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버엔딩

by 초보

자기만족과 기만을 벗고 나니 신앙이 타고 남은 재가 되어버렸다. 초신자 시절 나는 어떻게 울 수 있었을까.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존재가 나를 죽기까지 사랑한다는 얘기에 어떻게 눈물을 흘릴 수 있었을까. 계절이 열두 번 바뀌는 동안 나는 왜 이렇게 건조해졌을까.


이제 눈물이 나지 않는다. 감격하지 않는다. 사랑한단다, 한다면 나는 생각하다가 왜요. 그렇군요. 잠시 뜸을 들인 뒤에 겨우 유감이군요. 또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그래서요. 그게 왜요. 왜 그렇게까지 하시나요, 안 그러셔도 돼요. 진심이에요


생생했었던 감동. 조금이라도 스스로를 낫게 만들어보고자 처세술처럼 절박하게 익히고 주워섬겼던 교리들. 그리고 시간. 희끄무레했다가 선명해졌다가 오락가락 하지만 어느 순간도 이전처럼 0%가 될 수는 없었던 그 시간들이 쌓여서 지금의 내가 되었다.


어디에 있는지도 왜 있는지도 어디서부터 시작된 건지도 모르는 채로 이 자리에 서서 생각한다. 응답없는 편지를 보내는 일을 이제 그만 하고 싶다고.


그러다 문득 깨닫기도. 답신이 없는 게 아니라 답신이 없을까봐 우체통을 열어보지도 않고 있는 사람이 나라고. 이미 포화상태일지도 모른다고. 그걸 직면하기 싫어서 관성처럼 단념하고 살아가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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