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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십리 달인 군만두

아무리 먹어도 배부르지 않은 신기한 만두

by 황섬

우리 나라의 만두집을 집요하게 쫓아다녀봐야겠다 생각을 하고, '아무튼 만두'의 깃발을 내걸고 다닌지 세 달여.

만두 찜통과 같은 여러분의 성원(!?)에 힘입어서 여전히 만두집을 찾아 헤매고 있다. (감사합니다!)

아직까지는 사진을 폰카메라로 찍기 때문에 지금 휴대폰 안에 잠자고 있는 만두집과 만두의 사진이 엄청 많다.

즉, 이제는 슬슬 만두집을 다녀온 뒤 이런 저런 이유로 글쓰기를 미뤄서 숙제가 쌓이는데, 이도 은근히 부담이다.

게다가 하루가 다르게 뇌세포가 솜사탕처럼 녹아버리는 느낌인지라 이제는 여기저기 빽빽하게 메모해놓지 않으면 만두를 맛있게 한 입 물었을 때의 감흥을 잃어버린다. 심지어 내가 어떤 기분에서 혹은 어떤 상황에서 그 만두집을 갔었는지조차 까먹기 일쑤기도 하고.

서글프지만, 메모를 적극 활용해야 하는 시기가 드디어 나를 찾아온 것이다.

제일 좋은 방법은 만두를 먹고 돌아온 뒤, 바로 글을 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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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몇 개의 만두집이 지금 밀려있지만 오늘은 부랴부랴 어제 갔다 온, 뜻밖의 만두집에 대해서 소개하려고 한다.

원래는 만두집을 가려고 간것이 아니라, 어제는 답십리의 '성천 막국수'라는 정말 근사한 동치미국수집을 한 음악가 부부로부터 소개받는 날이었다. (성천 막국수집에 대해서는 나중에 번외로 소개하겠다. 정말 그렇게 기분좋게 쿰쿰한 동치미 국물은 처음이었다!)

국물을 낸 무짠지를 고춧가루, 겨자에 팍팍 무쳐서 반찬으로 하고 기분좋게 메밀면을 한 그릇 다 비우고 난 후 찾아간 2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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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서울에 아직도 나 어릴 적 느낌이 나는 골목이 있네 하는 생각에 반가웠다.

이름은 달인 군만두.

생활의 달인 프로에 군만두 달인으로 출연한 만두집인데, 아예 상호까지 달인 군만두로 달은 모양이다.

그도 그럴 것이 가게 자체가 정말 깜짝 놀랄 만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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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는 사진으로 보이는 것이 전부.

몇 평 되지 않는 곳에서 정말 김치만두, 일반만두 이 두가지의 군만두와 포장 찐만두만 판매하신다.

쇠로 만든 철판이 가운데 놓여 있고, 우리는 옹기종기 의자에 앉아서 주문을 하면,아저씨가 그에 맞추어 군만두를 구워주신다.

기름이야 저 대용량 해표식용유.

식용유 브랜드도 여러가지이건만, 왜 나의 뇌리에는 그렇게 식용유는 해표인지 모르겠다. (백설이 섭섭해하겠다) 아직도 설거지 세제는 퐁퐁인 내 머릿속의 세계.

기름 냄새가 확 풍긴다. 아저씨는 기름을 넉넉하게 부어서 군만두를 굽기 시작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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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 답십리 현대 시장에서만 35년 넘게 한결같이 군만두를 팔아오셨다고 한다.

요 납작하게 생긴 만두는 당연히 집에서 직접 빚는 것이고 말이다.

워낙 생활의 달인에는 아주머니가 나오신 듯 한데, 이날은 아저씨 차례.

35년 한 곳에서 부부가 군만두 장사를 하셨다면, 그 긴 세월 자체만으로도 달인이 아닐까 싶다.

35년이면 아이가 세상에 나와서 벌써 35살, 반 칠순이 되도록 키워낸 것인데...

겨우 만두 두 가지, 그것도 매일매일 군만두하고 찐만두만, 기름 냄새를 하루종일 맡으며 35년을 넘게 한 가지 일을 해온 것은 '득도'다.

물방울로 돌을 뚫는다고 하는 말을 어려서는 믿지 않았는데, 이런 분들을 보면 수긍이 간다.

명절에 반나절만 기름냄새 맡아도 머리 아프고, 속이 느글거리는 느낌인데 어떻게 하루 종일 이 늦은 시간까지도 만두를 구우실 수 있을까. 매일매일 구울 수 있을까. 중간에 그만두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을까.

묻고 싶은 것이 많았지만, 나는 일단 오늘 함께 자리한 부부의 이야기가 더 궁금했다구.


기타리스트와 바이올리니스트 부부.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캠퍼스 커플로 시작해서 지금까지 함께 하고 있단다.

기린(Gui Lin)이라는 팀 이름으로 공연도 함께 한다. 기타와 바이올린의 이름을 합쳐서 지은 것이란다. 그러니, 연습도 함께 하겠지. 그러면 정말 하루종일 같이 있겠지.

대학교에 있을 때에도 수업도 같이 듣고, 끝나면 연습도 같이 하고, 늘 모든 것을 함께 했다고 한다.

두 분을 딱 봐도 정말 그물에도 걸리지 않는 바람 같은 편안함이 한눈에 느껴졌다.

곰돌이 어려서는 내가 좀 욕심이 있었던지라 아이 음악을 시켜보고 싶어서 바이올린을 시작했었는데, 작은 사이즈의 바이올린에서 이제 풀 사이즈의 바이올린을 구입할 무렵 바이올리니스트인 유리씨가 바이올린 음색도 다 들려주시면서 도와주신 적이 있었다.

그 인연으로 이렇게 오랫동안 페북의 친구로 이어지고, 이렇게 함께 막국수와 만두를 먹고 있는 것이다!

놀랍지 않은가. 사람의 인연.

그리고 그런 우리들 한가운데에서 구워지고 있는 만두. 군만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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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군만두가 나왔다.

성천 막국수에서 우리 모두 배불리 면식을 하고 온지라 이미 배가 불러 있었지만, 김치 군만두 하나와 그냥 군만두 하나씩을 시켜서 맛보기로 했다.

워낙에 성천 1차, 달인 2차, 이것이 부부의 코스이기도 했단다.

성천 막국수서부터 온통 행복한 표정의 의석씨는 이 집에 오면 만두가 '하나도 배부르지 않을 테니' 우린 다 먹을 수 있다고 했다.




만두가 납작한데, 맛이 묘하다.

안 그래도 대구의 납작만두가 궁금해서 예전에 한 번 쿠팡에서 주문했다가 한 번 냉동시켰던 만두가 서로 다 들러붙어서 굽기를 실패한 적이 있는데, 아마 그 납작만두가 이러한 형태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냥 군만두, 원조만두는 안에 당면, 양파 등이 들어서 달짝지근하다.

워낙 단 것을 좋아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쫄깃한 만두피를 뜯어먹는 재미와 어우러져 나도 모르게 한 개 다 먹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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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썰미가 있으신 분들은 아셨겠지만 이 집은 만두를 구울 때도 요 집게로 굽고, 만두를 먹을 때에도 이 집게로 먹는다. 젓가락, 숟가락은 없다.

요 집게로 만두도 뜯어 먹고, 단무지도 먹는다.

김치만두 안에는 이렇게 칼칼하게 빨간 고춧가루가 큼지막하게 보인다. 납작한 만두의 특성상 만두소가 토실하게 들어갈 수 없는 구조인데도 불구하고 오, 꽤 칼칼하다.

여전히 만두피가 쫄깃하고 아삭해서 그거 오물오물 먹고 있으면 또 만두 한 개가 스윽 사라진다.

여기, 이곳 만두 되게 재미난 만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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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현실적인 가격 아닌가!

성천 막국수를 유리씨와 의석씨 부부가 냈기 때문에, 이 집 만두는 내가 사려고 마음을 크게 먹고 왔는데...

게다가 원망스럽게도 내 지갑에는 현금이 빵원 밖에 없었다.

토요일이라 곰돌이 용돈 주는 날이라 딱 나오기 전에 탈탈 털어 주고 나온 것인데 그만...

이날은 난데 없이 풀코스로 대접을 받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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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셋이 앉아서 두런두런 군만두를 먹고 있는 와중에도 사람들이 계속 몰려들어서 테이크아웃을 해갔다.

군만두 두 개, 김치만두 두 개 이렇게 해서 잔뜩 구워서 포장해가시는 분이 있었는데, 그래봤자 만원 내고 이천 원 거슬러 받으셨다.

서울 한복판의 셈법이 아닌 것 같다.

거의 다 먹을 때쯤 되니 사람들이 이렇게 와글와글 문 밖에 몰렸다. 워낙 가게가 비좁다보니 기본으로 사람들이 줄을 선다.

그리고, 우리 곰돌이가 늘 하는 말이 이거였다.

- 이상하게 엄마랑 가게에 들어가면, 텅 비었던 곳이 나중엔 꽉차. 엄마가 정말 손님을 끄나봐.

맞다. 내가 오뎅이 먹고 싶어서 포장마차에 들어가서 한 꼬치, 두 꼬치 먹고 있으면 정말 손님들이 계속 들어와서 나중에는 손님들하고 어깨 부딪치면서 후닥닥 나온 적도 많다.

이런 사람들, 자기 운빨 믿고 장사 시작하면 큰탈난다.

나는 딱, 다른 사람들 가게 번창에만 도움되는 에너지라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곳 달인 군만두는 나 없이도 늘 사람들이 줄을 잇는 곳인 듯 했다.




고맙게도 기린은 내 북콘서트 때에 연주를 해주시겠다고 했다.

워낙에는 북콘서트 이런 것 안 하려고 했었는데, 기린과 함께라면 조촐하게 북콘을 꼭 하고 싶어졌다.

문제는 음악도 이렇게 다 섭외가 되었고, 오늘 아침에는 이 노래 너무 부르고 싶다면서 내 독창곡(?)을 선정해놓고 반주까지 부탁을 드렸는데 원고가 아직...

북콘서트 계획까지 거창하게 잡아놨는데, 원고는 언제 완성이 되냐 이것이다.


멋진 군만두와 좋은 사람들, 그리고 이렇게 김치국부터 아주 시원하게 들이마시고 온 나날들.

답십리 현대 시장 근처에는 꽤 숨어있는 맛집이 많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레이더망을 조금 돌려봤는데, 솔찮이 많다. 허름하지만, 정감있는 노포가 내 입맛에는 딱인 듯.

답십리, 다음에는 내가 풀코스로 이 부부께 쏴드려야 할 것이다.

막국수, 군만두와 함께 군말없이 맞아주시길.



달인 군만두.
답십리 현대 시장 초입 골목에 바로 있다.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길치가 밤에 만두집을 간 터라 정확인 위치를 글로 표현을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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