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는 다섯 살 “내가 할래!” 꼬마 대장이 산다.
지구별로 여행 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일까. 언제나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사소한 것들도 궁금해하고 위험천만한 상황에서도 "내가 하겠다!!"는 불타는 의지를 보이는 대장.
“엄마... 우리 집에서 화나면 제일 무서운 사람은 동생이야.”
첫째도 인정한 우리 집 비글미 가득한 막내.
“엄마, 절대 도와주지 마! 내가 할 거야! 엄마!!! 저쪽으로 가 있어.”
스스로 하겠다는 것은 정말 좋은 행동이지만 모든 걸 받아주기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신발 신는 것, 옷 입는 것, 손 씻고 양치질하는 것, 장난감 정리하는 것, 책 읽는 것, 수저를 놓는 것. 이런 아름다운 것들만 스스로 한다고 하면 얼마나 좋을까.
“엄마. 내가 손톱 깎을 거야.”
“안 돼. 이거는 날카롭고 위험해서 잘못하다간 피가 나. 엄마랑 같이 하자. 제발.”
“아, 싫어! 싫어! 엄마 나빠! 내가 할 거야!”
손톱 한 번 깎으려면 실랑이. 그 와중에 눈치 없는 얄미운 빌런의 등장.
“오빠는 혼자 손톱 깎을 수 있는뒈~”
“너 진짜 그만해! 가뜩이나 힘든데!!”
“거봐, 오빠도 혼자 하잖아. 나도 혼자 할 거야!!!!!”
“엄마. 내가 현관문 열거야. 비밀번호도 내가 다 누를 거니까 절대 알려주지 마. 도와주지 마!!”
“알겠어. 해봐.”
삑삑삑-. 오동통하고 짤막한 손가락으로 비밀번호를 누른다.
“잘했어. 이제 들어가자~”
별생각 없이 '끝났구나.' 하고, 나도 들어가야 하기에 현관문을 같이 열었다. 아뿔싸.
“으어아앙아아앙악!!!! 내가 혼자 한다고 했잖아!!! 왜 엄마가 도와줘!!!”
“아니야!! 어.. 어, 엄마가 언제 도와줬어~ 안 도와줬어. 엄마 그냥.. 엄마 발 찧을까 봐 살짝만 연거야. 네가 다 했어. 엄마 안 도와줬어!!”
“으아아악!! 엄마 나빠!!!!! 나빠!!!”
어린이집 가방에서 식판과 색칠해 온 종이들을 다 집어던진다. 그녀의 화는 쉽사리 가라앉지 않는다. 삽십 분은 기본이다.
어찌하면 좋을까. 처음엔 어르고 달래기도 했지만 떼는 점점 심해졌고, 도가 지나친 경우를 보여 요즘은 따끔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면 안 돼! 화난다고 물건 던지면 안 되지!”
그렇게 다섯 살과 서른한 살의 실랑이는 격해졌다.
결국 아이는 방으로 쾅! 문을 던지고 들어간다. 방문 잠그는 건 어디서 봤는지 굳게 닫힌 문 앞에서 나는 십 년 후 미래의 예고편을 보고 있다.
열쇠로 문을 여니 아이는 고개를 푹 숙이고 홀로 울고 있었다.
"엄마 나빠..."
살며시 아이 곁에 앉았다.
스스로 멋지게 해내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을텐데.
그래, 나도 조금 더 기다려줄걸. 마음이 급했던 건 사실이다.
내가 지금 다섯 살밖에 안 된 아이랑 뭘 하고 있었던 건지. 뒤늦은 후회가 밀려온다.
“엄마가 미안해.”
아이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아이도, 나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잠시 곁에 있어 주었다.
저녁을 먹고 난 뒤, 방에서 혼자 사부작거리며 만들기를 하는 아이.
한동안 열심히 끼적이다 나에게 예쁜 미소와 함께 다가왔다.
“엄마, 선물!”
그것은 편지였다. 그 편지를 받고 울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는 알려준 적이 없는데, 진심을 모아 서툴게 쓴 그 편지.
“엄마, 사랑해요. 미안해. 세나가.”
아이도 알고 있었다. 본인이 엄마를 힘들게 했다는 것을.
너는 왜 엄마 마음을 몰라주냐며 서운한 나날이 있었는데, 나의 착각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고, 안고, 위로해 주었다.
- 세나에게
엄마는 너의 뒤를 쫄래쫄래 따라다니는 이 시간이 참 귀하단다.
네가 다칠까 봐, 속상해할까 봐, 마음 변두리에 좌절의 구슬이 하나 더 쌓일까 봐 그렇게도 널 뒤쫓았는데.
엄마의 걱정과는 다르게 씩씩하고 용감하게 자라고 있는 너를 보며 엄마는 늘 다행이고 고마워.
엄마가 서툴러서 미안해.
그래도 항상 너의 등을 바라보며 지켜줄게.
그러면 너는 고개 돌려 활짝 웃는 미소 보여주면 그뿐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