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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에 대한 고민

꼬다리

by 조문희 Feb 07. 2025


※ 2025년 2월7일 <주간경향> 온라인판에도 게시됐습니다.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발생 열흘째인 1월7일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을 찾은 한 시민이 추모 포스트잇을 붙이고 있다. 경향신문 정효진 기자


 “6·25전쟁인가, 한국전쟁인가.”

 대학 시절 수강한 국제정치사 수업의 한 대목이 지금도 기억난다. 학생들에게 던지는 난제로 유명했던 선생의 강의는 간혹 정명(正名)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마무리됐다. 공자님 말씀이 아니라, 어떤 존재·사건에 올바른 명칭을 붙이려 애써야 한다는 취지였다. 이날 수업은 한국전쟁이 왜 틀린 용어인지에 초점을 맞췄다. ‘한반도전쟁’이라면 모를까, 한국만 붙여서는 침략국 북한의 존재를 지우게 된다고 선생은 말했다. 그에 따르면 외국 학자의 ‘The Korean War’ 개념을 게을리 번역한 결과물이었다.

 국제부에서 일하는 동안 유독 그때 수업을 여러 번 떠올렸다. 내 담당 지역은 일본이지만 가끔 중동 지역 기사도 쓰는데, 사안이 사안인 만큼 대개 ‘가자 전쟁’ 관련이다. 전황부터 휴전 협상 진전까지, 시점과 관점에 따라 내용은 다양하지만 상당수 기사가 이같은 배경 설명을 포함하곤 했다. “‘가자전쟁’은 2023년 10월7일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하면서 시작됐다.” 남의 기사를 읽으며 고개 갸웃하고는 나 역시 비슷한 문장을 적는 게 영 면구스러웠다.

 좁은 식견으로도 둘 사이 갈등 연원이 깊고 오랜 것임은 알았기 때문이다. <가자란 무엇인가>의 저자 오카 마리는 가자지구 주민들이 “1948년 이스라엘 건국과 인종 청소로 인해 폭력적으로 난민이 된 사람들”이라고 정의한다. 최소한 1967년 서안지구·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점령과 의약품 등 물자 보급 중단을 포함한 봉쇄 행위를 고려하지 않은 채 ‘전쟁’이라고 뭉뚱그려선 곤란하다는 게 저자의 입장이다. 명시하진 않았지만,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처럼 대등한 두 주체의 충돌 비슷하게 기술하는 것도 그는 반기지 않을 것 같다.

 지난해 12월29일 무안공항에서 벌어진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를 두고도 명칭 논란이 있었다. 항공기 사고는 항공사 이름과 편명을 쓰는 게 국제 표준이다. 그런데도 일각에선 ‘무안공항 참사’라는 명명을 주장했다. 대형 참사엔 종종 사고 지역명을 쓰며, 공항 내 둔덕·철새 등 장소 연관성도 의심된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설득력이 크지 않았고, 괜히 지역감정만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정부와 유족이 협의한 명칭은 ‘12·29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였다.

 어떻게 부르는 것이 맞을까. 나는 각각 6·25전쟁, 가자전쟁, 제주항공 참사란 이름을 쓴다. 하마스의 공격이 ‘저항권’ 행사라는 말에는 고개 끄덕이지만, 매번 긴 역사를 병기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봤다. 여객기 참사 명칭은 ‘제주항공 2216편 사고’가 원칙이겠지만 축약해도 무리는 아니지 싶다. 다만 사명에 쓰인 ‘제주’ 글자도 빼야하지 않느냔 지적엔 잠시 움찔하게 된다. 꼭 타당해서가 아니라, 참 복잡하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돌아보면 코로나19는 한때 ‘우한 폐렴’ ‘대구 코로나’로 불렸다. 반대로 선입견을 경계해 만든 ‘10·29 참사’보다는 ‘이태원 참사’가 더 많이 쓰인다. 명칭은 자주 잠정적이다. 무언가 이름을 부르기 전에 이따금 내 논리를 점검하겠다고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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