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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섬 May 28. 2024

내가 이 남자랑 왜 결혼했나

기억이 안 날 때가 됐다, 됐긴

아점을 먹고, 양치하다가 갑자기 뭔가가 생각났다. 요즘은 뇌도 나와 함께 노화를 타는지 적지 않으면 금방 휘발된다. 그래서 후다닥 입만 헹구고 와서 쓰는 글이다. 생각이란 바로 '솔라시도(남편의 이름이 문시도여서 솔라시도라는 별명을 지어주었다)랑 나랑 왜 친해졌었지?' 이것. 가끔 내가 미쳤었나 싶고, 원인(이유도 아닌, 원인)을 도저히 알 수가 없었는데,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듯 생각났다. 

남편은 국민학교 때 우리 학교 대표적인 웃기고 바보 같은 캐릭터였다. 늘 웃고 다녀서 애들이 맨날 놀려먹기 좋았고, 나도 기억나는 것이 복도에서 얘를 마주치면 으히히 하고 웃었던 것 같다. 그냥 존재가 개그. 얘한테는 한 살 차이 누나가 있는데, 이 남매가 그림을 무척 잘 그려서 온통 교내외 미술 대회는 다 휩쓸고 다녔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무시는 안 당했었다. 다행인 셈이다. 


아, 그래서 왜 얘랑 친해졌냐면... 나중에 서른아홉 살 때 만나서 술 마시다가 갑자기 엄마들 이야기가 나왔는데, 얼마나 우리 엄마가 음식을 못하는지 배틀이 붙었다. 나는 울 엄마가 끓인 콩나물국이 어떻게 김치찌개로 바뀌고 그게 된장국까지 진화하는지를 내세웠고, 얘는 치킨 시켜 먹으면 다음 날 남은 치킨이 왜 미역국에 들어가 있는지(오.. 강적이었다)로 승부를 걸었다. 솜씨 없는 엄마 아래서 자란 두 남녀는 이내 서로를 공감했다. 그리고, 결혼에 이르는데... 이 미역국은 실제로 결혼 후, 임신 초기에 시댁 가서 두 눈으로 목도했고, 입덧 악화의 주범이 되었다는... 미역국 안에 들어가 뭉개진 치킨 껍질이 계속 생각나서 미치겠는 것이다. 


여하튼 이 사람이랑 지금 13년 째인가 살고 있는데, 정말 아무거나 해줘도 다 잘 먹는다. 밥상 앞에서 투정하는 걸 본 적이 없다. 혹시나 밥이 없는 것 같으면 그냥 슬쩍 안 먹고, 편의점에서 본인이 좋아하는 편육을 사 오기도 한다. 별 특별한 반찬이 없이 그냥 미역국(그 미역국 아님 ㅠㅠ)에 밥 말아줘도 잘 먹고, 갈비탕에 김치도 아닌, 닭발을 반찬으로 줘도 잘 먹는다. 결정적으로 뭐가 맛있는 지도 잘 모른다. 편하다면 편하다고 해야 하나. 그리고 엄마 손맛 배틀은 아무래도 시어머니의 압승으로 결론.



남편이랑 도대체 왜 친해진 건가 의아했던 시간이 조금 흐른 뒤 펼친 책 M. 스캇 펙의 책 <아직도 가야 할 길>에서 읽은 구절을 조금 소개해볼까 한다. 사실 남편과 나는 '사랑'이라는 말을 쓰면 그 단어에게 몹시 미안할 정도로 부합되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 아니면, 아예 그런 감정의 존재마저도 곤약과도 같이 무미무취 없다고 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그저 기능적인 부부이며, 서로 썩 아끼지는 않지만, 그래도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살고 있다. 

가끔 사랑에 빠진다는 감정이 어떤 것인지, 나는 왜 살면서 그렇게 수많은 사람에게 빠졌는지 뒤돌아 생각해 보면서 남들보다 관련 '호르몬'이 몹시 자주, 많이 분출되는 몸일 거라는 막연한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지금은 나이가 들고, 신체도 점점 예전 같은 에너지를 낼 수 없기에 자연스레 평화로이(! 진짜 평화롭다!) 가라앉은 것이라고. 일면은 맞고, 또 다른 면은 썩 맞는 말은 아니다. 

스캇 펙 박사는 이렇게 말한다. 


첫째, 사랑에 빠지는 경험은 특별히 성과 관련된 욕망의 경험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아이들을 아무리 깊이 사랑할지라도 아이들과 사랑에 빠지지는 않는다. 

...(중략)

둘째, 사랑에 빠지는 경험은 예외 없이 일시적이라는 것이다. 누구와 사랑을 하건 관계가 오래 지속되면 어느 순간 사랑의 감정에서 깨어난다. 


여기에서 '자아 경계'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아기가 태어나면 내가 누군지, 너가 누군지, 여기가 어딘지 모른다. 자기가 배고프면 온 세상이 배고프다. 실제로 지금 열한 살이 된 아들이 갓난아기 때 스티커를 이마에 붙여봤는데, 뭔가 달라붙은 기분이 들기는 들었지만, 그것이 어디에 붙어있는지 몰라서 바둥대던 실험을 해본 적이 있다. 정말 귀엽고, 세상모르는 녀석이었다. 이것이 바로 세상과 내가 경계도 구분이 없는 상태, 자기라는 정체감이 없는 상태다. 

그러나 점점 커나가면서 이제 외부 세계와 분리된 독자적인 '나'를 알게 된다. 내가 배고프다고 엄마가 제깍 달려와서 한 치의 오차 없이 밥을 줄 수 없다는 걸 알게 된다. 내가 놀고 싶다고 주변 사람이 다 나한테 맞추어 놀아주지 않는다. 스캇 펙 박사는 여기에서 '아기와 어머니 사이에 오가는 상호 작용의 영향이 바로 아기의 정체감을 길러주는 기반이 된다'라고 적고, '아기와 어머니의 상호 작용에 문제가 있을 때 정체성에 근본적으로 막대한 결함을 지닌 채 자란다'라고 지적한다. 사실 이 부분에서 인간의 정체성 결함을 왜 어머니에게 모두 던져 놓는지는 의아했지만, 그분도 옛날 양반이라고 치고 넘어가자. 

계속 성장하면서 특히 청소년기에 들어서면 비로소 자기의 한계에 봉착하게 된다. '육체의 경계와 힘의 한계에 갇힌 개별적 존재이고, 각 개인은 상대적으로 나약하고 무능력한 개체라는 것, 이러한 개체의 집단인 사회 안에서 서로 협동함으로써만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 경계 뒤에 서서 인간은 '고독'을 알게 되는 것이다. 


이어서 사랑에 빠지는 감정에 대해 명쾌하게 설명한다. 


고독이란 고통스러운 것이라고 여기므로 개인의 정체성이라는 성벽 뒤에서 탈출하여 우리 밖에 있는 세상과 더욱 화합할 수 있는 상태로 가기를 갈망한다. 사랑에 빠지는 경험은 바로 이러한 도피를 일시적으로 가능하게 해 준다. 

...(중략)

다시 말하면 자기로부터 갑작스럽게 빠져나오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신을 폭발적으로 쏟아붓고, 이러한 자아 경계의 붕괴에 따른 고독감의 중단은 우리 대부분이 무아지경으로 경험하는 것들이다 나와 내가 사랑하는 그 사람은 하나가 된다! 고독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경우에(모든 경우는 아니다) 사랑에 빠지는 행동은 일종의 퇴행이다.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의 일체감에 대한 환상도, 미운 네 살 아이가(부모의 훈육 때문이든, 스스로 깨닫게 되든) 점점 자기가 이 세상의 패권을 거머쥔 폭군 노릇은 못하게 됨을 알게 되듯이 '자아 경계가 제자리로 돌아가고, 점진적이든 갑작스럽든 그들은 사랑에서 빠져나온다'. 


여기에서 '참사랑'이라는 개념을 설명한다. '사랑'이라는 불 같은 감정이 지나가고 난 뒤에 별개가 된 두 개체는 결정한다. 헤어질 것인가, 아니면 노력할 것인가. '참'이라는 말은 이때까지 느끼고 기꺼이 빠져버렸던 '사랑'은 환상에 불과함을 역설한다. '느낌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1994년 여름, 아마 그해를 지나왔던 성인이라면 얼마나 더웠는지 기억할 것이다. 게다가 당시는 카페나 은행과 같은 공공장소 아니면 에어컨이 없던 시절이었다. 얼마나 더웠는지 볼 일도 없으면서 지나가다가 은행 보이면 들어가서 혀를 죽 늘어뜨리고 헥헥대다가 다시 나가면 좀 살 것도 같았던 불볕더위였다. 그때 나는 '함부로' 성당 주일학교 선생님을 하고 있었는데, 그때 어머니 선생님들 중 한 분이 남편과 사이가 참 좋았다. 결혼한 지 한 10년 되셨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떻게 그렇게 오랫동안 남편분과 금슬이 좋을 수가 있는지 신기하다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지금 30년 된 이야기인데, 매미가 악악 대며 울어대던 망우리 쪽 고개를 넘어오면서 해주신 이야기가 생생하게 기억난다. 


"에이~ 우리도 중간에 많이 싸우고 안 좋을 때도 있었지. 그런데, 어느 순간 되니까 둘이서 같이 또 다른 문을 열고 나가는 것 같았어. 진짜로. 그전에는 전혀 알 수 없는 다른 문을 함께 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


이게 아무래도 오늘 읽은 '참 사랑'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그렇다고 내가 남편과 이런 '다른 문' 같은 것을 함께 열었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지금 이 사람 성씨도, 내 아들 성씨도 '문' 씨이지만, 문 같은 개념 따위는 가져본 적도 없고 끝없이 페달을 밟아야 자전거가 넘어지지 않듯, 그저 안 넘어지려고 페달만 열심히 밟아왔던 지난 13년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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