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병과 물티슈, 모자, 얇은 잠바, 비눗방울. 짐은 왜 이렇게 많은지 한쪽 어깨에 커다란 가방 둘러메고 양손으로 묵직한 자전거를 끌고 아이를 뒤따라간다.
“아이고, 허리야.”
나도 모르게 탄식이 나왔다.
아이가 둘이나 있는데 허리가 안 아프면 이상한 거지. 자꾸 온몸이 쑤시고 저리고 쿡쿡거리는 건 당연한 일이지. 엄마들은 다 그럴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가 내게 소리쳤다.
“허리가 아파!?!?!?”
깜짝 놀라 주변을 두리번거리니 한 손에는 장바구니를 들고, 반대 손에는 햇빛을 가리기 위해 쓴 우산을 들고 있는 약간 마른 체격의 짙은 보라색 안경을 지그시 눌러쓴 할머니께서 서 계셨다.
“허리가 왜 아파! 왜!!”
이런 호통은 오랜만이었다. 무어라 대답해야 할지 몰라 우물쭈물했던 나는 이 상황이 웃기기도 하고 어리둥절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할머니께서는 나의 얼떨떨한 표정에 아랑곳하지 않고 말씀을 이어 갔다.
“내가 나이가 칠십이 넘었는데, 아직도 허리 때문에 그렇게 고생하고 있어. 오래 앉아 있지도 못하고, 많이 걷지도 못하고. 아팠다, 괜찮아졌다 하는 간격이 나이가 들수록 점점 줄어들어. 우리 딸들도 다 오십 대인데, 허리 아프다 소리 할 때마다 내가 지금부터 관리 안 하면 나처럼 고생한다고 수도 없이 말해! 아기 엄마! 지금부터 잘 관리해야 해. 젊다고 신경 안 쓰지 말고, 너무 오래 앉아 있지도 말고, 무거운 거 들지 말고! 머리 감을 때도 쭈그리고 허리 숙여서 감지 말고 서서 감아!”
일면식도 없는 분의 걱정에 마음이 먹먹했던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헤헤. 네, 감사합니다. 아이를 많이 안고 있어서 그런가 봐요.”
“애고, 뭐고! 엄마가 더 중요한 거지. 내가 더 먼저인 거야. 내가 건강해야 가족들에게도 잘할 수 있고 내가 행복해야 가족도 행복해.”
출산과 육아를 하며 나의 몸도 마음도 돌보지 못한 것이 꽤 긴 시간이다.
유독 손을 많이 탄 첫째는 두 해 동안 내가 팔베개를 해주어야 잠을 잤다. 잠이 든 것 같아 살며시 내려놓으면 금세 깨어나 엄마 품이 그립다며 서럽게도 울었다. 그래서 밥을 먹을 때도, 책을 읽을 때도, TV를 볼 때도, 심지어 볼일을 볼 때도 늘 안고 있었다.
그때 망가진 허리는 아직 잘 버티고 있지만 간혹 무리하면 찌릿한 신호를 보냈다. 하지만 나는 신호를 무시한 채 엄마가 되면 당연한 일이라 치부하며 나보다 아이들의 건강을 먼저 돌보았다.
아이가 조금이라도 아플 때면 바로 병원으로 향했지만, 내가 아플 때는 약국에서 약을 사 먹는 것이 전부였다.
엄마가 허리가 아파 못 안아준다고, 못 놀아준다고 하면 실망하는 아이들의 모습에 어느 날부턴가 나는 아픔을 참는 것이 익숙해진 사람이 되었다.
내가 사고 싶은 것은 잘도 참으면서 아이들이 사 달라고 하는 것은 못내 마음에 걸려 생활비를 아끼고 모아 사 주었다. 먹고 싶은 음식도, 여행지도, 잠자리의 위치까지 모든 결정의 우선권은 아이들이 가지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엄마니까. 그러니까.
그날 저녁, 아이들을 재우고 시린 허리에 뜨끈한 찜질팩을 둘렀다.
‘내가 먼저 행복해야 한다는데, 나는 아직 방법을 잘 모르겠어.’
할머니의 말씀이 귓가에 맴돌았다. 어쩌면 아이들은 자신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되길 바라면서 정작 나는 그러지 못하는 모순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