배우님, 계속 이런 식이면 나도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몰라요. 지켜볼 테니 잘 좀 합시다.

    

에필로그.

그날 오후. 새로 맞춘 지 얼마 되지 않은 비싼... 나의 안경이 사라졌다. 안경집 안에는 범인이 남기고 간듯한 편지만 덩그러니. 범인으로 추정되는 인물을 심문해 보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내가 아니다, 난 모른다.”일뿐. 대체, 사라진 내 안경... 어디 있니 둘째야~ 제발 알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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