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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문희 Apr 19. 2023

단련하려다 혼나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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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식의 단련법>을 읽다 보면 겸허함과 좌절감을 동시에 느끼게 된다. 둘 모두 뿌리가 '내게 무언가 결여돼 있다'는 감각이니 당연한 듯 싶지만, 나아질 전망도 딱히 안보인다는 느낌도 추가해야겠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생전 별명은 ‘지식의 거인’. 책 보관용으로 지은 도쿄 분쿄구의 건물에 10만 권 장서가 저장돼 있다고 한다(외벽에 고양이 그림이 그려져 있어 '고양이 빌딩'이란 별명이 붙었다는데, 졸라 귀엽다). 다음은 다치바나의 독서 철학.


  도서관부터 가서 책을 빌리려고 하는 것은 별로 좋지 않다. 왜냐하면 도서관의 책에는 밑줄을 긋거나 메모를 할 수도, 혹은 페이지를 접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찢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
  독서는 정신적 식사다. 자신이 읽을 책 정도는 스스로 골라 스스로 사고 늘 곁에 두면서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방식으로 읽어야 한다. - 93p


고양이 빌딩 앞에 선 생전의 다치바나 다카시. 교도통신이 제공한 사진을 연합뉴스 기사에서 퍼왔다.


  중고서점부터 독립책방까지, '매달 책방에 십일조하느냐'며 주변의 지탄을 받는 처지에 든든한 응원을 받은 기분이다. 이런 문단을 읽을 땐 사놓고 읽지 않은 책이 방바닥을 점령하는 통에 느끼는 괴로움도 슬며시 씻겨 내려간다.


  돈 주고 산 잡지를 읽지 않다니 뭐하는 짓인가 따위의 생각은 결코 하지 않는 것이다. 읽을 가치가 없는 것을 읽느라 낭비하는 시간 쪽이 훨씬 더 아깝다. - 52p


  하지만 위로는 여기까지. 다치바나는 배우라는 게 너무 많다.


  어떤 것을 읽고 있든지, 지금 읽고 있는 것이 자료가 뒷받침하는 객관적 기술인지 아니면 저자의 주관적 의견이나 믿음이 쓰여있을 뿐인지를 우선 음미해보아야 한다. 다음으로 자료의 뒷바딤이 있는 것에 대해서는 그 자료가 신뢰할만한 자료인지, 신뢰할 수 있는 자료라 해도 저자가 그것을 올바로 이용하고 있는지 여부를 음미한다. ... 다른 사람의 잘못을 간파하기 위해서도, 자기 스스로 잘못을 저지르지 않기 위해서도 사회조사, 여론조사, 통계 등의 기초적 방법론은 누구나 한번쯤 꼭 배워둘 필요가 있다. - 112~113p


  논리학의 초보적 내용 정도는 알아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 특히 궤변논법이나 오류추리를 배우는 게 좋다. - 139p


  소크라테스에게 질문을 한 자는 역으로 그 질문에 대해 소크라테스로부터 힐문당하면서 결국 질문자 자신의 생각을 역으로 추궁받게 된다. 다른 사람에게 뭔가를 물으려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뭔가를 묻는다는 게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 알기 위해 플라톤의 대화편 한두편쯤은 읽어두어야 할 것이다. - 125p


  책을 읽다 보면, '평범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책을 읽으면 핵심 내용이 기억난다'거나,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식으로 퉁치고 넘어가는 구절을 여럿 마주하게 된다. 옛날에 EBS였나, 그림 잘 그리는 밥 로스 아저씨가 "참 쉽죠?" 말하는 걸 듣는 느낌이다. 이걸 다 언제 하느냐고. 그 와중에 책 읽는 우선순위까지 있다니, 인생은 짧고 접할 것은 많소이다.


  대체 지적인 정보의 입력에 매일 얼마나 시간을 할당할 수 있을까? 신문이나 잡지를 제외하고 하나의 완결된 텍스트를 읽는 시간을 하루에 얼마만큼 낼 수 있을까? 그 시간에다 자신의 독서 능력과 평균수명을 적용해 본다면, 앞으로 남은 일생 동안 자신이 몇 권 정도의 책을 읽을 수 있을까 누구든지 금세 답을 얻을 수 있다. 책 읽는 데 상당한 시간을 내겠다는 사람이라도 그것은 놀라우리만치 적은 양이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자기가 읽고 싶은 책 모두를 죽기 전까지 읽어낸다는 것은 실제로는 거의 불가능한 꿈이라는 것이 금세 명약관화해질 것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책을 읽기 전에 그 책이 과연 자신이 죽을 때까지 읽을 수 있는 책 중의 한 권이 될 만한 가치가 있는지에 대해 머릿속에서 음미하고 나서 읽어야 한다. 눈앞에 읽으려는 책이 여러 권 쌓여 있다면 우선순위가 높은 책부터 순서대로 읽어나가야 한다. - 다치바나 다카시, <지식의 단련법>, 13~14p




  다치바나의 '분류법'은 따로 기록해둘 가치가 있다. 그는 기사를 포함한 자료 스크랩 과정에서 '분류의 세분화'를 주장한다. 자유, 평등, 자본주의처럼 추상 수준이 높은 분류는 기본이다. 거기서 중분류, 소분류를 해야 한다. 그래야 나중에 글을 쓰기 전 자료를 효율적으로 찾을 수 있다. 다치바나는 "분류를 함에 있어서 어떤 기사를 몇 가지 키워드와 관계인명, 어느 쪽으로든 찾을 수 있도록 해두는 것이 이상적이다. ... 정보에 손을 댈 때 엔트로피가 감소하는 방향으로 하지 않으면 손을 대는 의미가 없다(63p)"고 말한다.

  이러한 세분화는 누가 대신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머리를 싸매 자신의 분류를 찾아야 한다. 기존 분류에 포섭할 수 없거나, 넣을 수는 있으나 너무 빈 공간이 많아서 느슨하다는 느낌이 들 때가 결정적 순간이다. 그는 대강 큰 분류에 대충 자료를 집어넣는 행위를 '기계적 처리 방식'이라며 비판한다.


  분류할 수 없는 기사가 출연했다는 것은 기존의 분류에 들어맞지 않는 현실이 거기에 존재한다는 얘기가 된다. 그런 상황에서 전혀 개의치 않고 그러한 현실을 기존의 분류에 맞춰버리려는 처리 방식이 바로 지금 말한 기계적 처리 방식이다. - 45p


  아래 인용은 다치바나가 제시한 분류 연습법. 길지만 인용해 둔다.


  이런 생각을 해나가는 경우에 중요한 것은 뭔가 새로운 분류항목을 생각해내려고 할 때는 기존의 분류항목과 동일한 평면에 서 있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분류라는 것은 대체로 하나의 평면에 주목하여 그 평면을 분할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예컨대 정당을 평면분할하면 우선 여당과 야당으로 나뉘고, 그것을 더욱 세분하면 파벌이 나온다. 이런 분할은 아무리 많이 해나가더라도 기성 분류를 세분화하는 이상의 일은 불가능하다. 새로운 분류를 생각한다는 것은 눈앞의 대상을 기존의 분류평면과는 다른 평면 위에서 새로이 포착해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 (예를 들어 인간을 100가지 기준으로 분류해 보라고 할 때) 내가 들어본 중에 독특한 것으로는 '귤껍질을 위에서부터 벗기는 사람과 밑에서부터 벗기는 사람', '레스토랑에서 주문할 때 다른 사람이 고른 것에 맞추려는 사람과 다른 사람이 시킨 건 안 시키려는 사람' 같은 것이 있었다.
  그 다음으로 그렇게 생각해낸 100가지 기준을 분류해보면 어떤 분류가 가능한지 생각해보자. 요컨대 하나하나의 분류는 모두 인간이 지닌 여러 측면들 중 어떤 특정한 측면에 주목한 분류일 터다. 예를 들어 인간의 육체적 측면에 주목한 기준, 생활습관에 주목한 기준, 성격에 주목한 기준, 뭐 이런 식으로 말이다. ... 다음으로 그렇게 끄집어낸 인간의 여러 측면들이 인간이라는 실체의 전부를 포괄하는 데 충분한지 아닌지 생각해본다. ... 이런 과정을 거쳐 완성된 것은 처음의 100가지 기준과는 크게 달라져 있을 것이다.
  이처럼 구체적인 것을 추상화하고, 추상적인 것을 구체화하면서 현실을 구체성과 추상성의 왕복 가운데에서 포착하려는 노력이 좋은 지적 출력을 위해 필요하다." - 47~49p




  글쓰기에 관한 다치바나의 말은 대체로 흥미롭지만 일부 이상하다. 자기만의 문체가 없는 이들을 비판하다가도, "문체는 옷"이라며 그 안의 정보가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문체 정도는 기본으로 갖추라는 의미인가. 하기사 그가 문학적 글쓰기를 시도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애초에 그의 목표가 문체도 아니었을 터. 그의 조언은 지극히 실용적이다.

 

  보충 작업과 잘라내기는 병행하기보다는 따로 하는 게 좋다. 이 순서가 대단히 중요하다. 잘라내기가 목적인데 보충을 한다는 건 목적에 역행하는 일을 하고 있는 듯하지만 그렇지만은 않다. 잘라내기와 보충은 전혀 다른 목적 하에 이뤄지는 행위다. 잘라내기는 양적인 삭감, 보충은 질적인 향상이 목적이다. 질의 수준을 변화시키지 않고 잘라내는 것은 가능하니까, 일단 질적 향상이 추구될 여지가 발견되면 우선 그 작업을 먼저 해야 한다. 가능한 한 질을 향상시켜두고 나서 가능한 한 질을 저하시키지 않도록 양을 줄여가는 것이다. - 198p


  레토릭이란 논리 전개의 장식이다. 정교한 표현법이라는 얘기다. 이것은 너무 깊이 배우려고 하지 않는 편이 좋다. 프랑스의 국어교육에는 레토릭이 정규 수업에 들어가 있는데, 프랑스 사람들의 문장을 읽으면 일류 작가의 문장은 차치하고서, 이류 이하 사람들이 쓰는 것은 신문이나 잡지 기사까지 포함해 바보 같을 정도로 어리석은 레토릭 과잉으로 인해 읽다 보면 진절머리가 난다. - 204p


  위 인용에서도 드러나지만, 그는 무지하게 냉소적이기도 하다. 책을 읽다가 카페에서 흐흐 소리내 웃어서 옆 사람 눈치를 좀 봤다. 그리고는 그의 문장을 곱씹었다. 그냥 비웃는 게 아니고, 인간 심리를 고려해서 내놓은 나름의 단도직입이기 때문이다.


  (글쓰기에 관해) 기다려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으면 그걸로 끝이다. 무리하게 머리를 쥐어짜서 뭔가 지껄이거나 쓴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다. - 146p


  (메모를 하다가) 그래도 양이 너무 많으면 이제는 더이상 헤맬 필요가 없다. 글을 쓴다느니 뭐니 하는 야망은 깨끗이 포기해버리기로 하자. - 178p


  자기 문장을 잘라내는 것과 달리 다른 사람의 문장을 잘라내는 것은 홀가분하게 할 수 있다. ... 그러니까 잘라내기는 다른 사람의 글을 잘라내면서 연습하는 게 좋다. - 199p


  (책을 살 때) 가능한 한 많은 돈을 쓰라고 말한 것은, 인간은 누구나 마음 저 밑바닥에서는 인색하므로 돈을 많이 써버리면 최대한 그 본전을 찾으려는 마음에 성실하게 책을 읽기 때문이다. - 97p


  책을 사왔다면 책상 위에 쌓아놓고 읽기 시작한다. 서가에 넣어두는 일은 금물이다. 눈앞에 쌓아두고 이것만은 읽고 말겠다고 자신에게 심리적 압박감을 느끼게 하는 편이 좋다. - 101p




  다치바나의 또다른 별명은 '탐사보도의 거장'이다. 그가 쓴 <다나카 가쿠에이 연구>는 다나카 총리 퇴진의 계기가 됐고, <우주로부터의 귀환>은 많은 일본 청년들이 장래희망 란에 우주 비행사를 적는 결과로 이어졌다. <임사 체험>, <일본 공산당 연구> 등 내가 기억하는 책도 여러 권. 경험 많은 언론인 답게 그의 조언은 꽤 유용하다. 기자 일을 하는 사람, 기자가 되고 싶다는 사람에게 두번세번 읽히고 싶은 글이다.


  "그때 화가 났다." 라고 하면 같은 화라도 뉘앙스가 조금 다른 분노의 표현을 여러가지로 제시해서 어떤 분노였는지를 구체적으로 죄어 들어간다. 혹은 왜 분노했는가, 분노의 이유를 증언자 스스로 성찰하도록 시도해보는 것도 좋다. 이런 것이 잘 되느냐의 여부는 질문자가 내면적 상상력을 얼마나 갖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 이런 류의 상상력을 기르는 데에는 양질의 문학과 심리학을 배우는 것이 효과적이다. 내면적 상상력을 갖고 있다는 것은 내면적 세계를 보다 깊고 보다 넓게 알고 있다는 것과 같다. 따라서 질낮은 문학, 심리묘사가 상투적일 뿐인 싸구려 대중소설 같은 것은 읽으면 읽을수록 내면적 상상력을 기르는 데 역효과가 난다. - 136p


  (인터뷰 중) 이해가 안되는 것은 이해될 때까지 묻는다. 이것도 당연한 얘기지만, 역시나 초기에는 잘 되지 않는다. 이야기 중에 잘 모르는 대목이 나와도, 특히 상대방이 이런 것 정도는 당연히 알고 있게씾 하는 표정일 때, 마치 알고 있는 것처럼 그만 맞장구를 치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렇게하면 나중에 곤란해질 수도 있다. 나중에 내가 조사하든가 하지 뭐, 이런 생각은 집어치우고 부끄럽더라도 모르는 것은 잘 모른다고 말하고 그 자리에서 묻는 편이 좋다. 게다가 그런 부분을 따져 물었을 때, 의외로 이야기가 재미있는 방향으로 발전하는 일도 종종 생긴다. 알은체를 하면 그런 발전 가능성을 죽여 버릴 수도 있다. - 141p


  알고 싶은 욕구는 질문의 형태를 취해 정리되지 않으면 안된다. 그때 우선 자신이 알고 싶은 것이 어떤 범주에 속하는지를 분석, 검토해두는 게 필요하다. 그럼으로써 질문을 제기하는 방식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첫째, 알려고 하는 것이 어떤 사실에 대한 것인가, 아니면 사실 이외의 것, 예컨대 상대의 의견이나 판단 같은 것인가를 구별하는 게 중요하다. - 126p


  어떻게 하면 좋은 질문을 할 수 있을까. 첫째는 준비, 둘째는 상상력이다. ...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일수록 피상적인 답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보다 구체적인 디테일을 요구하며 질문에 질문을 거듭한다. - 132p


  프로 취재기자가 3차 정보 이하의 정보원을 접할 경우, 그때 그는 누가 1차 정보의 소유자이고 누가 2차 정보의 소유자인가를 최대한 알아내는 일을 한다. 즉, 3차 정보 이하의 정보원은 오로지 진정한 정보의 소재를 알기 위해서만 이용하는 것이다. - 215p


  관료에게서 정보를 끌어내기 위해서는 다음 두 가지 사항을 상대에게 납득시켜야만 한다. 첫째로 그 정보가 존재하고 있고 그것이 상대의 능력 범위 안에 있다는 사실을 내가 알고있다는 점, 둘째로 그 정보를 비밀에 부칠 하등의 이유가 없고 공개되어야 마땅하다는 점. 말은 이렇게 간단하지만 통상적으로 이것은 참으로 지난한 기술이다. 보통의 경우, 어떠한 정보가 어느 관청에 있는지를 사람들이 대부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 109p


허술해서 미안합니다...


  '언론 비평'은 뼈아프다. 한국에선 '따옴표 저널리즘'이라고 부르는 기사 작성 관행을 그는 강하게 비판한다. 정치부 기자로서 '고급 취재원'과의 거리두기에 실패하는 사례를 그가 지적할 때는 슬쩍 두려움이 생겼다.


  일본에, 특히 출판 저널리즘에 만연한 하나의 악폐는 버벌verbal 저널리즘이다. 나는 이 말을 팩트fact 저널리즘의 대극에 있는 것으로 사용하고자 한다. 요컨대 다른 사람의 코멘트를 이것저것 모아 그것을 재밌고도 우습게 적당히(혹은 대단히 진지하게) 연결함으로써 기사 하나를 만들어내는, 주간지 기사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수법을 말한다. ... 이 수법으로 쓴 기사들은 거의 모든 정보둘이 다른 사람의 코멘트 속에 있다. 코멘트가 담겨 있는 정보의 진위 문제는 발언자에게 일임되고, 저자 자신이 새롭게 알아낸 사실은 없다. - 221p


  신문사의 정치기자 중에 '번기자'라고 해서 유력 정치가의 품속까지 뛰어들어 취재하는 기자들이 있다. 이 사람들은 그 파벌에 관해서는 극히 고도의 정보를 갖고 있는데, 다른 파벌에 관해서는 보통 사람들 수준의 정보밖에 없다. 그런 경우 자신만이 가진 정보에 대해 얼마나 냉정하게 객관적 평가를 내리고, 다른 정보와 종합해 정국 전체의 동향을 읽을 수 있는가에 따라 그 사람의 정치기자로서의 역량이 정해진다.
  번기자 중에는 자신만이 가진 정보를 과대평가해 오로지 자신의 특급 정보에 의해서만 정세를 판단하려고 한 결과, 정국 전체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정치기자만이 아니다. 어떤 일이든 예외없이 고도의 정보원을 가진 사람, 고도의 자료를 가진 사람은 동일한 오류를 범하기 쉬우니, 그것을 과대평가하지 않도록 늘 자신에게 경계해두지 않으면 안 된다. - 214p


  아래 문단을 읽을 때는 숱한 '사이비 언론'이 떠올랐다. 언론사를 참칭하는 유튜버만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제대로 언론 일에 종사하다가 유튜브로 떠난 이들, 언론사에 머무르면서도 엉뚱한 기사를 쓰는 이들을 다들 알지 않나. 한때 대단한 언론인으로 칭송받다가 늘그막에 '뻘짓'을 해서 업력을 되레 의심받는 사람도 여럿 봤다. 그... 말하기 뭐하지만 우리 회사 출신도 있다.


  저널리즘이나 논픽션 세계에서 밥을 벌어먹는 프로페셔널 중에도 엉터리 정보 애호가가 적잖이 있고 엉터리 정볼르 모아 미디어에 뿌리는 역할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에는 두 종류가 있는데, 첫째 타입은 그것이 엉터리 정보임을 알면서 재미로 혹은 돈벌이를 위해 그렇게 하는 사람, 둘째 타입은 엉터리 정보가 엉터리 정보인줄 모르고 이거야말로 진상이요 진리라고 철석같이 믿어버리는 사람이다. 둘 중에 후자 쪽은 부처님도 구제 못한다. - 219~220p


  너무 많이 인용했나. 어쩔 수 없다. 아래는 더 길다. 그래도 적어둔다. 내가 다시 보기 위해서.


  관청 정보를 이용함에 있어서 유의할 점은 그것이 특정 행정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작성된 것이며, 따라서 객관성의 외양을 둘렀지만 실은 객관적이지 않은 자료인 경우도 많다는 사실이다. ... 예컨대 농림수산성이 쌀값을 억제하고 싶을 때는 쌀값 억제의 논거가 될 법한 숫자만을 늘어놓은 자료를 작성한다. 그 자료를 대중매체에 흘려 보도되게 만들면 쌀값을 억제해야 한다는 여론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 관청 측이 정보 조작에 능해지고 있기 때문에 대중매체 측은 정보 조작을 파헤치는 일에 능숙해져야 하는데 현실적으로는 관청정보에 점점 더 수동적으로 대응하는 쪽으로 변하고 있다. 결국 이쪽이 갖고 싶은 정보를 상대에게 요구해 그걸 쓰는 것이 아니라, 저쪽이 주고 싶은 정보를 받아 무비판적으로 쓰게 되고 만 형국이다. ...
  관청 정보에 접할 때는 언제나 이것은 어떠어떠한 행정 목적에 어떻게 관계되는 정보인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행정목적을 위해 현실을 왜곡한 자료는 아닌지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 이 점의 음미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거기에 무엇이 쓰여있는가가 아니라 무엇이 쓰여있지 않은가를 세 번이고 네 번이고 생각해보는 일이다. - 114~115p


  정보 음미의 기본은 그 정보의 출처를 생각하는 일이다. 앞서 말했듯 몇차 정보인지를 생각해 보는 데 그치지 말고, 그 정보를 정보 제공자가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오리지널 정보원으로부터 그 정보 제공자에게 정보가 흘러들기까지의 프로세스 전체를 상상한다든가, 따져 묻는다든가 해서 그 프로세스에 뭔가 의심쩍은 부분은 없는지, 정보 전달 과정에 문제는 없는지 등을 숙고해 본다. ...
  또한 그 정보 제공자(미디어, 기관 등 포함)가 왜 그 정보를 제공해주는가, 그 동기도 생각해봐야 한다. 동기가 불순하더라도 정보 내용은 올바른 경우도 적지 않지만, 동기가 불순하면 내용이 왜곡되어 전달되는 정보가 많고, 내용이 사실인 경우라도 부분적 정보, 일면적 정보이기 떄문에 전체적인 관점에서 보면 잘못된 의미를 전하는 정보인 경우도 적지 않다. ...
  주의할 것은 문제가 있는 동기일수록 그 동기는 은폐된다는 점이다. 그것이 원한 같은 감정적인 것이라면 간파하는 것도 어렵지 않은 편이다. 그러나 그 정보를 제공하는 일이 어딘가 생각지도 못한 지점에서 정보 제공자의 이익과 연결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는 쉽사리 간파되지 않는다. - 218~219p




  다치바나의 책 에필로그는 아내에 대한 이야기로 문을 연다.


  이 연재를 읽은 아내가 여기에는 '내조의 공'이라는 장이 빠졌다고 불평했다. 사실은 이 책에서 말한 정보처리의 물리적 작업 상당 부분(스크랩을 만든다든가 도서카드를 만든다든가)이 그녀의 손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 226p


  이게 '감사의 말' 정도로 뭉갤 수 있는 공로인지는 좀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정도가 아니라 이러면 안되지.

  책의 마지막 문장은 이러하다. 골 때리는 영감님이다.


  이 책의 내용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스스로 자신의 방법론을 얼른 발견하라"는 것이다. 이 책까지도 포함해 다른 사람의 방법론에 홀려서는 안 된다. - 227p


  내 방법론 개발은 현재 진행형. 손과 머리의 움직임이 어째 뻔하다 싶을 때쯤 다시 읽어봐야겠다. 다치바나는 얼른 이 책을 치우라고 말했지만, 이것도 내 나름 방법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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