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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섬 Oct 15. 2023

기획안 또 뒤집어집니다. 4번째.

세상에서 가장 찌질한 로맨틱 코미디를 쓰고자 한다면...

지난 금요일, 바짝 긴장하고 회의실에 들어갔다. 결론. 기획안의 방향이 4번째 바뀜. 

그러나, 크게 충격은 받지 않았다. 기존의 복잡한 이야기 타래 행진에서 훨씬 단순하고 단단하게 바뀔 것 같다. 힘 많이 들지만, 다시 용기내본다. 오늘은 정신차리고 하루종일 에버노트에 이것 저것 생각들을 정리했다. 

<동백꽃 필 무렵>의 황용식 같은 순애보 연하남이 들어오고, 주인공은 그대로. 그냥 내가 하고 싶었던 사랑, 판타지 10개 에피로 정리하고 '예쁜 제목'(또 예쁘기만 하면 안 되고, 엣지 있어야 한다...) 붙여서 기획안 정리할 예정이다. 

봉준호 감독님의 말이 이럴 때 가장 힘이 된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

나의 이야기를 찌질하고, 단순하게 이어붙이는 건 사실 보는 이들의 시간을 빼앗는 행위가 될 수 있다. 그걸 어떻게 한 번, 또 한 번 더 숙성시켜서 보여주는가가 노력이고 재능이지. 

예전에 영화를 너무 만들고 싶었던 한 배우가 결국은 만들어 낸, 본인 감독 겸 주연이었던 어떤 영화를 보고 낯부끄러웠었다. 어떻게 그렇게 있는 그대로의 '나'를 그대로 스크린에서 연기할 수 있는 건가. 그걸 응원하는 마음으로 보고 있던 내가 한심할 정도였다. 진짜 그러면 안된다. 나한테도 건네는 이야기다. 


다시 새로운 구성으로 도전. 지난 가을, 아 이러려고 왔던 사건이었구나 혼자 의미를 두니 덜 속상하다. 작가라는 직업이 좋은 것이 바로 이것이다.  이렇게 자기에게 벌어진 사건을 상상의 나래를 펼쳐 재가공할 수 있다는 점. 

보통은 다른 이들이 어? 이거 내 얘기 아냐? 하기 직전까지 아사무사하게 만들어서 결과물이 나오면 흐뭇하게 그는 이거 알아볼까? 하고 바라보는 재미가 크다. 쏠쏠하지 않다. 에세이집을 냈을 때도 그랬다. 이러면서 혼자 정신승리하고, 멋있게 극복하는 것이다! 


오늘은 영화 <30일>을 봤다.  위에서 이야기했듯 금요일 기획회의 할 때,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의 황용식이 같은 캐릭터를 만들어보겠다고 했었는데, 이 영화가 딱 그 강하늘 표다. 강하늘의 매력은 그냥 바보같이 '나 너 좋아...' 헤벌레~ 하다가도 어느 순간, 잠깐, 아주 진지한 모습이 포착된다는 점이다. 그 짧은 순간이 몹시도 섹시하다. 그리고 늘 산 같이 그 자리에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을 품게 한다. 이 배우 강하늘은...

보는 내내 홍옥이 생각났다. 사과 종류 중에 가장 좋아하는 종이 홍옥인데, 얘가 매력적인 면은 잠깐 왔다 사라진다는 것이다. 일주일도 채 깔리지 않는다. 부질없는 인간의 기억... 홍옥은 내년에 또 오기라도 하지. ㅠ


오래 전, 그 사람이 보고 있든 아니든 한 사람을 위해 카카오스토리에 음악을 올린 적이 있었다. 왠지 보고있는 것 같아서. 오랫동안 그짓을 했는데... 그러면서 마음이 정리가 됐었다.  얼마 전 차단을 풀고 걔 뭐 하나 하고 봤더니 애를 벌써 셋을 낳았어!!! ㅋㅋㅋ  시간은 이렇게 신비하다. 

얘랑 헤어졌을 때 나는 놀이터에서 엉엉 울다가 모래판을 굴렀었다. 앞구르기, 뒤구르기... 데굴데굴... 걔는 그런 나를 가만히 퀭하니 보고 있었다. (오만 정 다 떨어진 거지) 그렇게 힘들게 헤어져놓고 지금은 웃으면서 차단을 풀고 그 친구의 근황을 보고 있다. 세상에... 얼마나 신비한가, 인생? 


이런 바보같은 경험 하나하나를 잘 모아서 꿰면 이게 바로 진정한 찌질한 리얼 로맨틱 코메디가 되는 것이다. 뭐 하나 헛된 경험이 있겠어? 이런 것이지... 이번에 다시 짜는 이야기는 그냥 심플하게 갈 것이다. 사랑에 직진인 여자, 캐릭터 제대로 강한 여자 한 명, 이혼도 여러 번했어. 이별의 슬픔을 몰라, 이 여자는... 이혼의 슬픔만 알지. 그런 여자가 또 다른 사랑을 만난다. 그런데, 이렇게 강력할 것 같았던 여자는 사랑에 몹시 주춤거린다. 그리고 능수능란하지도 않고, 자기 늪에 빠져 혼자 허우대다가 상대방 상처만 입힌다. 그러면서도 조심스럽게 삶의 우상향 그래프를 그리고 싶어, (상상 속의) 쪽팔림과 모멸감을 극복하고 또 한 번, 또 다시 한 번 노력하는 사랑스러운 인물로 그려보려 한다. 

지금까지 엎어졌던 캐릭터, 주인공 강토시 중에 가장 사랑스러운 것 같다. (물론 나랑은 진짜 다른 인물이다. 가장 다르다!) 


아아, 어떤 남자를 짝사랑했던 그때 올렸던 노래 중 하나. 진짜 지금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리는데 그때는 진심이었다. 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나는 30대였고... 이곡은 이번 기획안에는 꼭 넣을까 한다. 지금도 계속 웃음이 나와 죽겠네. 애가 셋이라니...  이하이의 <짝사랑>


https://youtu.be/huVScSAkU7A?si=tLmPxhWLKXc-Sdi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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