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문희 Sep 03. 2023

우동이 기가 막혀

8월의 시코쿠 여행기

  이번 휴가 때는 일본 시코쿠 지방에 다녀왔다. 도쿄나 교토를 가려 했으나 비행기 값이 너무 비쌌다. 가는 데에만 50여 만원을 써야 한다니. 현지에서 만나는 사람 절반쯤이 한국인일 거란 농담도 마음에 걸렸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가 막 시작됐다는 생각은 왜 못했을까 싶지만, S방송국의 위대한 기자 화모씨가 "괜찮겠어?"라고 물었을 때는 이미 비행기며 숙소며 예약을 모두 마친 뒤였다.)

  차라리 다른 곳에 가자, 싶을 때쯤 떠오른 것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집 <나는 여행기를 이렇게 쓴다>였다. 시코쿠 가가와현 여행기인 '우동 맛 기행'에 하루키는 이렇게 썼다.


  그러나 어쨌든 가가와 현의 우동은 누가 뭐래도 맛있었고, 그 여행을 끝낸 후에는 우동에 대한 나의 생각도 완전히 바뀌어버린 것 같다. 나의 우동관에 '혁명적인 전환'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예전에 이탈리아에서 살았을 때, 토스카나의 키안티 지방으로 여러 차례 여행을 하고 와인 공장을 돌아다닌 후에 와인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바뀌어버린 경험이 있는데, 이번의 우동 체험은 그에 버금가는 것이었다.
- '우동 맛 기행', <나는 여행기를 이렇게 쓴다>(무라카미 하루키, 국역 1999)



  도대체 어떻길래! 이런 문장도 나를 참을 수 없게 했다. "날씨도 좋고 우동도 기가 막히게 맛있었다. 아침부터 돌 위에 걸터앉아서 우동을 정신없이 먹고 있으니, 점점 '세상이야 어떻게 돌아가건 말건 내 알 바 아니다'라는 기분이 드는 것이 아주 이상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우동이라는 음식에는 뭐랄까, 인간의 지적 욕망을 마모시키는 요소가 들어있는 것 같다." 직업이 직업인지라 그동안 세상 자잘한 흐름에도 눈떼지 못하며 살았다. 시코쿠 우동은 업의 멍에를 잠시나마 벗게 해줄까?

  (정작 하루키가 위 문장을 바친 '나카무라 우동'엔 들르지 못했다. 주중에 쉬는 데다, 점심 무렵 일찍 닫는 가게 영업 방침을 미리 알지 못한 탓. P의 삶은 편한듯 고되다.)


  처음엔 실망스러웠다. 하루키가 소개한 가게는 모두 숙소를 잡은 다카마쓰시에서 멀었고 교통도 불편했다. 택시를 타자면 대략 4~5만원씩 들 것이었는데(최근 '엔저'로 한국보다 일본 물가가 싸다고 하지만 기본적으로 일본 택시 가격은 높이 책정돼 있다), 몇천원짜리 우동을 먹자고 그 돈을 쓰자니 어째 균형이 맞지 않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시코쿠, 특히 가가와현 지방에서 생산하는 '사누키 우동'(사누키는 가가와현의 옛 지명이다) 가격은 덴푸라(튀김) 등 별다른 토핑 없이 자루 우동이나 가케 우동을 주문한다면 200엔에서 300엔 수준으로 매우 저렴했다. 결국 시내 맛집을 여럿 갔지만 '한국에서도 이 정도는' 싶은 수준이었다. 시코쿠 여행책자니, 일본 소도시 여행 책이니, '걸어서 세계 속으로' 시코쿠 우동 편이니 이것저것 찾아본 게 다 뭔가 싶었다.


다카마쓰 시내의 '우동 보우' 본점. 튀김과 계란 맛은 정말 기가 막힌다. 일본 계란은 어쩜 이렇게 싱싱하고 색이 예쁠까?


  그러다 참지 못하고 여행 말미에 찾은 곳이 다카마쓰시 변두리에 있는 '가모 우동'이었다. JR 다카마쓰역에서 요산선을 타고 20분쯤 멍때리니 금세 가모가와역에 도달해 '벌써 다 왔나' 했다. 그때부터 고생길인 걸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시코쿠는 일본 본토 도쿄보다도 남쪽에 위치했고 8월 말 태양은 수명을 다한 촛불인 양 활활 타올랐다. 역에서 우동집까지 거리는 지도상 15분이었는데 실제는 20분 남짓 걸렸다. 고작 그 시간을 견디기가 힘들었다. 고층빌딩 없는 도로와 논 풍경에 시원한 건 눈뿐이었다.



  그나마 희망은 가는 길에 사람 하나 없다는 것. 함께 간 Y와 "유명한 우동집이라면서 가는 길에 이렇게 사람이 없다니, 신기하다" "냉우동 바로 먹으면 상쾌할 것 같아" "츠메타이(일본어로 차갑다는 뜻)라고 말하면 돼" 희희낙락하다 보니 어느덧 우동 집 앞. 섣부른 낙관은 늘 배신당하기 마련이란 오랜 격언이 떠올랐다. 이 넓은 땅에 왜 자동차며 사람이며 여기에만 모여 있는가. 지방 인구 소멸이 이뤄진 먼 미래의 한국 지도가 이런 식이었던 것 같다. 가모가와의 서울은 가모 우동이었다.



  예상보다 회전이 빨랐고, 대략 30분 만에 가게 안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그리고 느꼈다. '다르다!' Y와 나는 눈을 마주쳤고, "다르다" "달라" "이거구나" "이거였어" 등등 주어나 목적어가 없는 술어와 탄식, 감탄사를 거듭 내뱉었다. 호로록 면발을 빨아들인 뒤 음 감탄하다가 쩝쩝 씹고는 국물을 꼴깍 먹는 시간이 이어졌다. Y는 이 지방 현지인들이 우동을 맛볼 때 하는 방식이라며 면을 씹지 않은 채 목으로 넘기는 묘기를 부렸다.


  나는 토스카나 지방을 가본 적 없지만, 그곳에서 와인을 먹게 된다면 이렇게 말하게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나는 예전에 일본 시코쿠에 놀러갔을 때 가모 우동을 먹고 우동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바뀌어버린 경험이 있었는데, 이번의 와인 체험은 그에 버금가는 것이었다." 지적 열망까진 몰라도, 언어와 씹는 법 정도는 충분히 잊어버릴 수 있다는 경고도 함께.


정확히 여기 앉아서 먹었다.




  별도로 좋았던 곳 하나. 다카마쓰시 가와라마치에 있는 '나카조라'가 기억에 남는다. 구글맵 속 이름은 珈琲と本と音楽 半空. 커피와 책과 음악이라고 써있지만 위스키, 칵테일 구성이 더 대단하다. 나는 <다카마쓰를 만나러 갑니다>라는 책을 읽다가 이곳을 발견했는데, 첫날은 사람이 많아 발을 디디지 못했다가 여행 막판에 겨우 자리를 잡았다. 이름답게 책이 많았고(봉준호-이동진 대담까지!), 셔츠에 넥타이, 조끼를 갖춰입은 바텐더가 인상적이었다. 칵테일 설명을 보니 '이타미 주조의 김렛' '헤밍웨이의 모히또' 이런 식. 주문했더니 음료와 함께 작은 갈피로 페이지가 표시된 책을 건네준다. 작가가 해당 칵테일을 묘사해둔 구절이었다. 어연희동 '책바'(지금은 망원동으로 이전했다)와 비슷한 방식. 듣자하니 이곳 주인장도 책바 사장처럼 손님들에게 작품을 받아 '나카조라 문학상'이라는 아마추어 글 대회를 치른 뒤 작품을 모아 책자로도 낸단다.

  책을 읽고 이곳에 왔다고 하니 그가 문학상 책자를 건네줬다. 세상은 이래저래 따뜻하다.





  여행을 다녀온 지 벌써 며칠, 주말 근무를 마무리한 뒤 시간을 보내다 책무더기 속 <하루키를 읽다가 술집으로>(조승원, 2018)가 눈에 띄었다. 이건 또 어디로 나를 보내려나. 작가가 인용해둔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 속 문단이 눈에 띈다.


  시간 여유를 갖고 기분 내키는 대로 키안티 지역을 자동차로 돌아보는 것은 멋진 경험이다. 약간 과장해서 말한다면, 그 경험은 당신 인생에서 한 가지 하이라이트가 될 수도 있다. ... 붉은 벽돌과 곧고 푸른 실편백나무와 구불구불한 하얀 산길. 산 위 곳곳에 오래된 성과 한눈에도 유서 깊어 보이는 빌라가 눈에 띈다. 아름답고 단아한 광경이다. 조화롭게 어우러진 그 아름다움을 해칠만한 것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 <하루키를 읽다가 술집으로>(조승원, 2018)


  조승원은 이러한 인용문 뒤에 "하루키가 키안티를 사랑한 또다른 이유는 이곳에서 생산하는 키안티 와인에 있었다"고 덧붙인다. 언젠가 이곳에서 몇날며칠 시간을 재지 않은 채 풍경을 즐기며 와인을 마셔볼 수 있을까? '그리스 토속 와인인 레치나Retsina는 송진을 넣은 와인을 뜻하는군' '로마네콩티는 어렵겠지만 제대로 된 부르고뉴산 피노 누아는 한번 먹어봐야겠어' 이런저런 생각을 더 하다가 '하루키처럼 마셔보자'는 챕터에 눈이 멈춘다.


  하루키가 즐기는 독특한 와인 음용법이 있다. 와인(주로 화이트 와인)에 청량감 있는 탄산수를 타서 칵테일로 마시는 것이다. 물론 이걸 하루키가 개발한 건 아니다. 화이트 와인에 탄산수를 섞는 이런 칵테일을 스프리처Spritzer라고 하는데,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탄생했다. 잘츠부르크 여름 축제에서도 절대로 빠지지 않는 스프리처는 미국에서는 1980년대에 건강음료로 각광받았다.
- <하루키를 읽다가 술집으로>(조승원, 2018)


  좀 이상하다 싶지만, 조승원은 "와인에 물을 타먹는 건 역사가 깊다. 멀리 거슬러 올라가면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에는 보편적인 일이었다"고 설명한다. 마침 집에 '르윈 아트시리즈 소비뇽 블랑'이라는 저렴한 화이트와인이 한 병 있었고, 탄산수도 구비해 뒀다. 와인 설명을 보니 레몬, 라임을 얇게 썰어 말리고 망고, 파인애플, 백도 복숭아, 바질, 백차, 구즈베리, 흰 꽃 등을 잘 섞은 맛이라고 한다. <빵가게 재습격> 속 단편 '패밀리 어페어'에서 주인공은 "큰 글라스에 백포도주와 얼음을 넣고, 거기다 페리에를 섞고 레몬을 짜 넣으면 아주 좋지"라고 말하는데, 레몬은 없지만 대충 비슷한 맛이 나겠다 싶다. 결과는?



  하루키는 <나는 여행기를 이렇게 쓴다>를 이같은 문단으로 시작한다.


  이렇게 누구나 어디든지 마음대로 갈 수 있어서 이젠 변경이라는 것이 없어져 버렸고, 모험의 질도 완전히 달라져 버렸다. '탐험'이나 '비경' 같은 말은 점점 진부해져서 현실적인 수준에서는 거의 쓸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 그러나 어쨌든 여행을 하는 행위의 본질이 여행자의 의식이 바뀌게끔 하는 것이라면, 여행을 묘사하는 작업 역시 그런 것을 반영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그 본질은 어느 시대에나 변하지 않는다. 그것이 여행기라는 것이 가지는 본래적인 의미이기 때문이다. '어디어디에 갔었습니다, 이런 것이 있었습니다, 이런 일을 했습니다' 하고 재미와 신기함을 나열하듯 죽 늘어놓기만 해서는 사람들이 좀처럼 읽어주지 않는다. '그것이 어떻게 일상으로부터 떨어져 있으면서도 동시에 어느 정도 일상에 인접해 있는가' 하는 것을 (차례가 거꾸로 되더라도 좋으니까 복합적으로 밝혀나가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 가장 중요한 것은, 이처럼 변경이 소멸한 시대라 하더라도 자기 자신 속에는 아직까지도 변경을 만들어낼 수 있는 장소가 있다고 믿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추구하고 확인하는 것이 바로 여행인 것이다. 그런 궁극적인 추구가 없다면, 설사 땅끝까지 간다고 해도 변경은 아마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시대다.
- '작가의 말', <나는 여행기를 이렇게 쓴다>(무라카미 하루키, 국역 1999)


  책을 읽고 먼 여행을 떠나는 한편, 책을 읽으며 평소 마시던 술의 새로운 맛을 느낀다. 글을 읽고 생각할 수 있다면 내게는 어디나 변경이다. 휴가철을 지나, 일상 속 여행을 다시금 시작해 본다.

  하지만 휴가는 기다려진다...

매거진의 이전글 버린다고 사라질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