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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랑역 "곰 만두김밥한식"

만두엄마의 어글리 딜리셔스

by 황섬

만두라는 음식이 한중일에서는 모두 옛부터 늘 서민의 곁에 있어온 음식이다.

부자들은 만두를 즐겨 먹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서민들의 시장통 만두집에서 늘 하얀 김이 나간다.

숙대 앞에서 '구복만두'라는 이름의 중화식 만두집이 있는데, 만두에 깃든 의미를 아주 그냥 바로 갖다가 상호로 써버린 예다.

만두는 만두소를 포옥 만두피로 싸서 먹는 음식이니만큼 복을 꼭꼭 눌러 싸서 먹는 음식이라고 한다.

서민들 행복이라고 해봐야 무슨 큰 것이 있었겠나 싶다.

삼삼오오 빙 둘러앉아 만두 빚어서, 뜨거워도 쓰읍 쓰읍 김 내보내며 한 입 가득 욱여넣고 먹는 게 낙이었겠다.

그렇게 복을 싸서 먹는 음식이라니, 내 마음도 든든해진다.


초장부터 이리 서민 타령을 하는게, 오늘 가본 만두집이 정말 딱 서민들이 사는 동네에 들어서 있어서 그렇다.

"곰 만두김밥한식"이라는 간판을 내건 가게다.

네이밍부터 아주 장황하고, 뭔가 다듬어지지 않은, 사장님 하고 싶은 말 다 집어 넣은 것 같은 상호다.

1. 만두가 맛있고, 2. 술을 파는데, 3. 심지어 24시간 하는 집이라고 해서 대뜸 쫓아갔다.

그러다 주춤, 만두만 전문적으로 하는 곳만 다녀봐야 하는 거 아냐 하다가, 에라이~ 전문이 따로 어딨냐, 그냥 맛있게 만들면 만두맛집인 거지 하는 생각으로 머리털고 날아간 길이다.

간판부터 파란색, 문 앞에서 설치된 자판기를 보아하니 한두 해 장사한 곳 같지 않다.


자판기 두둥~!


이 동네는 분명 우리 옆 동네인데, 아주 낯설 정도다.

대낮이라 아직 가게문들도 열지도 않고, 사람들도 많지 않건만 왜 그렇게 펄떡이는 사람의 파워가 느껴지는지... 차에서 내려 좀 더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싶은 특이한 동네였다.

바로 중랑역 주변이다.

온갖 기름기 줄줄 흐르는 고깃집, 꼬치집, 순대국집이다 몰려 있다.

요새는 코로나 때문에 다들 잠잠했겠지. 그래도 왠지 조금 있다가 날이 어둑어둑해지면 삐까번쩍 불야성을 이룰 것 같은 느낌이었다.

요즘 교회당 예배도 자제하고, 성당 미사도 당분간 중지, 집회도 금지하고 있다. 일단 사람들 잔뜩 한꺼번에 엉켜 모이지 말라는 이야기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밀폐된 공간에서 신나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불토라며 여기만 별 세상 같다는 용산 지구대 경찰 아저씨의 글에 나오는 이태원 클럽의 요란함과는 전혀 다른 투박한 느낌.

딱 봐도 촌스럽고, 우악스러운 동네다.



들어가기 전에 가게 주변 요기조기 사진을 찍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아저씨가 바로 이러신다.

- 거, 사진을 왜 찍어요.

- 왜 요즘 사진 찍어서 많이 올리잖아요. 저도 올려드리려구요.


텔레비전이 켜져 있어서 시끄러워 안내한 자리 말고, 다른 자리로 옮기려 하는데, 아주 안 좋은 티를 낸다.

- 거기 앉지 말고, 거기 냉장고 있잖아요. 요리~ 요리~

- 니에.........................



정식명칭은 곰 만두김밥한식이다.



자리에 앉기 전 메뉴판이고 뭐고 좀 찍어볼라 하는데, 아저씨가 마스크 위로 도끼눈을 뜨고 나를 계속 주시한다. 뭐 어디 돈 떼어먹으신 데가 있는 것인가.

마음이 급해져서 사진도 제대로 못 찍고, 메뉴판도 이렇게 뚝 잘라서 대충 박아버렸다.

음식점에 돈 내고 들어와서 어처구니없게 불친절한 대접을 받으면 무척 억울하고 화난다.

일단 만두 먹어보고 그건 나중에 생각해보겠어.


김밥천국 못지 않은 수많은 메뉴들. 유후!



이 수많은 메뉴들 속에서 과연 우리의 만두 요리가 살아남을 수 있을지.

심지어 이 집은 저쪽 끝에 보면 좀 잘렸지만 소주, 맥주를 4000원에 판매하고, 북어국에 올갱이 해장국까지 만들어내는, 전형적인 '술집' 종목까지 갖추고 있다.





국수집을 가든, 분식집을 가든 이렇게 국물 하나 내주는 것 보면 좋다.

나는 요런 뜨거운 오뎅 국물, 우동 국물이나 육수를 좋아해서 음식 나오기 전에 세 컵, 네 컵도 마셔버린다.

아주머니가 쟁반에 받치지는 않았지만, 두 손으로 잡고 고이 내주신 곰집의 국물.

뜨거운 콩나물국 베이스다. 그냥 간장 넣어 만든 오뎅국물은 아니다.

이것이 곰 만두김밥'한식'집의 위엄일 터이다. 다른 찌개나, 국물 요리를 만들어내려면 이런 제대로 된 국물이 한쪽 구석에서 팔팔 끓고 있어야 할테니까 말이다.

아까 아저씨 때문에 상한 기분이 이 국물부터 되살아난다.

하아~ 고향의 맛.


두둥!


드디어 곰 만두김밥한식 집의 만두가 링 위에 올라왔다.

손으로 직접 빚은 만두다.

내가 무척 좋아하는 망향비빔국수집은 국물도 그렇고 국수는 물론이고 너무나 사랑하는 음식점인데, 아놔, 꼭 만두를 꼭 공장 고기 만두를 써서 섭섭했더랬다.

그런데, 여기는 이 수많은 메뉴들을 만들어 팔아야 한다는 부담감(?) 속에서도 만두피도 그렇고 정성스럽게 손으로 빚어내주셨다.

안그래도 냉장고를 보니 고기만두, 김치만두 따로 한 두 쟁반 정도가 미리 빚어져서 보관되어 있다.

그리고 그 밑에는 소주랑 맥주가 빼곡이 들어차 있다.

아저씨 눈치 보여서 물론 사진을 찍지 못했다.






김치만두부터 맛이 궁금해서 한입 베어 물고 있자니 텔레비전 뉴스에서 이런 소식이 나온다.

우리나라 최연소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 45일짜리 아가란다.

엄마가 확진인 상태에서 아기를 낳는 바람에 수직감염이 된 것인지... 아빠가 신천지 교인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니 이 음식점에 있는 모두가 탄식을 한다.

- 45개월이 아니고 45일이래?

- 웬일, 웬일, 웬일...

저 옆에서 아내되시는 분과 라면을 드시는 목소리 큰 아저씨는 지금 문재인이가 잘 하고 있는 거라면서 확진자 수가 우리나라가 왜 많은지 아냐며 한참을 설파하신다.

아저씨 비말이 앞에 앉은 어머님 라면에 다 투하될 것만 같아 보기 불안했다. 아저씨 제발...

코로나 바이러스는 이렇게 우리의 일상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위생과 감염에 대한 인식을 높여준 반면 매사에 불안, 의심, 혐오심을 가져다주었다. 어쩌면 연인과 하는 키스조차도 서로 불안해서 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기만두의 김치는 지금까지 먹어본 만두들 중 제일 김치맛이 강하게 큼큼하게 났다. 좋다.

그리고, 이집 만두의 특징은 만두소에 당면과 파가 들어갔다는 사실.

설렁탕에 들은 것이든, 잡채로 삶아냈든 일단 당면이면 모두 모두 좋아하는 나는 오늘 곰 만두김밥한식집의 만두의 소박한 맛이 참 맘에 들었다.

만두 8알에 4000원.

아직 저녁 안 되었더라도 만두 하나, 김치 하나 시켜서 소주 한 병 시원한 것 옆에 놓고, 누구 말 잘 통하는 사람한 명 불러내서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면서 나눠 먹었으면 좋겠다.

그동안 나 살아온 얘기 따로 설명 안 늘어놔도 다 아는, 그런 편한 사람 말이다.

한 번 앉으면 그냥 만두 다 식어버릴 때까지 수다를 떠는 바람에, 그 쯤 되면 "우리 다른 것 국물 시킬까?" 하는 센스를 지닌 사람이면 더더욱 좋겠는데.

나는 집에 김치 잔뜩 있고, 좀만 덜그럭거리면 만들어 먹을 수 있는게 김치찌개라는 생각이 들어서 밖에서는 굳이 김치찌개나 전골을 사서 먹지는 않지만, 여기에서는 그 다음 메뉴로 돼지고기 김치찌개를 주문할 것 같다.

만두소에 잘게 들어간 김치맛이 아주 좋은지라, 김치찌개에 조리되는 김치도 다를 바 없을 것 같아서 말이다.



흐미 이건 뭔 복병이여!



요리 뒤적, 조리 뒤적하면서 만두를 먹는 동안 다른 메뉴도 한 번 시켜보고 싶었다.

사진 촬영용으로 접시에 세팅된 것을 달라고 했다가, 다시 '이거 싸주세요~' 하면 아저씨한테 혼날 것 같아서 그냥 포장좀 부탁드린다고 했다.

그리고는 계산하러 카운터에 나가는데, 왜 떨리냐. ㅋㅋㅋ

현금 안 내고, 카드 내면 왠지 모르게 아저씨한테 혼날 것 같다. 그래서 현금을 꺼내서 계산을 했다.

- 만두 맛있었어요.

- 우리 26년째 하고 있는 가겝니다. 여기 이 자리서 쭈욱 해온 겁니다.


어랏? 아저씨가 갑자기 가게 부심을 털어놓기 시작하신다. 이럴 때는 원래 딱 자리잡고 앉아서 주인양반 이야기 들어주면 좋아라 하시는데...

- 저희 오래된 가게예요.

하면서 옆에서 김밥을 말던 젊은 여자분이 맑은 목소리로 거들어주신다.

따님인 줄 알았는데, 며느님이시란다.

보니까 홀에서 김밥 말이와 손님 맞이를 이 상냥한 며느님이 다 총괄하시는 것 같았다.

만두 에세이를 쓰고 있어서 이 집 맛있다는 이야기 듣고 쫓아왔다고 했더니 '어머, 정말요?' 하면서 반 팔짝팔짝 뛰며 활짝 웃으신다.

- 저희 만두 매일매일 손으로 직접 만들어요. 진짜 매일 만들어요. 제일 잘 나가요.


아무래도 이 집은 뭔가 이야기가 나올 것 같은 집인데... 아저씨 손을 보니 수많은 역사가 묻어있다. 딱 알것만 같다.


일요일 아점으로 훌륭한 만두 식사하고 돌아왔다.

곰 만두김밥한식 집은 친한 친구랑 같이 가서 진짜 맛있는 만두 한 접시 먹고, 또 다른 것 곁다리로 추가시켜서 술 한 잔 편하게 하고 오기 딱 좋은 집이다.

중랑역 바로 앞 큰길 가에 있다.


(번외편)

그나저나, 와 돈까스 왜이렇게 맛있어. 샐러드는 샐러드라 부르면 안 되겠다. 저건 옛날에 어려서 엄마가 해주던 '사라다'고, 돈까스는 두툼한 일식 돈까스를 7000원 가격에 기대하면 안 되는 것은 우리 모두 다 알고 있으므로, 상상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제일 맛있는 돈까스다. 적당히 불량한 기름맛에 소스에 눅진하게 녹은 튀김옷...
수줍던 '경양식'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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