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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문희 Apr 05. 2023

'학폭'에 관한 몇 가지 생각

230405

  "언젠가 부모가 된다면, 최고로 윤리적인 인간은 못 돼도 윤리적 최저선은 가르치는 어른이고 싶다. 무사히 서울대에 들어갔다는 정씨의 이야기를 되새겨본다."


[꼬다리]언젠가 아이를 기른다면 - 주간경향  

http://m.weekly.khan.co.kr/view.html?med_id=weekly&artid=202303311122161&code=115#c2b



  ...라며 마감은 했고, 칼럼에 차마 못한 얘기를 적어본다.


1.

  정순신 국가수사본부장 아들의 '학폭' 논란을 보며 처음에 잘 공감하지 못했다. 정의 아들이 민족사관고등학교 동기인 피해자를 때린 적은 없었다. 막말 수위가 높은 것은 분명했지만, 이것이 전국민이 들고 일어나 분노할 만한 '학폭'에 해당할까.

  피해자가 유난스러웠다는 말이 아니다. 고통은 대개 주관적이고,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은 작은 폭력에도 큰 상처를 입는다. 실제로 피해자는 극단적 선택을 시도할 만큼 괴로워했고, 여러해 수험 생활을 다시 겪는 등 후유증에 시달렸다고 한다. 내 쪽이 학폭에 덜 예민해서 이런 의문을 품었을 게다. 하지만 이렇게 인정한 후에도 궁금증이 남았다. 폭언과 물리적 폭력에 시달리는 학생들의 존재를 나는 알고 있다. 고통이 크지만, 이들은 정순신 아들 사태의 피해 학생과 달리 학교에 구제를 요청한 적이 없다.

  해당 사립고등학교를 졸업한 친구들의 말을 들으며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이 학교는 전국 각지의 '엘리트' 학생이 소규모 입학하는 곳이다. 매 학년 대부분 가정이 중산층 이상이고, '한가락' 하는 부모도 꽤 있다. 선생님들 상당수는 박사학위 보유자다. <아버지의 해방일지>로 베스트셀러 작가 덤에 오른 소설가 정지아도 이 학교 교사 일을 한 적이 있다. "작은 피해라도 그냥 넘기는 친구는 없었어. 선생님들도 학교 안에서 벌어지는 폭력에 민감했지." 정순신 아들 사태 당시 학교폭력 담당교사의 대응을 보면서 친구의 말을 믿게 됐다. 보고서에 "(정군이) 횟수를 세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피해학생에게 '더러우니까 꺼져라' 등의 말을) 자주 했다고 함"이라고 기록했고, 강원도 학교폭력대책지역위원회 회의에 참석해서는 “(정씨가) 반성을 전혀 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요컨대 정순신 아들 사태는 '예외적 사건' 아닌가 싶은 거다. 힘있는 부모의 자녀가 동기에게 언어폭력을 행사했고, 역시 힘있는 부모의 자녀로서 피해자는 물리적 폭력 없이도 말 한마디 한마디에 상처를 받을 만큼 높은 자존감과 예민한 내면의 소유자였다. 선생님은 말로 준 상처도 '학폭'으로 규정하고 가해자에게 반성을 촉구할 만큼 높은 '폭력 감수성'을 지녔다. 지나칠 수 있었던 막말을 폭력으로 정의하고, 뒤늦게라도 가해자 정씨에게 사회적 비난을 안길 근거를 마련한 건 둘이 맞물린 덕분이었다.

  가해자인 정순신 쪽도 만만찮았다. 학폭위의 전학 결정에 대해 재심을 청구하고, 나중엔 행정소송과 집행정지 신청으로 가능한 모든 법적 대응에 나섰다. 자녀의 입시 문제에 예민하고 사안 해결을 위해 자원을 동원할 수 있는 여유가 없다면 상상하기 힘든 대응이다. 대중의 반응 역시 예외적이었다. 학생이 다른 학생에게 가한 언어 폭력에 언제부터 우리 사회가 이렇게 예민했나. 윤석열 대통령이 임명한 국가수사본부장이라는 정순신의 타이틀이 아니었다면, 그리하여 정치적인 판단이 개입되기 쉬운 사건이 아니었다면 이만큼 폭발적인 반응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언론 보도와 정치권이 내놓는 해법은 이 사안의 예외성을 외면한 채 그저 사안의 결만 따르는 것처럼 보인다. '강남사는 가해자들이 더 억울해하며 가해자 집행정지를 신청하거나 행정소송을 제기하는 비율이 다른 지역에 비해 더 높더라' 등 보도가 대표적이다. 중요한 지적이나, 상위 계급에 편향된 시선이다. 폭력을 겪고도 폭력인 줄 모르거나, 알아도 대응하지 못하는 피해자들이 도처에 널려있다. <더 글로리>는 드라마일 뿐이다. 가해자들 역시 학폭위의 처분을 받고난 뒤 법적 대응에 나설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상당하다. 이들 사이에 벌어지는 폭력은 어떻게 방지할 것인가.

  우리 사회는 어떤 폭력에 예민하고  둔감한가. 정순신 아들 사태에서 주목할 대목은 더 있는 것 같다.


2.

  오늘 오전에는 당정 회의에서 '학폭 정시 반영' '기록 장기 보존(최대 10년)' 등 대책을 실효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말이 나왔다. 전자는 당장 입시에, 후자는 취업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방안이다.

  학폭에 대한 사회적 민감성을 높일 수 있는 대책으로 보이긴 하지만 찝찝함이 남는다. 어떤 사건이 벌어지면 매번 이 사회는 관련 사안에 대한 처벌 강화로 방향타를 잡는다. 언론도 정치권도 그뿐이다. 겁주고 억누르는 네거티브 방식 뿐, 비폭력 등 문화를 포지티브하게 만드는 방안은 찾아보기 어렵다.

  강하게 처벌하자는 주장은 대체로 편의적이다. 정책을 만들고 기사 쓰는 자들로선 정의를 구현했다며 알량한 정의감에 도취되기도 좋다. 내가 민감하게 생각하는 사안일수록, 해당 문제를 저지르는 이가 왜 큰 처벌을 받지 않는지 의문을 품기 쉽다. '이 사안을 사회가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하나' 불만이 생기는 거다. 그러나 그런 주장을 모두 받아들이면 남는 건 처벌공화국이다. 막상 모든 사안에 다 강경 대응을 주문하는 이는 별로 본 적이 없다. 어떤 사안의 처벌 강화를 주장하는 이라도 다른 사안에는 무서운 처벌만이 해법은 아니라고 말한다.

  결국 뭐가 해결됐나. 오판 가능성은 예나 지금이나 있지만, 문제가 그뿐만은 아니다. 소년범 처벌이 능사가 아니라는 건 법조계와 학계에서도 꽤 많은 공감을 받는 주장이다. 학폭은 뭐 다른가? 자녀 진학 등 미래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두려움이 아니었다면 정순신 변호사가 온갖 법적 수단을 다 동원했을까.


3.

  오후에는 기막힌 글을 하나 봤다. 학폭 끝에 스스로 세상을 등진 박모양의 어머니 이모씨가 페이스북에 쓴 글이다.


  "사무실로 들어가 마주 앉자마자 도대체 재판이 지금 어떻게 되가고 있냐고 물었더니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소송이 취하 됐답니다. 저는 귀를 의심했습니다. 잘못 들은건가 싶어서 그게 무슨 말이예요. 취하라니요. 취하는 이쪽에서 하는건데 취하라니 무슨 말이냐고 했습니다. 바짝 움추린 변호사는 자기가 재판 기일에 두번 출석을 안해서 ‘취하’ 가 됐답니다. 그 순간 숨을 쉴 수가 없었습니다. 가슴은 바위로 내려친 것 같았고 등줄기는 찌릿한 통증이 거침없이 밀려 왔습니다."


  무슨 소설 같은 얘기인가. 믿기 어려웠지만 믿지 않을 이유도 없어 사회부 후배에게 해당 글을 전달했다. 정말이라면 해당 변호사가 누구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얼마 뒤, 다른 회사에서 기사가 났다. 진짜였다.


‘조국흑서’ 권경애, 학폭 재판 불출석에…8년 버틴 유족, 허망한 패소

https://m.khan.co.kr/national/court-law/article/202304052110001


  이런 식으로 재판이 끝날 수도 있나. 피해자 가족 생각을 하긴 한 건가. 명색이 변호사라며. 힘 있는 집안 자녀였대도 이렇게 대처했을까. 어디가 안 좋은가. 기사를 보니 1심은 일부 승소했다는데, 가해의 실체가 꽤 파악됐던 모양이다. 이 재판 변호도 해당 변호사가 맡았단다. 그래놓고 갑자기 왜? 사정이 있었대도 납득이 안간다. 문제가 있다면 다른 변호사를 선임하도록 했어야지.

   한 생각이 다 뭔가 싶다. 아직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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