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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섬 Jun 09. 2024

이혼을 해야 할 때

느낌이 빡 온다


솔라시도(남편 이름이 '시도'라서 내가 지은 이름이다)랑 함께 산 지도 13년 차다. 스물 네 살에 처음 결혼하고, 그 뒤로 남편이 다섯 명이었는데, 와우 이번 결혼은 매년 최장 유지 신기록을 깨고 있다. 게다가 남편들이 모두 초혼이라 나는 매번 스드메를 섭외하고, 신혼여행까지... 하나하나 다 도장 깨기를 했었어야 했는데, 뭐 이것도 아주 즐거운 경험이었다. 간간히 무거운 드레스 입어줘야 하는데, 이제는 그 웨딩드레스 착장 안 하니까 사는 데 재미가 없다. 

여하튼 오늘 내가 이렇게 각 잡고 글을 쓰려하는 것은 바로 '이혼'에 관한 이야기다. 


"난 이별의 아픔은 몰라. 이혼의 아픔만 알지."


이게 한때 내 캐치 프레이즈(?)

언제 이혼의 그림자가 드리웠는지... 그 이야기를 좀 정리해서 해드리고 싶었다. 살다 보면, 아 ㅅㅂ 이번에도 또 이혼이다...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있다.  


1. 단어 선택. 


배우자와 살다 보면 당연히 부딪힌다. 언성을 높여 싸우기도 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각자의 이유도 있고, 입장 차이가 많아서 싸우는데 딱 하나 참으면 안 되는 것이 있다. 

단어. 

싸울 때 이놈의 상대방이 쓰는 언어가 있다. 그 언어가 굉장히 쌍소리, 듣기 징그러운 단어를 쓰면 그건 나는 백 프로, 천 프로, 만 프로 못 참고 이혼으로 갔던 것 같다. 

예를 들어 최고 쎈 단어가 '가랭이'... 보험 영업이 직업이었던 나한테 '가랭이 벌리고 영업...이라는 어휘를 썼던 남자하고 어떻게 함께 살 수 있나. 이 밖에 '내 씨 받아서', '맞을 만하니까', '정신병자', '망상', '미친년'... 등등... 이러한 단어를 자기 아이를 낳고, 함께 기르는 배우자에게 아무리 화가 났다고 해도 함부로 내뱉는 사람하고는 살지 못한다. 


2. 자기 연민


우리 집 사람들도 자기 연민 엄청 강한 사람들이고, 한국인의 뻐킹 '정한' 징하게 덮어쓰고 사는 사람들이라 할 말은 없지만... 패밀리 전체가 연민에 휩싸인 집안이 있다. 진짜 그건 어떻게도 초기에 구별 못하는 종특.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패밀리는 걸러야 한다. 아무리 그 집 아들이 선재라도 업고 튀면 안 된다. 

자기들 연민 강한 패밀리는 일단 너무 자주 모인다. 그러면 사위, 며느리 끊임없는 주말 사역 시작... ㅠㅠ 어머님 안녕하세요, 아버님 안녕하세요.. 앞에서는 웃지만 정말 이들에게는 휴식이 필요하다. 나도 한 달에 두세 번씩 몇 년간 정말 죽을 뻔한 적이 있었다. 

결국엔 이혼 절차 들어가면 이들 가족은 정말 그 연민을 화력 삼아 엄청 활활 타오른다. 그리고 나를 재로 만듦. 


3. 폭력


아아, 1,2번 쓰고 나니까 어질어질 영혼이 탈탈 털려서... 더 뭘 써야 하나 싶었는데, 다들 아는 이야기 쓰고 간다. 


"너는 우리 엄마 이야기 하면 다 안 좋아하잖아."


이렇게 비아냥거리던 남편이 있었다. 실제로 나는 첫 번째 시어머니나 두 번째 시어머니보다 이 세 번째 시어머니가 너무 좋았다. 늘 시댁에 가면 깨끗하게 청소된 집도 편했고, 정갈하게 우리 아이들 분유탈 보릿물부터 끓여 준비하시는 분이었다. 그리고 참 착한 분이셨고... 너무 좋았다. 

그런데 자꾸 우리 엄마 얘기하면 너는 안 좋아한다면서 2번 '연민' 버튼 누르면서 몰고 가다가 꼭 끝에 가면 때리며 싸웠다. 물론 그 중간에 '술'이 있다. 심지어 이 사람은 술을 못 마신다. 그리고 하는 말이 '너는 맞을 만하니까 내가 때리는 거다'라는 말을 했다. 이런 무식한 말이 어떻게 내 귀에 들어올 수가 있지. 이건 이혼해야 한다. 

방탈출. 



이렇게 겉으로 드러난 이유도 있지만, 드러나지 않는데도 힘들어 미치겠는 뭉근한 상황이 더 지독하다. 하루하루 함께 사는 것 미치겠는데, 이렇게 1번, 2번, 3번 숫자도 못 매길 상황... 더 같이 살지 못할 어려움이 진짜 많다. 

내가 벌써 오십 살이 넘다 보니, 이제는 애들 다 키우고 이혼하는 분들이 종종 보인다. 너무나 응원한다. 그분들의 인생 챕터 투. 지금 이혼 드라마를 쓰고 있어서 이혼 사례를 계속 모으다 보니 쓴 글이기도 하다. 이혼, 나는 소송으로 이혼해 본 적은 없다. 협의 이혼하면서도 이 인간이 제대로 법원에 나오려나 안 나오면 어떡하나 진짜 마음 졸였던 기억이 난다. 지구 끝까지 너 괴롭힐 거야... 이러면서 이혼 안 해주는 악마 같은 인간도 있었고... 

와, 그런데 새삼 이제는 '이혼'이라는 단어가 남의 말 같다. 세월이 그렇게 만들어주었다. 


아 맞다. 이제 <이혼 보험>이라는 드라마도 나온단다. ㅠㅠㅠ 그런데, 기획안 보니까 내가 더 재미나게 쓸 자신 있겠더라. 그래도 아직도 그 어떤 드라마 나와도 생생하게 제대로 채워 넣을 사람은 나 아닌가, 하는 자부심(?)은 있다.  한 20년간 지긋지긋하게 몇 번씩 이혼하느라 그렇게 생살 때려 맞았는데, 이혼 한 번도 안 해보거나 1번 정도 해본 작가님이 쓴 것하고 대결하면 누가 더 재밌겠나.


주먹 쥐고 화이팅! 

우리 모두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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