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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 만두집을 만나고 싶었는데...

가는 날이 장날, 동해의 고향에 왔다.

by 황섬

사는 곳이 서울이라 아랫 동네는 갈 기회가 그다지 많지 않다. 경상남북도 쪽은 예전 시댁도 있었고, 우리집도 그쪽인지라 자주 갔었지만 전라도 땅은 살면서 발을 디딘 것이 손에 꼽을 정도이다.

그 와중에 만두 원고를 마무리하면서 보니 아무리 만두가 북쪽 음식이라고 해도 너무 전라도 쪽 내용이 부실한 것이다. 이럴 수는 없다! 이 핑계김에 나선 목포길.

[목포에 만두 먹으러 간다고? 호남의 만두라니... 마치 함흥의 홍어회 같은 느낌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목포랑 만두랑은 어울리지가 않아서...]

심지어 목포가 고향인 분도 우려를 하셨다. 사실 만두 자체를 먹으러 간다기 보다, 나는 전라도 특유의, 음식을 만지는 손맛을 기대한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나는 지금 오십이 다 되어 아이돌 스타 덕질 중이다. 연예인에게 몰두하는 이 신비한 경험은 열다섯 살 무렵 이문세 아저씨 이후 처음이다.

슈퍼 주니어 '동해'.



알딸딸한 비음에 강약 조절이 제대로 이루어지는 춤사위(춤선이라고 해야 하나!), 그리고, 소년 감성 잔뜩 실은 작사.작곡 실력까지!! 게다가 동방신기 유노윤호와의 일화는 나를 그저 동해에게 전진 앞으로! 하게 만들었다. 목포가 고향인 동해는 연습생 시절 광주가 집인 윤호랑 함께 서울을 오가며 가수의 꿈을 키웠다고 한다. 윤호는 고등학교 때 학교 마치고 바로 역으로 와서 기차 타고, 밤 10시에 서울 도착, 새벽 2시까지 연습하고 다시 광주 내려가서 아침에 옷만 갈아 입고 학교 가는 일정을 매일 소화했다고 하는데, 그 옆에는 물론 동해가 함께 했을 터. 그래도 잠도 하나도 안 오고, 피곤하지도 않더란다. 너무너무 서울 가서 연습하고 싶어서. 이런 열정이 오늘의 동해, 유노윤호를 만든 것이 아닐까! 동해는 아예 고등학교부터 서울에서 다녔다.

여하튼... 어제 도착한 곳, 목포가 바로 동해의 고향이라는 이야기를 이리 길게 풀어 놓은 것이다.


지난 1년 반이 다 되는 시간동안 전국을 누비면서 만두를 먹고 다녔는데, 그 와중에 키운 것이 하나 있다. 어떤 어르신 말씀이 '안목이 재산'이라고 하셨다는데, 바로 '숙소를 고르는 안목' 내게 생긴 것이다. 그래서 제아무리 어플에 사진만 근사하게 찍어놓아 고객들을 현혹한다 하더라도 나는 매의 눈으로 옳은 곳인지 아닌지를 거의 완벽하게 골라낼 수 있다. 목포에서 숙소도 홈런이었다.


에스타시옹 1913

이곳은 1층은 돼지고기, 양고기와 함께 와인을 파는 가게이고 2층이 바로 게스트하우스이다. 어찌 된 일인지 손님이 나 한 명 밖에 없던지라 멋진 공간을 오롯이 혼자 누리며 유유자적 하루 저녁을 즐길 수 있었다.



숙소에 짐을 풀고 만두집을 찾아 나선 길. 다행히 딱 숙소와 300미터 가량 떨어진 곳에 내가 가고 싶었던 만두집이 있어서 정말 기뻤다. 어디든 그날 일정의 마지막 만두집이 숙소 가까이 있어야 다음 일과가 피로하지 않다는 것은 지난한 시간동안 만두집을 누비면서 깨달은 바이다. 안 그래도 아침에 커피 한 잔 마시고, 오후 세 시 목포역에 도착해서 네 시가 다 될 무렵까지 한 끼도 못 먹고 있었다. 시장이 반찬. 이것은 어떤 형태로든 미식(?)을 향한 진리다!

너무 배가 고파서 허겁지겁 들어간 만두집.

황해도식 만두국으로 유명한 '대청'이다.

이때가 3시 30분이 좀 넘은 시간이었다. 그런데, 일가족으로 보이는 노부부와 따님이 잔잔한 클래식 음악을 틀어놓고는 종이컵에 믹스 커피를 마시며 휴식을 즐기고 계신 것이다.

- 저희 오늘 2시에 다 끝났어요. 재료가 다 나가서...

'아, 유명한 집은 이렇구나' 하고 아쉬운 발걸음을 돌리던 차에 입구에 붙여 놓은 영업시간을 보니, 원래 오후 3시까지 딱 점심 장사만 하고 마는 집이었던 것이다. 사전 조사가 부족했음에 가슴을 치고...

그래도 토요일 오후, 이것이 좀 오래간만에 휴일에 쉬라는 누군가의 계시려니 하고 동네를 한 바퀴 돌기 시작했다. 낯선 여행지에 가면 제일 좋은 것이 골목 골목 샅샅이 다녀보는 것이다. 내가 못가본 곳 어디든지 사람이 살고 있다. 그것이 왜 그렇게 신기한 것일까. 다른 공간에서 같은 시간을 공유하는 것이 경외감마저 든다. 하물며 쓰는 언어가 다르면? 그 이질적인 느낌이 더 재미나게 다가온다.


나는 몰랐는데, 이곳이 목포의 북항 근처, 근대사 거리라고 한다. 잠시 대화방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우리나라 특유의 k-문화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는 곳이라고 생각이 든다. 뭐든지 그냥 냅둬. 방치하는 가운데에서 뭔가를 만들어낸다. 이렇게 옛날 대문도 그대로 놔두면 예쁜 카페의 일부 아웃테리어가 된다. 알루미늄 샷시도 그래도 사슴 수퍼의 멋이 된다. 하물며 저 예쁜 '유달동의 로망스'라는 카페는! 만화 가게의 전화번호만 보더라도 못해도 40년은 된 건물의 역사가 느껴진다.


주린 배를 안고 동네를 돌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은 시점에 눈에 들어오는 음식점으로 그냥 무작정 들어갔다. '목포라면 홍어라면'이란 곳이다. 홍어의 맛을 모른다면 모를까 목포라면 홍어지!


이 집은 홍어라면이 기본이고, 홍어회, 홍어전, 홍어튀김 등으로 이루어진 여러 세트가 있다. 폭탄과도 같은 홍어튀김의 맛을 좋아하는 나는 대뜸 저 홍어회, 홍어라면, 홍어튀김 세트를 골랐다. 그리고 참이슬도 한 병.
조용한 가게에서 아저씨가 계속 칼을 가신다. 음식을 하기 전에 한두 번 정도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내가 주문을 하고도 술도 안 내주시고 너무 열심히 칼을 갈아대셔서 이거 밥 언제 먹겠나 싶고, 정신이 아득해지려고 하기 직전에 받은 술상이다.

홍어김이 나중에 나와서 퍼지는 바람에 그거 가라앉히려 대가리 따악 따악 때려가며 먹어야 하는 홍어튀김도 역시 내 기대를 져버리지 않았고, 홍어회의 향도 알근하니 아주 좋았다. 무엇보다 난생 처음 먹어본 홍어라면!!! 와, 어떻게 라면국물에 홍어를 빠뜨려서 끓인 국물이 이렇게 멋질 수 있을까. 딱 라면 반 홍어 반 향이 나고, 속이 엄청 뜨거워지면서 마침 비온 뒤 날이 추워서 얼어붙은 피가 세차게 도는 것만 같다.



어떤 분은 왜 대게니 홍어니 그런 고급 식재료를 라면에 넣는 것인지 궁금하다 하셨는데, 먹으면서 그 생각이 들었다. 뭔가 아주 대척점에 있는 음식들이 만나서 강렬한 퓨전의 매력을 풍기는 것 말이다. 마치 서민과 귀족의 사랑과도 같은... 아, 그나저나 홍어라면은 그냥 서민이고 평민이고 뭐고 간에 닥치고 한 입 와악 벌려서 먹다보면 나도 모르게 콧물이 줄줄 나오는데, 닦을 새도 없다. 게다가 어제는 내 앞에 아무도 없다보니 닦을 생각도 없었다. 눈물 콧물 다 흘려가면서 정말 맛있게 먹었다.

그 와중에 홍어집 아주머니, 아저씨의 꿀팁. 라면에 밥을 말아서 국물을 포옥 배게 한 다음 홍어하고 김치하고 함께 얹어 먹으면 정말 맛있다고 하셨는데 과연, 한 입 먹으니 천당이다. 너무 맛있어서 소주 진도가 안 나갈 정도였다니까.

그리고, 홍어회 맛있게 먹는 법. 홍어 위에다 쌀밥을 얹고, 김치를 싸서 먹으면 돼지고기 수육 저리가라, 삼합이 완성이 된다고 한다. 너무 맛있어서 이건 사진 찍을 생각도 못하고, 홍어 다섯 점 모두 먹어버리고야 말았다.

그나저나 목포에 와서 느낀 점은 어디를 가나 밥이 윤기 나고, 찰지다는 것이다. 예외가 없다. 내가 그동안 너무 맛없는 쌀만 먹어왔던 것인지...

두 집 모두 다른 음식점이지만, 같은 정도의 아름다운 찰기와 윤기를 보여준다.

그리고 무심한 듯 내밀어주시는 주인 아저씨의 홍어코 서비스!!! 태어나서 홍어코 말만 들었지 처음 먹어봤는데, 생긴 것은 조금 그렇지만 입에만 집어 넣었다 하면 마법을 부린다.

아저씨가 사실 말씀하시는 것도 느릿느릿 교양이 넘쳐 보이고, 손도 음식점 하실 분 같지 않게 너무 느리셨던지라 경력이 좀 궁금했는데, 옆 테이블 아주머니께서 술 한잔 걸치시고는 대신 물어봐주셨다.

'교육사업' 하시다가 접고 홍어집을 시작하신 거란다. 다음에 이 동네 또 오게 된다면 나는 저 에스타시옹1913 게스트하우스과 더불어 이 홍어집 세트로 재방문할 의사 백퍼, 만퍼센트다!



그래도 명색이 '만두 취재'를 하러 온 여행인데, 까딱 잘못하다가 만두집에는 못 들리겠다 싶어서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일정을 점검해보았다.

'대청' 만두집에서 좌절된 이후 내가 가고 싶었던 '못잊어 손만두'와 '옛날 손만두'를 검색하고 전화까지 걸어보니...두 집 모두 일요일은 뒤도 안 돌아보고 닫으신단다. 특히 '못잊어' 만두집은 목포에 사는 분들도 만두 맛 보기 어려운 곳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낭패다.

그래도 이렇게 다른 지역에 왔을 때는 시장이라도 들러 보고 가야한다, 시장에 가면 그 지역 사람들만 아는 맛있는 만두집이 한 집 이상 존재를 빛내고 있었던 기억을 더듬어 '자유시장'으로 출발했다.


안 그래도 목포, 날도 춥고 너무나 허탈했다.


맙소사! 온 시장에 온통 불이 꺼져 있다. 동굴 같다. 도깨비 자유만두라는 곳도 보니까 자유시장의 꽤 명소던데 굳게 문이 닫혀 있다. 전화를 해보니 시장인 1,3주 일요일에 문을 닫는단다. 오늘이 바로 그 유명한 1,3주 일요일이었던 것이다. 어떻게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목포의 만두집 모두 나를 이렇게 요리조리 피해갈 수 있는 것이지? 또 다시 배가 쪼르륵거리기 시작했다.


밑반찬에 요구르트 서비스.


일단 목포역 쪽으로 가서 무조건 만두라는 글씨가 보이는 곳을 찾았다. 그리고, 들어간 중국집 대명춘.

중국집 만두 다 군만두 아닌가 싶었지만, 간판을 따로 걸어놓은 것을 보니 뭔가 다른, 내세울만한 면이 있나 궁금했다. 짬뽕밥에 찐만두 하나를 주문했다.

역시 전국이 다 그러하듯 이곳도 가게 한가득 트롯이 울려퍼진다.

- 역시 ... 노래는 확실히 남진이가 잘 부르재. 잉.

그러더니 물으신다.

- 서울에서 오셨소. 그라믄 여 가까이에 남진이 생가(!) 있으니 함 들러보쇼. 가까이에 있응께.

나는 참 신기한 것이 내가 서울에서 올 수도 있고, 대전에서 올 수도 있고, 하다못해 경기도에서 올 수도 있는데 이런 음식점 아저씨, 아주머니들은 나를 정확히 집어서 '서울'에서 온 사람이라고 박아놓고 이야기를 하신다. 한두 번 겪어보는 것이 아니라 경이로울 따름이다. 무슨 조화일까.

여하튼 아저씨의 '목포 출신 가수' 남진에 대한 자부심도 느낄 수 있었다. 아저씨, 동해 아세요? 목포 연동초등학교 하고 요 근처 덕인중 나왔는데 말예요!




아저씨가 남진에 이어 무척 자랑스러워하는 이집, '대명춘'의 찐만두다. 중화요리 경력 46년이라고 하시는데, 아예 처음부터 만두 빚는 법을 반죽부터 피 밀고, 소 만드는 것까지 배우셨다고 한다. 저 보랏빛 나는 것이 고구마 피란다. 궁금하다. 어떻게 저런 색을 낼 수 있을지. 사실 고구마는 껍질이 보랏빛일 뿐 안은 하얗거나 노란데... 어렸을 때 먹던 '군고구마'라는 아이스크림이 겉 껍질이 저 색깔이었던 기억도 나고 말이다.

오늘 또 한 번 느끼는 '시장이 반찬'의 순간 되겠다!


한참 짬뽕에 만두에 먹고 있는데, 어떤 아저씨가 들어오신다.

- 어어이!!!

아저씨 얼굴이 정말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 보듯 환해지신다.

- 어어이!!!

딱 봐도 두 분 약주 좀 세게 하시게 생겼는데, 아니나 다를까 아저씨 친구분이 마누라가 술국 끓여줘서 그거 후루룩 한 그릇 하고 오시는 길이란다.

- 왐마! (나는 정말 전라도에서 왐마!라는 감탄사를 쓰는 것을 실제로 처음 봤다) 만날 술 먹는 신랑 므시 이쁘다고 마누라가 술국을 다 끓여조야?

- 다 활용도가 있은께.

- 활용도라!!? 와하하하하하!!!
- 그라지라.

이러시더니 두 분 벌떡 일어나더니 어디론가 나가신다. 아주머니가 지금 주방에서 만두 찌고, 짬뽕 끓여내고 아저시가 홀을 보시는데, 어라? 저러고 나가신 모양새가 금방 돌아올 것 같지가 않았다. 때마침 전화가 띠리리 울린다.

주방에서 나와 전화를 받으러 가면서 아줌마가 진짜 기차 화통같은 데시벨로 소리를 꽤액!!! 지르신다.

- 오시요오오오오오오오!!!!!!!

이러더니 여보세요? 하고 주문을 받으시는데, 아저씨 전과(?)가 만만치 않았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전화통을 툭 내려 놓으시더니 아주머니는 한숨을 꺼져라 쉬시면서 '으이그~ 저 둘만 뭉치면...' 하시는데, 아무래도 일요일이라고 친구분 오셔서 낮술 한 잔 콜?을 외치셨던 듯하다. 아저씨는 주방에서 계속 일하시는 아주머니 눈치 볼 것도 없이 휘잉 나가버리시고 말이다.

결국 아주머니에게 덜미 잡혀가지고 온 아저씨. 얼마 전 중국산 김치 담그는 사진을 보고(알몸 염장.... ㅠㅠ) 요즘 중국집에서 도저히 김치에 손이 가지 않아서 단무지를 좀 더 달라고 했더니 아저씨가 참 아쉬운 표정으로 와서 툭 떨구고 가신다.

- 추가 반찬은 셀픈디, 아가씨라, 멀리서 오셨고 해서...


아저씨의 자부심 잔뜩 담긴 만두 맛있게 잘 먹고 간다. 하마터면 목포까지 와서 만두 한 판 제대로 먹지 못하고 갈 뻔했다만... 드는 생각은 반죽부터 해서 피하고 소하고 다 직접 안에서 만드신다고 하는데 이걸 과연 누가 빚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아주머니의 꽤액! 일갈이, 그것도 홀에 손님이 있는데도 속 터져 못살겠다는 듯한 그 소리가 계속 마음에 남는다. 그래도 어딘가에 '활용도'가 있으니 함께 하시겠지.



이렇게 허탈하지만, 새로왔던 짧은 목포 여행 마치고 기차타고 올라가는 길이다.

만두집에 제대로 들르지 못한 아쉬움도 있지만, 한 번 더 오면 왠지 모르게 더 알차게 지내다 갈 수 있을 듯해서 조만간 또 들를 것 같다.

만두 원고 마감짓기 전에 또 올 것을 다짐하며, 긴 글 마무리한다.


** 아 참! 그리고, 기차에서 노트북 가지고 일을 하려면, 좁지 않고 편하게 일하려고 특실을 예약할 생각들을 하는데, 사실 나도 그랬고, 그럴 필요가 전혀 없다.

특실의 좌석배치의 핵심은 다리 쭉 뻗고 편하게 가는 것이기에, 테이블과 의자 간격이 너무 넓어서 허리가 아프다. 그리고, 테이블이 넓은 것도 전혀 아니어서 깜짝 놀랐었다는 사실. T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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