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걀말이, 같이, 사는 우리들
달걀말이, 같이, 사는 우리들
우리집은 아들의 편식이 원체 심해서 단백질 섭취할 방법은 지난 10년 간 오로지 달걀뿐이었다.
(혹시 버릇 잘못 들였다고 오해하시는 분이 계실까... 잠시 알려드리자면, 자폐아들의 특성 중 가장 두드러진 것이 청각과 미각이 예민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쩌면 엄마가 너무 힘들다고 해서 버릇 잘못 들였을 가능성도 있음. 찡긋. >.< )
사진은 어린이집 시절, 김장을 담그다가 빨간 김칫소를 보고 오열하는 모습. 사실 지금도 김치를 먹지 않는다. 아무리 '이렇게 맛있는 김치를~ 혜성이는 맵다고 안 먹어~ 형님은 김치를 좋아해. 매워도 잘 먹지요~' 하면서 동요의 가사를 바꿔서 아무리 불러줘도 끄떡도 없다.
상황이 이러한지라, 달걀은 갑자기 똑 떨어져서 급한 상황 아니면 되도록이면 좋은 것을 사서 먹으려고 한다. 그리고 냉장고 안 달걀 넣어두는 칸은 늘 넉넉하게 채워두어야 안심이 되고, 부자가 된 것 같은 느낌마저 들기도 한다.
그렇다면 '좋은 달걀'이란 무엇인가. 사실 닭이 낳은 알인 데다가 겉으로만 봐서는 구분을 할 수도 없다. 과일처럼 향기도 나지 않고, 채소처럼 상태가 시들한지 싱싱한지마저 구분할 수 없다. 그래서 결국은 달걀의 엄마인 닭, 산란계가 얼마나 행복했는지, 건강한 지가 관건이다. 그리고, 달걀의 색깔도 결정한다.
먼저, 지금은 많은 분들이 많이 알고 계시지만 혹시나 하여 달걀 위에 찍힌 번호, 난각 번호 보는 법에 대해서 알려드린다.
달걀의 맨 앞번호 네 자리는 산란 날짜다. 아무래도 최근 날짜와 가장 가까운 날짜를 고르는 것이 싱싱할 것이다. 그리고 가운데 다섯 자리는 농장 고유번호. '닭. 오리. 계란 이력제'라는 사이트나 어플로 들어가 검색을 하면 어느 지역의 어떤 농장인지 다 나온다.
마지막으로 가장 유심히 보는 것이 맨 마지막 번호 사육환경이다.
보통 1번은 시골에서 '누구야~' 하고 이름 불러가면서 키우는 곳에서 나오는 뜨끈뜨끈한 달걀들이다.
한때 유정란을 보내주시는 곳이 계셔서 받아서 먹어본 적이 있었는데 굉장히 신선했다. 날달걀밥을 노른자만 뚝 떼어서 간장에 비벼 놓으니 (흰자가 함께 들어가면 맛이 비리다) 와, 천상의 고소함이라고 표현하면 좀 호들갑일까. 하나도 비리지 않고 맛있었다.
하지만, 요즘 시중에서는 1번 달걀을 따로 만나기가 어렵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나는 2번 달걀을 구매해서 먹는다. 그리고 3,4번으로 갈수록 닭들의 활동범위는 조금씩 좁아지겠고, 창문이 얼마나 하나씩 있는가도 사육환경에 기준이 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 40대 혹은 그 윗세대 독자들은 아마 기억할 것이다. 우리나라에 파는 달걀이 원래는 갈색이 아니고 하얀 것이 압도적으로 많았던 것을. 갈색 달걀은 국산, 흰색 달걀은 외국산, 그래서 갈색이 더 영양가가 높은 것으로 한동안 잘못 알고 있기도 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갈색 달걀과 흰 달걀은 알을 낳는 닭의 품종에 따라 다르며, 영양가는 하나도 차이가 없다. 80년대까지만 해도 산란계 열 마리 중에 아홉 마리가 흰 알을 낳는 품종이었는데, 이후로 갈색 품종이 많아지면서 나라에서 갈색 달걀 구매를 장려하려고 그렇게 마케팅 포인트를 잡았다는 웃픈 이야기가...
사람의 취향이나 구매 습관이 얼마나 단단한지, 사실 지금도 나는 마트에서 가끔 하얀 달걀을 보면 이제는 손이 잘 가지 않는다. 일본 여행 갔을 때도 마트나 편의점에 가 보면 하얀 달걀을 판매하는데 그것도 일본이니까 어쩔 수 없이 집었던 터였다.
그리고 다른 점이라고 하면 달걀 껍데기가 갈색은 평균 0.6mm 정도로 흰색 달걀보다 0.2mm 정도 두껍다는 것 정도. 그래서 흰 달걀은 유통 과정에서 더 많이 깨지기도 하지만 빵, 과자 등의 가공품 생산에는 훨씬 수월하다고 한다. 하긴 수백, 수천 개의 달걀을 깨어 넣어야 하니 그 얇디얇은 2mm 차이도 대량으로 가면 엄청나게 수고를 덜어줄 것이다.
우리집의 달걀은 1월 31일에 이 세상에 온, 2번 달걀이다. 신순재 님이 생산자이다. 참고로 한살림은 끝번호 2번 유정란만 취급한다.
열한 살, 4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달걀에 얽힌 일화를 이야기해 주신 적이 있다. 결혼 전 총각이었던 선생님의 어머니가 옆 동네에서 일을 해주고 삯으로 달걀을 받아서 오셨단다.
그때는 계란이 아주 귀했던 터라, 와 오늘은 저녁으로 달걀 후라이를 해 먹을 수 있겠구나, 횡재했네, 하는 생각으로 신이 났었단다. 게다가 그때는 날이 아주 더운 한 여름. 달걀 후라이로 뚝 떨어진 입맛을 끌어올리려고 후라이팬을 곤로에 올리고 계란을 탁! 깨어 넣는 순간...
으악!!!
반쯤은 형태를 갖춘 병아리가... 흰자위 위에 누워 있더란다.
당시 이 이야기를 듣고, 나는 병아리의 까만 눈까지 상상이 되어서 끔찍했다. 아니 어쩌면 선생님께서 묘사를 해주었을 지도 모르겠다. 벌써 한 40년이 된 이 이야기가 나의 뇌리에 남아 아직도 '유정란'이라는 말만 들으면 껍질을 깨는 내 손은 살짝 복불복 게임을 하는 듯한 쫄림이 느껴진다.
이러니, 어린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어린 시절 한 번 들은 이야기는 이렇게 평생을 간다. 아마 나는 지금도 그렇지만, 나중에 죽기 직전까지도 유정란을 후라이팬에 깰 때는 살짝 손떨림 증세가 늘 함께 할 것이다.
다행히 아들은 요즘 달걀 후라이 외에도 구운 고기에 적응해서 단백질을 충분히 보강하기 시작했다. 더 다행인 것은 나도 달걀 요리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달걀 하나로 수십, 수백 가지의 요리를 해낼 수 있다고 하지만 그래도 가장 기본은 이 정도 아닐까?
포치드 에그는 팔팔 끓는 물에 퐁당 담갔다가 건지면 되는데, 만두 세 알 정도와 함께 끓는 물에 집어넣었다가 건져서 커피와 함께 곁들여 먹으면 훌륭한 아침 한 끼가 된다.
이중에서도 단연 조리하기 어려운 것은 삶은 달걀과 이 사진에는 나와있지는 않지만, 계란말이 아닐까.
다들 만드는 방법이 다르지만, 나의 달걀 삶기는 다음과 같다.
1. 달걀을 상온에 꺼내놓는다. 혹은 물에 잠깐 담가놓는다.
2. 강불로 팔팔 끓여서 7분 정도면 반숙. 12분 정도면 완숙.
3. 참고로... 소금이고 식초고 별로 영향이 없었다.
4. 삶고 난 후, 찬물로 씻기.
이렇게 전 지구인 다 아는 기본적인 달걀 삶기 방법임에도 불구하고 왜 그리 껍질만 벗기면 한숨이 쉬어지는지... 아직도 삶은 달걀은 익숙하지 않다.
나는 한국 사람이라 그런지 도저히 폭신하고 달짝지근하게 부친 일본식 계란말이는 적응이 잘 안 된다. 계란 말이 안에 청량고추도 좋고, 쪽파, 당근, 표고버섯 등등 잔뜩 때려놓고 부서질 때 부서질망정 먹기 좋게 구워내는 것이 좋다.
사실, 계란말이 반찬은 밥상 위에 올라오면 다들 와~ 소리 한 번씩 내고 이내 '메인 요리'로 등극하여 첫 젓가락질에 가져가는 것이 대부분인 인기 만점 반찬인데, 이상하게 나는 좀 어설피 살림하는 엄마라 그런지, 집에서 자주 만들게 되지는 않는데, 오늘은 굳이 집에 가서 구워봐야겠다.
달걀말이 부치는 방법, 대부분 아시겠지만 팬에 달걀물을 다 붓지 않고 앞에 카펫처럼 구워진 부분 뒤에 조금씩 부어가면서 돌돌 말아 완성한다.
그런데, 그게 말이 쉽지 사진처럼 깨끗하게 완성되지 않는다. 말다가 중간에 찢어지기도 하고, 손놀림이 빠르지 않으면 일부가 타기도 한다. 게다가 멍석처럼 기껏 말았더니 안의 달걀물이 다 익지 않아서 밖으로 삐져나오기도 한다. 김밥 옆구리만 터지는 줄 아나? 달걀말이 옆구리는 더 잘 터진다.
그런데도 결국 마지막에 가면 겉모습은 사진처럼 어떻게든 예쁘게 구워진다. 나 같이 실력이 형편없는 사람들의 계란말이도 안은 엉망일지언정 겉은 예쁘게 나온다. 맛있게 먹는 데에도 전혀 지장 없다.
조마조마해가면서 다 부치고 나서 접시에 옮겨 담으면서 몇 번 웃은 적이 있다. 달걀말이 부치는 것이 참 사람 사는 것 같아서 말이다.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이거 펑크 나면 달려가서 막고, 저거 무너지면 또 굴러가서 처리하고... 그러면서도 결국 다 잘 구워진 달걀말이 겉모습처럼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웃으면서 또 살아낸다. 그리고 또 n번 째 계란말이 인생을 계속해서 말겠지.
아, 제일 맛있는 달걀말이 간은 달걀 5개에 액젓 1숟가락이다. 내게는 소금이나 간장으로 맞추지 않아도 이 배율이 참 맛있는 배율이었으니 각자의 입맛에 맞는지 한번 실험해 보자.
마지막으로 그동안 내가 찍었던 사랑하는 달걀 요리들의 사진 대방출하고 마무리하겠다. 보는 여러분들도 군침 대폭발하길 바란다. 그게 바로 내 <어글리 딜리셔스> 브런치북의 목표이기도 하다.
이야기 한 자락
한 아이가 있었다. 아이는 친구들과 함께 학교에서 달걀에 대해 배우고, 시험을 봤다.
'그림과 같이 두 개의 달걀이 있습니다. 어느 쪽 달걀을 선택하여 먹겠습니까?'
다른 아이들은 모조리 '신선한 달걀'에 동그라미를 쳤고, 요 아이만 틀렸다. 오래된 달걀을 택한 것이다. 어떤 논리로 이 답을 선택했을까?
바로 요리를 자주 해왔던 친구였던 것이다.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는 바람에 스스로 요리해서 밥을 먹는 일이 잦았고, 냉장고 문을 자주 열어왔던 이 친구에게는 오래된 쪽을 먼저 먹어야 한다는 논리가 먼저였다. 이는 시험 문제라기보다 실제 생활 속의 문제였다. 그런데 혼자 답이 틀려 상처를 받았다.
.... 우리는 이 '작은 철학자'의 눈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지금까지의 철학은 지나치게 수다스러웠다. 엄격한 얼굴을 하고 모두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면서 마치 문지기처럼 딱딱하게 굴었다. 옳은지 그른지를 자신의 잣대대로 판단하고 철학에 몸담은 이들만 사용하는 언어로 떠들어댔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더 이상 일상에서 철학적인 대화를 나누지 않게 되었다.”
- <듣기의 철학> 와시다 기요카즈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