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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리스 Dec 28. 2021

이 책을 기자들이 극찬하는 까닭

<사형수 오휘웅 이야기>, 조갑제

가끔 이런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기자가 되고 인상 깊게 본 책은 무엇인가요?" 꽤 신경 쓰인다. 왜일까. 아마 '기자가 되고'라는 단서 때문일 것이다. 기자 체면이 있지, 평범한 책은 싫다. 자칫하다간 종잇장 같 밑천이  드러 수 있다. 이럴 때 내가 찾은 방법이 <사형수 오휘웅 이야기>(1987)를 말하는 것이다. 상대방이 기자라면 '아' 하고 고개를 끄덕일 것이고, 아니라면 책 뒷이야기, 이를테면 "극우 논객 조갑제씨가 한때 당대의 탐사기자였는데 알고 계셨냐"며 이야기를 풀면 제법 그럴듯하게 넘어갈 수 있다.


기자들한테만 꽤 유명한 <사형수 오휘웅 이야기>는 '한국 언론사에 남을 수작'이라든가 '최고의 탐사보도', '최고의 논픽션' 같은 거창한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책이다.


<사형수 오휘웅 이야기>


당연하게도 이런 평가들은 다 기자들 입에서 나온 것인데, 그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선 일단 기자사회 분위기를 알아야 한다. 나는 이 책을 쓴 조갑제 기자가 28살 어린 나이로 '한국기자상'을 수상한 보기 드문 민완기자라는 점뿐만 아니라, 십수 년간 경찰서를 누빈 좀처럼 보기 드문 경찰기자였다는 점이 평가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소싯적 특종 좀 써본 '에이스'가 팀장을 맡고 막내급 기자들이 우르르 모여있는 경찰팀은 기자사회에서 조금 특별한 대접을 받는다. 이는 호칭만 봐도 알 수 있는데, 경찰팀만 유난스럽게 팀장은 "캡", 부팀장은 "바이스", 후배 기자들은 경찰 할 때 찰(察)의 일본어 발음인 "사쓰" 혹은 "사쓰마리"라고 불린다. 선배들, 특히 국장급들은 인사가 나면 꼭 고생한다며 경찰팀을 불러모아 술을 한 잔 산다. 그 자리에선 늘 "과장실 문을 발로 뻥뻥 걷어차고 다녔다"느니 "조서 쓰는 피의자를 취재수첩으로 툭툭 치며 '넌 또 뭣 때문에 들어왔냐' 훈계를 했다"느니  무용담이 어김없이 펼쳐지곤 한다.


<사형수 오휘웅 이야기>는 술자리에서 술자리로 전해 내려오는 그 시절, 그러니까 기자들이 경찰서 형사과를 제집 안방처럼 들락날락하던 시절을 배경으로 한다.


1974년 12월, 조용하던 인천의 한 동네에서 잔혹한 살인사건이 발생한다. 얼마 뒤 붙잡힌 범인의 이름은 오휘웅. 사람들은 놀랐다. 그들이 기억하는 그는 "약간 덜렁대지만 쾌활하고 누구에게나 붙임성 좋은" 서른 살 청년이었기 때문이다. 사랑 때문이었다. 그는 일련정종이란 종교단체에서 만나 정분을 나누던 여성 두이분의 장애인 남편과 두 아이를 살해했다. 이혼도, 재혼도 터부시 되던 시절이다. 하물며 애 있는 유부녀와의 결합은 어땠을까. 그런 까닭에 이 두 사람이 '뒤끝 없는 미래를 위해 그 가족들을 처리했다'는 것이 검경이 내린 최종 결론이었다. 이른바 '선화동 일가족 살해 사건'이다.


사건 당시 언론 보도


누가 봐도 천인공노할 치정살인, 사형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오휘웅 스스로도 혐의를 인정했다. 그랬던 그가 법정에 서자 돌연 태도를 바꾼다.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고, 무자비한 고문이 있었다고 판부에 다. 미심쩍은 구석이 없진 않았다. 목격자는 "당일 두이분의 손에 핏자국이 있었다"고 진술했다. "전에도 독살을 시도했다"는 시어머니 진술도 있었다. 경찰은 범행 도구를 확보하지 못했다. 증거는 자백뿐이었다. 것조차 경찰에 의해 조작됐다는 것이 오휘웅의 주장이었다. 하지만 반전은 없었다. 그의 결백을 증명해줄 유일한 인물, 두이분이 검찰 조사 중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오휘웅은 1976년 사형이 확정돼 1979년 형된다.


그렇게 오휘웅이란 이름은 잊혀졌다. 기사를 찾아봐도 1975년 1월, 7월 나온 짤막한 단신 몇 개가 전부다. 그렇게 아무런 이목도 끌지 못하고 영영 묻힐 뻔한 사건은 수년이 흘러 광주민주화운동을 취재하다 해직된 기자, 조갑제를 만나 활자로 되살아난다. "저는 절대로 죽이지 않았습니다. 엉터리 재판 집어치우십시오! 죽어 원혼이 되어서라도 반드시 복수할 것입니다." 우연히 듣게 된 이 섬뜩한 유언이 베테랑 기자의 "직업적 호기심"을 건드린 것이다. 오휘웅의 이야기는 1984년 9월 <물증 없는 사형집행>이란 제목으로 한 월간지에 보도된다. 사건 발생 10년, 사형집행 5년쯤 뒤의 일이다.(책은 보충 취재를 더해 1987년 발간된다)


기자 조갑제는 28살 어린 나이로 한국기자상을 수상하는 등 '민완기자'로 명성을 날렸다.

이 책을 향한 기자들의 찬사는 일단 이 지점에서 반은 먹고 들어간다. 사실 농담 같은 일이다. 10년 전 수사가 끝났다. 1심, 2심, 대법원 결론이 같다. 사건 당시 사람들의 이목 끌지 못했다. 무엇보다 당사자가 세상에 없다. 이런 사건, 누가 관심이나 가질까. 언론계 은어로 '얘기'가 안 된다. 아마 몇은 지만 안 썼을 것이다. 나는 오휘웅의 유언이 조갑제라는 기자 딱 한 명한테만 닿았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연민은 잊혀도 억울함은 잊히지 않는다. 가족들이 가만있었을까? 아닐 것이다. 백방 뛰어다녔을 것이다. 기자들을 찾았을 것이다. 저자가 유언을 들은 건 우연이라 쳐도, 이를 기사화한 건 결코 우연이 아 것이다.


물론 쉽진 않았을 것이다. 이는 저자가 뼛속까지 기자, 그것도 경험 많은 경찰기자였기에 가능한 취재였을 것이다. 책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 16년간 기자생활을 하면서 주로 경찰서 출입을 했고, 한 번도 경찰이 두렵다는 것을 실감해보지 못한 나 같은 사람의 세상 물정 모르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p.197) 오휘웅 사건은 여러 갈래로 읽히지만 요컨대 국가폭력, 고문이 핵심이다. 경찰서를 누비며 그늘진 '현실'을 목격해온 저자에게 오휘웅의 유언은 한 번쯤 도전해볼 만한 취재 아이템이었을 것이다. 이런 판단에는 거칠기 짝이 없는 경찰들을 상대하며 몸에 쌓인 '곤조'한몫했을지 모른다. 다른 출입처에선 보기 힘든, 특유의 고지식함과 야성이 경찰기자들에게는 있다.


꼭 저자의 이력이 아니더라도 이 책에는 경찰기자의 냄새가 짙게 난다. 디테일 때문이다. 경찰기자들의 특징은 무척 사소해 보이는 것들에 집착한다는 점이다. 시쳇말로 변태적이다. 이를테면 범행도구가 흉기냐 둔기냐, 길이가 19cm냐 20cm냐, 왼손잡이이냐 오른손잡이이냐, 29살이냐 30살이냐 같은 미세한 팩트들에 사활을 건다. 바깥에선 잘 모르는 '그들만의 리그'인 탓에 때때로—주로 정치부 기자들한테—"시야가 너무 좁다"는 비아냥도 듣지만, 유독 사건기사에만 진한 현장감이 묻어나는 건 다 이런 태도 덕분일 것이다.


이 책에선 이 대목이 그렇다. 1심 증인들의 진술 자료를 읽던 저자는 오락가락하는 태도에 답답함을 느끼고 직접 인천을 찾는다. 동네 주민들을 만나며 이제는 소문만 남은 오휘웅 이야기를 하나둘 모은다. 내친김에 그는 십수 년 전 오휘웅이 걸었다는 동네 한 발짝 한 발짝 따라 걷는다. 그가 검찰 측 주장에 물리적 오류가 있다 확신하 되는 계기였다. 직접 걸어본 결과 수사기록상 오후 8시5분쯤 불교회관을 나선 오휘웅이 여러 사람들을 만난 뒤 8시24분쯤 사건 발생장소에서 3명을 차례로 살해한 뒤 목격자들 말대로 8시30분쯤 집으로 귀가하는 것은, 애초 불가능한 것이었다. '각'이 제대로 나온 셈이다.



수사기관의 오류를 확신한 저자는 오휘웅의 자백 진술서와 검찰 조서 속 두이분의 의뭉스러운 답변, 구치소에서의 행적, 증인들의 모순된 진술 등을 더욱 집요하게 파고든다. 하긴, 그럴 만도 하다. 이 책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당신네들 때문에 무고한 생명이 억울하게 죽었다'는 것이다. 상대해야 할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사실상 경찰과 검사, 판사, 대법관 나아가 사법제도 전체와 싸우자는 얘기다. 이런 기사는 위험하다. 아무리 그가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이었다 해도 쉽지 않은 모험이었을 것이다. 더구나 이 책의 등장인물은 모두 실명. 조금만 삐끗해도 망신, 어쩌면 곤욕을 치를 일이었다.


그런데도 망설임 없이 기사를 쓰고 책까지 펴낸 것이다. 웬만한 자기 확신 없이는 엄두조차 내지 못할 일이다. 이 책을 향한 기자들의 극찬, 입이 벌어지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한국 언론사에 남을 탁월한 탐사보도"('뉴스타파' 김용진 대표) "장마철 방바닥처럼 뜨끈하게 달아오르는 책"('셜록' 박상규 대표) "온전히 한 사건을(살인 사건), 인물(주인공과 조연)에 초점을 맞춰, 시간의 흐름에 따라 취재하고 기록한 이야기 논픽션의 한국적 원형"('팩트 스토리' 고나무 대표)


솔직히 나는 이런 평가들이 조금은 과장됐다고 생각한다. 기자들 눈에 이 책은 확실히 흥미다. 하지만 기자가 아닌 사람들이 재밌게 볼까, 하는 점에 있어선 여전히 의문이 생긴다. 시종일관 저자는 머릿속 가상의 상대, 검사들과 대결하는 데만 집중하는 것처럼 보인다. 거기에는 논리로 독자를 제압하려는, 엘리트 기자 특유의 오기 같은 것도 있었을 .


하지만 발로  특종의 전형인 이 책 '현장취재의 교본'이라는 데에는 아무런 이의가 없다. 이 두가 앉아서 기사를 쓴다. 현장취재는 한가한 기자들이나 하는, 혹은 사회부 경찰팀 정도나 하는 '가성비' 떨어지는 일처럼 여겨진 지 오래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이 책을 향한 기자들의 '지나친' 찬사가 어느 정도 납득이 된다. 아니, 그것은 자연스러운 일일지 모른다. 후배 경찰기자들을 향한 기자 선배들의 남다른 애틋함, 그 애정어린 시선이 그렇듯 말이다.


조갑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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