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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섬 Mar 01. 2024

배터리, 꿈, 꿈틀, 박보나 그리고 미친년

미친년들이 만개할 세상

어제는 도서관에서 한참 일하다가 보니, 어라, 충전기를 집에 놓고 온 것을 알았다. 애매하게 남은 밧데리... '에라, 모르겠다.' 

노트북을 끄고 잡지 중에 하나 눈에 띄는 것을 가지고 와 읽기 시작했다. 

<뉴필로소퍼>라는, 생활 철학을 표명하는 계간지다. 가장 최신호의 표지에 쓰인 '갈등을 받아들이는 연습'이라는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잡지는 하나의 이야기를 정방향으로 꿰는 책 보다 훨씬 산만하고, 그 산만함이 매력이다. 가끔 잡지를 읽으면서 그 안의 번득이는 글매를 지닌 사람들을 만나기도 한다. 그 재미다. 

어제는 이 잡지에서 누군가 한 명 또 건져냈다. 바로 '박보나'라는 미술가다. 

이 잡지 거의 맨 끝에 '꿈꾸기의 예술'이라는 글을 기고했다. 그 글에서 잠을 자면서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다.'라는 사실을 아는 연습, 즉 자각몽을 통한 의식의 지평 넓히기에 대한 소개를 했다. '메모리아'라는 몽환적인 영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다행히 왓챠 플레이에 있기에 '보고 싶은 영화'로 +표를 눌렀다. 


아, 꿈... 

꼬리에 꼬리를 물고 검색을 해봤다. 

자다가 꿈틀! 하고 깨는 말이다. 그 현상은 도대체 왜 벌어지는지 궁금했다. '꿈'이라는 소재를 박보나 씨 덕에 잡은 김에 찾아봤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 모두 겪어봤을, 그 꿈틀! 의 순간. 대부분 어디에서 떨어지는 꿈이나 계단을 오르거나 내려가다가 발을 헛디디는 꿈을 꾸다가 소스라치게 놀라 깬다. 혹은 아무 꿈도 꾸지 않는데도 파닥! 하고 깨기도 한다.


이 현상은 몸의 긴장도와 잠의 진행 사이의 불일치 때문에 생겨난다. 5단계로 이루어진 잠은 단계가 진행될수록 몸의 이완도도 높아지는데, 몸이 편안하지 않은 상태에 놓여 있으면 이 진행이 원활하지 못해 ‘꿈틀’ 일어난다는 것이다. 

...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영화에서는 이것을 ‘킥’이라고 한다. 킥은 꿈속에서 꿈을 깨게 하는 장치다. 탈출할 수 없는 꿈을 벗어나려면 “킥을 고안해야 한다”.

- 한겨레 21. 822호 


이 글에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는 바로 '여러 사람들이 같은 꿈을 꾼다면?'이라는 상상에서 시작된 영화 <인셉션>을 가리킨다. 영화를 보면 진짜 복잡해 죽겠는 것이, 꿈속에서 또 꿈을 꾸고, 다른 사람이 내 꿈에 들어오고 내가 그 사람과 같은 꿈의 다리를 건너기도 한다. 




궁금한 점을 하나 해결하고 나니 박보나라는 사람이 여전히 궁금하다. 조금 더 찾아보니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작업을 하는 미술가라고 했다. 그녀가 벌인 퍼포먼스 중 재미난 것 하나 소개해본다. 

<봉지 속 상자>라는 퍼포먼스인데, 전시장 내의 작가, 큐레이터, 목수 등등의 사람들에게 설문지를 돌려서 저녁 식사의 습관, 취향, 알러지가 있는지, 매운 것을 잘 먹는지, 오른손잡이인지 왼손잡이인지, 좋아하는 색깔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 설문지 내용을 바탕으로 작가가 임의로 장을 봐 왔고, 전시장 내에서 사람들은 그 비닐 봉다리를 들고 다니면서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그림을 감상하고 난 후  집으로 돌아가서 그 음식들로 저녁을 지어먹는 것이 퍼포먼스의 모든 과정이다.  

비닐봉지 안에는 내가 설문지에 소개해놓은 나의 세계와 그것을 받아 읽고 '임의적'으로 상상해 낸 작가의 결과물이 담겨 있다는 설정이 재미있지 않은가? 게다가 그것이 일상에서 맨날 먹는 것이라면 더더욱! 

아아, 나도 이 설문지를 작성해서 박보나 작가에게 제출하고 나면 내 손에 쥐어질 봉다리 안에는 어떤 음식들이 들어가 있을까. 잠시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분명히 어떤 떡볶이나 오뎅 사이, 그리고 김치만두와 김밥 언저리의 무언가가 담겼을 듯하다. 

내친김에 박보나 작가가 쓴 책을 빌렸다. 

<태도가 작품이 될 때> When Attitudes Becomes Artwork. 


철학자 아사다 아키라는 그의 책 《도주론》에서 인간을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눈다. 과거의 모든 일을 짊어지고 적분처럼 통합하는 편집증적 인간과 매번 새로운 제로 시점에서 미분의 차이를 가지는 분열증형 인간. 
...
편집증형 인간은 축적, 정주, 중심, 다수, 전체를 추구하며 길들여지는 것을 거부하지 않는다. 반면에 분열증형 인간은 도박, 주변, 소수, 야성, 잡종의 성질에 가깝다. 나는 분열증형 인간이 더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데, 이것이 아마도 내가 지리산 반달가슴곰 KM-53에게 흥미를 느끼는 이유일 것이다. 
나는 이와 같은 이유로 미술 작가로서 작품 활동을 하고 글을 쓴다. 


서문에 적힌 이 문장을 보자마자 즐거워졌다. 

반골이구나. 더욱더 용기를 내어 철학이 담긴 반골 유격대로서 진격해 주시길! 

이 책은 《한겨레》에 연재했던 칼럼들을 모아서 낸 예술 에세이인데, 각 글마다 동시대 미술 작가들의 작업을 통해 세상을 읽어내려는 시도가 담겼다. 

오늘 글의 소제목이 바로 이 책 속 가장 속 시원한 칼럼의 제목이다. 

미친년들이 만개할 세상. 


혐오와 폭력을 미러링 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지만, 세상의 질서를 바꾸는데 적당하고 부드러운 말로 가당하기나 하겠냐고 또박또박말해 주면서 생각했다. 세상을 흔드는 건 말 잘 듣는 조신한 여자들이 아니라 '미친년'들이라고. 


박보나는 1999년부터 '미친년'을 찍고 돌아다니는 사진작가를 한 명 소개한다. 박영숙 작가. 

그리고 그녀가 찍은 '미친년'들의 모습은 이상하게 낯설지 않다. 어디선가 봤던 우리 엄마 모습이기도 하고, 땀을 뻘뻘 흘리며 집을 치우다 정신이 나간 내 모습이기도 하다. 그리고 쿰쿰한 냄새나는 정부미를 받아 밥을 짓고 콩나물이 들어간 된장찌개를 끓이던 돌아가신 우리 외할머니이기도 하다. 아아. 대전 할머니네 집 부엌, 반 보는 아래로 푹 꺼진 부엌의 지하실 물때 냄새와 어우러진 밥냄새가 생각난다! 

자, 지금부터 이 미친년들을 구경해 보시라. 


 

갇힌 몸, 정처 없는 마음 


가장 강렬한 작품이다. 그래서 여기저기 박영숙 작가를 소개하는 곳이면 모두 이 사진이 걸려있다. 

나도 한참을 바라보았다. 저 어머님, 칼질하다가 지금 코 옆이 간지러우신가. 온통 고등어 핏물이 뚝뚝 듣고 있는데... 


미친년 프로젝트 - 꽃이 그녀를 흔들다

이 미친년은 신은 옳게 신었다. 그렇지, 운동화 꽉 조여 잠그고 산으로 들로 달려 나가야지. '내 머리에 꽃만 꽂으면 딱 미친년'이라는 말을 가끔 하고, 듣는데 이 사진 속의 여자가 딱 그 꼴이다.

저 뒤의 파란 지붕 집은 곧 헐릴 예정인가 보다. 저렇게 빈 집, '철거'라고 볼성사나운 빨간 페인트로 죽죽 그어진 글씨를 보면 늘 이 생각이 난다. 

지금은 이 꼴이어도 과거에는 누군가의 온기로 가득 찬 집이었겠지. 따뜻한 밥을 지어먹기도 했을 것이고, 막걸리를 마시면서 회포를 풀기도 하던 공간이었을 것이다. 그 따스함을 누가 앗아갔을까. 

 

도쿄의 페미니스트들


작가의 사진에서처럼 생선을 손질하다 말고 잠시 꿈을 꾸고, 화분에 물을 주다 말고 아름다운 저 너머를 상상하고, 아이를 돌보다 말고 햇살에 넋을 뺏기는 '이상한' 여자들을 위한 자리는 없다. 제멋대로 옷을 흘려 입고, 친절하지 않은 눈빛으로 노려보는 '불편한' 여자들을 위한 관용은 없다.
...
박영숙은 여성을 욕하고 비하하는 말인 '미친년'을 새로운 맥락에서 읽는다.
...
중심을 지키려는 남성들이 '꼴 보기 싫어(두려워)'하기 때문에 새로운 가능성을 가지는 희망이다. 나는 어지르고, 흐트러뜨리고, 무너뜨리는 박영숙과 '미친년'들의 사진이 신난다. '미친년'들이 만개할 세상이 설렌다. 


다른 때 같았으면 그냥 스쳐 지나갔을 텐데, 어제저녁부터 내내 박보나 작가에 대해서 파 보게 됐다. 어떤 인연이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오래간만에 맞이하는 고요한 금요일 오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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