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4일, 후배 기자의 카카오톡 메시지를 받고 기가 막혔다. 전날 사망한 전 대통령 전두환씨의 빈소를 취재 중인 후배였다. 전씨의 빈소가 마련된 곳은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병원. 후배는 빈소인 특실 1호 앞에 종일 유튜버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며 한 장 사진을 보냈다. "어떤 시민이 '전두환은 역사 앞에 사죄하라'고 말하니까, 우루루 몰려가서 욕하는 겁니다. 발길질하고 싸우기도 했어요. 일베 캐릭터 가면 쓴 사람도 오고..." 사진엔 수십명 사람의 뒷모습과 끝에 핸드폰을 매단 셀카봉 여럿이 낚싯대처럼 드리워져 있었다.
낯선 풍경은 아니었다. 기자 일을 하는 동안 소위 ‘태극기’ '가스통' 등 단어로 분류되는 노인들을 많이 봤다. 2년 전 개천절·한글날 열린 ‘문재인 하야’ 집회에서, 코로나19 확산 우려가 컸던 지난해 2월과 8월 광화문에서, 매년 퀴어퍼레이드 반대 집회에서 그들은 모습을 드러냈다. 20대, 때로는 10대 청소년도 광장에 나왔다. 유튜버는 이들 집단의 구성원으로, 혹은 이념의 전달자로 현장에 소환됐다.
이들이 어떤 말을 하는지는 듣기 쉬웠다. 마이크, 확성기를 들거나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으니까. 하지만 이들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는 늘 미스테리였다. '자유 민주주의'를 지킨다면서, 군복은 왜 입고 나오는 걸까.
전 대통령 전두환씨의 사망 이튿날인 11월24일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보수 유튜버들이 취재 경쟁과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경향신문 이홍근 기자
일본의 저널리스트 야스다 고이치도 비슷한 의문을 품었던 것 같다. "불합리하고 거친 힘으로 그들을 흥분시키는 것은 무엇인가? 그들이 입에 담는 증오의 근원에는 무엇이 있는가?"(18p) 야스다가 주목한 단체는 우파 시민 단체 '재일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 모임'(약칭 '재특회')이다. 이들은 일본의 식민지배 등 과거 범죄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재일 코리안을 비롯한 외국인이 일본에서 부당한 권리를 누리고 있다"고 주장한다. 대다수 우익 단체와 비슷한 스탠스이지만 야스다는 재특회에서 독특한 특성을 발견한다. "그때까지 인터넷 게시판에 글을 쓰는 것으로 만족하던 넷우익 가운데 비로소 진짜 활동가가 나타난 것이다."(55p)
책은 오사카 시 쓰루하시 역의 코리아타운에서 재특회 회원들이 개최한 가두연설 장면으로 시작한다. "일본인이 죽어가는 마당에 오사카에서는 1만명이나 되는 외국인이 생활보호 지원금을 받고 있는 겁니다. 그러면 총코(한민족을 멸시하는 말)는 일본인에게 감사하란 말이야!" “재일 조선인은 강제연행이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아직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일본이 싫으면 조국으로 돌아가!" 인터넷에나 떠돌던 말을 이들은 현실에서 내뱉는다. 과격 행동을 촬영해 인터넷 여론을 이끌고 참가자를 늘리는 '선순환'이 이들 활동의 특징이다.
사쿠라이 마코토(가운데) 일본 재특회 회원들이 일장기와 재특회 깃발을 들고 가두시위를 벌이고 있다. 후마니타스 제공
근거가 취약한 발언이지만 야스다는 이들의 주장을 검증하는 데 집중하지 않는다. 그가 재특회의 발언에 반대 논거를 제시하는 건 책이 중반부를 넘어선 5장 '재일 특권의 정체'에 이르러서다. 대신 저자는 어린 시절 수줍은 소년이던 재특회 리더 사쿠라이 마코토(본명 다카다 마코토)가 어쩌다 재특회를 설립하게 됐는지 살핀다. 그리고 수십명에 달하는 재특회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가 취재한 재특회는 결코 단순하지 않다. "그들은 자신들을 사회의 비주류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61p), "무언가를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분노"(316p), "모종의 피해의식"(341p) 등 강한 서술 한편에 그와 충돌하는 인물들의 인터뷰가 놓인다. 일부 회원은 어린 시절 동네의 재일 코리안에게 괴롭힘 당한 기억, 단일 민족이 '더럽혀질' 것이라는 공포를 말한다. '일본인'이라는 인정이 목말랐던 혼혈과 동포들에게 외면받은 재일 코리안도 재특회에는 있다. 책을 읽다 보면 '재일 코리안의 특권'이라는 차별 주장의 근거는 그저 허울에 불과한 것 아닌지 의문이 든다.
일본 저널리스트 야스다 고이치의 저서 <거리로 나온 넷우익> 한국어판(2013)
한국형 '행동하는 보수'는 어떨까. 책의 한국어 번역본이 출간된 2013년 기사를 보니 당시 언론은 급부상한 '일간베스트(일베)'와 재특회의 차별성을 살폈던 모양이다. "일베 회원들은 원자화된 개인으로 존재하며 일간베스트라는 테두리 안에서 ‘일베 문화’라 불릴 만한 인터넷 하위문화를 형성하고 있을 뿐이다."(주간경향) 하지만 그 후 8년, 일베는 서울 광화문 한복판에서 이른바 '폭식 투쟁'(2014년)을 벌었고 보수단체 지유연대는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인근에서 치킨을 먹으며 위안부 운동 관계자들을 조롱했다(2020년). "한국 인터넷에도 커뮤니티에 따라 보수우파적인 견해가 강한 곳이 있지만, 인터넷 공간의 표면에서 더 두드러지는 것은 진보성향 여론"이라는 분석도 FM코리아, MLB파크 등 보수 성향 커뮤니티의 성장과 함께 때지난 것이 됐다. '일본에서 나타난 사회 현상이 10년 후 한국에서 나타난다'는 말이 농담처럼 들리지 않을 지경이다.
그러나 '거리로 나온 넷우익'을 추적하는 한국 언론과 연구자 집단의 행태는 일본의 경우와 다른 것 같다. 커뮤니티발 여론을 내세우거나 혐오 발언을 지탄하는 기사는 많지만 이들 세력의 면면을 취재한 기사는 찾기 어렵다.일부 보수 정치권이 이들을 소환할 때 공정, 역차별, 반페미니즘, 안보 등 언어를 구사한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을 뿐이다. 대신 진보 언론은 그들 주장의 비합리성을 규명하는 데 집중했고 보수 언론은 '광화문 태극기 집회'를 '시민의 목소리'라고 규정하느라 바빴다. 표면에 내세운 구호가 이들 행동의 이유를 얼마나 설명해주려나.
온라인 매체 '뉴스톱'에 게재된 태극기 집회 계보도
야스다의 책에서 특히 흥미로웠던 건 그가 '행동하는 보수' 사이의 차이점을 드러내는 챕터였다. 재특회 간사이팀 간부였던 나카무라 도모유키는 재특회가 부락해방동맹(봉건 신분제 하에서 차별받은 부락민의 권리를 주장하는 단체)을 향해 내뱉은 혐오 발언에 실망해 재특회를 나왔다. 재일코리안은 비난할 수 있지만, 일본 사회 내 부락민 등 차별받는 하층민 집단까지 무시해선 안된다는 게 그의 사상이었다. 재특회에 공감했던 보수단체 '주권 회복을 도모하는 모임'의 좌장 니시무라 슈헤이의 목소리도 나온다. 그는 재특회가 일부 극우에게 쾌감을 주는 혐오 발언을 반복할 뿐, 더 많은 지지자를 규합할 자세는 보이지 않는다며 절교를 선언했다.
한국에서 소위 '보수 집단'으로 묶이는 이들은 서로 어떻게 다를까. 태극기 부대와 일베는 직관적으로 다르다. 페미니즘을 무작정 비난하는 '신남성연대'와 '가스통 할배'도 분별하기 쉽다. 후자에게 온라인 상의 페미니즘 운동이 피부로 느껴지는 적군일 확률은 극히 낮을 것이다. 그렇다면 똑같은 일베 이용자는? 아무래도 자신의 직업을 인증한 '고학력 엘리트'와 다수 접속자 내지는 소위 '사회 부적응자'의 처지를 동일선상에 놓긴 어려워 보인다. 그럼에도 이들은 왜 같은 구호에 호응하는가.
이 미스테리에 적극 뛰어든 사례는 지금껏 내가 찾은 한 온라인 매체 '뉴스톱'과 ‘탐사보도 전문’을 표방하는 매체 ‘셜록’ 뿐이다. 두 매체는 각각 <태극기집회 참여단체 계보도를 완성하다>와 <태극기 아이돌을 아십니까>라는 기획 기사를 실었다. 제목처럼 전자는 태극기집회에 참여한 보수단체의 기원과 내부 갈등, 분화를 다뤘으며 후자는 태극기 집회에서 노래 부르는 이들의 거주지, 일터를 찾아 그들 삶의 이야기를 취재했다. 알고 보니 두 기사의 작성자는 같은 사람이었다. 이승우라는 이름의 인턴기자.
온라인 매체 <셜록>의 '태극기 아이돌' 기획기사에 실린 사진. 이승우 셜록 교육생이 찍었다고 한다.
"재특회를 취재하는 1년 반 동안 들은 비난과 욕설이 지난 20여년의 기자 인생에서 들은 것보다 훨씬 많았다. 그러나 나에 대한 비판은 재특회 쪽에서만 들려온 것이 아니었다. 재특회의 반대편에서 차별에 반대하고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싸우는 활동가 일부에서도 맹렬한 비난이 쏟아졌다. '재특회에 지나치게 우호적이다.' '인종차별주의와 파시즘에 대한 진지한 비판이 부족하다.' ... 나는 재특회와 그 주변 사람들을 규탄하기 위해 취재를 한 것이 아니다. 논쟁으로 그들을 이기고 싶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그럴 역량도 없다. 사람들을 선의의 길로 이끌 능력은 더더욱 없다. 아니, 내가 선의를 가진 인간이라는 보장도 없다. 그저 알고 싶었을 뿐이다. 결코 공감이나 동정이 아니라, 재특회에 빨려 들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저 알고 싶었을 뿐이다."(362~363p) 야스다가 책 에필로그에 전한 취재 후기다.
누군가는 여전히 왜 우리가 하필 그들을 알아야 하는지 묻지만, 실은 '우리'와 '그들'이라는 단어를 구분할 때 이미 '알고 싶지 않다'는 감정이 실린 것이다. 기자라는 직함을 달고 나는 뭘 취재하고 있나. 부끄럽다는 말은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특별히 자랑스럽지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