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한 화재경보시스템으로서의 교사
최근 오은영 박사님의 심리 상담에 푹 빠져있다. 내담자들의 문제는 우리 주변에서 한 번쯤 들어봤을 만한 고민들이다. 흔한 고민이지만 딱히 해결 방법을 찾기 어려운 고민이 많다. 그럴 때마다 나는 “멘탈을 강하게 갖자”, “좋은 쪽으로 생각하자” 등 하나마나 한 답을 해왔고 결국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것과 다름없었다.
오은영 박사님의 특별함은 내담자가 발신하는 어떠한 ‘신호’를 포착해 낸다는 것이다. 상대의 언어와 행동에서 내면이 표출되는 신호를 기가 막히게 찾아낸다. 그런데 나중에 오은영 박사님의 설명을 듣고 나서야 그게 왜 신호인지 알 수 있지 그 전에는 일반인의 시각으로 찾아내기 쉽지 않다. 마치 셜록 홈즈가 추리 내용을 설명해주고 나면 하나하나의 단서의 의미가 명쾌하게 이해되지만 그전까지는 손바닥의 굳은살이 단서가 될 것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과 같다. 오은영 박사님의 또 다른 특징은 당장 시도해볼 수 있는 구체적인 조언을 한다는 것이다. 상대의 말을 반복하여 따라 하거나 가벼운 약속을 하기도 한다. 개통령 강형욱이 강아지를 순식간에 변화시키는 것처럼 오은영 박사님도 사람의 놀라운 변화를 이끌어낸다.
나의 내담자들은 학부모와 학생들이다. 중학생 생활지도와 관련하여 상담을 하기에 대부분 깊은 고민을 안고 찾아온다(청소년은 질풍노도의 시기니까). 집에서 부모님과 말을 하지 않는 학생, SNS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폰을 놓을 수 없는 학생, 칼로 팔에 상처를 내야 스트레스가 풀린다는 학생, 평소에는 말 한마디 없는데 온라인 상에서는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을 하는 학생 등 다양한 문제로 고민이 있다. 학부모의 모습도 다양하다. 현명한 보호자가 대부분이지만 가끔 아득해지는 경우도 있다. 무조건 집에서 혼내겠다는 스타일(맞으면 된다), 현실 부정 스타일(그럴 리가 없다, 오해다), 책임회피 스타일(학교는 뭐했냐)이 있다.
나도 능력만 된다면 오은영 박사님처럼 상담을 통해 명쾌하게 진단하고 해결을 해주고 싶지만 교사는 의사도 심리학자도 아니다. 약을 처방해주거나 fMRI로 진단을 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최근 생활지도 영역에서 교사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봤다. 교사는 예민한 화재경보시스템이 될 필요가 있다. 학생에게 문제가 발생하면 보호자에게 알람을 울려주는 것이다. 가스가 누출되고 있음을 강력하게 알리는 것은 교사의 역할이지만 결국 창문을 열어 환기시키는 것은 보호자의 몫이다. 학생들은 신호를 보낸다. 말을 하지 않는 것도 하나의 신호가 될 수 있고 욕을 하는 것도 신호다. 팔에 상처를 내는 것은 강력한 신호다. 교사는 학교에서 그 신호를 민감하게 포착하고 보호자에게 알려줘야 한다. 모든 교사가 오은영 박사가 될 수 없기에 가끔은 신호를 잘못 해석하기도 한다. 그런데 피곤하게 구는 예민한 경보기가 훨씬 안전한 법이다. 귀찮아서 배터리를 빼놓은 경보기는 기능을 하지 않으면 심각한 문제를 놓치는 수도 생기니까.
교사가 민감하게 반응하고 보호자가 적극적으로 행동할 때 학생의 심리는 안전해질 수 있다.
교사는 보다 정확한 경보기가 되고자 노력해야 한다. 최근에 내가 읽은 책들은 경보기 맥락에서 도움이 될만하여 추천하고자 한다.
1. <요즘 애들>, 앤 헬렌 피터슨 : 요즘 청소년이 아닌 밀레니얼 세대에 대한 구조적인 이해를 돕는 책이다. 특정 세대를 이해할 때 어떤 방법이 합리적인지 거시적인 접근법을 알게 됐다. 작가가 밀레니얼 세대의 구조적 특징을 포착하는 방식으로 지금 교사들이 자신의 학생들을 이해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2. <마음의 법칙>, 폴커 키츠, 마누엘 투쉬 : 다양한 심리적 현상에 대해 재미있게 설명했다. 읽다 보면 교육심리학에서 밑줄 치며 외웠던 내용들이 많이 나온다. 귀인 이론, 인지부조화, 이미지 트레이닝, 자기 효능감 등 교사라면 이미 익숙한 내용들이다. 다시 한번 공부하던 시절을 떠올리며 학생들을 새롭게 볼 수 있다. (학생들은 읽지 않기를… 선생님의 심리 기술이 노출됩니다.)
3. <몸은 기억한다>, 베셀 반 데어 콜크: 트라우마에 대한 책이다. 트라우마로 고통받는 학생이 많지는 않겠지만 가끔 정상 범주를 넘어선 듯한 학생들을 ‘문제아’가 아닌 다른 각도로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특히 이 책은 다양하고 현실적인 치료법도 설명하기에 읽고 난 뒤의 교사의 깊이를 확장시켜준다. 책의 말미에 이르면 작가는 학교에서 교사의 역할에 대해 강조한다. 특히 607페이지 부분은 교사라면 꼭 읽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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