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서면 삼삼히 생각나는 만두
내가 일하다가도 갑자기 뛰쳐나가 만두를 먹고 온다는 것을 서서히 같은 사무실 분들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셰어 오피스 내에 주에 한 개 이상씩 블로그를 올리고 함께 공유하는 모임이 있는데, 내가 자꾸 만두집 이야기만 올리니 이제는 '여기 한 번 가보시라'며 소개들을 해주신다.
그래서 가게 된 오늘의 만두집.
- 여기 만두가 야채로 만든 만둔데요, 정말 맛있어요. 그런데, 칼국수는... 음... 별로. 만두가 맛있어요.
어려서부터 칼국수보다는 라면을 좋아하고, 칼국수보다는 수제비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칼국수에 방점을 찍지 않는다. 사실 사무실 가까이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면 나는 어쩌면 안 갈 수도 있었을 곳이다.
별 기대하지 않고 간 곳.
아침 10시에 출근하면서 한 번 들러보았다. 너무 이른 시간이라 안 열었으면 어쩐다 싶었지만 부지런히 열려 있었다.
이렇게 넓은 음식점에 내가 첫 손님. 좀 춥기도 하고, 부랴부랴 출근해서 나를 맞아주신 아주머니도 그다지 친절하지도 않고... 얼른 먹어치우고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게다가 휴대폰으로는 계속 업무에 관한 연락이 와서 마음도 급해졌다.
어, 너는 연락을 했구나. 그렇지만 나는 지금 편하게 밥을 먹어야겠어. 일은 조금 있다가 들어가서 처리해줄게.
프리랜서가 가져야 할 미덕이 바로 '자기 페이스 지키기'인데 8년이 지나도 내게는 영 어렵다.
요즘은 음식점에 가면 김치도 공장김치 다 사서 쓰거나 보내오는 것들 받아서 쓰는지라 변별력이 떨어지기는 했지만, 김치가 맛있는 집은 그 집의 주특기 요리 또한 맛있을 것이라는 참 한국인다운 믿음 같은 것이 있다.
그런데, 이 집 김치는 역시 칼국수집이라서 그런지 적당히 달달하면서 맛있다.
무엇보다 기대 없이 앉은 이 자리에서 두 눈을 번쩍 뜨이게 해주신 국물의 크라쓰! 국물에 파는 물론, 바지락들이 헤엄치고 있다. 이곳에서 판매하는 칼국수의 국물인 듯 하다.
아침 나절 들이켜는 뜨거운 국물은 어제 음주를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해장을 시켜준다. 말 그대로 장이 풀리는 것만 같다.
그런데, 내 입맛에는 조금만 더 강렬했으면 좋겠는데... 좀 더 칼칼하거나, 좀 더 진하거나...
이 국물에다 칼국수 면까지 넣으면... 칼국수는 좀 더 연구가 필요할 것 같다.
손만두 같지 않은 생김새다. 밎은 모양새가 여느 집하고는 좀 다르다. 무엇보다도 투명한 피로 비추는 알록달록한 야채 색깔들이 정말 먹음직스럽게 예쁘다.
간장에다가도 한 번 찍어 먹어보고...
진짜 기대 안하고 갔다가 큰 수확을 얻었다.
계산을 하면서 만두 여기에서 직접 만드시는 거냐 물었더니 맞단다. 이 만두 빚으시는 분이 주인분이시냐고 물었는데 그건 아니란다.
내가 자꾸 물으니까 귀찮은 듯 해서 그냥 접고 나왔다.
이렇게 맛있는 야채만두를 그냥 일하는 아주머니께서 돌아가며 만드신다고? 그럴 리 없다.
분명히 이렇게 맛있는 만두, 만두소의 담백함이나 만두피의 적당한 얇기로나, 쪄낸 뒤 한 입 앙 물었을 때 머금어지는 물기를 보나 금손이 분명 이 가게에 계실 것이다.
작년 설날, 혼자서 심심하다고 시작된 만두 빚기가 하루 반나절을 넘어가고, 저녁 9시가 다 되어서 눈이 쑥 들어간 채로 찜통에서 만두를 꺼내 면보에서 떼어내면서 생각했던 바는 바로 이것이었다.
만두빚기도 운동이나 악기 다루듯 연습이 필요하다.
다른 음식도 분명히 되풀이해서 만들어내면 어느 정도까지 수준을 끌어올릴 수가 있지만, 만두는 좀 더 민감하다. 그래서 먹기는 쉬워도 만들기는 너무너무나 어려웠었다.
모양 예쁘게 빚는 것은 둘째 문제다. 정말로...
사회에서 잘난 이들, 명문대 출신 박사님들, 아니면 학교도 겨우 졸업한 이들, 중퇴한 이들, 날라리, 깡패, 재벌2세 모두모두 군복 입혀서 계급장 떼고 맞장뜨면 거기서 거기, 다 똑같을 터이다.
대신 만두와 만두 사이를 잘 떼어 놓는 것도 기술이 필요했고, 만두속에서 물이 배어나와 만두피를 적셔 버리는 바람에 바닥에서 만두를 다 찢어서 못 먹게 만드는 것도 기술이 없어서 범한 실수였다.
맛있게 만든답시고, 만두피 만드는 반죽에 계란을 잔뜩 집어 넣은 것도 패인이었다.
아니아니, 다 됐고, 만두피를 내가 만들겠다고 결심한 것서부터 글러버린 일이었다. ㅋㅋㅋ
며칠이 지났다.
자꾸 눈 앞에 아른아른 노고단 만두집이 생각이 난다. 게다가 사무실에서 나와 10분만 걸어가면 되는 곳.
그리고, 이집 만두를 기획 총괄하시는 능력자를 꼭 만나뵙고 싶었다.
지척인데 못 가랴.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또 갔고, 변함없이 맛있는 찐만두가 내 앞에 펼쳐졌다.
바로 이분이시다. 얼굴은 안나오게 해달라고 하셔서 정말 이렇게 손만 나오게 찍어드렸다.
지금 이 흰 통안에 들은 만두소가 바로 그렇게 삼삼하게도 떠오른 만두의 비밀 레서피로 만든 것이다.
노고단 만두집은 개업한지가 20년이 좀 넘었다고 하는데, 이 아주머니께서는 지금 이곳에서 17년 근속이시란다.
야채는 아주 많이 들고, 고기는 쪼오금 들었다고 전해 주시면서, 야채만두에 큰 자부심을 가지시는 것 같았다. 야채만으로는 이런 맛 내기 힘들다.
내가 혼자서 찰칵찰칵 사진 찍어가면서 맛있고, 행복하게 먹고 있으니 어느새 아주머니께서 슬쩍 오시면서 간장에다가 요 고추지를 좀 넣어보시라며 알려주셨다.
워낙에는 칼국수에 넣어서 먹는 빻은 고추인데, 간장에 넣어서 먹으면 또 별미라신다.
지금 사무실에서 이 글을 쓰고 있는 동안에도 몇 번이나 박차고 나가려다가 말았다.
계속 이집 만두가 떠올라서 말이다.
아무래도 가면서 2-3인분 포장해가서 집에서 나눠먹어야겠다.
이제는 사람보다는 이렇게 먹을 것이 삼삼하게 그리우니, 이런 삶의 안정감도 꽤 맘에 든다.
먹을 것이 떠오르면 어떻게든 찾아가서 비슷한 것이라도 구해 먹으면 되지만, 보고 싶은 사람이 자꾸 떠오르는데도 가서 만날 수 없으면 내 마음 갈 곳을 잃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