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문희 Jan 20. 2023

정치적 말의 힘, 그리고 링컨

230120

  연이틀 틈틈이 <정치적 말의 힘>을 봤다.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의 신작이다. 오랜 기간 정당 민주주의 이론을 전파해 온 학자다. 그의 책 대부분을 읽었는데, 이번 책의 소재는 개중 특이했다. 정치 연설.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민주주의에서도 힘은 중요하다. 완전한 민주주의라도 '강제의 부재'는 있을 수 없다. 어느 곳에서든 국가나 정부는 구속력 있는 공적 강제를 부과하는 '합법적 폭력'이다. 이를 누가 부정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 해도 민주주의는 말의 힘과 설득의 방법이 우선인 체제다. 시민의 적극적 동의를 구하지 못하면 합법적 폭력도 국가의 강제력도 물거품이다. 정치 실패 이전에 말의 실패가 선행하는 게 민주주의다. 말이 나쁜 정치인이나 정치 세력이 설 자리를 잃어야 민주주의가 제대로 된다. - 9p



  '말' 그리고 '설득'이란 단어는 의미심장하다. 논리적 정교함, 진리, 진실 등 개념과 의미의 결이 겹치면서도 조금 다르다. 플라톤은 주관이 개입되는 시와 문학, 음악보다 객관적으로 여겨지는 진리, 그리고 철학을 높이 평가했다. 전자를 인정하면서도 후자와 대비할 때는 경멸했다. 반면 이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는 주관과 의견의 세계를 철학의 세계에 끌어들였다. 조금 거친 정리인가. 차라리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숙명이라고 하자. 철학자 왕도 통치할 때는 철학에 무심한 대중을 상대해야 한다. 민주주의자인 박상훈에게 수사학은 필연이다.


  진실보다는 '진실 같은 것', 과학적이고 절대적인 판단보다는 '주관적 공감'과 '동의의 감정'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 수사학에서는 더 중요하다. ... 확실한 과학적 증명을 거쳐야만 행동할 수 있다면 인간 사회는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을 것이다. 세상은 불확실하지만, 그래도 인간은 행동한다. 희망의 여지만 있어도 행동에 나서는 게 인간이다. ... 그런 점에서 철학보다 수사학이 훨씬 더 인간적이고 정치적인 것은 틀림없다. - 37p


  1부에서 이런 내용을 간단히 정리한 뒤 박상훈은 2부에서 정치 연설의 고전을 제시한다. 페리클레스, 에이브러햄 링컨, 프레더릭 더글러스, 린든 존슨, 윈스턴 처칠, 샤를 드골, 프랭클린 루즈벨트, 존 F. 케네디의 연설이 차례로 나온다. 마지막 3부에는 버락 오바마의 연설 시리즈를 담았다.

  좀 지루하다고도 볼 수 있는 구성인데, 생각보다 재미있다. 일단 연설 하나하나 읽어보는 즐거움이 크다. 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처럼 짧은 연설은 전문을 다 읽어본 사람이 꽤 많을텐데, 루즈벨트의 '최고의 시절'이나 루즈벨트의 '두려워할 것은 두려움 그 자체뿐', 케네디의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등 연설은 내 경우 전문을 본 적이 없었다. 정치학 전공자로서 쪽팔린 얘기지만, 발췌독 정도가 전부였다. 굳이 그걸 다 읽을 이유가 있나? 있다! 이게 박상훈의 책이 주는 결론이다.

  연설을 특성상 동시대의 시민을 겨냥하기에, 후대인은 어지간해선 끝까지 보기 어렵다. 읽을 수는 있지만 이해를 못한다. 박상훈은 왜 이 연설이 나왔는지, 그 결과는 어땠는지를 중간중간 해설한다.


  왜 게티스버그에서 연설을 한 것일까? ... 그곳에서 남북전쟁 전체를 통틀어 가장 비극적인 전투가 벌어졌따. 1863년 7월1일부터 3일 동안의 전투에서 북부군은 승리를 거두며 전세를 역전시켰다. 하지만 양쪽 모두 피해가 너무 컸다. 사상자는 전사와 부상, 실종 및 포로 등을 합해 5만1000여명에 달했다. ... 시신의 신원 확인 등 문제로 속도가 나지 않아, 예상과는 달리 그 이듬해 봄까지 매장이 계속됐다. ... 헌정식은 애초 예정일보다 한달 정도 늦춰진 1863년 11월19일에 치러졌다. 107~109p


  이를 위해 린든 존슨은 정치적 희생을 감수해야 했다. 민주당은 남부의 지지를 잃을 수 있었으며, 그 결과 린든 존슨의 대통령직 재임이 어려워질 수 있었다. 실제로 그렇게 됐다. 그때 이후 남부는 오랜 민주당 지지 지역에서 이탈해 공화당의 지지 기반이 됐다. 텍사스 출신인 린든 존슨도 대통령 재선의 기회를 잃었다.
  정치학자들은 정치가들이 재선이라는 목표를 위해서만 정책 수단을 선택하는 것은 아니며, 대의를 위해 정치적 대가를 감수할 때도 있다는 주장을 할 때 린든 존슨의 사례를 들곤 한다. - 153p


  동시에 각 연설문의 특성을 자기 나름대로 분석해 본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시한 수사학적 요소(로고스-파토스-에토스)뿐 아니라, 세 쌍의 어구를 반복하는 '삼중콜론'(예컨대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민중의, 민중을 위한, 민중에 의한 정부" "흑인 문제란 없다. 남부 문제도, 북부 문제도 없다. 오로지 미국의 문제가 있을 뿐이다"), 대조법("영국이 미래의 역사를 갖게 된다면, 지금 이 최악의 시간은 거꾸로 최고의 시절이 될 것이다", "두려워서 타협하는 것이 아니라 타협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점층법(처칠은 "We shall fight"라는 말을 바다, 대양, 하늘, 해변, 착륙장 등 장소마다 붙여 반복했고, 오바마는 2004년 전당대회 연설에서 "That we can"을 반복한다) 같은 기법을 소개하면서. 그리고 이들 기법과 민주주의의 연관을 슬며서 말한다.


  (페리클레스의) 연설은 이렇게 시작된다.
  [앞서 이 연단에 섰던 대다수의 사람들은, 장례 행사의 마지막을 추도 연설로 마무리하도록 관습을 만든 입법자에게 경의를 표하곤 했다. 연설을 통해 전몰자들을 명예롭게 해야 한다거나, 그렇게 하는 것을 가치있는 일로 여겼던 모양이다. 나는 생각이 다르다.]
  첫 단락부터 페리클레스는 자신의 개성적 힘을 드러낸다. 아마도 말의 권위를 스스로 자신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연설을 시작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만큼 말하는 사람의 자신감을 느낄 수 있는 서두다. 그의 개성과 인격성을 가감없이 드러내는 이 부분이야말로 에토스의 전형적인 특징을 볼 수 있는 곳이다. - 79p


  그리스적인 대조법은 또다른 의미에서 민주적인 가치를 갖는다. 그것은 대비되는 반의어 짝이 없는 정치 언어를 쓰지 않는다는 데 있었다. 정치적 이성을 갖추지 못한 정치가들은 이런 대조법을 쓰지 못한다. 이런 대조법을 이해하지 못하고 한 방향의 주장과 정책만을 말하는 정치가는 사회와 공동체를 통합하는 데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들은 독주하는 사람들이다. 정치적 경쟁자를 자신과 대조되지 않는, 즉 공존할 수 없는 존재로 정의하면서 자신만을 내세우고자 하기 때문이다.
... 당시 미국 정치에서 흑인과 남부, 노예제가 그런 이슈였다. 게티즈버그 연설 이전까지는 어떤 정치가도 이 이슈를 정면으로 다루지 못했다. 북부와 남부가 서로를 적으로 규정하고 전쟁을 불사하는 일은 그래서 벌어질 수 있었다. 하지만 총칼로 수행된 내전을 말로써 마무리하는 것은 정치가 해야 할 최고의 책임있는 행위가 아닐 수 없다. - 131p


  사회운동가들은 "나는 뉴올리언스에서 거대한 노예선을 보았다"고 말했다. 이 비극을 자연재해가 아니라 인종차별이 만든 사회문제로 그 성격을 정의한 것이다. ... 틀린 이야기가 아니었다. 다만 분노에 그친 것이 문제였다. 오바마는 "나는 뉴올리언스에서 거대한 가능성을 보았다"라는 내용의 인터뷰를 했다. 그는 다르게 말했다. 뉴올리언스의 비극을 슬퍼하며 그날 밤 아이들의 손을 잡고 기도한 미국인들 가운데는 흑인들만 있지 않았다. ... 일본인도 한국인도 있었다. 그들 사이에는 깊은 연대감이 있었고, 이것이 미국 민주주의의 미래라고 오바마는 생각했다. 우리가 문제를 어떻게 접근하느냐에 따라 비극은 우리를 막다른 곳으로 데려갈 수도 있고, 새로운 가능성으로 이끌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오바마는 '민주 대 반민주', '개혁 대 기득권', '진보와 보수', '흑인과 백인' 같은 막다른 이분법을 사용하지 않는다. 이견과 차이를 더 키우고 확대하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 아니라, 이견과 차이에도 불구하고 공동의 기반이 있는지를 발견하려 노력하고 더 넓은 협력의 기초를 모색하는 일을 정치의 역할로 여긴다. - 238~239p


  하나 더 지적할 것이 있다. 그것은 그가 '부분 부정'과 '형용모순'을 잘 사용한다는 점이다. 달리 말하면 절대적 부정의 느낌을 거의 주지 않는다. 우리 정치인들은 '결코' '절대' '당장' 등 센 부사를 습관처럼 동원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런 태도는 자신이 옳기 위한 것일 뿐 문제를 진짜로 다루면서 실체적 변화를 이끄는 노력을 경시하게 만든다. 오바마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나는 모든 전쟁을 반대하지 않는다. 내가 부정하는 것은 잘못된 전쟁, 경솔한 전쟁, 무책임한 전쟁이다" 같은 식이다.
  ... 완전한 칭찬, 완전한 반대, 완전한 대안은 정치에서 불가능하다. 모두를 위한 정책은 존재하기 어렵다. 떄로 이율배반적인 결정을 해야할 떄도 있고, 예기치 않은 갈등을 감수해야할 때도 있다. 변화는 전체와 연결된 '부분'에서 발생하며, 그렇기에 정치란 전체 정책을 구성하는 '부분들 사이'에서 우선순위를 조정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부분 부정과 형용모순의 언어가 필요한 것은 그때문이다. - 245~246p


  낯선 일화와 개념의 유래는 이 책이 주는 또다른 즐거움이다.


  이전까지 'people'의 우리말은 인민이었는데, 그러다가 체제와 이념을 달리하는 진영 간 대립이 격화되면서 인민은 사회주의 진영 혹은 북한식 용어가 되었고, 그 대신 국민이 자유주의 진영의 용어인 듯 강요되었다. 제헌헌법 제정 시기의 논란은 이를 잘 보여주는데, 1948년 6월30일 헌법 초안에 대한 조봉암 의원의 반대토론이 대표적 예이다.
  [특징적으로 주목을 끄는 것은 ... 인민을 일률적으로 '국민'이라는 어구로 표시된 점입니다. ... '주권은 국민에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발한다' 하여 세계 공통의 '인민'이라는 말을 기피했읍니다. 지금 세계의 많은 나라 헌법에서는 모두 인민이라 합니다. 미국에서도 '피-플'이라 표시했고 '냇슌'이라고 아니하며, 불국에서도 '피-피'라 하며 쏘련에서도 '나르드'라 해서 모두 인민으로 되여 있읍니다. 최근에 공산당 측에서 인민이란 문구를 잘 쓴다고 해서 일부러 인민이란 정당히 써야 될 문구를 쓰기를 기피하는 것은 대단히 섭섭한 일입니다.]
  이때 제헌헌법을 기초한 전문위원 가운데 유진오는 나중에 회고록을 통해, '국민' 일색의 헌법이 된 것을 아쉬워하며 "'국민'은 ... 국가 우월의 냄새를 풍기어, 국가라 할지라도 함부로 침범할 수 없는 자유와 궐니의 주체로서의 사람을 표현하기에는 반드시 적절하지 못하다."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 70~71p


  처칠은 미리 작성되고 준비되지 않은 연설은 하지 않았다. 한 가지 이유는 말을 더듬는 버릇 때문이었다. 연설문은 미리 썼고, 완벽하게 암기했다. ... 연설을 하기 위해 의회 중심에 설 때 그는 늘 지금이 '운명의 시간'이고 '최후의 심판일'이라고 생각했다. 177p


  처칠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영국을 승리로 이끌었는지는 몰라도 정치에서는 승리하지 못했다. 종전 직후 치러진 총선에서 보수당은 패배했다. 그 때문에 (처칠은) 총리 자격을 잃고 포츠담회담 도중에 귀국해야 했다. - 180p


  불어로 저항을 의미하는 레지스탕스는 드골의 연설에서 유래했다. 193p


  당시 언론의 80퍼센트 이상이 루스벨트의 정책에 반대했다. 그런데 루스벨트는 일주일에 두번씩 기자들의 질문을 받겠다고 약속했다. 미리 질문지를 제출하지 않는 방식으로 진행하겠다고도 말했다. 그는 "매번 안타를 치려고 기대하는 게 아니라 중요한 것은 가능한 한 높은 타율"이면 된다고 본다고 보았다. 결과적으로 집권 기간을 통틀어 루스벨트는 일주일에 한 번 이상 기자들 앞에 섰다. 그래서 여론에 휘둘린 것이 아니라, 신문마다 자신에 대한 기사로 가득하게 만들었다.
  저녁 시간에는 노변정담 형식의 라디오 방송을 했다. 첫 방송은 '은행권의 위기'에 대한 설명이었다. "태평양전쟁의 전개 과정"에 대한 방송 때는 청취자들에게 미리 지도를 준비해 자기 이야기를 따라와 달라고 부탁했다. 그 때문에 미국 전역에서 1년에 판매될 지도보다 더 많은 양이 단 며칠 만에 동이 나기도 했다. - 202~203p




  저녁에는 영화 <링컨>을 봤다. 스필버그의 2012년작. 두번째 보니 좀 쉬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는 않았다. 당시 상황을 여전히 잘 모른다. 원작이라는 도리스 키언스 굿윈의 <권력의 조건>이라도 읽어봐야 하나. 그래도 흥미진진하게 볼 수 있다는 것이 웃기다. 스필버그 이 괴물같은 영감...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아니면 누가 링컨 역을 또 맡겠나 싶다. 190센티미터가 넘는 키, 우울한 얼굴, 독특한 자세. 미국인들 모두가 아는 외형이니, 어지간히 비슷하지 않고선 튀는 느낌이 들었을 게다. 메소드 연기의 장인 답게 다니엘은 영화 촬영 내내 스필버그에게 "미스터 프레지던트"라고 부르길 강요했다는데, 뭐 저런 또라이가 다 있나 싶다가도 영화 보면 납득이 된다. 그정도 하지 않고서는 저렇게까지 못할 것이다.

  영화가 다루는 기간은 1865년 1월부터 4월까지, 단 4개월에 한정된다. 1863년 11월19일 게티스버그 연설로부터 1년 이상 지난 시점이다. 남북전쟁은 아직 진행 중이다. 왜 하필 이 때인가? 왜인지 <동주>, <자산어보>를 비롯한 이준익 감독의 몇몇 전기영화가 떠오른다. 흔히 아는 인물의 절정기가 아니라,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색다른 시기를 조명하는 방식.

  영화에서 링컨의 목표는 헌법 13조 개정안을 통과시키는 것이다. 상원 가결은 됐는데, 하원이 남은 상황. 아무리 따져봐도 20표가 모자란다. 어떻게 대처할까. 영화의 27분30초부터 30분30초까지, 원테이크로 촬영된 링컨의 말을 듣는다. 내각 구성원에게 약 3분, 짧은 시간 동안 하는 연설이지만 링컨의 고뇌를 압축하고 있다(유튜브 자막을 대강 받아쳤다).


  "난 생각했소. 헌법은 내게 전시지휘권을 제공하지만, 그게 어떤 힘인지 아무도 모르오. 그런 건 없다고도 하지만 글쎄, 난 헌법 수호 맹세를 지키기 위해 전시 지휘권이 존재한다고 결정했소. 여기서 헌법 수호라는 건 남부군의 노예를 전리품으로 몰수한다는 뜻이오. 그렇다면 내가 노예를 남부인의 재산으로 보는 게 아닌가하는 의심이 생기는데 그런 건 아닙니다. 그런 적이 없죠. 난 자유로운 인간을 옹호하기에, 사람을 재산이나 전리품이란 말로 표현하는 한이 있더라도 목표를 이루고 싶을 뿐이오.

  그 다음이 까다로운데, 나는 법으로 전리품을 포획하는 걸 허용하지만 전리품은 교전국의 정부나 시민의 재산을 말하오. 그러나 남부는 국가가 아니오. 그래서 그들과 협상할 수 없어요. 그런데 남부를 교전 중인 국가가 아닌 반란집단으로 보면서 그들의 재산인 흑인을 전리품으로 취득할 권리가 과연 우리에게 있나요? 더 억지스럽지만, 반란세력을 남부 주가 아닌 그 주에 사는 사람들로 본다면 남부 주의 법은 효력을 유지하게 됩니다. 남부 주의 법은 효력을 유지한다는 말은 흑인이 재산이냐 여부를 주법이 결정한다는 의미죠. 연방법은 그에 대해 영향력이 없고요. 아직까지는요.

  그들 주에서 흑인은 노예이자 재산이니 내 전시지휘권에 따라 전리품 취급할 수도 있다면, 난 그렇게 할 거요. 그러나 내가 주법을 존중한다면, 노예해방선언으로 어떻게 그들을 법적으로 해방시킬 수 있겠소? 주법을 무효로 하면 모를까.

  무효화는 전쟁 때문에 불가피하오. 내 맹세 때문이오. 난 그게 옳다고 느꼈고, 법에 부합하길 바랐소. 지금도 그렇고. 2년 전 난 흑인 해방을 선언했소. '그때와 그때부터 영원히 자유로우리라.' 내게 그럴 권한이 없다고 법원이 결정했다 칩시다. 그럴 수 있죠. 노예해방 수정안이 없다면, 종전 후 법원 결정을 무시할 전시지휘권이 더이상 내게 없는 경우엔, 내가 해방시킨 흑인들을 다시 노예로 복귀시켜야 합니까?

  그래서 난 13차 수정안을 하원에서 통과시켜 연방 비준을 받게 하려는 거요. 내가 능력이 있을 때 노예제도를 끝내려고요. 바로 지금 말입니다. 그러니 날 지지해주시오. 여러분은 대부분의 경우 날 도와주지 않았소."


Lincoln the Railsplitter - norman rockwell (from Pinterest)
매거진의 이전글 '당연한' 체제는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