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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문희 Jan 29. 2023

기자와 살인자

230128

  한 이틀 <기자와 살인자>를 봤다. <뉴요커> 기자 출신 재닛 맬컴의 논픽션 작품이다. 이번이 두 번째 독서다. 한 번 읽고 치우기엔 아쉬운 책이다. 기자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책을 읽고 어딘가 서늘한 느낌을 받을 거라고 확신한다. 기자의 취재 과정을 되짚어, 문제가 될 만한 부분을 찾아내는 것이 책의 소재이기 때문이다.



  재닛이 겨냥한 기자의 이름은 조 맥기니스. 제프리 맥도날드라는 의사의 가족 살인사건을 기사화한 인물이다. 사건 발생 시점은 1970년. 당시 군의관이던 맥도날드는 군사법정에서 무혐의로 풀려났으나, 피해자 측의 강한 요청으로 다시 검찰 수사를 받았다. 수사는 꽤 길어져, 1979년 맥기니스맥도날드를 처음 찾아갔을 때도 재판이 끝나지 않았다. 맥도날드는 자신의 범행을 내내 부인하는 입장이었다.

  맥기니스는 맥도날드 사건에 끌렸다. 워낙 자극적인 데다, 전국에 널리 알려진 사건이었다. 논픽션 책을 쓰기만 하면 대박일 거라 예상했다. 그는 맥도날드에게 '변호인단의 관점에서' 책을 쓰겠다는 식으로 접근했다. 재판을 앞둔 맥도날드로선 혹할 만한 제안이었다. 재판부는 때로 여론에 민감하고, 배심원들 역시 그러하니까. 이해관계가 맞은 둘은 출판 계약을 맺고, 맥도날드는 맥기니스에게 온갖 내밀한 정보를 제공한다.

  그러나 1983년 맥기니스가 출간한 책 <치명적 환영>은 맥도날드의 기대와 달리 그를 '잔혹한 살자'로 몰아가는 내용이었다. 맥도날드는 1년 뒤인 1984년 여름, 맥기니스고소한다. 그리고 재판에서 맥도날드가 완벽히 이긴다. 기자 쪽 승리로 끝나는 대부분의 소송과 딴판이다. 취재원이 승소할 때도 없지 않지만 대개 극히 적은 손해 보상금으로 마무리된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재닛의 호기심이 향한 대목이다.

  책의 핵심 물음은 이렇다. 기자가 취재할 때 거짓말을 해도 좋은가. 거짓말이 필수불가결하다면, 어느 정도까지 허용되나. 맥도날드 대 맥기니스 케이스의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맥기니스의 거짓말은 화려하다. 그는 맥도날드에게 처음 접근할 때부터 편드는 듯 행동했고, 취재 과정 내내 맥도날드를 응원하듯 말한다. 친구라고 서로를 호칭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며 그의 무죄를 믿는 척 한다. 취재 중간 맥도날드가 살인 혐의 소송에서 패배해 감옥에 갇혔을 때도 맥기니스의 친밀한 태도는 이어졌다. 그는 맥도날드에게 녹음 형식으로 온갖 진술을 받아낸다. 맥도날드가 그를 자기 편이라고 믿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맥기니스의 변호인 콘스타인은 맥도날드가 이긴다면 '표현의 자유' 전반이 위축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왐바우, 버클리 등 유명 논픽션 작가들도 법정에서 '취재 중 어느 정도의 거짓말은 불가피하다'는 취지로 진술해 맥기니스의 편에 선다. 맥기니스의 패배는 곧 기자 내지 논픽션 작가 전반의 패배일까. 재닛이 내놓는 결론은 조금 다르다.


  앞으로 인터뷰 요청을 받는 모든 사람이 맥도널드 대 맥기니스 소송의 교훈을 염두에 둔다면, 콘스타인이 주장한 것처럼 표현의 자유가 위협당하고 저널리즘의 종말이 올 수도 있다. 그러나 논픽션 작가와 독자에게는 다행스럽게도, 인터뷰할 때 기꺼이 자기 산연을 늘어놓는 사람들은 미래에도 차고 넘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인간의 본성이다. 희생 제물로 선택돼 가슴에서 심장을 도려낼 그날까지 쾌적한 안락과 사치 속에서 살았던 아스텍의 젊은 남녀처럼 기자가 쓰는 글의 주인공들은 ‘와인과 장미의 나날’이 끝났을 때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들은 기자가 전화를 걸면 여전히 인터뷰를 승낙하고, 나중에 자기 목에 떨어지는 칼날을 보게될 때 여전히 경악한다. - 199~200p


  돌아보면 맥도날드 대 맥기니스 케이스엔 조금 특수한 데가 있었다. 맥기니스는 맥도날드의 친구를 자임하며 그의 무죄를 믿는 척 했지만 기자들이 대개 이런 식으로 취재하지는 않는다. 고개를 끄덕이며 '억울한 면이 있었겠네요' '당신 말에도 일리가 있네요. 계속 말씀하시죠'라며 애매하게 말한다. 대화가 끊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지, 온전히 상대의 편인 척 하지는 않는다. 어떤 이들은 '나는 기자이니 누구 편을 들 수는 없다'거나 '취재물은 온전히 내것이고 결과로 쓰인 기사의 편집권은 당신에게 없다'고 못박기도 한다. 반면 맥기니스와 맥도날드의 계약서에는 '진실의 중요한 부분을 왜곡하지 않는다는 조건'이 붙어 있었다. 재닛은 이 조항이 재판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왐바우와 맥기니스가 주장한 '비진실' 개념도 재판에 불리한 요소였다고 재닛은 말한다. 그들은 기자 내지 논픽션 작가의 취재 과정에서 일부 거짓말을 강하게 옹호하며 '거짓말이 아니고 비진실'이라고 당당하게 말했는데, 이것이 배심원단의 분노를 일으켰다는 것이다.


  작가와 인터뷰 대상 사이의 관계는 완벽하게 서로 속마음을 숨기지는 않더라도 상대의 목적을 분명히 알 수 없을 때만이 존속할 수 있는 듯하다. 각자 자신의 카드를 탁자 위에 올려놓는다면, 이미 게임은 끝날 것이다. 기자는 고의로 유도해낸 도덕적 무정부주의 상태에서 작업해야 한다. 이것이 버클리와 왐바우가 법정에서 하려던 이야기였고, 그들이 유감을 표시하며 덜 오만하게 말했다면-그들이 그것을 고결한 필수 요소가 아니라 난처하지만 다른 도리가 없는 직업상 위험요소로 표현했다면- 배심원들을 그렇게까지 적으로 돌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 197p


  재닛도 과거 거짓말한 기자로 내몰린 경험이 있다. 취재원이 기사에 인용된 자신의 말을 두고 '이런 말을 한 적이 없다'며 분개했기 때문이다. 재닛은 취재원의 분노를 일부분 인정한다. 그가 온전히 그렇게 말한 적은 없다. 그 말은 재닛이 윤문한 것이다. 하지만 고쳐 적은 말이 그가 한 말의 핵심을 왜곡했나? 재닛은 녹취록과 기사에 들어가는 말의 차이를 지적한다. 녹취록을 들어보면 안다. 얼마나 말이 자주 주제를 벗어나는지, 비문이 튀어나오는지. 어차피 저널리즘 서술에서 누군가의 말을 그대로 전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재닛은 말한다. 이것은 거짓맛에 해당하는가.

  '취재 중 거짓말은 어느 정도 허용되는가 '라는 질문은 끝내 회색 지대로 남는다. 본디 그런 세계다. 증언 없이는 증명할 수 없는 진실이 도처에 있으니. 다만 길을 걸을 때, 늘 경계해야 하는 것이다. 필수불가결한 행위과 핑계에 불과한 말은 어떻게 다른지. 돌아보니 재닛은 책의 첫 문장부터 이러한 모호함을, 책의 끝에는 논픽션 작가가 새겨두어야 할 경구를 적어 두었다. 어쩌면 사실을 다루는 글을 쓴다는 것은 두 문장 사이에서 진동하는 일인가 싶다.


  기자라면 누구나, 너무 멍청하거나 오만해서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면, 자기가 하는 일이 도덕적으로 용납될 수 없음을 안다. - 13p


  소설가는 자기 집의 주인이고 그 안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다. ... 그러나 논픽션 작가는 집에 들어갔을 때와 똑같은 상태로 떠나라는 임대 계약서의 조건에 따라야 하는 세입자에 불과하다. 그 집의 이름은 '실제 사실'이다. - 209




  맥도날드의 캐릭터에 관한 재닛의 서술은 통찰력이 있었다. 그는 재미없는 사람인데, 맥기니스는 맥도날드를 흥미로운 인간으로 만들고자 애썼다. 그래야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읽으니까. 하지만 맥도날드는 그렇지 못한 인물이었다.


문학작품의 인물은 현실의 인간보다 포괄적이고 관념적으로 묘사되고, 단순하고 일반적(혹은 앞서 말했듯이 ‘신화적‘)이지만, 그 초자연적인 생생함은 명백한 불변성과 일관성에서 나온다. 반면에 현실 속 인간은 소설 속 인물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모호하고, 예측 불가능하고, 까다로워서 상대적으로 덜 흥미로워 보인다. - 170p


  맥도날드는 그저 사악한 범죄에 대해 결백을 주장하는, 지루하고 있을 법하지 않은 이야기밖에 제공할 것이 없는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이었다. 정상적인 상황이었다면, 맥기니스는 맥도날드가 평범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려 재빨리 작업을 취소하고 기자의 작업에 걸맞는 영웅적인 주인공을 찾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저런 이유로 맥기니스는 자기 눈앞에 있는 것을 보지 않기로 했다. -105p


  실제 사건에 연루된 인물이면서도 문학적 논픽션의 소재가 될 만한 인물은 따로 있다. <조 굴드의 비밀> 속 조 굴드나, <인 콜드 블러드>의 페리 스미스처럼 자신의 범행을 떠벌이는 이들. 장광설 자체는 흥미롭지 않지만, 논픽션 작가의 내면에서 얼마든지 재밌는 인간으로 재창조될 여지가 있는 사람들. 맥도날드와는 정반대인 이들 말이다.  

  재닛은 묻는다. 맥도날드의 무죄를 주장하는 을 썼다면 어땠을까. 캐릭터는 덜 흥미진진할지언정, 취재 내용에는 더 정직한 글이 됐으리라.


정신분석 치료를 받는 환자와 마찬가지로 인터뷰 대상은 작가와의 관계를 압도하고 주도한다. 정신분석가가 환자를 창조할 수 없듯이 기자도 인터뷰 대상을 창조하지 못한다. - 139p


  맥기니스가 맥도널드를 믿고 그의 결백을 주장하는 책을 썼다면 매력적이지는 않아도 더 설득력 있는 주인공을 창조했을 것이다. - 136p


  이런 부분에선 좀 슬퍼졌다. 맥기니스는 재닛을 만나 끊임없이 자신의 무죄를 호소한다. 자신이 얼마나 괜찮은 인간인지 거듭 말한다. 마치 녹음기를 틀어둔 듯 그의 말에선 개성이 드러나지 않았다. 재닛은 어느 날 입수한 다른 기자의 취재 문건에서 맥기니스가 자신에게 한 말과 비슷한 말을 다른 이에게도 했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리고 이렇게 쓴다. “그것은 그가 유죄 판결을 받은 이래 8년 동안 그의 존재를 빚어온 이야기였다.(98p)"

  아래는 맥도날드의 오랜 친구이자 그의 살인을 변호한 말리의 말이다. 자들이라면 자주 봤을 것이다. 은 말을 반복하다가 그 말밖에 할 줄 모르게 된 이들을.


  “(그는) 유명세의 포로가 됐습니다. 그 유명세란 무엇보다도 맥기니스가 쓴 책의 영향 때문이죠. 이제 제프는 그 책을 읽은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며 삽니다. 그들이 자기를 바라보는 시선이 잘못됐음을 보여주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전제하고 자기 말과 행동을 거기에 맞추고 있습니다.” - 191p


  재닛의 문장이 인상깊었다. 깔끔하면서도, 흥미로운 메시지를 툭툭 치고 나가는 맛이 있다.


  이런 자료들로 맥도널드의 유죄나 무죄를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신의 존재나 부재에 대한 증명이나 반증을 한 송이 꽃에서 찾으려는 시도나 다름 없었다. - 175p
 사회는 한편으로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엄격한 도덕성과 다른 한편으로 위험할 정도로 무질서한 관대함의 두 극단 사이를 암묵적 합의를 통해 중개한다. 그 합의 덕분에 우리는 조용하고 신중한 조건을 지키며 매우 엄격한 도덕 규칙을 위반할 수 있다. 위선은 인간의 실수를 허용하고 겉보기에 양립할 수 없을 것 같은 질서와 쾌락의 요구를 조화시킴으로써 사회가 계속해서 잘 돌아가게 하는 윤활유다. 버클리와 왐바우가 직설적으로 인터뷰 대상을 속여도 된다고 말했을 때 그들 자신도 자기 이익을 위해서 규칙을 마음대로 적용한 것을 솔직하게 인정해서는 안된다는 규칙을 위반한 셈이었다. 만약 우리가 그렇게 했다면, 입다물고 있으면서 들키지 않기를 바라야 한다. - 83p


서신 교환은 일종의 연애다. 그것은 작고 폐쇄된 사적인 공간에서 이뤄지고–봉투에 든 종이 한 장이 그것의 매개체이며 상징이다–미묘하지만 명백하게 에로티시즘에 물들어 있다. 누군가와 정기적으로 편지를 주고받을 때 상대의 편지를 기다리게 되고, 익숙한 봉투를 볼 때 감정이 점차 강렬해지는 것을 느낀다. 그러나 솔직히 인정하자면 서신 교환의 주된 즐거움은 받는 기쁨보다는 답하는 기쁨에 있다. 우리가 사랑에 빠지는 상대는 서신을 주고받는 대상이 아니라 자기 안의 ‘편지 쓰는 사람‘이고, 편지가 오는 일이 중대한 사건이 되는 이유는 편지를 읽을 기회를 주기 때문이 아니라 쓸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 19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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