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009
그가 등장하기 전까지 재해 예방 이론은 주로 '썩은 사과 찾기'에 집중했다. 사과 상자에 문제가 생겼을 때 썩은 사과(행동이 불안전한 작업자)를 찾아내 제거하는 데 주력하고 사과 보관법이나 보관 환경(작업자를 불안전하게 만드는 요인)까지 깊이 들여다보진 않은 것이다. ... "문제는 왜 오류가 발생했느냐가 아니고 왜 시정하지 못했느냐이다." ... 단순히 노동자가 망각한 것이라면 작업 전 안전모를 쓰도록 다시 안내하는 것만으로도 행동 교정이 가능할 것이다. 반면 안전모의 종류가 너무 많아 노동자들이 헷갈린다면 분류표를 부착하는 등 보다 적극적인 안내가 필요하다. (<인재는 이제 그만>) - 신다은, <오늘도 2명이 퇴근하지 못했다>, 154~155p
덴마크의 안전 공학자 에릭 홀나겔은 일찍이 기업의 계산법에 주목했다. 기업 경영진은 명확한 근거가 있어야 안전에 투자한다. 최근 공장에 끼임 사고가 잦으면 그때서야 끼임 재해 예방 설비 투자를 늘리는 식이다. 그런데 끼임 사고가 나지 않는 공장은 어떨까? '앞으로도 이런 무재해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투자를 하자'라고 생각할까? '별다른 조치 없이도 재해가 안 일어나는구나'라고 생각해 안전 투자 규모를 줄일 가능성이 높다.
홀나겔은 접근 방법을 뒤집어 '사고 상황 줄이기'보다 '사고 안나는 상황 늘리기'에 중점을 둬 보자고 제안했다. ... 빵 반죽 옮기는 기계가 가동 중에 갑자기 멈춰버려 반죽이 롤러 아래로 빠지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고 생각해 보자. 노동자는 반사적으로 손을 뻗어 반죽을 구하려다 손을 다치고 말 것이다. 이때 기계를 자주 점검해 오작동 횟수를 줄이거나 '기계가 멈춰도 손을 뻗지 말라'고 노동자를 교육하는 것은 안전-1이다. 한편 공정을 잘 관찰해 위험이 덜한 작업방식을 고안하거나, 기계가 멈춰도 손을 뻗지 않고 반죽을 포기한 노동자를 '안전 우수 직원'으로 표창하는 것은 안전-2로 볼 수 있다. - 120~122p
개별 산재사고가 구조적 요인에 의한 것이냐, 한두 사람의 단순한 과실이냐를 두고 양쪽이 치열하게 싸울 수밖에 없는 '기억의 전쟁터'인 셈이다. - 258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