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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동 "꼼수 없는 착한 만두"

만두엄마의 어글리 딜리셔스

by 황섬

토요일 아침.

노트에 적혀 있는 이런 저런 만두집 중에 한 곳을 가볼까 하는 생각에 아침 일찍 서둘렀다.


13.jpg 글씨는 뭐 그렇다고 칩니다.



어디부터 가볼까.. 하다가 보니 코로나 시국에 또 빨빨대고 어디 다니는 것도 마뜩찮은데... 하는 생각도 들고 마음이 복잡해진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마스크 잘 쓰고, 손 깨끗이 씻고, 사람 있는 데 가서 한 사람 더 늘리는 데에 일조하지 않는 것이겠건만, 혹시라도 손님이 안 들어 천근만근 무거운 마음이실 우리 자영업자 분들 생각하면...

밤새 뭐를 했는지 눈이 말똥말똥해 있는 딸내미 채비시켜서 마스크 단단히 둘러매고 떠났다.



먼저 우리집과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광장동 '꼼수없는 착한 만두'집을 오늘의 목적지로 잡았다.

11시 오픈이라고 한다.

아침에 빈둥빈둥 씻고, 설거지도 하고, 에잇! 아침 햇살 쨍하게 내리쬐는데 바닥 보니 머리카락들이 왜 이렇게 많이 보여? 하고 청소기 한 번 돌리고 출발하니 정말 딱 11시에 당도했다.


1.jpg 창문 너머로 청년과 어머니가 보인다.



우리가 첫번 째 손님.

30대 정도로 보이는 청년과 아주머니께서 주방에서 우리를 맞아주신다.

생김새를 딱 보니 아들과 엄마 같았다.

궁금해진다. 저 아드님이 엄마 아빠의 가업을 물려받아 하는 것일까? 이 만두집은 언제 부터 시작한 것일까?

이것저것 물어보고 싶은데, 처음 본 손님에게 미주알고주알 털어놓을리가 만무하다.

그게 참 호기심 대마왕 만두 엄마의 만두집 투어의 걸림돌일세.

여하튼 꼼수 없이 착하게 만든다는 주인장의 자부심이 담긴 만두를 먹어보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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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돌이는 이미 아침으로 지난 밤 배달해 먹고 남은 곱창 볶음을 두둑하게 먹고 온 터이다.

시장이 반찬인 것인데, 안타깝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딸은 만두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곰돌이는 내 딸이고, 내가 밥을 해 먹여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식성은 나와 몹시 다르다.

처음에는 아가 입맛이라 그렇겠지 했는데, 알고 보니 원인은 바쁜 엄마의 패스트 식단 때문임이 점점 자라면서 드러난다.

나야 김밥 좋아하고, 만두 좋아하니 아이들에게 바쁠 때마다 김밥집 들려서 한 줄, 두 줄씩 사 들고 시금치, 당근 빼고(애들이 다 골라서 퉤퉤 뱉으니까..) 입에다가 욱여넣어 한 끼 채우거나 냉장고에 쟁여두었던 만두를 꺼내서 삶아주곤 했었는데, 그게 그렇게 질렸었나 보다.

나나 김밥, 만두가 맛있지, 아이에게는 평생 입맛을 좌우해버리는 결정타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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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글씨로 쓴 정겨운 안내문이 붙어 있다.

그런데, 내가 이 안내문을 후뚜루 마뚜루 읽는 바람에...

고기만두가 기본으로 나간다는 말은 만두 하나 주세요! 하면 고기만두 한 접시가 나온다는 뜻이다.

만두국 하나요! 또한 만두국 안에 만두들이 모두 고기만두라는 얘기이므로, 김치만두 매니악들은 필히 김치만두로 달라고 하든지, 혹은 "김치 대 고기 만두 알 갯수를 정확히 말씀"드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집 김치 만두의 신비를 맛보지 못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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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만두의 기본찬이다.

위의 안내문에 나와 있는 '직접 만든 피클(간장소스)'이 바로 저 오른쪽 양배추 피클이다.

어떤 집 고기만두나 모두 마찬가지이듯, 만두만 먹으면 느끼해지기 때문에 그걸 뭔가 상큼한 매운 맛으로 잡아주어야 하는데, 그 역할을 충실히 할 피클을 개발하신 듯 하다.

잘게 썬 양배추에, 청양고추, 양파 등이 들어가 있고, 단맛 끔찍히도 안 좋아하는 내가 부담없이 먹을 정도였다.

그리고, 깍두기!

첫 입 먹었을 때에는 큼큼해서, 별것도 아닌 주제에 김치 입맛 더럽게 까다로운 나는 흐음.. 하고 젓가락을 내려놓았더랬다.

그런데, 막상 고기만두가 나오고, 만두국이 나오고... 오히려 피클보다 더 손이 많이 갔던 것이 저 깍두기이다.

진짜 집에서 담근 깍두기 맛인데, 김치라기 보다 짠지의 형태이다. 그래서 큼큼함이 더했던 듯 하고, 묵직한 고기만두랑 함께 먹으면 환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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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음식이 나왔다.

만두국 하나, 접시 만두 하나.

위에서도 이야기했듯 나는 김치만두 섞어달라는 주문을 하지 않았기에 정직하게 고기만두 스트레이트로 테이블 위에 올라왔다.

만두국의 국물은 사골국물로 잡으신다고 한다.

그러나, 한겨울 집에서 끓인 사골국물 뽀얀 것을 생각하면 안 되고, 맑은 국물이다. 먹으면서 사골에 물을 좀 많이 넣으셨나, 아님 우리가 첫번 째 손님이라서 그런가 할 정도로 맑다.

테이블 옆에 비치된 후추 팍팍 넣어서 먹으면 처음에는 숟가락으로 국물 떠먹다가 나중에는, 또 우리 한국사람들 국물은 손으로 그릇 들고 후루룩 넘겨야지, 두 손으로 고이 들어 그릇에 얼굴을 박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참 맛있다.



10.jpg 냠! 한 입 베어물고.


고기만두는 딱 집집마다 만드는 그 방법대로 만든다.

우리동네 만두집 만두박사가 소에다가 두부를 넣지 않고, 고기만으로 빚어내는 반면에 착한만두는 두부, 숙주, 부추, 고기 등 집에서 옛날 할머니나 엄마가 넣던 재료 그대로 넣어서 만든다.

숙주가 아삭하다, 만두피의 식감이 어떻다 논하기 전에 한입 베어물면 그냥 육즙 나오고, 담백하게 맛있다.

그럴때 저 위에 깍두기나 피클 한 입, 냠.

왕만두인지라 크기는 매우 커서 내 한입에 다 들어가지 못한다.

성격이 급한지라 내 앞에 아무리 주지훈이 앉아있다 하더라도 한입에 다 쓸어넣어 먹는 습관이 있는데, 착한만두는 내가 두 입에 나누어 먹었다.

먹다 보니 아... 김치 만두 아쉬워서 포장을 하나 부탁드렸다.


11.jpg 집에 와서 찍은 사진이라 살짝 김이 빠진 상태이지만 여전히 따뜻하고, 윤기가 흐른다.


미리 계산을 하면서 요모조모 궁금한 것을 여쭤봤다. 홀에 손님이 우리 밖에 없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두 분은 모자지간 맞으시고, 만두집 차린지는 9년차시란다.

생각보다 만두집 경영기간이 짧아서 그럼 그때 처음 만두 배우신 거냐고 했더니 맞다고 하신다.

부모님이 하던 만두집이 아니고, 9년 전 새로 만두를 배워 차린 것.

아드님도 아드님이지만, 어머님이 그렇게 새로 음식 배워 장사하시는 것이 쉽지가 않았을텐데...


여하튼 만두 시리즈 쓰면서 너무 취재에 집착해서 본연의 만두맛을 놓치지는 말자는 결심을 했었기에 거기까지만 여쭈었다.

내가 좋아하는 만두를 찾아가서 먹는 것만으로도 신나는 일이다.

거기에서 뜻밖의 만두 장인들을 만나 이야기를 풀 수 있으면 고마운 것이고, 아니면 그냥 만두에 초집중하기로 한다. 그리고, 줄 세워 평가도 하지 않을란다.

그놈의 별점 평점이야 여기저기서 많이 당하고(?) 계실 터.

나까지 거기에 숟가락 얹을 필요 있나 싶다.


12.jpg 김치 만두 요거 별미일세!


만두집을 나와 마트에서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오니 벌써 또 출출해진다.

대충 냉장고 정리를 하고 궁금하고 아쉬웠던 김치만두를 한 입 베어물어본다.

아. 김치 꽤 칼칼하다.

김치만두 안에는 당연히 부추가 들어갈 새가 없다. 그리고, 고기도 넉넉히 들어가 있고 말이다.

나는 김치만두 매니아다.

특히 아주 매운 김치 만두를 찾아 홀린 듯 쫓아다니는 만두 덕후인데, 착한만두의 김치만두 또한 향후 만두 덕질에 꽤 이바지할 듯 하다.



안 그래도 김치만두 안에 익은 김치를 넣느냐, 생김치를 넣느냐. 이 궁금증을 오늘 아침에 풀었다.

지나가다 보니 시장통 '만두박사' 아저씨가 일찍 가게 나와 계시길래, 만두국용 만두 한 봉다리 사면서 정확히 물어봤다.

정답은 생김치.

제일 맛있는 것은 집에서 먹는 김치처럼 김치를 담근단다. 그래서 그것들을 '살살 꺼내서 물에다가 씻어불고' 잘게 썰어 넣는 것이 최고라신다.

집만두들은 한 겨울에 김장김치 푹 익은 것들 물로 씻어서 총총 썰어서 고기랑 섞어 소로 만들기에 당연히 만두소는 익은 것을 쓰는 줄 알았더니 그것이 아니었다. 익은 김치를 쓰면 쉽게 상한단다.

두부나, 숙주를 넣어도 신선도 유지하기가 퍽 어렵다고 하신다.

그런데, 착한만두의 김치만두 또한 담금 김치로 만든 듯 한데, 물로 싹 씻어내지 않아 칼칼함을 유지해준 것이 신의 한 수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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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만두의 메뉴판이다. 왕만두 다섯알에 7000원 정도면......

블로그를 훑어보니 여기 별미가 냉만둣국이라고 널리 알려졌는데 뜨시뜨시 맛이라고 한다. 뜨거, 시원, 뜨거, 시원...

가게 내부는 아주 넓지는 않다. 테이블도 한 3-4개 정도 되었던 듯 하다.

워커힐 호텔 올라가는 대로변, 푸르지오 아파트 쪽에 자리하고 있다.

무뚝뚝한 아드님과 말수 적은 어머님이 운영하는 만두집 '꼼수없는 착한만두'에서 잘 먹고 돌아왔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지금 대구 쪽 사망자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는 속보가 지금 이 글을 쓰는 동안도 뜬다.
마음이 많이 무겁다.
얼른 이 사태가 진정이 되어서 다 같이 신나게 먹방도 올리고, 봄꽃소식도 전하고, 새로 산 봄옷 사진들도 다들 설레며 뽐내보면 좋겠다. 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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