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다리
※ 주간경향 <꼬다리> 코너 연재 글입니다. 2026년 1월16일 온라인에 먼저 송고됐습니다.
이것은 하마터면 쓸 뻔했던 기사 이야기다.
지난달 초 SNS에서 미국 국제정치학계 석학 존 미어샤이머 시카고대 석좌교수가 중·일 갈등을 분석한 발언 영상을 봤다. 영상에서 미어샤이머 교수는 일본이 “세계 최대 제조업 기반이자 글로벌 공급망의 중심 허브를 상대하고 있는 것”이라며 중국과의 갈등은 “경제적 안정성과 장기적 안보 모두를 훼손하는 오판”이라고 말했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지난해 11월 ‘대만 유사시 개입’ 시사 발언 이후 양국 관계가 경색된 가운데 향후 상황도 일본에 불리하게 전개될 것이란 분석이었다.
국제부 일본 담당 기자 입장에선 혹할 만한 이야기였지만 기사로 쓰진 못했다. 영상 풀버전을 찾지 못해서였다. 해당 영상 자막은 중국어였고 길이는 2분 가량으로 짧았다. 편집본으로 짐작돼 자칫 그의 말을 왜곡하게 될까 우려됐다. 며칠 전 업로드된 영상이어서 시의성이 떨어진다는 판단도 있었다.
이후 해당 영상이 ‘조작 영상’이라는 AFP 통신 보도를 보게 됐다. 인물 영상과 음성 모두 인공지능(AI)이 만들어낸 것으로 추정된다는 내용이었다. 미어샤이머 교수 본인도 ‘가짜 미어샤이머’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었다. 그는 “그것(영상)은 중·일 관계에 대한 내 견해를 정확히 나타낸 것이 절대 아니다”라며 두 달 가량 이 상황을 타개하고자 애쓰는 중이라고 AFP에 전했다.
나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최승호 뉴스타파 PD는 최근 페이스북에서 미어샤이머 교수 영상을 링크하며 그가 미국의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체포 군사작전을 비판적으로 논평했다고 소개했다. 그리고 최 PD는 얼마 지나지 않아 “(링크했던) 비디오는 딥페이크였기에 삭제했다”고 밝혔다.
그동안 동영상은 꽤 믿을 만한 정보였다. 언론 취재·보도는 사실의 위계 판단과 종합에 따라 이뤄진다. 직접 보고 들은 것, 정부·당국 및 공신력 있는 기관의 발표나 문서, 관계자 발언, 제3자 전언, 영상, 사진, 외신 보도 등 증거에 각각 다른 신뢰도를 부여하면서 이왕이면 여러 증거를 비교하고 더해 사실성 여부를 판단한다. 그 판단에 근거를 더하고자 ‘~에 따르면’ 같은 표현을 더한다. 영상의 경우 그것이 송출된 매체·채널명을 병기하며 내용을 소개하는 식으로 종종 쓰였다. 전언만으로는 쓸 수 없다고 내부 판단된 내용도 영상까지 확보되면 기사화되는 일이 있었다.
이제는 그럴 수 없을 것 같다. 당장 해외 언론도 속은 모양이다. 지난달 25일 스위스 온라인 매체 왓슨은 “어제 우리는 ‘엡스타인 사건’이 미국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미어샤이머 교수 발언을 기사에 실었다”면서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딥페이크의 피해자가 됐다”고 밝혔다. 그러고 보니 ‘마두로 체포’ 당일에도 AI로 만든 가짜 사진·영상이 쏟아져 혼란을 키웠다. 역사적 순간에도 가짜가 끼어드는 세상이다.
앞으로 언론은 어떻게 취재·보도해야 할까. AFP, 로이터 등은 팩트체크 코너를 통해 이따금 영상 조작 여부를 분석해 선진 사례로 거론된다. 그마저도 일상적으로 유통되는 다수 영상의 진위를 그때그때 판단하는 데엔 효용이 크지 않다. 개인이 확인하는 데엔 한계가 있다. 이러다가 ‘하마터면’으로 끝나지 않는 날이 오는 것 아닐까. 요즘 하는 걱정이다.
이 글을 쓴 전후 맥락을 더해본다.
1. 지난해 7월 러시아 캄차카반도에서 규모 8.8 강진이 발생한 것을 계기로 기사 하나를 썼다. AI로 생성한 가짜 사진·영상이 재난 상황 혼란을 틈타 마구잡이로 돌아다닌다는 내용이었다.
그때 이미 아래와 같은 우려가 나오고 있었다. 거짓이 넘치다 보니, 진짜를 외려 의심하게 되는 상황이 도래할 수 있다는 것.
AI발 가짜 사진·영상이 늘어나다 보니 ‘진짜 사진’이 오히려 가짜로 오해받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영국 가디언 출신 저널리스트인 찰스 아서는 지난해 11월 스페인 발렌시아 지역에 내린 폭우로 70여대 차량이 좁은 길에 뒤엉킨 사진을 뉴스레터에 게시했다. 사람들이 내놓은 반응은 “AI 이미지” “가짜 뉴스” 등이었지만 실제 사진이었다.
이번 달 발생한 일본 후쿠오카 홍수와 관련해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폭우로 강이 범람했다는 게시글에 대해 다카시마 소이치로 시장이 “가짜뉴스”, “재난 대응의 장애물” 비판했지만 실제 상황임이 확인돼 망신당한 것이다. 다카시마 시장은 사과문에서 “최근 AI 가짜 동영상 등 중가에 대한 과도한 경계심이 이번 판단에 영향을 미쳤다”고 경위를 설명했다.
2. 역설적으로 이같은 상황을 이용하는 사람이 생기지는 않을까. 예컨대 진짜 본인 행동, 발언을 담은 영상을 두고 조작이라고 우기는 상황이 오는 거 아닐까. 그런 정치인의 말을 지지자들이 퍼나르고, 검증하는 데에 사회가 에너지를 쓰고. 이전부터 벌어진 일이지만, AI 발달로 더 복잡해질 것 같은 예감이 든다.
트럼프가 sns에 공개한 마두로 사진을 보고 많은 사람이 진짜인지 의심했다는 보도가 떠오른다. 이 소식을 전하면서 NYT는 "진실을 의심하고 거짓을 믿는 건, 우습지만 아주 흔한 일"이라는 한 팩트체커의 말을 인용했다.
3. 트럼프가 게재한 마두로 체포 사진과 관련해, NYT는 '타임스 인사이더'에 아래와 같은 글을 실었다. 체포 당일엔 AI가 생성한 가짜 사진이 잔뜩 온라인에 유통되고 있어, 뉴욕타임스 내부에선 트럼프가 올린 사진을 두고도 진짜 사진 맞는지 의심이 오갔다고 한다(트럼프가 딥페이크를 가끔 올렸기 때문에 더더욱).
NYT는 결국 진짜 사진으로 완벽히 결론내리지 못한 상태에서 사진을 싣기로 하고 인쇄했다고. 아래는 그 고민이 응축된 문단이다.
"저희는 편집 판단을 내렸습니다. 해당 이미지를 단독으로 제시하기보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트루스소셜 게시물이라는 맥락 안에서 보여주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맥락 안에서 이미지를 제시한다면, 만약 그 이미지가 어떤 방식으로든 조작된 것으로 판명되더라도, 저희는 그것을 정식 보도사진이 아닌 대통령의 한 커뮤니케이션으로 전달한 것이 됩니다."
- 1월4일자(현지시간) 'How The Times Assessed That Photo From Trump of Maduro in Handcuffs' 중 (링크가 안 돼 제목을 써둔다)
로이터 통신은 수치, 전언을 인용할 때 자신들이 직접 그 단체, 인물과 연락이 닿거나 홈페이지 등을 통해 확인한 발언, 자료가 아니면 “로이터는 독립적으로 취재하지 못했다”는 등 문장을 기사에 써둔다. 한국 언론사는 이렇게까지는 잘 안한다. '~에 따르면', '취재를 종합하면' 등 형태로 뭉개놓는 게 보통. 그에 비하면 로이터는 사실확인 및 투명성 측면에서 좀 더 엄격한 편이랄까. '저렇게 해야하지 않나' 속으로 여러 번 곱씹어보곤 했다. (그에 비하면 타임스 수준은 국내 언론이 하는 판단 프로세스와 유사하다.)
문제는 가짜 미어샤이머 시대엔 로이터 수준으로도 대응이 어려운 상황이 온 것 같다는 것인데...
최승호 PD가 페북 글에 쓴 마지막 문단에 대체로 공감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이제 무엇이 사실인지 페이크인지 구별하기 힘든 상태로 들어왔다는 심각한 자각을 하게 됩니다. 물론 더욱 팩트체크에 힘써야겠지만, 그런다고 해서 과연 걸러낼 수 있는 것인지 걱정스럽습니다. 저는 60여 년 동안 듣고 보는 것들이 '실제'라는 믿음을 가지면서 살아왔는데, 앞으로 후손들은 그런 믿음이 없이 살아가야 한다면 미래의 세상은 어떻게 될 것인지 걱정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