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화가 헬리혜성, 안녕?

그림이 뜻밖에 팔렸어요!

by 황섬

아들의 이름은 문혜성. 지금 생각하면 내가 미쳤었던 것 같은데 가수 신혜성을 좋아해서 그냥 갖다 붙였다. 물론 헬리혜성이라는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혜성의 이름이기도 해서 반짝이는 별과 같이 되라는 염원도 담기도 했다. (참고로, 궁금해서 찾아본 것. 헬리혜성이 마지막으로 관측된 연도는 1986년으로, 다음 접근 시기는 2061년 7월 28일로 예측된다. 나도 잘하면 다음에 헬리혜성이 접근할 때 만나볼 수 있겠다.)

혜성이는 2014년에 예쁘게 태어났다. 아기가 토실토실하게 얼마나 귀엽게 생겼는지, 별명을 만두로 지었다. 지금까지도 만두야! 하고 사람들이 불러준다. 그렇게 사랑받고 자라다가 10개월 무렵, 감기에 걸렸다. 그동안 키웠던 내 아이들은 약 먹고 한 3일 정도 지나면 나아서 제 컨디션을 찾았는데, 혜성이는 체력이 다시 올라오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다가 추운 겨울날, 열이 너무 안 떨어져서 안 되겠다, 병원 가야겠다 생각하고 "우리 애기 병원 가자." 하면서 털 점퍼를 입히는데... 맙소사, 아이 눈동자가 위로 휙 넘어가면서 온 몸이 파닥! 파닥!거린다. 나는 에미지만, 너무 놀라고 무서워서 그 순간 아이를 잡아 안을 수 없었다. 열 경기였다.

그 뒤로 나는 아이 체온이 37.5도만 넘어가도 무서워서 냉장고에 구비된 서너 가지 해열제를 점검한다.

아이가 여섯 살이 될 때까지 일 년에 응급실을 서너 번도 갔을 것이다.


세 살 무렵에 아이가 정말 '역대급'으로 아픈 적이 있었다. 병원에서도 계속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렇게 한꺼번에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례는 처음 봤다고 말했다. 상기도 하기도 다 합쳐서 5개 정도의 바이러스에 감염이 되었는데, 세상에... 그중 하나가 신종 플루였다. 당시 신종 플루에 걸리면 어른도 엉엉 울 정도로 뼈마디가 빠져나가듯 아프다는 이야기가 돌아서 두려웠던 돌림병이었다.

나는 혹시나 몰라서, 정말 혹시나 몰라서 마음의 준비까지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역시 우리 혜성이, 크게 고생을 하더니만 서서히 건강을 되찾고 퇴원했다.


며칠 만에 처음, 겨우 열 떨어지던 날 아침.


그리고는 서서히 말을 잃기 시작했다. 다들 나를 위로한답시고 그것 때문에 말 못 하게 된 것 아니라고 하는데, 너무 이상했다. 나는... 분명히 아이가 돌 지나고 엄마, 아빠는 물론이고 안녕? 도 하고 심지어는 또렷하지는 않지만, 어린이집 '선생님'과 '원장 선생님'을 구분해서 부르던 아이였다. 그 뒤로 '안녕'이라는 말을 찾기까지 또다시 3년이 걸렸다.

그리고, 발달장애 판정을 받고 장애인 카드도 받고... 유치원도 장애 통합반에 들어가서 즐겁게 생활했고, 학교도 통합으로 원반과 사랑반을 왔다 갔다 하면서 지내고 있다.


지금부터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만두의 '그림' 이야기다.

한 다섯 살, 여섯 살까지 색칠은 물론 선생님들이 나누어주는 과제, 예를 들어서 줄 긋기, 동그라미 긋기 이런 것은 전혀 수행해내지 못하던 터라 나는 이때까지만 해도 '그냥 건강하게만 자라다오'가 내 바람이었다. 또 언제 열 치솟아서 경기하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에...

그런데, 아이가 의미 없는 줄 긋기만 해대다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뭔가 물체? 존재? 같은 것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 그림을 그리면서 계속 개미개미개미개미개미개미... 하고 중얼거리는 터라 이것이 개미라는 것을 알았지, 에미 눈에는 그저 '지네'로만 보인다. 혜성이의 눈에는 개미는 다리가 많은, 움직이는 생물로 보였나 보다.

이것이 2018년, 혜성이 다섯 살 때이다.


작년에는 유치원 생활을 마치고, 학교에 들어갔다. 내 바람은 딴 것 없었다. 아이가 제발 자리에나 잘 앉아 있기를. 그리고, 다른 친구들 공부하는 데에 방해가 되지 않기를.

아이가 하고 소리를 지르고 뛰어다니고, 발로 쿵쿵대는 바람에 호되게 고생을 해왔던 나는 목표를 이렇게 소극적으로 잡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솔직히 아이의 그 돌고래 같은 큰 소리, 감당 못할 파워에 지쳐서 더 바랄 것도 없었고. 제발 좀 조용히 앉아만 있어주기를...

그런데 기적적으로(!) 아이가 스스로 한글을 깨쳤다. 물론 발음은 아직까지는 명확하지는 않지만... 이것만으로도 혜성이 열 살 때까지의 목표 초과 달성이다! 나는 이 녀석이 책을 읽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었다. 말을 잘 못하니까 아주 가까운 사람들과도 소통이 안 되고, 이렇게 아웃풋 인풋이 원활하지 않으니 받아들이는 정보도 다른 친구들보다 현저하게 낮았다. 이리 인지능력도 떨어져 있으니 한글을 익힌다는 욕심 갖지 말고 천천히 해내려고 했었다. (더 나아가 솔직히 한글 모르고 살면 어떻냐 싶기도 했다. ^^)

학교 들어가서 혜성이가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냥 엎드려서 스케치북에다가 끄적끄적. 그러다가 A3 도화지를 백장을 사다 주면 금방 그렸다. 물론 중간에 그리다가 틀리거나 제 맘에 안 들면 바로 새 종이 꺼내서 그리는, 절약정신 같은 것은 아직 기를 시간이 없었던 어린아이지만 말이다.

학기 초에는 반에서 아이들에게 하나씩 임무를 주고, 직책을 정해주는 프로젝트를 했다. 예를 들어 '세스콤'이란 직책, '세콤 + 세스코' 이 기발한 아이디어답게 교실에 들어오는 벌레를 잡고, 뒷문 앞문 잘 닫는 것이 그 친구의 임무다. (이것 읽고 엄청 웃었다!)

여기에서 혜성이의 직책은 '꼬마 화가'. 미술 시간에 그리기나 만들기를 다 마친 후, 아직 완성하지 못한 친구에게 달려가서 도와주는 일을 한단다. 혜성이도 이 직책에 꽤 자부심을 느끼는 것 같다.

- 혜성이는 2학년 3반에서 뭐예요?

- 꼬마화가!

1초도 안 쉬고, 바로 답이 튀어나온다.


혜성이는 처음에 기차에 꽂혀서 정말 우리나라의 모든 기차와 전철을 다 그려댔다. 유튜브로 전철역 동영상을 보고 보고 또 보고 하면서 입으로는 전철 들어올 때 소리 끼이이이이잉~~~ 소리하며 '발 빠짐 주의, 발 빠짐 주의' 소리, 디스 스탑 이즈 동대문, 동대문, 마모나끄 홍대 에끼, 홍대 에끼 등등 지하철 안내 방송 소리까지 뜻도 잘 모르면서 주워들은 소리 그대로 반복하면서 그림을 그린다. 그 소리가 얼마나 큰지, 아무리 엄마지만 한 오륙십 번 들으면 '그마안!' 소리가 절로 나온다.

그러다가 6월의 마지막 날, 지난주에 혜성이가 그린 <무지개 전철> 그림을 한 작가님께서 보시고는 그 자리에서 사셨다.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나는 처음에 작가님이 농담하시는 줄 알고, 게다가 거기가 술자리니까 혹시 몰라서 다음 날 다시 생각해보시라고까지 했다.

작가님의 아드님은 지금 그림을 공부하는 미대생이다. 그리고 학원에서 보조 강사를 할 만큼 실력이 좋다. 그림도 페이스북에서 몇 번을 보았는데, 나는 그림 까막눈이지만 이런 내가 보기에도 꽤 느낌이 좋았다. 보통 아이들이 음악을 하든, 미술이든 야구를 하든 예체능을 하나 하면 부모님들도 그 분야에 관심을 두게 되고, '보는 눈'이 생기게 마련이다. 작가님은 이 그림이 너무 마음에 든다며 사진만 보고 이렇게 혜성이의 작품 중 첫 번째 주인이 되셨다. 올해 들어 가장 큰 비가 내리던 날 저녁, 그 비를 뚫고 ATM기에 가서 봉투에 잘 넣어오셨다. 처음으로 그림값을 받는 순간이다!

바로 이 그림이다. 처음에는 무지개 기차, 무지개 기차... 하고 계속 반복하더니 대결, 대결, 사람하고 대결... 하고 중얼거리며 이 그림을 완성해냈다.

제목은 <달리기 대결>.


작가님은 이 기운에 힘입어 성북동의 작은 미술관을 아는 분께서 무료로 대관을 해주신다고 하니 그림을 잘 추려서 전시회를 하자고 제안하셨다. 겨우 아홉 살 꼬마가 그린 그림을 이리 사주신 것도 고맙고 감사한 일인데, 전시회까지! 사실 나는 그림도 볼 줄도 모르는 사람이라 조금 두렵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그렇다.

그래도 한 9월쯤을 목표로 한 걸음씩 준비해보기로 했다. 그 준비과정을 하나하나 이곳에 기록해 볼 생각이다. 그 첫 번째 여정이 바로 이 그림, <달리기 대결>이기도 하고.

그래도 변함없는 것은, 나는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별 기대는 없다는 것. 그저 혜성이가 행복하기만 하면 된다. 만약 중간에 어떠한 사정으로 전시회를 못 열게 되어도 좋고.


혜성이는 이 티셔츠를 무척 좋아해서 거의 매일 입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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