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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섬 Feb 17. 2024

[나의 망생일지] 그래서 기획 회의 어떻게 됐다고?

타로 카드를 살포시 열며...

한 3년 전부터 타로 카드를 재미 삼아 봤다. 

특히 가슴 떨리는 큰 회의를 앞두고, 일이 되느냐 마느냐 결판이 나는 순간에 그 긴장감을 쌩으로(?) 눌러 담다가 나중에 진만 다 빼는 것보다 나를 감싸는 기운, 일이 되어가는 기세 등을 카드로 읽어보고 가면 도움이 많이 됐다.


햇수로 3년 전, 성북동 쪽에서 회의가 있어서 미리 그쪽으로 나가 있었다. 시간에 딱 맞춰 가다가는 늘 중간에 예상도 못한 일이 생겨 늦을 수도 있으니까. 천천히 나가서 회의 장소 근처에서 유유자적(하는 척) 하고 있는 편이 좋다. 


일에 관련한 모든 회의에는 당연히 어느 정도의 긴장감이 흐르는데, 보이지 않는 아우성도 기싸움도 난무한다. 드라마 기획 회의는 얼마나 난리가 나게. 나이, 직급 상관없이 챙챙챙! 날카로운 칼날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죽음의 무도'가 펼쳐진다.

드라마는 개인전이 아니라 지극히 '단체전'인 데다가, 어떻게든 끌고 가다가 제작 단계까지 '다행스럽게도' 도달하면 결국 적지 않는 자금이 집행되는 작업이라서 더욱 그렇다.  


잠시 쉬는 시간! 

여기에서 카미유 생상의 '죽음의 무도'를 양인모의 바이올린 연주로 들어보자. 

음악을 감상하다 보면 대한민국의 피겨퀸 김연아의 빙판 위의 열정적인 연기가 떠오르기도 할 것이다. 


https://youtu.be/of6jW6Ruio4?si=bM98fF6m0pDEV_PW



그날은 제작사와 나 사이에 '작가 계약'을 맺느냐 마느냐 결정이 되는 날이었다. 

이날은 뭔가 '계약합시다!' 언급이 나오지 않으면 이건 물 건너가는 일일 거라는 생각에 아주 막막했다. 

얼마나 긴장했던지 점심도 못 먹고, 윗배가 딱딱해진 채로 시간이 흐르기만 기다리던 그때. 

길상사 쪽으로 천천히 올라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동안 몇 번을 이 길을 지나갔는데도 단 한 번도 띄지 않았던 조그마한 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간판도 없다. 그냥 A4 용지에 슥슥 손글씨로 적어서 창문에 붙여놨다.

[타로 가르쳐드립니다.]

얼마나 오래 붙어 있던 것일까. 종이가 다 누레졌다. 

나는 무슨 용기가 났는지, 그 가게문을 밀고 들어갔다. 그리고 그것이 타로 선생님과의 첫 만남이다. 

카드 열 장을 뽑아보라고 하셨다. 


"마음 편하게 회의 가세요. 계약할 거예요. 

카드에서 문서를 이야기해주고 있네요."


마음 편하게 가세요, 이 말이 어찌나 반갑고 또 반갑던지... 하루종일 딱딱해져 있던 위장이 한꺼번에 스르르 풀어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어떻게 되었냐고? 

계약했다. 그다음 주에 사무실로 가서... 


물론 이후에도 나는 중요한 회의가 있을 때는 가끔씩 이 타로가게에 와서 카드를 보고 대략의 분위기를 파악하고 갔다. 

타로는 나에게 '계약'이 전부가 아니고, 이제부터 고생길 시작이라는 것도 알려주었다. 

꼭 타로카드가 아니더라도 그 정도 분위기는 다 알지 않나? 

이런 생각을 하실 분도 있을 것이다. 


이럴 때마다 짧은 내 지식으로는 늘 심리학자 구스타프 칼 융을 떠올린다. 

딱 떨어지는 인과율과 통계법칙만으로 설명이 안 되는 경험이 많을 것이다. 

느낌이 좀 이상해서 누군가에게 전화해 보면 마침 집에 우환이 생겼다든지 말이다. 나만해도 목요일 새벽, 얼마 전 젊은 동생을 잃은 내 친구와 함께 기차를 타고 가는 꿈을 꾸었는데 그래도 조금은 몸과 마음을 추스른 것인지 어제 갑자기 연락이 와서 오늘 그 친구를 보러 간다.

이런 크고 작은 우연들을 이 글을 읽고 있는 많은 분들이 경험했을 것이다. 이 생경하고 모호한 경험은 쌓이고, 또 쌓여서 이 또한 너른 규칙성을 띄게 된다. 

그러나 아직까지 나의 일천한 경험이나 지식만으로는 깊이 있게 설명하지 못하겠다. 그래서 학계에서 '과학적이지 않다고' 강하게 구박받고(요즘 말로 하면 도른자 취급...),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평생 정면돌파해 나가신 심리학자 칼 융 선생님께 많은 부분 귀의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융은 합리적으로 설명이 불가능하거나, 인과적으로 연결이 불가능한 꿈과 현실의 모호한 경계, 과거와 미래의 모호한 맞물림에 대하여 어느 누구보다도 깊이 직시하였고, 환자들을 돌보면서 이와 관련한 다양한 임상 사례를 체험한 사람이었다.

<칼 구스타프 융의 동시성 이론과 그 의미> - 전 철

 


드라마 작가 계약을 맺고, 벌써 햇수로 3년 지났다. 

7전 8기. 

이야기가 일곱 번 엎어지고, 여덟 번째 다시 쌓아 올려서 회의를 하는 자리. 

지난 3년 동안 얼마나 가슴이 바작바작 타고 말라비틀어져 버렸는지, 아예 내가 타로를 배웠다. 

아직은 애송이 실력을 벗어나지 못하지만 말이다. 스승님은 당연히 3년 전 처음 만났던 성북동 타로 가게 선생님. 


나도 열 장을 뽑아서 놓는 '켈틱 크로스'라는 스프레드를 연습하고 있는데, 카드마다 이야기를 연결하는 것이 쉽지 않다. 부단히 열심히도 연습하고, 항상 카드를 손에서 놓지 않고 늘 만지고 있어야 실력도 늘 텐데 그저 취미 정도의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집에서 혼자 카드를 펼치고 신중하게 열 장을 뽑았다. 사실 앞 다섯 장까지는 모두 무시무시한 카드들만 나와서 한숨이 나오던 차, 뒤에 가서야 조금 메이저 카드들도 나오는구나 하다가...

열 번째. 총체적인 결론 카드. 꽈당! 



'죽음' 카드가 나왔다. 

타로 리딩에서 이 카드는 연애에 관한 질문이 던져졌다면 당연히 '사랑의 엔딩'이다. 

그러나, 거기에서 멈추는 것만이 아니고, 카드의 매력은 여기에 있다. 

'새로운 시작' 

생즉사, 사즉생. 

 


타로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은, 이 타린이... 

열 장의 카드에 대한 명확한 해석이 잘 나오지 않는지라 선생님께도 연락을 드려서 한 번 카드를 뽑아달라고 부탁했다. 

선생님이 내 카드를 뽑으실 때, 특히 일과 관련해서의 질문에서는 나와 정확하게 겹치는 카드가 하나 있는데, 믿기지 않겠지만 거의 매번 이 카드가 나온다. 


 


천진난만한 아기. 일단은 이 아무것도 모를 법한 아가가 주도권을 쥐고는 백마를 타고 달리는 것이다. 그리고, 어딘가에 압박당하지 않고, 마음껏 제 능력을 펼칠 무대를 만들어 나가는 것.



그리고, 이 날의 키워드는 바로 이 카드였다. 

나는 이 카드만 나오면 '아이쿠~' 소리가 절로 나온다. 일단 별로 좋은 뜻은 아니기 때문이다. 

 


선생님이랑 나랑 뽑았을 때 3번 자리에 똑같이 이 카드가 나왔다. 

혹시 타로를 모르는 분들이 이 글을 읽으면서도 아마 별로 좋은 결과라고 느껴지지는 않으실 터. 

이 카드는 추락, 전복의 뜻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바로 '탑'이다. 타워. 

타워는 돌로 굳건하게 만들어져 있다. 그래서 카드 속의 그림은 불이 나고 번개가 내리치고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추락하는 등 아비규환이지만 돌탑 만은 무너지지 않는다. 



그래서 기획회의 어떻게 됐냐고?

메이저 16번 '더 타워' 카드 같이 뼈대만 남기고, 나머지 내용 싹 다 추락하고 불탔다. 다 갈아치우기로 전격 결정. 

그러나, '죽음' 카드가 우리 모두를 살렸다. 이제 다시 새로운 시작. 

이상하게도 하나도 지치지 않고, 이번 아홉 번째 기획안, 더 잘 해낼 생각만 든다. 


그리고, 더 웃긴 것 하나 더. 

이 아홉 번째 기획안은 놀랍게도 2019년, 2020년, 벌써 햇수로 5년 전, 대표님하고 이야기 나누며 만들어 낸 아주 초기 버전 이야기를 다시 소환하게 된다. 

이것이 회의의 본질인가 보다. 

마지막엔 결국 맨 처음 안으로 가게 되는 것. 


'이 산이 아닌가벼.' 

'아까 그 산인가벼.'

그래도, 괜찮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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