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적 저널리즘을 위한 뉴욕타임스 가이드라인> 출간에 부쳐
뉴스1 박동해 기자, 국민일보 임주언 기자, 회사(경향신문) 선배인 전현진 기자와 함께 번역한 <윤리적 저널리즘을 위한 뉴욕타임스 가이드라인>이 2021년 12월24일 출간됐습니다. 영문 기준 51페이지로, 'Ethical Journalism - A Handbook of Values and Practices for the News and Editorial Departments', 'Guidelines on Integrity', 'Social Media Guidelines for the Newsroom'을 합친 텍스트입니다. 한국언론진흥재단 홈페이지(https://www.kpf.or.kr/front/research/etcDetail.do?miv_pageNo=&miv_pageSize=&total_cnt=&LISTOP=&mode=W&seq=592320&link_g_topmenu_id=&link_g_submenu_id=&link_g_homepage=F®_stadt=®_enddt=&searchkey=all1&searchtxt=)에서 무료로 E-Book을 다운로드할 수 있습니다. 다음은 전 기자가 대표로 작성한 '번역 후기'입니다(어색한 부분은 살짝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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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라면 누구나, 너무 멍청하거나 오만해서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면, 자기가 하는 일이 도덕적으로 용납될 수 없음을 안다." - <기자와 살인자>, 재닛 맬컴
2021년은 한국에서 활동하는 기자에게 치욕적인 한 해로 기록될 것 같다. 올해만 이랬던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가짜수산업자' 사건에서 이런저런 향응을 제공 받았다는 기자들의 이름이 거론됐고,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에서는 ‘윗선이 누구냐’는 질문과 별개로 개발과 비리의 중심에 언론인이 서 있었다.
이런 일에 연루되던 그 순간, 이들이 적어도 ‘부적절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을지 궁금했다. 낯간지러울 수 있지만 나름대로 사명감, 정의감 같은 말들로 자신을 소개하며 기자생활을 시작했을 선배들은 어떤 말로 스스로를 합리화했을까.
선물로 위장한 로비, 거액의 이권이 걸린 개발에 뛰어들고 이를 위해 취재원이었던 이들에게 다가가면서 이들이 적어도 기자로서 잘못된 일이라는 걸 알지 못 했을 리 없다고 믿고 싶다. “너무 멍청하거나 오만”한 게 아니라면.
뉴욕타임스 가이드라인이 다루는 건 사실 이런 명백한 범죄는 아닌 듯하다. 친밀한 취재원이 사주는 밥 한 끼, 시승기를 쓰겠다며 빌린 시승차, 출입처와 관련된 주식을 사고팔거나 페이스북에 이런 저런 생각들을 자유롭게 적는 일, 출입처 등 각종 단체에서 신청하지도 않은 상을 수상하는 것처럼 기자들이 일상적으로 접하는 일들도 가이드라인은 다루고 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제안으로 주니어 기자들의 공부 모임인 ‘기사연구회’ 회원들은 2021년 7월 무렵부터 번역 작업에 나섰다. 부족한 영어실력이지만 고민하며 읽고 번역했다. 가장 큰 의문은 이 가이드라인이 실제로 얼마나 지켜질까 하는 것이었다. 그만큼 현실적으로 지키기 어려워 보이는 내용이 많았다. 한편으로 이런 조항들이 다 지켜지는 언론사는 어떤 언론 환경에서 만들어지는가 부러움도 있었다.
처음엔 한국의 '기자윤리강령'과 같이 선언적인 내용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의외로 구체적인 상황에 대한 기준들이 적혀 있어서 흥미로웠다. 강연 등 대외활동에 따른 수수료 총액, 리뷰용으로 받은 도서 등의 소장 여부처럼 지침이 다루는 목록은 다양하고 명확했다.
대외 활동을 하면서 뉴욕타임스를 대변하는 듯한 인상을 줘선 안 된다는 내용뿐 아니라, 가족용 자동차의 범퍼 스티커도 '정치적 입장 표명'으로 보일 수 있으니 유의하라는 내용도 있었다. 주가에 영향을 미치는 기자와 편집자들은 주식 보유 내역을 공개해야 한다는 규정도 있다. 취재 내용을 책으로 쓸 때 지켜야 할 계약 절차 등을 제시해 놓은 것도 인상적이었다.
무분별한 익명 표현('A씨는 말했다')이나 고민 없는 가명 사용, 기자 신분을 숨긴 잠입(기만)취재, 타사의 ‘단독’을 인정해 출처를 밝히는 일 등 무결성을 담보하기 위한 세세한 규정도 두었다. 사실을 감추고 조작한다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한 조치다.
가이드라인의 해석과 판단을 내려야 하는 직책과 직위를 명시해 둔 것도 인상적이었다. 한국에는 없는 방식이다. 번역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점도 한국에 존재하지 않는 이런 직책의 존재였다. 뉴욕타임스 관계자에게 문의해 어떤 일을 하는지 겨우 생소한 직책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아마 국내 언론사 대부분이 이런 수준의 윤리 지침을 가지고 있지 않을 것이다. 정론직필, 공정과 정의 등 선언적 강령은 있지만 구체적 행동의 기준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니 많은 기자가 '윤리'와 '편리' 사이에서 아슬한 줄타기를 한다. 기자들도 어쩌면 기준을 원치 않는지 모른다.
가이드라인에 왜 이런 윤리강령을 만들고 엄격히 지켜야하는지를 설명하는 대목이 나온다. ‘뉴욕타임스의 권위와 명성’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불편부당한 매체다’라는 오랜 시간 쌓아올린 명성에 독자들이 의구심을 품거나 저해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우리는 자신이 소속된 매체, 기자라는 직업, 내가 쓰는 기사의 명성에 대해 고민이라도 해보았는지 생각해본다. 고민 없이 지내는 사이 시민들은 기자들을 가장 믿지 못할 사람들로 꼽고, 사회는 기자가 얻어먹을 수 있는 밥값의 액수까지 법으로 규정해 놨다.
뉴욕타임스의 가이드라인을 한국 언론에 그대로 적용하긴 쉽지 않을 것이다. 사람도 환경도 다르기 때문이다. 다만 이 번역 작업이 앞으로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고민하는 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각 매체가 좀 더 세세한 윤리 규정을 만들어 보는 것이 그 출발점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기사 연구회' 번역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