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황섬 Jan 23. 2024

반찬

이번 생, 음식 솜씨 없는 엄마를 만났을 때 

엄마가 지난 연말 넘어지시는 바람에 손목을 다치셨다. 그것도 오른쪽 손목인지라 불편함이 이만저만이 아닌가 보다. 46년 생이시니 연세가 일흔 여덟, 나도 한 오십 년 살면서 엄마가 어딘가 크게 다치는 걸 본 적이 없는데 깁스라니...

엄마에게 부러진 팔목이야 곧 붙는다며 반찬을 좀 갖다 달라고 전화가 왔다. 반찬은 주로 사 먹는데, 배달시켜 먹는 곳이 주인이 바뀌었는지 근래 급격하게 퀄리티가 떨어지고 날림으로 장사를 해서 시장에 내가 직접 가서 사가지고 와야했다. 부랴부랴 시간을 내서 가보니 마침 엄마가 좋아하는 반찬이 없다. 


엄마가 좋아하는 반찬 

엄마는 요리솜씨가 없다. 내가 너무 기준이 높은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어린 시절부터 너무 자주 그것도 호되게 당해서(?) 머릿속에 그렇게 각인이 되어있다. 

요리사가 아닌 이상 누구나 다 그렇지만, 엄마는 만들어본 것만 만든다. 그래서 나를 포함, 아이를 두 명 키운 엄마는 떡볶이를 한 번도 만들어본 적이 없다. "우리도 떡볶이좀 만들어주세요!" 하고 부탁을 해본 적은 있는 것 같은데 해주신 적은 없다. 

대신 엄마의 레파토리가 있으니...  

그것은 우엉 조림. 연근 조림. 콩자반. 시금치 나물. 콩나물 무침. 이 네 가지 반찬이다. 여기에 하나 덧붙이면 오징어 반찬 정도? 



나 어릴 적 학교 다닐 때는 고등학교 3학년 졸업할 때까지 점심 도시락을 집에서 싸가지고 왔었다. 지금 생각하면 아이가 외동인 집도 드물었고, 적어도 둘셋 고만고만한 아이들이 있는 집에서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매일 도시락을 싸는 일도 보통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아침잠이라도 많은 엄마들(지금도 그렇지만, 음식 담당은 주로 엄마이었기에...)은 그 시간이 진정한 전쟁의 시간이 아니었을까. 

열 살, 3학년 때 도시락을 챙겨가기 시작할 때부터 고3까지 나는 이 '반찬' 때문에 엄마와 수십, 수백 차례를 싸웠다. 

엄마는 엄마가 좋아하는 반찬인 우엉과 연근조림을 거의 매일 싸주었고 '어른의 반찬'인 그것을 좋아할 리 없는 나는 손도 대지도 않았다. 물론 함께 밥을 먹는 친구들에게도 이 반찬은 인기가 없었다. 

그런데, 이 반찬들이 조용히 인기만 없으면 되는데, 검은색 간장 국물이 밥까지 밀물 때처럼 흘러들어와 내 밥은 미리 시커멓게 간장 비빔이 되어 있었다. 그것이 어린 마음에 너무 창피했다. 그래서 도시락 뚜껑 열기 전에는 가슴이 콩닥콩닥 뛸 정도였다. 게다가 콩자반은 어금니가 부러질 정도로 딱딱했다. 일부러 그렇게 만들려고 해도 못 만들겠다. '진미채'라고 부르는 오징어 반찬도 한 가닥 집어가지고 밥 한 그릇 다 먹을 수 있을만큼 딱딱했다. 그래도 시금치 나물을 하던 날은 나보고 예뻐지라며 시금치 데친, 모락모락 김이 나는 초록색 물을 세숫대야에 부어주던 기억이 좋다. 


'나도 소세지에 계란 부친 것좀 도시락으로 싸오고 싶은데... 그래서 친구들이 우르르 와서 와! 하고 감탄 좀 해줬으면 좋겠는데...'

그래서 지금도 나는 냉장고에 가끔 분홍 소세지를 사서 쟁여놓고는 반찬으로 해먹는다. 



2024. 1. 23. 현재 우리집 냉장고 둘째 칸. 

그런데, 참 재미난 사실은... 

어린 시절, 엄마표 도시락이 그렇게 싫고 창피했던 내가 커서 엄마가 되고 보니 또 내가 좋아하는 반찬 위주로 밥상을 차리고 있더라는 것이다. 나는 그나마 엄마처럼 심하지는 않고, 아이들의 식성은 아주 잘 파악하고 있다. 딸은 엄마표 밀떡볶이가 제일 맛있다고도 한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흘러간다. 단적인 예를 하나 들자면, 우리 아이들은 학교 급식에서는 먹어봤을 지는 몰라도, 집에서는 단 한 번도 오징어 볶음을 먹은 적이 없다. 낙지 볶음은 먹었을지언정. 이유는 가지, 우리집 요리사인 엄마(나)가 좋아하는 음식이라... 이렇게 된다. 웃음이 난다. 


그리고 이렇게 추운 겨울이 되면 엄마가 담근 그 쿰쿰하고, 짠 맛 없는 동치미가 가끔 떠오른다.

엄마는 반찬이 너무 맛이 없는데도 "맛 있지? 어때, 맛 있지?" 하면서 밥상 여론을 형성해서 아이들을 그 자리에 앉혀 불평 없이 먹게 하는 재주가 있었는데, 이 동치미를 먹던 '그날'도 그랬다. 


1985년 겨울, 이모부가 젊은 나이에 사고로 돌아가시는 바람에 이모는 장례식장에 가 있던 날이었다. 그집 어린 아들 두 명, 즉 내 사촌동생들이 우리집에 며칠 지냈다. 그때 왕이모인 우리 엄마가 잠깐 집에 들러서 점심 밥상을 차려주었는데, 일곱 살로 어렸던 막내 동생이 에풰풰풰! 하면서 동치미, 밥상에 하나 달랑 있는 그 반찬을 맛 없다고 뱉어내는 것이다. 엄마는 "그냥 먹어! 맛있는 거야."로 한참 자라나는 네 명의 어린이들을 일단 회유했다. 

그랬더니 그 당시만 해도 세상에서 최고로 까불이에 거짓말쟁이(한참 거짓말을 할 때다, 아홉살, 열 살...), 살살이였던 큰 사촌 동생이 동생 밥을 뺏으며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 형은 이 동치미 되게 맛있는데? 맛 없으면 너, 먹지 마. 형이 먹을게. 


지금 생각해보면 이 장면은 마음이 몹시 아린다. 그 까불이가 갑자기 어른이 된 것, 상황을 파악한 것이다. 지금 이모 말씀 잘 듣지 않으면 안 된다. 앞으로는 엄마 말씀도 더 잘 듣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맛없는 동치미라도 일단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하고 먹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그 동치미는 누가 먹어도 너무 푹 익고 짰으니까. 


그런데, 묘하게도 가끔은 그 동치미가 생각난다. 밥 뜨뜻한 보릿물에 말아서 하얀 동치미 무우 올려 한 입 찢어져라 먹었으면 좋겠는데... 



그러면 이렇게 내 어린 시절의 기억의 큰 부분들을 차지하고 있는 이 '반찬'이라는 녀석은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서 한식에 대한 직관을 살펴봤다.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분들에게도 '한식', 한국음식' 하면 떠오르는 것은 무얼까요' 하고 물어보면 대번에 김치! 라는 대답이 나올 것이다. 


절임 채소인 김치, 김치는 외국인들에게 아주아주 독특한, 심지어 나라의 식생활을 넘어 '문화'가 거대한 의미를 지닌 피클의 한 종류가 아닐까 싶다. 

나는 김치를 유난히 좋아해서 배추김치 한 3킬로 짜리 주문을 하면 우리집은 한 달 반도 안 되어서 다 먹는다. 달랑무나 깍두기까지 함께 구비해서 먹는데도 그렇다.


파스타집에 가도 굉장히 공손하게 여쭙는다. 

-혹시 김치 없을까요? 조금 얻어 먹을 수 있을까요?

짜장면집에 가도 이 김치 백퍼 중국에서 넘어온 것, 아는데도 먹는다. 물론 옆에 단무지와 양파가 든든하게 버텨주고 있지만... 


이렇게 탄수화물을 먹을 때마다 절임채소를 먹는 민족은 한국 밖에 없다. 

파스타의 본고장 이태리도 스파게티를 먹을 때 피클을 먹지 않는다고 한다. 피클은 전채 요리 정도로만 대접을 받는다고. 게다가 일본의 라멘집에도 단무지가 없다. 다꾸앙 주문을 해야 나온다. 아니, 라면 먹는데 김치나 단무지는 필수가 아니었나. 어떻게 밥을 먹는데, 김치를 안 먹을 수 있단 말인가! (적어도 나는 그렇다!)


그 다음에 떠오르는 것이 바로 '반찬이 많다'는 사실이다. 

한정식에는 반찬이 최대 서른 가지 정도까지 차려져 나온다. 특히 전라도 쪽에 가면 한 번 더 말 하기도 식상한 '상다리가 부러진다'는 표현이 안 나올 수가 없이 푸짐하게 한 상 나온다. 그리고 그쪽 '손맛'은 지역의 자부심이기도 하다. 

한정식의 반찬을 살펴보면 어느 집에는 마요네즈로 버무린 마카로니 사라다도 나온다. 나는 오이에 당근 총총 썰어서 버무린 이 마카로니를 만나면 얼마나 반가운지 모른다. 맨 먼저 숟가락을 들어 살짝 떠서 먹으면서 식사가 시작된다. 아니면 햄버거 패티 같은 고기도구워져 나오기도 한다. 

이렇게 한식은 다른 나라 음식에 대한 포용도가 넓다. 

꼭 나물 무침, 김치에 국, 불고기...이렇게 정통 한국 음식만 고집하는 것이 아니다. 


보통 밥 한 공기를 먹는다고 하면 우리는 보통 12 ~ 20번에 나누어 먹는다. 

집에서 식구들이랑 밥을 먹을 때 반찬 반찬 대여섯 가지 놓고 먹는다고 쳤을 때를 상상해보자. 

반찬으로 시금치 나물, 소세지 부침, 감자 사라다, 배추 김치, 멸치 볶음, 미역줄기 볶음이 놓이고, 미역국에 밥이 나왔다고 했을 때...

여러분은 맨 처음 밥 첫술 떴을 때 어떤 반찬을 집어 들고 싶은지. 각자 생각을 해보자. 


나는 아마 밥을 한 술 뜨고, 본능적으로(!) 이 밥상의 '메인'이라고 눈에 들어오는 소세지 부침을 한 입 먹고, 바로 김치에 손이 갈 것 같다. 아마 어떤 분은 국부터 뜨고 밥을 말든지 혹은 밥 한 술 떠서 바로 나물부터 천천히 음미하실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사람마다 반찬 먹는 순서와 종류, 겹쳐 먹는 종류가 다 다르다. 매일 먹는 밥에 같은 식사가 없다. 

하물며 집에서 서너가지 반찬 놓고 먹는 경우도 이럴진데, 한정식 제대로 차려진 데에서라면 각자가 느끼는 맛의 경우의 수가 엄청나게 늘어난다. 

이것이 바로 한국 음식, 반찬의 신비(?)다. 


서양 음식은 식탁의 모든 식구가 똑같은 음식을 먹는다. 다르게 먹을 방도가 없다. 개인 접시에 담긴 음식은 변화의 여지없이 그대로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각자 앞에 주어진 밥을 기준으로 삼아, 먹고 싶은 반찬을 마음대로 입에 넣어 새로운 맛을 만들어내는 한국적 식사법은 한식 세계화의 숨겨진 무기일지도 모른다. -박찬일 셰프( 조선일보 칼럼 2010.08.25.) 


서양의 식사는 코스로 나온다. 다음 접시 나오면 얼른 한 접시 먹어야지,  안 그러면 치운다. 물론 일반 가정에서도 제대로 격식 갖추어서 음식 하나 하나 차례대로 부엌에서 내오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내가 경험한 바대로라면) 전채 요리와 중간 요리(메인 요리), 디저트 이렇게 3부로 나뉘어서 나온다. 사람들은 한 식탁에 앉으면 거의 매 입, 같은 음식을 먹는 것이다. 


서양식은 시간차 식사라고 해서 코스 요리라고 알려져있지만 그렇게 된 데는 100년 도 채 안 됐다고 한다. 

그러니까 서양의 식탁도 우리와 같이 한 공간에 좌르륵 펼쳐놓고 먹는 형태였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랑 다른 점은 메인 요리가 따로 없다는 것. 밥도 그들에게는 그저 많은 음식들 중에 하나일 뿐이다. 

아주 아주 옛날에 캐나다에서 '크리스마스 터키'를 먹었던 기억을 더듬어봤다. 물론 그날 식탁의 주인공은 당연히 터키, 칠면조 구이였다. 그런데, 옆에서 주로 남자들이 칼을 쥐고 썰어서 각자 접시에 옮기고 난 뒤 식사가 시작 되면, 칠면조는 그날의 메인 음식이라기 보다 접시에 담긴 맛있는 크리스마스 디너 음식들 중 하나로 변신했다. 

반면에 우리나라의 음식은 강력한 메인 요리가 가운데에 놓이고 주변에 반찬들이 자리잡는다. 

된장찌개, 김치찌개, 불고기 전골, 하다못해 혼자 먹을 때 가운데에 햄 구워 놓아도 그게 메인이 된다. 한국인들은 메인 요리와 반찬들 사이를 오가며 본능적으로 균형을 잡으면서 식사를 한다. 

이런 특성들 덕분에 우리 한국사람들은 일 났다 하면 똘똘 뭉쳐서 단결 단합도 잘 하지만(오죽하면 한국인들 취미가 극난 극복이겠나) 개성 또한 엄청 강하다. 똑같은 것 강요하는 것도 싫어한다.  

그림을 그리면, 우리나라 학생들의 물감이나 크레파스 숫자도 제일 많다고 한다. 이렇게 자기가 먹었던 고유한 맛을 기억하면서 감정, 생각, 혀가 반응한다. 




일본의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 한국 편을 보면 고로상이 한국에 왔을 때  전주 비빔밥집에 간다. 

일단 어마어마한 반찬 가짓수에 놀란다. (한정식에 비하면 별 것도 아니구먼. 껄껄) 



그리고 커다란 그릇에 준비된 나물을 넣어서 비벼 먹는 방법을 배운다. 계란 후라이도 위에 얹어서 찢어먹기! 비빔밥에는 계란 후라이, 주로 반숙을 얹어서 숟가락으로 노른자는 터뜨려 밥알을 코팅하고, 흰자는 그냥 그 맛대로 으깨 먹는다. 




으아아~ 고로상!!! 김치는 집어넣지 말아요.


그런데 한국인들도 비빔밥은 쌈 싸 먹지 않는데요... ㅋㅋㅋ 


한국의 대표 음식 중 하나가 '비빔밥'이다. 

모든 반찬을 아우르며 우리 음식 중심에 당당히 서 있는 밥, 모든 것과 함께 섞여 수많은 맛의 화음을 만들어내는 밥은 그래서 더 위대하다. 

오늘은 매 끼니 비빔밥을 먹는 듯한, 본능적으로 믹스 앤 매치가 횡행하는 우리들의 밥상을 한 번 돌아보았다. 

다음 연재글은 도대체 무엇을 써야할 지 잘 모르겠다. 

밥, 반찬... 나왔는데 또 뭘 쓰지. 




멸치 탕후루 짤을 보니 돌아가신 울 할머니의 진미채 탕후루가 그립다. 어찌나 딱딱하게 만드셨는지 진미채가 한 덩어리가 되어서 젓가락이 부러질 정도였었지. 


오랜 sns 친구분의 글이다. 

나는 엄마의 그 치아파괴의 전설, 그 딱딱한 진미채를 보면서 그렇게 짜증을 냈었는데... 이 분은 탕후루라는 표현을 썼다. 얼마나 다정한지. 

양푼에 뜨거운 밥 퍼다가 그냥 통째로(정말 진미채가 반찬통 모양 그대로 나옴) 부어서 녹여내고 비벼먹어야 했다는 이분의 이 반찬에 대한 기억은 '그리움'이었다. 

이전 01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