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일기라도

꼬다리

by 조문희


건너 아는 사람의 죽음이 늘어날 때 나이든 것이란 말을 예전엔 이해하지 못했다. 부고는 대개 노화한 조부모의 몫이었고, 젊어 죽은 지인은 예외에 그쳤다. 익숙지 않았으니 달래는 법도 잘 몰랐다. 향을 피운 뒤 상주와 두 번 절하고 나면 어째 할 말이 없었다. 요즘은 친구 부모님의 별세가 낯설지 않다. 자연스럽진 않아도 있을 수 없는 일로 느끼진 않는다. 넋두리를 그저 듣는 것도 위로의 일종임을 깨닫는 나날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원더풀 라이프>의 한 장면


그래도 지인이 남긴 한 마디 말은 꽤 충격으로 남았다. 가족을 잃은 그가 오랜만에 가까운 사람들을 만난 날이었다. 그는 고인과 함께 밥먹고 웃었던, 때로 서로에게 상처줬던 기억들을 탁상에 꺼냈다.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추억들. 상념에 젖은 주변인들에게 그는 말했다. "이상한 게 뭔지 알아? 그 사람이 웃을 때 표정이 어땠는지, 화낼 때 목소리는 어땠는지 벌써 잘 기억이 안나. 처음엔 선명했던 것 같은데, 조금씩 흐려져."

생각해보니 그랬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것이 2016년, 어린 시절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는데도 그와 보낸 날들이 어느덧 흐릿했다. 가장 선명한 풍경은 막내삼촌의 아파트 방 한구석 이부자리를 펴놓으신 모습이다. 그녀가 방 천장에 걸어둔 메주가 초등학생인 내겐 늘 신기했다. 불편한 몸을 이끌고 '롯데샌드'를 사오신 날도 기억난다. 휴가나온 군인이 뭐 그리 안쓰러우셨을까. 입버릇처럼 꺼내셨던 "지발덕신"이 '제발'이란 뜻의 방언임을 알게된 건 조금 더 나이가 든 후였다. 생전 살갑지 못했던 손자는 산소마저 제때 찾아간 적이 없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원더풀 라이프>를 그래서 질투했다. 망자들이 천국에 가기 전 중간 기착지인 '림보'에 머물며 기억을 곱씹는 영화다. 각자 인생이 담긴 수십편 테이프를 본 뒤 그들은 영영 남기고픈 한 순간을 고른다. 어릴 적 오빠와 춤추던 기억, 딸의 결혼식, 연인과 함께 앉아있던 벤치. 처음엔 각각 이야기가 슬펐는데, 최근엔 주인공들이 부러워졌다. 림보 속 테이프는 현실에 없다. 누군가 영원한 기억을 약속한들, 떠오르지 않는 순간을 어떻게 골라내겠나.

영화 <굿 윌 헌팅>에서 심리학 교수 숀의 말은 꽤 위안이 됐다. 주인공 윌에게 그는 걸핏하면 방귀를 뀌던 아내 이야기를 꺼낸다. 어느 날엔가 자다가 방귀를 뀌더니 본인이 그 소리에 놀라 깨더라는 것이다. "아내가 죽은 지 2년이나 됐는데 그런 기억만 생생해. 제일 그리운 것도 나만이 아는 아내의 사소한 버릇들이야. 그게 내 아내니까." 전부는 기억 못한다는 슬픔과 '기억 만큼은 내 아내'라는 안도가 때론 함께라는 걸 그에게 배웠다.

요즘 '웃음과 감동의 일기'를 쓴다. 날세우고 아픈 기억은 생생한 반면, 즐거웠던 순간은 잘 남지 않는다는 걸 살다보니 깨달았다. 지난해 고향집 식탁에서 어머니, 동생과 깔깔 웃었던 장면이 떠오른다. 무슨 얘기를 하다 웃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동생이 어머니의 모순된 말과 행동을 웃으며 지적하자 그녀가 쑥스러워했다는 정도만 뇌리에 있다. 그때 그 말을 복기하고 나면 어머니를 조금 더 알게 될까. 모두를 기억할 수 없다는 것쯤은 안다. 그래도 조금 더 기억하고 싶다. 사소할지언정, 기억하는 만큼은 '내 사람'일 테니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원더풀 라이프>의 한 장면


*23년 7월3일자 주간경향 코너 '꼬다리' 온라인판에 노출한 에세이입니다. 수정 전 버전으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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