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강력 'T' 남편과 초절정 'F' 아내가 만나면
"남자들 다 그래!" 또는 "안 그런 와이프 없어~"라는 말들로 우리 부부를 규정하기엔 한참 부족하다.
'T'와 'F'로 두리뭉실하게 설명하기에도 부족한, 이성파 남편과 감성파 아내.
지금부터 몇 가지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려 한다.
“오빠, 오랫동안 장거리 부부로 지내면 어떨 것 같아?”
우리 부부는 난생처음 장거리 부부를 예약 중이다.
아이들을 홀로 돌보아야 하는 나와, 타지에서 총각 시절 때처럼 혼자 지내야 하는 남편은 걱정 반 설렘 ‘가득’ 반이다.
저 질문에 내가 기대하던 반응은 이런 것이었다.
“아휴, 오래는 안 되지. 보고 싶어서 어떡해. 빨리 자리 잡아서 같이 살아야지.”
하지만 돌아온 현실 반응은 이것이다.
“두 집 살림 하잖아? 돈 더 많이 들어. 식비도 두 배, 왔다 갔다 기름값도 더 들지, 이 돈, 저 돈 더 많이 든다. 돈 없어서 안 돼. 그나저나 장거리 운행에는 전기차가 좋다던데. 이참에...”
기대한 내가 잘못이다.
한 번은 이런 대화를 했다.
“오빠. 방과 후 교사 자격증도 한 번 준비해볼까? 애들 좀 크고 나면 소소하게라도 일해보면 좋을 것 같은데. 요즘 돌봄 교실도 새로 생기고 학교나 센터에서도 많이 구하나 봐.”
“우리 집 애들은 먼저 봐야지, 왜 남의 집 애들을 먼저 봐.”
그날 이후로 난 두 번 다시 방과 후의 비읍도 꺼내지 않았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아들 녀석도 아빠를 쏙 빼닮았다는 것.
“엄마! 나는 로미가 되고 싶어!” 딸아이가 말했다.
로미는 요즘 가장 유행인 만화 ‘캐치! 티니핑!’의 여자 주인공 이름이다.
“그럼~ 우리 딸. 로미지. 로미보다 더 예쁘지.”
순간, 기회를 포착한 아들의 공격이 시작된다.
“야, 로미는 진짜로 있는 거 아니야. 그거는 만화야, 만화. 티니핑도 진짜로 있는 거 아니고 만들어 낸 거야.”
아들을 째려봤다. 아빠와 똑같은 요 녀석. 눈치 없이 극현실주의인 아들의 결혼생활이 벌써부터 걱정되는 순간이다.
하지만 이런 극한의 상황에 내성이 생긴 딸은 오빠의 공격에도 굴하지 않는다.
“... 그럼 우리가 티니핑이 되면 되겠네!”
“어머~ 그래. 좋다. 우리 딸은 무슨 티니핑 닮았을까?”
“아, 있어.”
제발 그 입 좀 다물었으면.
“똥꼬핑.”
... 딸도 나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또 한 가지, 남편의 입맛은 굉장히 까다롭고 확실하며 섬세하다. 자신만의 맛집 리스트가 있을 정도로 나름의 미식가라 자부하는 이 남자. 생긴 것은 돌도 씹어먹게 생겼으나 음식의 간이 맞지 않는 것에 극도로 까칠하다.
“오빠, 내가 미역국 끓였어. 간 좀 봐줘.”
“원래 간은 다 식었을 때 봐야 정확해.”
“아휴, 근데 바쁜데 언제 그러고 있어. 그래도 괜찮아. 어때? 싱거워?”
“아니, 괜찮아.”
그리고 나는 아이들을 돌보러 자리를 비웠다.
내가 떠나고 난 뒤, 홀로 주방에서 사부작거리더니 조용히 주방을 떠난 남편.
저녁 시간이 되었다. “잘 먹겠습니다~ 호로록. 미역국 맛있네... 음...?”
“응. 내가 간 좀 더 했어.”
“엥? 언제? 근데 혹시 액젓 넣었어?”
“... 아니.. 뭐... 소금이랑 국간장 좀 넣고...”
내가 한 미역국이 맛이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난 액젓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남편은 나 몰래 액젓을 넣은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그 맛이 나니까!!!
이럴 땐 차라리 미리 말이라도 해주지, 나 몰래 넣은 것이 더 자존심이 상했다고나 할까.
하지만 나는 감성파 ‘F’니까.
“응. 맛있네~ 역시 오빠가 간을 더 잘 봐.”
남편 나름대로 내가 기분 나쁠까 봐 몰래 넣은 것이겠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찜찜~한 이 마음은 아직 나의 기억 한편에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나도 도저히 그냥 넘어가지 못하는 상황이 있었으니.
“아!! 싫어!! 숙제 안 해!!!”
첫째의 투정이 날이 갈수록 심해진다. 요즘은 이것만 해도 정신이 나갈 지경이다.
“안 돼. 싫어도 해야 하는 게 있는 거야.”
“안 해! 갈 거야!”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아휴, 요즘 왜 이렇게 떼가 늘었을까.”
나 혼잣말이었는데. 소파와 하나가 된 누군가가 대답한다.
“자꾸 받아주니까 그렇지.”
내가 아무리 공감력 투철한 극 'F'라 할지라도 이건 절대 그냥 못 넘어간다.
“뭐!!! 그럼. 다 나 때문이라는 거야! 내가 뭘 그렇게 다 받아줬는데! 또 내 탓이야!!!”
“아니... 어... 음... 네가 아니고.”
“그럼! 당신이 그렇다는 거야? 아니잖아! 당신은 안 받아 주잖아! 그럼! 나라는 말이잖아! 여기 나랑 당신 말고 또 누가 있는데! 그러니까 누가 그랬는지는 왜 빼먹고 말해! 말을 왜 그렇게 해! 내가 그랬다는 거잖아! 맞잖아!!!”
또박또박 말 잘하던 남편은 이럴 때만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꼬시다.
이렇게 초강력 ‘T’ 남편과 초절정 ‘F’ 아내는 오늘도 도장을 들었다 놨다, 아슬아슬한 부부생활을 이어 가고 있다.
서로 다른 성격의 부부가 잘 산다는 이야기를 도대체 누가 한 건지.
우리... 앞으로도 잘 지낼 수 있겠지...? 하하...
그래도 에피소드 제공해 준 것에 대해서는 고맙게 생각한다. 껄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