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은행에 갔다. 보험 문제로 처리할 일이 있어 직접 방문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은행에 들어선 순간 사람들은 예상보다 북적였고, 직원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모니터를 응시할 뿐이었다. 내 차례가 되어 자리를 옮겼다. 내가 무슨 실수를 했는지, 이전의 사람이 진상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자리에 앉는 와중에도 창구의 직원은 이미 표정이 반쯤 화난 얼굴이었다. 몇 가지 내어준 서류에 읽지도 못한 문장들에 동의를 체크하고 있는 나에게 대뜸, 굳이 필요하지 않을 것 같은 질문을 던졌다.
“직업이 어떻게 되세요?”
이럴 때가 제일 난감하다. 피하고 싶은 순간이다. 직장이 있는 것은 아닌데, 무직이라고 말하기는 싫고 전업주부라는 것이 직업인가 싶기도 하고.
하지만 결국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답은 전업주부뿐이었다.
왜 이 네 글자를 말하는데 마음이 쿡 하고 저릿한지, 어금니와 양쪽의 턱뼈에 힘이 들어갔는지 모르겠다.
둘째의 어린이집 행사에 참석했다. 시에서 하는 큰 행사로 전체 어린이집이 참여하는 축제라 나도 일일 선생님이 되어 아이들을 돌보았다.
정신없이 아이들 줄을 세우고 있는데 누군가 뒤에서 내 이름을 반갑게 불렀다.
“이야! 완전 오랜만이다! 너 그런데 왜 여기 있어? 너 애 엄마야!?”
학창 시절 꽤 친했던 친구. 각자의 생활을 하느라 멀어졌지만 이렇게 우연히 얼굴을 보니 무척 반가웠다. 친구도 나도 얼굴에는 세월의 흔적이 있지만 이목구비는 열여덟 살에 머물러 있었다.
“아, 주무관님하고 아는 사이세요?”
나를 뒤따라오던 원장님이 말씀하셨다.
나는 아이 둘 엄마가 되는 사이 친구는 주무관이 되었구나.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은 나와 예쁜 원피스에 구두를 신고 서류철을 안은 채 행사장 곳곳을 살피는 친구.
“와. 수연아, 너 참 멋지다.”
부럽기도 하고 알 수 없는 미묘한 씁쓸함이 느껴졌달까.
아이를 낳아도 금방 일을 다시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남들도 그렇게 하니, 어떻게든 다 해결되겠지라고 말이다.
하지만 육아라는 것은 언제나 나의 예상을 빗나갔고, 아이들은 자주 아팠으며 아이가 하나가 아니라 둘일 때는 두 배가 아닌 다섯 배 이상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했다.
그래서 불안한 마음을 자기 계발로 다잡으며 나의 능력치를 키우기 위해 이것저것 시도했다. 하지만 마땅히 돈을 버는 것도 아니면서 아이들에게 공부를 해야 한다는 핑계로 소홀해지면서, 자격증 하나 준비하겠다고 가족들에게 예민하게 구는 것이 맞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전업주부니까. 남편에게도 아이들에게도 소홀하면 안 되었다.
흔히들 생각하는 전업주부의 모습은 남편은 출근하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낸 후 여유롭게 차 한잔 마시면서 아침 드라마를 보고, 청소는 빠르게 끝내고 또 이웃집 엄마와 통화하며 수다 한 시간 하고, 잠깐의 낮잠도 자다가 반찬 휘리릭 끝내 놓고 또 쉬고. 이런 느낌이려나?
사실은 아닌데, 정말 아닌데 말이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인터넷 설문조사를 할 때면 항상 묻는 직업. 무직과 전업 주부는 늘 같은 카테고리 안에 있다. 그것이 사회에서 인식하는 전업 주부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를 위해, 남편을 위해,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에너지와 노력이 필요한지 알아주기를 바라고 하는 집안일들은 아니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때의 마음은 무척이나 견디기 어렵다. 가장 힘겨운 것은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생활하는 사람’이라는 생각들.
“남편도 가끔은 집에서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을 거예요. 사회생활도 만만치 않더라고요.” 같은 여자가 여자의 적이 되는 순간들.
“혹시라도 내가 괜히 어쭙잖게 일하다가 아이 혼자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사고라도 나면 그때는 돌이킬 수 없으니까요. 사실 우리 모두 일하고 싶은 마음은 같잖아요.”
“자녀가 어렸을 때 일하다가 사이가 틀어져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그제야 아이와 잘 지내보겠다며 직장을 그만두고 뒤늦게 아이를 챙겨주는 엄마들이 있어요. 어머니, 정말 잘하고 계신 거예요.”
전업주부만이 느낄 수 있는 쓰리고 복잡한 감정들.
전업주부, 경력단절.
워킹맘이 육아에 소홀하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워킹맘도 우리도 같은 엄마니까.
그저 워킹맘이 한없이 부럽고 그 벽을 넘어서지 못한 나 자신이 못마땅한 오늘.
누군가 직업을 묻는다면 무어라 말하는 것이 좋을지 고민하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