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는 어떤 만두를 먹었을까?
작년에 교보문고를 갔다가 우연찮게 아주 흥미로운 책 한 권을 발견했다.
나는 이 책과의 조우를 '운명'이라고까지 생각하는데,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작정하고 이 책을 구하러 간 것도 아니었고, 이것 딱 한 권 있는 것을 그 넓은 교보문고 한복판, 그것도 책꽂이 맨 아랫칸에서 거의 낮은 포복으로 기다가 발견해서 가지고 왔기 때문이다.
풍산 서유구는 조선 후기의 실학자이자 농학자로, 조선시대의 생활 백과사전인 '임원경제지'의 저자다.
국사 시간에 늘 짜증이 났던 것이 책 이름을 지었으면 딱 그 이름으로만 불러야지, 안 그래도 한문이라 외우기 어려운데 또 다른 이름으로도 불린다..... 라고 해서 객관식 인간인 나를 온통 혼란에 빠뜨려놓는 것이었다.
임원경제지 또한 그렇다. 이 방대한 생활과학서는 '임원십육지' 혹은 '임원경제십육지'라고도 불린다.
이중 '조선셰프 서유구'는 본리지, 향례지 등 여러 구성 중에서 조선시대의 음식과 조리법을 기록한 '정조지'와 양생, 섭생에 관한 '보양지'를 바탕으로 작가의 상상력을 가미하여 완성한 책이다.
그런데 또 재미난 것이 서유구의 집안 멤버들이다.
아버지는 '해동농서'를 지은 농학자 서호수(누구신지 전혀 모름)이며, 형님은 뒤늦게 벼슬에 오른 서유본(이분도 누구신지...)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서유본의 아내가 바로 우리들이 알고 있는 '규합총서'의 저자 여성 실학자 빙허각 이선정이시다.
어린 서유구에게 글을 가르치기도 하고, 조선 최초의 차밭 여주인이시기도 한 여장부!
빙허각은 본인의 자질을 인정하는 남편 서유본과 사이가 각별했다고 한다.
집안 일과 아이 키우는 일, 생산 활동 등으로 고생하는 여자들에게 도움을 주고, 누구나 여자들의 삶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며 한문이 아닌 언문으로 저서를 집필했다. 그 책 제목인 '규합총서'도 남편이 지어주었고, 서문도 써서 주었다니 각자 이룬 일가에 존경을 뜻하는 부부의 마음새가 참 아름답기도 하다.
빙허각은 막 쪄낸 향기로운 연방만두를 봄에 갖은 꽃을 더하여 만든 백화주와 함께 내어 시동생을 대접한다.
난생 처음 들어본 연방만두. 처음에는 소련에서 만든 만두인가 싶었다.
한문으로는 하련두자(下蓮兜子)라고 한다. (왜 만두饅頭의 머리 두頭 자를 쓰지 않고, 투구 구자를 썼는지 궁금했는데, 아무래도 하련두라는 것이 연방을 뜻하는 것이 아닌가 추측해본다)
그러나 여기에서 연방은 바로 연꽃의 씨방이다. 연꽃이 지고 나면 마치 샤워기 모양의 씨방이 밖으로 드러나는데, 겉에 씨앗을 빼고, 안에 스펀지 같은 속을 파내면 작은 그릇 같이 공간이 생긴단다.
우리나라 한국식 만두를 찾아 나선지도 벌써 3개월을 꽉채워 넘어가는데, 만두를 공부하다보면 그냥 동네 만두가 뚝 떨어져서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한중일의 역사와도 얽혀 있고, 바다를 건너오면서 변형되는 것도 있고, 시간이 흐르면서 속재료도 단순화되어 이유를 캐어야 할 때도 있다.
앞으로 천천히 만두를 먹으면서 하나하나 소개할 작정이다.
이런 저런 만두에 대한 자료를 찾다 보니 참 재미나고, 귀중한 자료를 발견했다.
인쇄의 수준을 보면 가히 발행 연도를 짐작할 수 있다. 옛날에는 글자 하나하나 조립을 해서 종이에 판화처럼 찍어내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책장을 손으로 훑으면 우둘투둘했었다.
요즘이야 야채에 돼지고기를 다져 넣은, 아니면 김치로 변주한 만두 정도만이 널리 남아 있지만, 옛날 만두의 종류를 보면 실로 눈이 휘둥그래진다.
밀가루를 반죽해서 넓게 펴고, 그 안에 소를 넣어 빚어 삶거나 찌는 것만이 만두로 생각을 했었지만 지금 이 자료를 보면 파에 오이소박이처럼 십자모양을 내어 고기양념한 것을 속에 채우기도 한다. 이게 바로 파만두다.
그리고, 만두피에 쑥을 섞어 넣어 파릇파릇하게 색을 낸 것은 쑥만두로 불린다.
이렇게 안에 어떤 식재료를 넣었냐에 따라 야채만두, 고기만두, 김치만두 등으로 분류가 되고 익히는 방식에 따라서 군만두, 물만두, 찐만두 등으로 나뉜다.
곡물가루를 반죽해서 만두피를 내는 것 외에도 생선살을 얇게 포로 떠서 야채와 고기를 싼 어만두, 요즘 우리가 먹는 형태의 배추인 호배추로 소를 싸서 미나리로 묶어버린 호배추 만두 등 실로 다양한 형태의 만두가 있었다.
한참을 들여다 보니 어라? 동과가 뭔가 싶어 찾아보니 윈터 멜론이란다. 호박류의 일종인 듯 한데, 이렇게 5-60년 전에는 있다가 요즘에는 사라진 채소들이 많다.
이렇게 수많은 형태의 만두가 있었으니, 향기로운 연방을 우리 조상님들이 만두 안 만들고 가만히 놔두셨을 리가 없다. 그제야 연방만두의 형태가 이해가 간다.
연방만두는 어디를 검색을 해봐도 이 풍석문화재단의 정조지 연구나 요리 재현한 것 외에는 찾을 수 없던 중...
밥도둑 약선 요리왕! 요리 판타지 소설을 찾아냈다.
여기에 무려 '연방만두'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유치원 편식 교정 요리사로 출장요리를 하며 희망 없이 살던 이가 어느 날 요리 시조의 전생을 만나 서른 세가지 신성수와 필살기의 권능을 부여 받아 약선 요리 대가로 활약을 하는 이야기란다.
이 소설에서는 연방에 양고기를 다져 넣는다. 어렵사리 찾은 네이버 사전의 하련두자(下蓮兜子)도 이렇게 씌어 있다.
연밥의 속살과 양고기, 멥쌀밥, 닭고기, 잣, 호두 등을 넣고 만두처럼 만들어 쪄서 익힌 음식.
작가의 자료 수집 성의에 박수를 보낸다.
아무래도 연방만두는 다른 만두들이 그러하듯, 중국에서 건너온 느낌이 물씬난다. 더 파헤쳐보고 싶지만, 오늘은 여기까지.
그저 이 자리에서 빙허각의 손길로 빚은 만두와 향기로운 백화주 맛을 음미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