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시절의 풋풋하고 꾸미지 않아도 어여쁜 얼굴, 서로 바라보기만 해도 충만한 마음, 손만 잡아도 부끄러워하던 너와 나의 모습은 당신과 나의 기억 속에만 존재한다.
우리는 서로를 향해 아무렇지도 않게 방귀를 뀌고 트림도 하며 엉덩이에 난 뾰루지까지 공유한다.
우리 부부, 이대로는 안 된다. 설렘이 필요하다.
“다운펌? 그게 뭔데?”
이전에도 나에게 펌이 하고 싶다고 몇 번 이야기한 적이 있다. 펌이라고는 뽀글뽀글한 히피펌만 아는 나와 달리 남편은 유행하는 옷, 잘 나가는 브랜드, 최신 트렌드 등 외모 가꾸는 것에 관심이 많고 참 좋아한다. 꽃미남과 같은 외모를 소유한 것은 아니나, 그렇기에 더욱 노력하는 것 같아 어쩔 땐 조금 안쓰럽기도.
군인이라 머리카락이 짧은데 그게 한다고 효과가 있을지에 대한 나의 물음에 아니란다. 붕 뜬 머리를 완벽하게 눌러 차분하게 만들어준단다.
그렇게 해보고 싶으면 해 보라는 말에 얼른 미용실을 예약한다. 원하는 스타일의 머리를 한 모델들의 사진을 캡처해 놓고 그 머리와 같게 해달라고 할 참이라고. 그 사람들은 모델인데, 참 딱하다고 속으로만 생각했다.
“오빠, 있잖아. 내가 오빠 머리 보고 어떻게 반응을 해 줬으면 좋겠어? 미리 말하는데 미안하지만 혹시나 별 차이가 없어서 내가 아무 반응이 없어도 화내거나 실망하면 안 돼.”
미용실로 간 지 한 시간이 조금 넘게 흘렀다. 남편이 집으로 돌아왔다.
“꺄악!!! 이게 무슨 일이야!!!”
남편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서 돌아왔다. 세상에 펌하나 했을 뿐인데. 내 눈에는 박서준이 걸어 들어오는 것처럼 보이는 착시현상은 무슨 일인지. 과학으로는 도저히 설명이 안 되는 상황. 그렇게 다운펌, 다운펌 노래를 부르더니 사람들이 이래서 머리를 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난생처음 보는 남편의 차분한 머리에 나는 환희에 찬 표정으로 너무 멋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헤헤. 잘 어울려?”
전후 비교 사진. 여러분이 보시기엔 어떤가요?^^
오래된 부부라도, 아니 그런 부부일수록 서로 가꾸고 칭찬해줘야 관계가 더 좋아진다는 걸알았다.
지난 몇 달, 우리는 살면서 가장 치열하게 싸웠다. 살다 보면 그런 시기가 다들 있다고는 하지만 정말 이혼을 고민했던 최근의 몇 달은 남편도 나도 굉장히 지치고 힘겨웠다.
며칠 전 함께 맥주를 마시며 예전일들을 떠올렸다. 우리도 처음은 설레고 좋았었는데.
남편이 나에게 보내온 첫 페이스북 메시지가 지금 우리가 함께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는데.
첫 만남 이야기를 하다 문득 궁금해졌다.
“오빠, 그 메시지 아직 남아있을까? 너무 오래돼서 지워졌겠지? 한 번 찾아볼까?”
들어가서 보니 있다! 스크롤을 열심히 올리니 나타나는 그날 우리의 대화.
“와, 우리 예전에 서로 존댓말을 했었네. 우리가 이럴 때가 있었어?”
이렇게 좋을 때가 있었는데. 서로 얼굴만 바라 봐도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던 그때. 일 분이라도 더 함께하고 싶어 어떻게든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고 싶던 날들.
남편도 나도 한동안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서로에게 편하고 어쩔 땐 만만하며, 익숙한 존재가 되어 선을 넘고 상처를 주는 모습이 우리가 사랑했던 날들의 결과라는 것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을지도 모르겠다.
지금을 생각하니 가슴이 너무 아팠다. 그리고 어떻게 해야 다시 되돌릴 수 있을지 남편도 나도 알 수 없었다.
“우리, 이때처럼 다시 잘 지낼 수 있을까?”
하지만 우리가 쉽게 헤어질 사이가 아니라는 확신은 늘 있었기에.
“그럼. 나 머리 바꿨잖아. 너도 미용실 가서 머리하고 와. 히히. 다시 새로운 마음으로 지내보자.”
그렇게 오늘도 잘 지내보자 다짐한다.
에필로그.
"우와, 이것 봐. 귀지가 장난이 아니야. 엄청 시원해! 이렇게 큰 게 들어 있었다니, 보여 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