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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문희 Aug 10. 2022

낭독은 환영이지만 오독은 사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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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8월10일자 경향신문 온라인판에 게재된 칼럼입니다.


“2021년 6월14일 모 신문 칼럼을 보면, 재난 현장에 정관계 인사가 방문할 시 이를 수행하기 위해 십수명이 힘을 뺀다는 사례를 쭉 들어놨다.”

전날인 9일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가 대통령실 출입기자들을 상대로 백브리핑한 내용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8일 시작된 폭우에도 피해 현장이나 상황실을 방문하지 않고 서초구 사저에 머물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자 대응한 것이다. 이 내용을 전해듣고 해당 칼럼의 작성자로서 황당했다.


관련 기사 : https://m.khan.co.kr/opinion/journalist/article/202106131404001?utm_source=urlCopy&utm_medium=social_share


칼럼의 제목은 <재난 현장 ‘요란한 의전’ 이제 그만하시죠>이다. 지난해 6월 ‘광주 학동 참사’를 취재하며 쓴 글이다. 지상 5층 건물이 무너진 당시 사고로 9명이 숨지고 8명이 크게 다쳤다. 그런데도 공무원들은 당시 대통령비서실장 등 고위직 인사의 방문 때마다 의전에 바빴다. 피해 복구나 현장 수습, 유족 위로가 뒷전이어선 곤란하다고 생각했다. 과도한 의전을 문제시한다는 점에서 해당 칼럼과 현 대통령실의 인식은 다르지 않다.


만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칼럼의 다른 초점을 왜곡했다. 대통령실이 인용하지 않은 칼럼의 나머지 내용은 이렇다. “정·관계 인사들의 현장 방문을 무조건 막아야 한다는 게 아니다. ‘재발방지 대책을 세우겠다’ 등 그들이 내놓는 메시지는 정책 변화를 이끌어낸다. 문제는 주객전도식 의전이다.” 대통령의 현장 방문은 재난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관계 당국의 움직임을 이끄는 동력이며 피해 당사자에게는 위로가 된다. 과도한 의전을 배제한다면 대통령이 재난 현장에 못갈 이유가 없다. 최소한의 경호 인력만 대동한 채 현장 지시할 수도 있었다.

대통령실 다른 관계자의 발언은 더 황당했다. 그는 “대통령이 현장이나 상황실로 이동하게 되면 그만큼 대처 인력들이 보고나 의전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며 대통령이 ‘재택 지시’한 배경을 설명했다. 상황실은 애당초 의전을 위해 마련된 공간이 아니다. 상황 통제를 위해 모인 고위 정·관계 인사 간에 의전이 왜 필요한가.


“재난이 발생했을 때 대통령실이 직접 초기부터 지휘에 나서면 현장에 상당한 혼선이 발생한다”는 항변도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관행을 바꾼다면 의전 없이, 전문가 조언을 존중하는 ‘적절한 지시’도 얼마든지 상상할 수 있다.


온라인에선 벌써 “대통령도 재택하는데 나는 왜 출근하나”라는 자조와 ‘폭우, 산불 등 재난 발생시 전임 대통령들은 위기관리센터부터 찾았다더라’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오간다. ‘이러려고 대통령 집무실을 이전했냐’는 등의 비판적 여론은 대통령이 ‘재난이 발생한 장소’에 찾아가지 않아서 일어난 것이 아니다. 국민들은 대통령이 재난의 무게감에 걸맞은 공간에서, 재난 컨트롤타워로서 역할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것이다.


드라마 <미생>의 주인공 장그래가 슬리퍼를 “사무 현장의 전투화”라고 묘사했다지만, 어디까지나 ‘사무실’에 국한한 얘기다. 윤 대통령은 “대통령은 처음이라”고 했지만, 60대인 그가 20대 청년 만큼도 ‘현장’을 모를 것이라 믿고 싶지는 않다. 재난이 발생한 장소든 위기관리센터 상황실이든, 대통령은 ‘현장’에 있어야 한다. 의전이 문제라면 ‘재난시 의전 최소화’ 가이드라인이라도 만들라. 의전 탓에 현장에 못간다는 말은 궤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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