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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문희 Oct 11. 2023

산재 사망의 구조를 묻다

231009

  한겨레 신다은 기자의 책 <오늘도 2명이 퇴근하지 못했다> 제목을 보며 어째 기시감이 들었다. 옛 기사를 검색해 보니 경향신문의 기획 시리즈 '매일 김용균이 있었다' 첫 기사 제목이 "오늘도 3명이 퇴근하지 못했다"였다. 2019년 11월21일 1면 기사다.



  당시 경향신문 기획은 이전까지 건별 보도됐던 산재 사고 사망을 연도별로 종합해 전체 규모를 드러내고, 사망 원인을 유형화해 산재 사망의 '기막힌 실상'을 알렸다. 떨어짐, 끼임, 깔림·뒤집힘, 부딪힘, 물체에 맞음 등 원시적 사고가 대부분 죽음의 원인으로 분석돼, 각계각층서 왜 이런 사고를 막지 못하나 한탄이 이어졌다. 중대재해처벌법 등 산재 사고 방지책 마련 논의의 길목에 자리한 보도였다.

  신 기자의 책은 조금 결이 다르다. 질병 사망이 아닌 사고 사망에 초점을 맞춘 건 경향신문 보도와 같지만, 사고에 이르는 구조적 원인을 다각도로 살펴본 데서 차별화됐다. 신 기자의 표현을 빌리면 "'구조'란 노동자 개개인의 성향을 넘어서는 견고한 체계"이다. 그는 영국의 인지공학자 제임스 리즌의 주장을 인용하며 이렇게 쓴다.


  그가 등장하기 전까지 재해 예방 이론은 주로 '썩은 사과 찾기'에 집중했다. 사과 상자에 문제가 생겼을 때 썩은 사과(행동이 불안전한 작업자)를 찾아내 제거하는 데 주력하고 사과 보관법이나 보관 환경(작업자를 불안전하게 만드는 요인)까지 깊이 들여다보진 않은 것이다. ... "문제는 왜 오류가 발생했느냐가 아니고 왜 시정하지 못했느냐이다." ... 단순히 노동자가 망각한 것이라면 작업 전 안전모를 쓰도록 다시 안내하는 것만으로도 행동 교정이 가능할 것이다. 반면 안전모의 종류가 너무 많아 노동자들이 헷갈린다면 분류표를 부착하는 등 보다 적극적인 안내가 필요하다. (<인재는 이제 그만>) - 신다은, <오늘도 2명이 퇴근하지 못했다>, 154~155p


  전체적으로 산재 관련 쟁점이 잘 정리된 책이다. 노동 분야를 집중 취재한 이력 만큼 산재 판단 및 수사, 보도 과정에서 종종 나타나는 아이러니도 입체적으로 포착하고 있다. 예컨대 안전수칙 강화는 외려 노동자에게 사고 책임을 더 많이 덮어씌우는 계기가 된다. 작업을 마쳐야할 시간이나 목표 생산량은 그대로인데 안전수칙만 강화되면 노동자 입장에선 안전수칙 위반 유혹을 느끼기 마련이다. 생산압박을 돌파하기 위함이지만, 그 결과 발생하는 사고에서 기업주는 면책된다("우린 안전수칙 지키라고 했어").

  산재 조사가 수사와 등치되는 현실도 문제다. 사고의 구조적 원인보다는 잘못한 개인을 찾는 데 초점이 모이는 탓이다. "수사의 성패는 재해를 일으킨 구조적 원인을 찾아내느냐가 아니라 개인의 법 위반 행위를 명확히 특정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254p)" 수사 돌입시 '피의자 보호'와 '피의사실 공표' 우려를 이유로 산재 관련 정보공개 길이 막히기도 한다("수사 중이므로 자세히 밝힐 수 없다"). 고용노동부 근로감독관 역시 법 위반 여부에 집중할 뿐, 재해조사 및 분석 기관인 안전보건공단의 역할은 소수에 그친다.

  그 외 원청은 안전 설비를 갖고 있지만, 영세한 하청업체에 안전 업무를 맡긴 탓에 설비를 정작 활용하지 못한다거나... 가장 흥미로웠던 대목은 아래.


  덴마크의 안전 공학자 에릭 홀나겔은 일찍이 기업의 계산법에 주목했다. 기업 경영진은 명확한 근거가 있어야 안전에 투자한다. 최근 공장에 끼임 사고가 잦으면 그때서야 끼임 재해 예방 설비 투자를 늘리는 식이다. 그런데 끼임 사고가 나지 않는 공장은 어떨까? '앞으로도 이런 무재해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투자를 하자'라고 생각할까? '별다른 조치 없이도 재해가 안 일어나는구나'라고 생각해 안전 투자 규모를 줄일 가능성이 높다.
  홀나겔은 접근 방법을 뒤집어 '사고 상황 줄이기'보다 '사고 안나는 상황 늘리기'에 중점을 둬 보자고 제안했다. ... 빵 반죽 옮기는 기계가 가동 중에 갑자기 멈춰버려 반죽이 롤러 아래로 빠지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고 생각해 보자. 노동자는 반사적으로 손을 뻗어 반죽을 구하려다 손을 다치고 말 것이다. 이때 기계를 자주 점검해 오작동 횟수를 줄이거나 '기계가 멈춰도 손을 뻗지 말라'고 노동자를 교육하는 것은 안전-1이다. 한편 공정을 잘 관찰해 위험이 덜한 작업방식을 고안하거나, 기계가 멈춰도 손을 뻗지 않고 반죽을 포기한 노동자를 '안전 우수 직원'으로 표창하는 것은 안전-2로 볼 수 있다. - 120~122p


  2014년 산재 사망한 하청노동자 최범식씨 사례를 읽으면서는 울컥했다. 경찰은 최씨 사건을 자살로 규정했고 근로복지공단은 수사 결과를 토대로 산재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를 뒤바꾼 것은 최씨가 가끔 "작업용 리모컨이 자꾸 말썽"이라고 말했다는 동료들의 증언 덕이다. 이후 노조 및 시민단체가 "범식씨가 기계의 리모컨 오작동을 점검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리모컨 스위치가 켜지며 쇳가루가 발사되자 눈에 맞아 추락하면서 호스에 걸려 목이 졸렸다"며 사건 경과를 재구성했고 2심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였다.


  개별 산재사고가 구조적 요인에 의한 것이냐, 한두 사람의 단순한 과실이냐를 두고 양쪽이 치열하게 싸울 수밖에 없는 '기억의 전쟁터'인 셈이다. - 258p


https://naver.me/5lxZklKr


  무엇보다 산재가 기업과 노동자, 유족만이 아닌 행정기관, 수사기관, 언론이 함께 다루는 이슈임을 재삼 느끼게 하는 게 이 책의 미덕이라 생각한다. 특히 언론 업계 종사자로서는 "안전관리자나 사업주 등 특정인을 도덕적으로 비난하는 데만 치중하면 더 중요한 과제가 밀리게 된다"는 문장에 눈길이 갔다. 노동자 잘못으로 산재 발생 원인을 몰아가는 것도 문제지만, 악덕 사업주만 비난하는 데 그쳐서도 곤란하다는 지적이다. 사업주의 선의에 기대는 것만으론 부족하다. 특별히 도덕적이지 않은 사업주라도 법적 의무를 다할 수 있는 환경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지 보도 과정에서도 이따금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더하여, 이 책을 읽으며 아직 다뤄지지 못한 산재 이슈를 고민해보게 됐다. 산재 사망자 유족 이재훈씨(2021년 4월 평택항에서 숨진 이선호씨의 부친) 인터뷰 글에 등장하는 '산재 은폐' 문제가 대표적이다. 사건 맥락 파악에 용이한 재해조사의견서가 국회의원실을 제외하고는 좀체 공개되지 않으며, 수사기관 외 관계자들의 종합적 진술 및 자료를 담은 판결문이 당사자 외엔 접근하기 어려운 현실도 개선할 필요성이 있다.


  새삼 산재 사망에 관한 일반의 인식 수준이 알게 모르게 높아졌다고 느낀다. 사건을 다루는 언론의 고민도 깊어지고 세분화된 듯하다. '성장'이라고 해야할까. 그 밑바탕에는 구의역 김군, 김용균, 이름 알려지지 않은 숱한 죽음들이 있었다. 변하지 않은듯 조금씩 변한 보도들이 있었다. 나는 이 책을, 그 바탕에서 자라난 지금의 최전선이라고 정의한다. 많이들 읽고 함께 고민했으면 좋겠다. 언젠가 사회 담당 부서로 돌아간다면, 부끄럽지 않은 기사를 쓸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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