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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문희 May 15. 2023

헤밍웨이, 내러티브, 성공적?

230515

  "헤밍웨이 스타일이 존 스타인벡 등등으로 이어지는 듯. 뉴 저널리즘이라든가. 담백하게 팩트만 쓰는. ... 내러티브 기사의 원형인 듯"


  아침 일찍 크리스가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에 남긴 글을 보고 몇가지 의문이 들었다. 그의 말은 <더 저널리스트 : 어니스트 헤밍웨이>를 읽은 소감이고, 위는 기자 시절 헤밍웨이의 기사를 모아놓은 책이다. 얼추 맞는 분석 같으면서도 군데군데 내가 잘 모르는 내용이 있었다. 이왕 크리스와 이런저런 얘길 나눈 김에 몇가지 정리해 본다. 일단, 아래는 크리스가 인용한 책의 일부.


  헤밍웨이는 경험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의 글쓰기 지론은 ‘아는 것만 써야 한다’였다. 직접 보고 겪지 않은 것을 쓰면 언젠가 바닥이 드러난다고 믿었다. 작가의 상상력 또한 경험에서 비롯한다고 여겼고 “경험으로 배우는 게 많아질수록 더 진실에 가깝게 상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저널리스트로서의 경험은 헤밍웨이가 작가로 성장하는 기반이 되었다. 헤밍웨이는 전투 현장에서 목격한 장면들을 훗날 소설에 녹여냈는데, 그의 소설 작품에 자전적 요소가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그의 기사는 마치 한 편의 이야기처럼 생동감이 넘친다. 딱딱한 형식을 벗어나 대화체를 섞어 넣고, 소설의 한 장면처럼 상황을 묘사한다. 헤밍웨이의 직설적이고 간결한 문장은 첫 직장 에서 배운 글쓰기 기초에서 영향을 받았다. 그의 기사를 읽고 있으면 직접 보고 들은 현장이 그대로 그려진다.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한 저널리스트로서의 역량이 돋보이는 순간이다. - <더 저널리스트 : 어니스트 헤밍웨이> 프롤로그


  인용 문단에서 확인가능한 사실은 헤밍웨이가 기자 일을 하며 작가로서 자신의 영역을 구축했다는 것이다. 특성은 자전적 요소가 많고, 한 편 이야기처럼 생동감이 넘친다는 것. 동시에 그는 '아는 것만 써야 한다'는 명제를 따랐다고 한다. '이야기'란 단어는 크리스가 말한 '내러티브'와 근접할 테고, '아는 것만 써야 한다'는 지론은 '담백하게 팩트만 쓰는'이란 묘사와 가까울 것이다.

  그렇다면 의문. 1.'담백하게 팩트만 쓰는'이란 묘사와 '내러티브'라는 규정은 같은가 다른가. 2.'헤밍웨이 스타일'은 그의 기자 시절 글쓰기를 이르는가, 아니면 기자를 거쳐 이룩한 소설가로서의 면모를 지칭하는가. 3.헤밍웨이를 내러티브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가.





  먼저 3. 20세기의 헤밍웨이 이전에 19세기의 찰스 디킨스, 마크 트웨인이 있었다. 헤밍웨이처럼 이들도 소설가이기 이전에 기자였다. 스타인벡의 대표작 <분노의 포도>는 1930년대 대공황기가 배경이다. 소설 집필 전 그는 대가뭄 시기 이주농민을 취재해 ‘추수하는 집시들’이라는 제목으로 르포 기사를 썼다. 헤밍웨이의 작품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스페인 내전 취재 경험을 토대로 했다.

  디킨스나 트웨인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1970년대 '뉴 저널리즘' 운동의 기수인 톰 울프는 선언문 격인 <뉴 저널리즘>에 이렇게 썼다. (아래는 한겨레 고나무 기자의 번역이다.)


  ‘뉴 저널리즘’의 초창기 모습은 영국에서 사실주의적 소설(realistic novel)의 초창기와 똑같다는 것이다. 문학의 역사가 반복되는 것이다.  
  ... 19세기 중반에 비평가들은 일상적으로 소설의 축자적 사실관계(literal accuracy)를 체크하곤했다. 마치 그 축자적 사실관계가 광고에 보장된 것이거나 혹은 작가가 지켜야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건 흡사 요즘 영화 관람객들이 영화를 보고나서, 영화 제작자에게 ‘이 영화가 30년대 갱들을 다룬 것이라면, 어떻게 주인공이 1941년형 플리머스가 주차된 수족관에서 총을 맞을 수 있죠?’ 따위의 항의 편지를 보내는 것과 같다. 당시 소설가들은 썩 내키지않았지만 불필요한 발품팔기 취재, 즉 ‘파헤치기(digging)’를 일상적으로 했다. 말 그대로 정확하게 쓰기위해서. 취재는 소설쓰는 과정의 일부였다. 찰스 디킨스는 작품 <니콜라스 니클비>를 쓰기위해 필요한 사실(material)을 얻기 위해서 친구의 아들을 찾는척하면서 가명을 써서 악명높은 요크셔의 기숙학교들을 세군데 이상 찾아다녔다. - 출처 : 고나무 기자 블로그 '픽션이 아니다'


  



  다음 2. 이 문제는 조금 복잡한데, 헤밍웨이가 기자로서 쓴 글이 '팩트만 담담하게'라는 특성보다는 '생동감' '이야기' 등 단어와 더 어울리는 듯해서다.


  인쇄 공장에서 일하는 한 노인은 패혈증으로 부어오른 손 때문에 병원을 찾았다. 활자판의 납 성분이 긁힌 상처 속으로 침투한 것이다. 의사는 왼손 엄지를 절단하자고 말했다.
  “아니, 그게 뭔 소립니까? 그게 참말입니까? 차라리 잠수함 잠망경을 자르는 게 낫죠! 저는 엄지손가락이 없으면 안 되는 사람이에요. 손으로 벌어먹고 사는 사람이라고요. 소싯적에는 하루에 인쇄판을 여섯 쪽까지 맞췄어요. 자동식자기가 들어오기 전까지 말이죠. 지금도 인쇄 일에는 수요가 있어요. 원래 예술적인 일은 손으로 하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손가락을 잘라버리면······ 생각을 좀 해보세요, 엄지를 잘라버리면 이 손으로 스틱을 어떻게 잡습니까? 선생님, 꼭 잘라야 하는 게 맞아요?”
  노인은 일그러진 얼굴로 고개를 푹 숙인 채 절뚝거리며 병원 문을 나섰다. 전쟁터에서 오른손을 잃는다면 차라리 자살하고 말겠다던 어느 프랑스 화가야말로 노인의 외로운 고통을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날 밤, 몇 시간 만에 노인이 돌아왔다. 잔뜩 술에 취한 상태였다.
  “거, 의사 양반, 해버립시다! 자를 거 다 자르십시다!” 노인이 끅끅거리며 말했다. - 「구급차에 실려오는 사람들」(1918), <더 저널리스트 : 어니스트 헤밍웨이>


  소설가 헤밍웨이가 '뉴 저널리즘'에 끼친 영향을 따지기 전에, 기자 헤밍웨이가 '뉴 저널리즘'스러운 기사를 썼다는 데 주목해야 할 판이다. 당대의 기사 작법이 대체로 이러했을까. 아래는 1900년대 초반 유행한 기사 작법을 짐작케 하는 글이다.


  일반적으로 역피라미드 구조의 탄생 배경은 기술적 요인, 정치적 요인, 교육적 요인, 경제적 요인 등 네 가지로 설명된다(Pötteker, 2003 참조). 예를 들어, 기술적 요인은 역피라미드 구조의 탄생 시기를 미국 남북전쟁 기간(1861∼1865년)으로 본다. 당시 기자들은 기사를 전신으로 보냈는데, 도중에 끊기더라도 중요한 정보는 전달되도록 하기 위해 기사를 역피라미드 구조로 쓰게 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역피라미드 구조가 미국 신문에서 표준화된 기사형식으로 발견되기 시작한 것은 그 수십 년 후다. 푀트커(Pötteker, 2003)는 1855∼1920년의 <뉴욕헤럴드>와 <뉴욕타임스>를 분석하여 1890년대까지는 역피라미드 구조가 표준이 아니었다고 보고했다. 따라서 역피라미드 구조는 1900년 즈음 미국 신문에 정착됐다고 볼 수 있다. - 「역피라미드 구조의 한계에 대한 이론적 논의(2008)」, 박재영 등


  헤밍웨이가 기자로 활동했던 시기(1917년부터 1920년대 전반부까지)를 감안하면, 그의 기사 작법은 당대 언론에서 퍽 일반적이지는 않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렇다고 엄청 혁신적이었다 말하기도 어렵다. 해당 시기는 문학성이 깃든 전통 작법과 '객관주의'와 결부되는 역피라미드식 글쓰기 사이 헤게모니 교체기에 가까웠고, 전자보다는 후자가 '혁신'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요컨대 헤밍웨이는 뉴저널리즘 이전의 (뉴)저널리즘 기자였으되, 1800년대 여명기 언론의 전통 위에서 작업한 기자였다고 봐야겠다.




  그렇다면 헤밍웨이는 전혀 혁신적인 자가 아니었나. 이 문제는 1과 이어져 있다. 그가 '문학적 글쓰기'를 했다고 깜짝 놀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람들이 주목하는 건, <더 저널리스트> 속 표현을 빌리면 ‘아는 것만 써야 한다’는 그의 태도다. 한 사람이 알 수 있는 것은 끽해야 자신의 내면이 전부다. 남에 대해서는 그저, 내뱉는 말을 듣고 하는 행동을 지켜볼 수 있을 뿐이다. 헤밍웨이는 <오후의 죽음>에 그 유명한 '빙산' 비유를 썼다(평론가들은 그가 쓴 단어를 빌려 '빙산 이론'이란 말을 썼다).


  만약 산문 작가가 자신이 쓰고 있는 것에 대해 충분히 잘 알고 있다면 그는 그가 알고 있는 것을 생략할지 모르고, 독자는 작가가 충분히 진실하게 글을 쓰고 있다면 마치 작가가 진술한 것처럼 그 사건을 강렬하게 느끼게 될 것이다. 빙산이 위엄 있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오직 8분의 1만이 수면 위에 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잘 모르기 때문에 생략하는 작가라면 그의 작품에 공간만을 만들어 낼 뿐이다. - 어니스트 헤밍웨이, <오후의 죽음> 중


  8분의 1이지만 그것으로 충분하다. 잘쓴 글이라면 그 작은 서술에서 독자들이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하기 마련이니까. 이게 헤밍웨이의 생각인데, 진짜 그런지는 모르겠다. 그러니 누군가는 헤밍웨이를 좋아하고, 누군가는 대수롭지 않은 글을 쓴다고 무시하는 것일 테다. 내 관심은 이같은 헤밍웨이의 문학론 내지 서술기법이 연원한 곳이다. 그것은 '사실'을 갖고 글을 쓴다는 기자의 태도일 것이다. 이로써 역설적인 규정이 완성된다. 문학적 기법을 쓴 기자 헤밍웨이는 당대 새로운 저널리스트가 아니었으나, 문학의 영토를 저널리즘의 깃발로 점령하려는 야심가 헤밍웨이는 문학의 혁신이었다.

  여기서 '뉴저널리즘'까지는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헤밍웨이 때와 달리 1960년대 내지 1970년대 초반의 언론계는 역피라미드 작법과 객관주의가 지배한 사회였고, 기사를 포함한 논픽션 글쓰기는 '문학'과 다른, 달라야 하는 무엇으로 여겨진 시대였다. 그런데, 정말 달라야 하나? 분리된 영토를 하나로 합치려는 '침략'은 문학에서 먼저 시작됐던 모양이다. 다음은 안수찬의 글.


  기자가 문학의 영역을 넘보자, 소설가는 언론의 영역을 침범했다. 취재한 사실을 기사에만 쓰고 더 풍부한 이야기는 소설로 옮겨 담는 ‘이중의 글쓰기’가 굳이 필요할까. 그냥 사실 그 자체로 가득한 소설을 쓰면 되지 않을까. 미국 소설가 트루먼 커포티는 야심을 품었다.
  1959년 11월 미국 캔자스시티의 작은 마을에서 일가족 4명이 강도에게 살해당했다. 커포티는 이 사건에 대한 단신 기사를 읽고 흥미를 느꼈다. 이후 6년여 동안 피해자·살인자·목격자·수사관 등 수백 명을 직접 인터뷰해 주간지 <뉴요커>에 사건 기사를 연재했고, 1966년 단행본 <냉혈>(In Cold Blood)을 펴냈다. 그의 글은 많은 사람들을 당혹시켰다. 이 글은 무엇인가? 소설인가? 기사인가?
  기대만큼 재미있진 않다는 ‘개인적 리뷰’를 전제하고 말하자면, 커포티의 <냉혈>은 경계비이자 기념비다. 사실주의 문학의 전형이자 뉴저널리즘의 표상이며 내러티브 저널리즘의 원천이다.
  문학계에서는 이를 소설이라 불렀다. <냉혈>은 ‘논픽션 소설’, 즉 사실을 옮긴 소설의 효시로 평가된다. 커포티 자신도 소설로 여겼다. “오랫동안 꿈꾸었던 일을 해냈다. 오직 사실로만 이뤄진 소설을 썼다”고 말했다.
  언론계에선 이를 기사로 보았다. 미국의 기자 톰 울프는 <냉혈>을 극찬하면서 “이제 문학은 저널리즘에서 미래를 찾아야 한다”고 선언했다. 그는 ‘뉴저널리즘’이라는 말의 창시자이기도 하다. 1973년 <뉴저널리즘>이라는 책을 펴냈다. 이 책에는 톰 울프를 비롯해 헌터 톰슨, 게이 탈레시 등 ‘실명으로 이뤄진 이야기’를 추구했던 당대 기자들의 기사가 담겨 있다. - 「기사와 소설, 이중의 글쓰기」, 2013년 11월4일 한겨레21일 온라인판, 안수찬


  19세기 소설은 취재를 토대로 허구를 창작했고, 20세기 뉴저널리즘은 취재를 토대로 허구가 아닌 글을 썼다(논-픽션이란 말의 기원을 이 지점에서 다시 생각해볼 일이다). 다만 그 글쓰기 스타일이 소설적 기법과 가까운 것이다. 무엇이 원형이고, 무엇이 문학이며, 무엇이 내러티브 논픽션인가. 순서 얘기는 여기까지. 이렇게 정리하기로 한다. 오래 전부터 문학적 허구는 현실을 열망했고, 진실은 문학의 힘을 욕망했다. 다른 세계에 속할 때에도 둘은 서로에게 오염돼 있었다.




  덧. 고나무 기자가 톰 울프 글 일부를 옮긴 포스트 중 이런 대목이 눈에 띄었다. 우선 '뉴 저널리즘'은 '1인칭'을 문체혁신으로 여기는 당대 인식과의 대결이었다는 점. 고 기자는 뉴 저널리즘의 역작 대부분이 3인칭 작품들이라고 톰 울프의 입을 빌려 지적한다. 다른 하나는 뉴 저널리즘과 편파 저널리즘이 다르다는 것. 두 명제 모두 흥미로운데, 여기까진 피곤해서 못쓰겠다. 별개로 아래 두 문장을 기억해두기로 한다.


  (글을)장면(scene-by-scene)으로 글 구성하기, 대화, 시점, 그리고 사회적 삶 묘사하기(detailing of status life). 장면 구성과 대화는 활자 작가보다 영화감독이 더 잘 구사한다. 그러나 시점과 사회적 삶의 묘사는 필름보다 활자에서 더 잘 구현된다. 어떤 영화감독도 인물의 마음속으로 관객을 데려가본 적이 없다. 영화감독들은 별걸 다 해봤다. 보이스 오버 내레이션도 시도했다. 카메라를 주인공의 ‘시점’으로 삼기도했다. 요즘 유행은 메모리 플래시(플래시 백)이다. 그 어떤 것도 영화 속 인물 속의 머릿속으로 당신을 데려가주지 못했다. 어떤 사실주의적 소설들은 매우 성공적으로 주인공의 정신적 삶과 정서적 분위기를 구현했다.


  리포터로서 당신의 중요한 과제는 당신이 취재하고자하는 장면이 벌어지는 것을 볼 수 있을만큼 충분히 오래 취재원옆에 머무를 수 있느냐다. 다른 취재 비결이나 장인의 취재 비법같은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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