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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섬 Oct 10. 2023

100에 99이 떨어져나가는 직업? 드라마 작가...

오늘도 개고생 하는 드라마 쓰고 자빠진 여자의 일기 

드라마 쓰는 사람들, 나처럼 아직 크레딧 없이 데뷔작 준비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100에 99 떨어져나가는 이유를 좀 알 것 같다.  열 중에 아홉이라 하기에는 너무 엄벙덤벙한 데이터고. 


1. 계약을 하고 나서 기획안부터 시작을 하는데, 이게 한 큐에 끝나는 법이 없다. 배세영 작가가 쓴 드라마 <나쁜 엄마>도 팬데믹 기간 동안 쓴 거라고 하니, 적어도 2년은 걸려 쓴 것이라는 이야기다. 이렇게  작업기간이 길어지면서 계약금 처음 받고 2-3년은 버텨야 한다. 

드라마는 계약금을 처음 4, 대본 다 쓰고 3, 방송 다 끝나고 3. 이렇게 받는다. 우리 팀만 그런 것이 아니고, 전반적인 관행이 이렇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작년 11월에 계약했는데, 일 년이 다 되어가는 2023년 10월 10일 오늘, 어느 누구도 너 지금 뭐 먹고 사냐고 물어보는 사람 아무도 없다. 그냥 나 혼자 편의점에 가든, 다른 교정 교열 알바를 하든 해야 함. 

나는 어떻게 연이 닿아서 올해 여름부터 영화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해서 하나 탈고했다. 이런 사정 탓에 영화와 드라마를 함께 쓰는 광년이가 되어버린 것이다. 

감독님과 연출팀이 많이 도와주시기도 했고, 계약 전 작업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거의 1년 반이 넘는 시간 동안 드라마팀에서 구른 경험 덕에 다행히 실력이 늘어 시나리오에 반영되었던 것 같다. 


 2. 신인이라고 갈굼. 감독, 제작사 잘 만나야 한다. 그러나 이유없는 갈굼은 없다. 감못잡고 헤매니까 갈구고 지적하는 것이다. 다만 '신인' 프리미엄(?)이 더 붙어서 불안감 가중, 개무시 가속...  

검증이 안 되었다고 생각을 했는지 '다시 한 번 잘 생각해보라'는 말을 듣기도 했는데, 이날만큼 치욕스러운 때가 없었다. 진짜... 제작사 대표님이 대본 잘 뽑았을 줄 알고 미리 예약한 성수동 오이스터 바, 그 좋은 음식 앞에서 나는 그만 어린애처럼 울고 말았다. 

사실 나도 글을 잘 쓴다고 속으로 자신했는데, 이런 식으로 중간에 너무 때려맞아서 밥도 못 먹고 난리났었다. 지금 이 시간도... 사실 이번 주 금요일 회의를 앞두고 입맛이 없다. 진짜 하루에 한 끼도 안 먹어도 될 정도로 식욕이 나질 않아서 걱정이다. 


3. 제풀에 지침. 위에서 이야기했듯이 드라마는 대본 나오기까지 2-3년 족히 걸린다. 그나마 캐스팅 들어가면 대본 4화 정도 나온 것. 이 단계는 연예인도 보고 신이 나서 끝까지 간다.  내가 지금 대본 3-4화 단계인데... 중간에 때려치고 싶을 때는 희한하게 없었다. 계속 이 악물게 되었다. 

워낙에 대본 쓰고 싶어서 한 5-6년 전부터 mbc 아카데미니 무슨무슨 영상원이니 도합 네 군데를 다녔다. 물론 그에 비는 비용도 어마어마했다. 이런 곳은 절대 작가를 뽑는 곳이 아니다. 처음 다닐 때부터 착각하고 다녔다. 나는... 만약 작품 의뢰가 들어온다면 학생들에게 '누구 이거 해볼 사람?' 하고 묻지 않는다. 조용히 선생이 쓰지. 단, 드라마 강의를 들으면 내 작품 하나 이상은 완주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리고 선생님이 옆에서 봐주시기 때문에 혼자 고군분투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그리고 이 작품으로 공모전이니 뭐니 응모하는 것이다. 딱 여기까지다. 그러므로 드라마 쪽으로 입문을 하려면 각자도생해야 한다. 공모전에 응모를 하든, 인맥을 발굴하든...  

여하튼 내가 왜 이 짓을 하고 있나 생각도 많이 들 것이다. 이 시간이면 다른 일을 해서 돈을 벌지 라는 생각도 크게 들 것이다. 모두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관둔다고 이야기도 들었다. 중간에 방향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여하튼 나는 오늘도 포기할 생각은 없다. 계약을 하고, 대본을 쓰고 있는 것만 해도 감사하다. 




그래서 나는 드라마 작업 하고 나서 절대로 다른 드라마 안 까기로 했다. 아니 못 까겠다. 그게 그 팀의 최선이라는 걸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잘 알아서.  어느 순간부터 지적질을 안 당하고 자꾸 대본이 통과가 되니 불안해서 쓰는 글이다. ^^ (이게 왜 불안한 거지?)

............. 라고 며칠 전에 썼는데, 지금은 또 상황이 바뀌었다. 


2화 대본에 제작사에서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낸 것이다. 이렇게 일희일비하면 안 되지만, 긴장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이게 드라마 쓰는 사람들의 진을 쏙 빼놓는 것이다. 

소설이나 에세이를 쓰는 사람들은 혼자 외로이 전진한다. 모든 결정을 혼자 내린다. 그리고 결과도 오로지 자기 몫이 된다. 그러나 드라마나 영화는 나만 잘 쓴다고 될 일이 아니다. 팀 내에서 내는 의견을 하나하나 다 검토해야 한다. 그리고 참 이건 유감이지만, 모든 미팅이 창과 방패식으로 진행된다. 주로 내가 방패를 들고 있다... 내가 김은숙 같이 대중이 뭘 원하는 지 영리하게 싹 꿰고 있는 로코 천재라면 말이 달라지겠지만... 지금 '작품'과 '나'의 적정한 거리두기하는 것만으로도 수개월 걸렸던 초짜는 오늘도 일희일비하고 있다. 

아, 그래도 좋은 것? 살이 빠진다... 밥이 안 먹히니까. 물론 윗배가 늘 긴장 되어서 아프다는 것은 감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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