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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개성 손만두

1인 전골도 두 팔 벌려 환영해주는 알싸한 만두집

by 황섬

내 본적은 현재 강화도 내가면 외포리이다. 어떻게 하다보니 전 남편하고 혼인신고 하면서 이렇게 되어버렸고, 헤어지면서 도로 돌려놓는 방법을 모르기도 하거니와 본적이 뭐 그리 중요한가 싶어 놔둔 덕에 유지되고 있다.

명절마다 제사 지내고 난 뒤, 음식들 주섬주섬 싸가지고 뒷산의 묘소(누구의 묘소인지도 모르는...)에 헐떡대고 올라가 절하고 다시 내려오던 고단하던 나날들이 강화에 남았다. 외포항의 경치가 뭐며, 전등사의 고즈넉은 또 뭔가. 강화에 발을 내 딛으면 빨리 집으로 오고 싶기만 했다. 그 뒤로 한동안 이쪽으로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근 몇 개월 만두를 먹으러 전국을 돌아다니는데, 이곳을 차마 뺄 수가 없었다.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데, 또 그때를 떠올리면 아련하게 추억하게 되는 그 묘한 기분. 헤어짐이란 것이 이런 것인지.


먼저 보문사에 들러서 부처님께 인사 올리고....

다시는 윤회해서 다시 태어나지 않는 해탈의 경지에 이른 분들, 오백나한상도 만나고 왔다. 한 분 한 분 어쩜 이렇게 익살스럽고, 멍 때리고, 표정들이 다양한지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참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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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선원면의 개성 손만두 전골 요리 전문점을 소개해볼까 한다. 선원면은 강화도가 길죽하게 있다면 중간한 가운데쯤 자리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강화의 유명한 전등사는 저 밑에 자리잡고 있고...

강화는 땅이 붉은 색에 비옥해서 쌀을 비롯해서 땅에서 나는 음식들이 맛있기로 유명하다. 특히 속노랑 고구마나 순무는 강화도의 대표 특산물. 순무김치는 강화도 어딜 가나, 어떤 분께 사나 무조건 다 맛있다. 그냥 동네 구멍가게에서 사도 맛있고, 전등사 앞에서 사도 맛있고, 보문사 앞에 가도 맛있다. 재료가 좋아서 그런지, 강화의 음식점들이 솜씨는 대부분 평타 이상이었던 기억이 난다. 기대를 안고, 개성 손만두집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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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자마자 메뉴부터 살피고... 구성은 아주 간단하다. 만두 전골이 메인 요리이고, 특이하게도 왕새우튀김이 있어서 꼬마 손님들의 입맛을 사로잡는다. 메뉴의 손만두란 접시에 내오는 찐만두를 이른다.

내부는 이렇게 넓다. 그래서 가족 단위의 손님들이 많이 오신다. 주말 시간 짬 내서 강화도 한 바퀴 휘이 돌고, 이곳에서 점심 먹고 가는 집들이 대부분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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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골이나 찜류는 대부분 (2인 이상)이라고 되어 있다. 이 집도 메뉴를 보면 2인 이상이라고 적혀 있다. 예전에 보리밥이 너무 먹고 싶어서 혼자 갔는데, 그 집도 2인분 이상 주문을 해야 내어준다고 한다. 잠시 고민하다가 그럼 2인 상을 받고, 남은 것은 포장해 갈 터이니 달라 했더니 주인장이 극구 안 된다고 해서 단품인 김치찌개를 시켜서 씁쓸하게 먹었던 기억이 난다.

우리나라의 끼니는 밥과 국, 혹은 찌개에 부수적인 반찬들로 구성이 되어 있다. 어느 식당을 가도 한 사람이 가든, 세 사람이 가든지 메인 메뉴 혹은 밥과 국을 제외하고는 반찬 구성은 똑같다.

송원섭 PD님의 책 '양식의 양식'에 보면 이 '식당에 혼자 오면 미안한' 한국인의 정서를 정확히 짚어 놓으셨다. 아주 흥미롭게 본 <고독한 미식가> 한국편에서는 주인공인 고로상이 서울 돼지 갈비집에서 들어가서 무려 고기를, 추가도 아니고 1인분만 달라고 한다. 그런데, 방송이어서 그런가, 주인은 네에~하고 아주 얌전하게 주방에 들어갔다가 나오면서 우리가 고깃집 가면 먹는 반찬들 즉 콩나물, 부추 절임, 파김치, 잡채, 감자 사라다(발음 주의! 사라다여야 함) 등을 내온다. 이에 고로상은 시키지도 않은 반찬들이 줄줄이 나오는 것을 보고 놀라고 감동하는데, 한국인들이 1인분을 시켰을 때 뭔가 미안해지는 정서는 전혀 모를 터. 게다가 카메라가 돌아가지 않았다면, 짤 없이 "고기 2인분 부터 됩니다." 이 말을 들었을 것이라는 팩트도...


'두 사람에게 내놓아도 될 양의 반찬을 나 혼자 독차지하는 것은 식당 주인에게 부당한 손해를 끼치는 것이 아닌가'를 생각하기 때문에 미안하고 염치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양식의 양식 p165 - 송원섭, JTBC '양식의 양식' 제작팀


이렇게 책 내용까지 인용해가면서 줄줄이 길게 쓰는 이유가 있다. 바로 이 집은 1인 전골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2인분 시켜서 먹다가 남으면 할 수 없지'라는 각오로 들어갔다가 이런 기쁜 소식을 듣고 덩실덩실 춤을 추고 싶었다. 찐만두는 먹다가 남으면 싸오면 되지만, 만두국이나 전골은 이미 국물에 뭉그러져서 그냥 아쉬워도 두고 올 수 밖에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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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만두 전골 1인분의 위엄이다!!!

나는 혹시나 해서 서빙해주시는 분께 이것 2인분인지 한 번 더 물어봤다. 그랬더니 당연하다는 듯이 1인분이라고 하신다. 그리고, 혹시 한 분 더 오시냐고 거꾸로 물으시는데... 이 한 솥을 어찌 다 먹나 싶을 정도로 넉넉했다.


기본찬은 김치와 양념한 단무지다. 단무지를 좋아하는데, 이렇게 고춧가루에 참기름 좀 부어서 조물거린 것을 특히 더 좋아해서 가끔 집에서도 해먹는데, 여기서 만나니 반가웠다. 두 번 이상 리필할 듯. 이곳은 반찬 리필은 셀프, 직접 왔다 갔다 하면서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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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장난끼가 발동해서 내 앞에 앉은 이를 찍어 보았다. 날씨도 좋은데, 좋은 사람과 함께 만두전골을 먹게 되어 기분이 좋다. 이 사진에 앞에 앉은 사람이 없다고? 안 보인다고? 그럴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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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골의 구성이 무척 싱싱하다. 만두도 만두려니와 청경채에 배추, 버섯, 단호박 ,애호박 등등 잔뜩 들어가 있어서 푸짐하다. 그리고, 칼국수에 떡살까지! 만두만 건져 먹어도 배부를 정도로 커다랗고 실한 만두가 4개 들어가 있는데 제대로 한끼 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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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자로 자박자박 누르다가 얼추 다 끓은 것 같아서 국물을 한 입 떠 먹어보았다.

세상에!!! 세상에!!!
전골국물이 굉장히 맑은지라 이런 강렬하고, 시원하게 칼칼한 맛은 기대도 못했었다. 이리 맛있게 매운맛을 낼 지는 상상조차 못했는데, 기대 이상의 맛이다. 전날 마셨던 소주가 피부를 거쳐 다 증발해 나가는 듯하다. 이집의 만두 전골은 만두를 건져 먹기도 전에 이미 10점 만점에 10점이다. 국물 만으로도 이곳에서 식사할 이유가 충분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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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골에는 고기만두 2개와 김치만두 2개가 익고 있다. 지금 내가 들은 것이 작은 사이즈의 국자이니 크기는 대략 가늠 가능하실 것이다. 사진만 보아도 지금 당장이라도 차에 시동 걸어서 만두집으로 달려가고 싶을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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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찬으로 나온 김치맛마저 아주 시원하고, 수준급이라, 이렇게 만두에 얹어서 먹으면 조화가 훌륭하다. 고기만두 소에는 돼지고기, 숙주,파, 두부 등이 어디 하나 치우침 없이 들어갔다. 가끔 평양만두로 불리는 고기만두에 두부맛이 너무 강해서 쉬이 질릴 때가 있는데, 이곳의 고기만두는 균형미가 훌륭하다. 김치만두도 말만 김치만두가 아닌 칼칼함이 살아 있다. 곁반찬으로 나온 김치 먹었을 때 알았다. 김치만두 분명히 맛있을 줄. 국물 처음 떠 먹을 때 반했다고, 이렇게 추켜세워 주는 것이 아니다. 직접들 가서 확인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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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골하면 또 간장에 찍어 먹는 맛이지. 저 맑은 간장이 또 뭐라고 이렇게 포옥 익힌 채소와 떡들을 입속으로 끊임없이 들어가게 만들어준다. 특히 싱싱한 배추를 건져서 찍어먹는 그 고소함은 어려서는 몰랐던 맛이다. 제사 때 그렇게 배추를 지져 배추전을 만든 것을 보고 '저걸 도대체 무슨 맛으로 먹냐'며 거들떠도 안 봤는데, 요즘은 마트에 가서 노란 알배기 배추 나온 것 보면 나도 하나 집어와서 밀가루물 묻혀 기름에 지져내고 싶다. 가끔 삼삼하게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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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물 속에서 만두와 함께 제 맛을 내면서 변주되는 전골의 내용물들을 하나하나 알뜰하게 음미하며 먹고 나면 마지막 하일라이트는 바로 칼국수! 우리나라 사람들은 고기를 먹든, 찜을 먹든 큰 그릇 혹은 철판에 질펀하게 메인 요리를 먹을 때, 이는 거의 의식과 같이 치르게 되는데, 마무리는 면 아니면 밥이다. 시차를 둔다. 고기 다 먹고 나서 입가심으로 냉면, 혹은 해물찜 다 먹고 나서 남은 국물에 볶음밥으로 마무리와 같이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뭔가 허전하고 다 먹은 것 같지 않아서 일어나기가 어색해진다. 한 냄비에서 처음부터 보글보글 끓고 있었는데도 나 또한 면으로 마무리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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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두 취식의 마지막 단계인지라 그릇 안이 만두소로 어질러져 있어서 그다지 정갈하지는 않지만, 우리 다 그렇게 먹고 사는 것 아닌가 싶다. 즐거운 한끼 식사가 이렇게 마무리되어 간다.

한참을 집중하면서 만두전골을 즐기다가 고개를 들어보니 역시 나는 '사람을 끄는 사람'이다. 길거리 지나가다가 떡볶이랑 오뎅 파는 천막을 흘끔 봐서 사람이 없으면 꼭 들어가서 오뎅 하나씩 먹고 지나가는데, 가끔 오뎅 하나로는 좀 출출해서 꼬마 김밥도 먹을까, 순대를 한 접시 먹을까 하다보면 사람들이 하나, 둘씩 들어온다. 그러다가 꼬마 김밥 거의 다 먹을 무렵에는 천막 안이 아주 바글바글해져서 처음 터 잡은 내가 아주 쫓기듯 계산하고 밀려난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아니, 이런 것이 거의 대부분인 경우인지라 내가 나를 스스로 '사람을 끄는 사람'이라고 칭하는 것.

만두전골집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지금은 이렇게 비어 있지만, 나중에 내가 계산을 하러 나가던 무렵에는 저 테이블에 빈 곳이 거의 없이 와글와글 꽉 찼다. 코로나의 사회적 거리두기가 무색할 정도였다. 이 집은 코로나도 비껴갈 집 같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이런 사람은 장사하면 안된단다. '다른' 사람들 장사터에 행운을 토스해주는 역할만 수행해야 한다나. '내' 장사 하면 망할 터이니 그 점 명심하라 이르셨다. 삼신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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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해를 구하고 만두 빚는 이모님들을 촬영했다. 한 분은 김치만두, 다른 한 분은 고기만두를 부지런히 만들고 계신다. 이곳의 상호를 정확히 이야기하면 '경복궁 개성 손만두'집이다. 2016년에 창업한 프랜챠이즈 만두집인데, 프랜챠이즈 특유의 선입견 때문에 맛 다 똑같고, 하향 평준화되어 있는 것 아닐까 하는 점에 대한 문의를 많이 받았다. 잘 관리된 프랜챠이즈라면 맛 다 똑같아야 한다. 그런 면에서 경복궁 개성 손만두집 여기 참 운영 잘하고 있는 것 같다. 검색을 해보면 대번에 알 수 있듯 다산이면 다산 신도시, 일산이면 일산 내가 온 강화면 강화, 각각 마을의 맛집으로 소문이 자자하다. 본사에서 일괄적으로 공장만두를 만들어서 냉동으로 각 지점으로 내려는 방법이 훨씬 편리하겠지만, 그리고, 그렇게 되면 이제 유통업으로 확대되니 돈도 많이 벌 수 있겠지만(너희들 우리 회사 만두 써야 해. 안 그러면 맴매!), 이렇게 지점마다 '손'만두를 고집하는 것에 큰 박수 보내고 싶다. 그리고 간판부터 메뉴판, 명함까지 BI 를 비롯해서 브랜드 관리도 무척 잘 되어 있어서 감탄스럽다! 즉 개성 손만두의 만두전골을 먹고 싶다면 이렇게 강화까지 바람 쐬며 가는 방법도 좋겠지만, 우리집이랑 가까운 다산 신도시로 날아가서 먹어도 아무 문제 없고, 위에서 극찬한 국물맛까지 땀 흘리며 맛볼 수 있다면 이건, '개성 손만두' 포에버!를 외쳐야 하는 시점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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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에 가서 포장을 해왔어야 했다. 포장... 이곳에 다녀오셨던 분 말씀을 들어보니 국물도 아주 넉넉히 잡아주신다고 하던데.... 이렇게 푸짐하게 먹고, 딱 저렇게 8000원만 내고 나오자니 그야말로 '미안한 생각' 또한 들었고. 나도 어쩔 수 없는 K-국민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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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완냉이니, 완식이니 해서 맛있는 음식들 싸악 쓸어먹고 인증하는 것 그런 것 안 하려고 하는데, 여기는 좋은 재료로 너무나 맛있게 만든 음식이라, 그리고 먹는 동안 참 행복했던지라 한 번 빈 그릇 한 번 보여드린다.

별로 좋아하지 않는 팽이버섯 반쪽 빼고 다 건져서 먹었다. 이렇게 배불배불~ 하면서 탕탕 치고 나왔는데 어찌나 속이 편안하던지 커피 한 잔 마시고 나니 소화가 다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것이 바로 먹고 뒤 돌면 배고프다는 그 매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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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한끼 식사를 마치고, 목도리를 두르며 나오니 강화도는 이날 눈이 내렸다. 비록 싸리눈 잠깐 내리다가 말았지만... 그 잠시동안 밖에서 눈을 맞고 서 있었다.


아직 어린아이 같은 마음이 큰지라 지금도 눈 오는 날 좋아하고, 크리스마스 기다리며 설레는데, 앞으로도 환갑이 넘어도 눈 오면 그저 좋고,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 하면서 행복한 사람으로 살았으면 좋겠다.

........... 라고 쓰다가 바로 주문을 해버리고.

(매년 사는 트리들은 도대체 어떤 블랙홀로 빠지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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