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박 3일 목포, 광주 만두 여행기, 1부.
큰 맘 먹고, 발에 프로펠러 달고 1박 2일 목포와 광주의 만두를 섭렵하고자 했던 지난 주말. 자료 조사 부실과 체력 소진으로 인해 광주 땅은 밟아보지도 못하고, 목포 만두집 세 군데가 모두 문을 닫아버리는 바람에 아무런 소득 없이 돌아왔었음은 지난주 일요일 브런치에 남겼다.
https://brunch.co.kr/@chocake0704/84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약이 오르는 것이다. 목포가 서울에서 좀 먼 곳인가. 거기까지 갔다가 헛탕을 치고 오다니! 게다가 전라도 사람들의 손맛을 꼭꼭 믿는 나는 만두도 예외 없으리라는 기대가 컸었다. 그래서 짐을 챙겨가지고 떠났다. 다시, 목포로! 이번에는 애초에 계획했던 금요일부터 시작한 2박 3일 일정으로 목포에서 광주를 둘러서 오기로 했다. '대만두지도'를 만들겠다는 각오의 김정호처럼!!!
먼저 지난 주말 1,3주 일요일은 쉰다는 것을 모르고 무턱대고 갔던 신자유시장의 '도깨비 자유만두'를 들르기로 했다. 요즘은 워낙 택시 어플이 잘 되어 있어서 내 차를 가지고 가지 않아도 비교적 샅샅이 탐색을 하기 좋다. 무엇보다도 지역의 택시 운전사 아저씨들은 상호를 알려드리면 잘 모르시고 어디어디 아파트 앞, 어디어디 학교 뒤 이래야 아시는데, 어플은 그냥 네비게이션만 따라가면 정확한 곳에 떨어지니 나 같은 방랑자들은 실로 편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은 불이 켜진 반가운 만두 가게! 아주 활기차고 친절한 아주머니가 나를 반겨주신다. 그리고 앉자 마자 싹싹한 여자 직원 분이 저리 물과 단무지, 그리고 간장 세팅을 해주시고. 테이블이 너무 반짝여서 먹는 내내 거울 보는 것 같아서 부담스러울 정도였다?
사진을 찍어도 되겠냐고 부탁을 드렸더니, '아이고, 으째쓰까!' 하시면서 흔쾌히 허락해주신다.아주머니의 날렵한 솜씨이다. 지난 주 하도 헛탕을 쳐서 목포역에서 오는 길이 좀 조마조마했는데, 아무래도 이번 만두 여행은 홈런을 칠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부푼 마음으로 고추만두와 고기만두를 주문했다. 이곳은 김치만두 대신 고추만두라는 이름으로 빚어낸다.
말할 수 없이 우아하게 얇은 만두피, 어떤 웨딩드레스의 레이스도 이렇게 맛있어보일 것 같지 않다!는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이때가 오후 2시가 좀 넘은 시간이었다.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기차 안에서 취식이 되지 않는 터라 아침부터 집에서 내린 커피 한 잔으로 버티고 있었는데, 뱃가죽이 등에 들러붙기 직전에 먹은 동글동글 예쁜 만두가 얼마나 맛있었는지 모른다. 도깨비 자유만두의 특징은 '맛있게 매콤한 맛'이다. 심지어 고기만두 또한 조금 칼칼한데(기억하시길!), 그래도 어린이 친구도 와서 잘 먹고 간다. 1학년 초등학생이 엄마랑 와서 만두를 먹는 것을 보니 기특하다.
이쯤에서 우리 아들 만두를 소개한다. ^^ 물론 별명이 만두다. 그래서 나는 '만두 엄마'가 된 것이고.(브런치북의 제목이 '만두 엄마'의 어글리 딜리셔스가 된 연유이다) 아이가 2014년 6월 30일 태어났는데, 딱 보니까 눈코입이 모두 얼굴에 묻혀 둥그랬다. 예쁜 만두피에 묻힌 것 같았다. 만두같이 생겨서 만두라고 부르다보니 모두들 만두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만두집에 온 모자를 보니 엄마는 만두 여행한답시고 집에 떼어 놓고 온, 올해 학교에 입학한 우리집의 만두 어린이가 생각이 난다. 나의 여행은 늘 이렇게 양면이 존재한다. 혼자 여행을 하면 동선 확 줄이고, 기동력 최대한 끌어올려서 효율적일지는 모르겠지만 엄마만 와서 혼자 이리 맛있는 것을 먹고 있자면 자꾸 마음이 쓰인다. 그리고, 여기에 같이 왔으면 좋아했을 텐데 하는 마음도... 그나마 위로 받는 것은 우리 아이들은 만두는 아예 입에도 대지 않는다는 것.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만두국도 안 먹고, 찐만두도 아무리 맵지 않은 고기만두로 해줘도 먹지 않는다. 그래도 보고 싶은 마음은 여행하는 내내 따라다닌다.
만두소는 전형적인 우리 한국의 만두, 어려서 명절이면 집에서 해먹던 추억의 만두다. 당면이 들어가 있고, 부추가 듬뿍 들은... 사실 나는 요리를 그렇게 잘하지도 못하고, 먹는 행위란 그저 배 채우는 것이 최종 목표인 우리 엄마 덕분에 명절에 온 가족이 둘러앉아 만두를 만들어 찌는 아늑한 추억은 없다. 그래도 어렴풋이 이런 느낌은 들은 적은 있었던 것 같다. 고모, 할머니, 사촌들, 삼촌 그리고 엄마, 아빠, 내 동생... 이렇게 바글바글 모여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하고 안심이 되었던 기억. 만두를 보면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는 것 같아 좋다. 이런 것을 소울 푸드라고 하지.
목포는 이날 벚꽃이 절정이었다. 날씨도 적당히 따뜻했다. 이곳에 내려와서 처음 먹은 만두도 매우 흡족하고, 정말 잘 내려왔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사실 만두를 먹으러 전라도에 간다고 하니 많은 이들이 의아해했다.
[남도 사람들은 만두 안 먹어요]
사실 목포만 해도 항구도시인지라 해산물이니 뭐니 타지역에서 들어오는 음식들까지 먹을 것이 지천에 널린 지역이다. 이리 먹을 거리가 풍부하게 많은지라 아주 부자 동네였다고 한다. 만두 말고도 다른 먹을 것이 많은데, 무엇하러 만두를 굳이 빚어 먹느냐는 이야기다. 사실 만두는 북쪽 음식이도 하고 말이다. 그나마 내가 사는 곳이 서울인지라 경기도 북부쪽으로 가면 그나마 만둣집도 많고, 북쪽 지방에서 내려와 정착한 분도 많이 사신다. 점점 밑으로 내려가면서 설날에는 떡만두국을 먹고, 전라도 쪽으로 가면 아예 만두는 빼고 떡국만 먹는다고들 하신다.
[전라도는 육전이재]
이 좋은 날씨에 목포 거리를 거닐면서 팝콘 제대로 터진 벚꽃 구경도 하고, 이쪽 집값은 어떻게 되나 체크도 해본다. 요즘은 누군가가 '꽃 사진을 찍으면 늙은 것'이라는 쓸 데 없는 이야기를 해가지고, 쿨한 척 예쁜 꽃들 봐도 그냥 지나치려고 했는데, 아파트 옆에 핀 이 벚꽃은 지나가다가 와! 하고 탄성까지 지른 터라 정성껏 찍어봤다.
숙소에 돌아와 펼친 '못잊어 손만두'
이 만둣집은 김치 만두가 없이 당면만두 한 종류만 있다고 한다. 슬슬 날도 더워지고 가게에 들어가서 차분하게 먹고 싶었는데, 가게에 개가 목줄도 없이 돌아다니는 바람에 그냥 돌아왔다. 나는 아는 사람은 다 아는 동물 공포증이 굉장한 인간이다. 아들 개를 잠깐 맡고 있다고 하는데, 동물을 무서워하시면 들어와서 못 드신다고 하니 이게 무슨 주객이 전도된 말인지는 모르겠다. 기분이 몹시 나쁜데도 여기까지 기껏 찾아왔으니 한 팩 사서 먹어보자 하고 주문했다. 10알에 3000원이다. (이런 서비스에는 아주 냉정하다. 그리고, 냉정해야 한다. 감상 없다.)
목포에 이미 단골 가게도 만들어놓았다. '목포라면 홍어라면'이란 곳이다. 지나가다가 우연히 들어간 곳인데, 이 곳 명물일세!! 이집 주인 부부는 도대체가 돈을 벌 생각을 하시는 것인지, 내가 살다살다 흑산도 홍어 암치 삭힌 것을 먹어봤다. 이곳에서... 홍어라면도 엄청나지만 홍어애국도 저렇게 한 그릇 뚝딱에 만 원이다. 심지어 혼자서 한 소주 두 병쯤 먹고 있으면 슬쩍 놓아주시는 아저씨의 '홍어코' 서비스!!! 이집 때문이라도 나는 다음에 또 목포 올 이유가 생긴 것이다.
다음날 아침, 위의 '목포라면 홍어라면'집 같은 골목에 있는 만둣국집 대청으로 휭하니 달려왔다. 지난 주 토요일 오후 2시에 이미 재료가 소진되어 끝났다는 말을 들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가게에 잔잔히 흐르는 클래식!
여는 시간 11시를 꽁꽁 기다렸다가 온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내가 첫 손님이었다. 만둣국 하나, 빈대떡 하나를 주문했다. 주인 아저씨께서 부산하게, 그러나 침착하게 움직이신다. 가게 안은 온통 화려한 종이 공예로 넘쳐났다. 한켠에 클래식 CD들도 주인장 부부의 취향과 취미를 가늠케 했다.
가끔은 이렇게 만두 가게가 아닌, 다른 사람의 집에 초대를 받은 것처럼 조용한 분위기에 압도되는 때가 있다. 이런 느낌이 사실 아주 나쁘지만은 않은 것이 내가 만두 먹는 것을 누가 쳐다보지만 않는다면 만두 맛에 몰입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만두를 사랑하지만, 숙제처럼 만두를 먹고 글을 써야 하기에 이 원고에 담긴 모든 만두 여행은 철저하게 혼자였다. 내가 만두 에세이를 쓰는 것을 알고 지인들이 '여기 만두 맛있네, 사진 찍어 가' 하면서 가끔씩 배려해서 포토 타임을 주시지만, 그 만두는 미안하게도 원고에 쓰이지 못했다. 좀 유난을 떨고, 거창하게 이야기하자면 온 기를 모아 접신하는 무당처럼 오롯이 혼자 만두에 몰두해야 글감이 나오기 때문이었다. 이 집은 이렇게 만두에 접신하기 딱 좋은 장소였다.
하루에 11시에서 3시까지 딱 4시간 점심장사를 하시는데, 그나마 수요일과 일요일은 쉬신다. 주 5일, 4시간 영업. 준비시간까지 합하면 대청의 주인 부부는 최적의 근무 환경에서 장사를 하시는 것이다. 주방에서 알바도 함께 일을 하던데, 일주일에 20시간 여 일을 해서 될까 싶지만, 무슨 다른 해결책이 있으시겠지.
국물은 사골국이다. 딱 알맞게 따끈한데, 사기 그릇이 좋아서 그런지 만두를 다 먹고 바닥이 보일 때까지 그 뜨끈함이 유지된다. 게다가 만두속은 얼마나 담백하고 깔끔한지 모른다. 황해도식 만두를 주창하는데, 사실 저 위 북쪽 지방에서 내려온 만두는 대부분 속이 하얗다.
지단을 노른자, 흰자 갈라서 세심하게 만들어내신 것도 맘에 쏙 들었다. 사실 위에 올린 지단 무슨 맛이 있나 싶지만, 고명이 이리 정성스레 올라가 있으면 보는 맛으로 식욕이 한껏 올라간다. 그나저나 만두 가르기 기술은 수많은 곳으로 만두를 먹으러 다녀도 영 늘지 않는다.
빈대떡이자 녹두전. 가끔 만둣국 파는 데에서 빈대떡도 함께 내시면 나는 어김없이 주문해서 먹어본다.
돈 없으면 집에 가서 빈대떡이나 부쳐 먹지. 한 푼 없는 건달이 요릿집이 무어냐. 기생집이 무어냐.
옛날에는 밀가루보다 녹두가 훨씬 쌌으렷다. 그러니 돈 없는 사람들, 빈자(貧者)들이 부쳐먹는 떡이라 해서 빈자떡, 그리고 빈대떡이라는 설도 있지만, 17세기 문헌에는 '빙져'라는 말이 나온다고 한다. 떡 병(餠)자를 중국식 발음으로 표기한 것이 빙져, 빙저, 빈저, 빈자 하다가 빈대떡으로 변한 것은 아닐까, 이 과정에 대한 의문 또한 국문학자 선생님들과 음식문헌학 선생님들께 안겨드린다. 무엇이면 어떤가. 대청의 빈대떡은 적당히 오들오들하고 맛있다. 녹두 특유의 그 까끌까끌함 말이다.
김치 사진은 이 두 부부의 모습 같이 단정하기 그지 없어 특별히 찍어봤다. 잘 익은 김치 포기를 꺼내어 나무 도마 위에 얹고, 칼로 단정히 잘라 한 도막 예쁘게 그릇에 올렸다. 나 같이 김치통 그대로 가위를 대어 쓱쓱 본디없게 잘라서 식탁위에 올린 것과 정성이 다르다.
주인장 부부님들은 이곳에 와서 장사를 시작하신 지 20년이 되었다고 한다. 사모님은 미술 교사셨고...
계산을 하고 나가다가 두 부부의 젊은 시절 흑백 사진이 너무나 멋있게 액자 안에 있기에 여쭤본 것이다. 할아버지는 젊은 명동백작 박인환과도 같은 모습! 할머님은 아주 얇상한 미인은 아니지만 지적인 우아함이 넘치는, 1930년대 천재 문인과 천재 미술인의 아프로디테(?)였던 문필가 변동림과 같은 느낌이었다.
만두피는 왜 노랗냐고 마지막으로 여쭙고 떠났다. 만두피에 강황을 넣어서 그런 것이란다.
목포의 아침, 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문을 열고 나오니 어떤 커플이 만둣집 안으로 들어간다. 그러면서 한 마디.
- 지금 여기 영업 하는 건가?
이런, 영업을 하는 건지 아닌지도 모를 특별한 고요함 속에서 만두에 몰두해 보시길.